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106화 (10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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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의 결심

[106]

그대로 숨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절정에 이를 때의 기분은 늘 짜릿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두려울 정도로 아찔했다. 침대에 누워 팔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아리스텔라는 눈을 깜박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도 현기증이 가라앉지 않아 시야가 팽팽 돌았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 계속해서 헐떡임이 샌다.

“ 흐윽, 흑……. ”

“ 성녀님……. ”

로이드와의 섹스가 괴로웠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로이드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사랑합니다, 성녀님. ”

“ 읏, 흐으……. ”

곧이곧대로 말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것은 참으로 멋없는 일이다. 그러나 로이드는 귀족이었을 때 배웠던 교양 있게 돌려 말하거나 아름답게 비유하는 방법을 모두 잊어버렸다. 그 어떤 비유를 들더라도 그의 마음을 완벽히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비유 같은 것은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 언제나……. 저는 언제나, 당신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

투박하더라도, 진심을 담은 말은 반드시 상대에게 전해진다. 아리스텔라의 보라색 눈동자에 로이드의 모습이 비쳤다. 사랑스러운 여자를 어쩌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해 하는 바보 같은 남자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 로, 로이드……. ”

아리스텔라가 이름을 부르자, 로이드는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케인처럼 격렬한 키스를 할 수는 없었다. 아리스텔라는 아직도 숨을 쉬는 것이 힘겨운지 헉헉거리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쓰다듬으면, 그녀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느껴진다.

로이드는 아리스텔라의 뺨과 턱 끝, 목덜미와 어깨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며 몸의 떨림을 가라앉혔다. 물수건으로 땀을 닦고, 내내 긴장해있느라 저릿저릿한 팔과 다리를 주물러주자 붉게 물들었던 피부가 서서히 진주빛으로 원래의 색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 아……. ’

몸을 마저 닦기 위해 아리스텔라의 다리를 벌리게 한 로이드는 음부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정액을 보고 야릇한 기분에 휩싸였다. 뒤처리를 하는 것이 처음도 아닌데, 어쩐지 선뜻 그곳에 타올을 대기 어려웠다.

“ 로이드……? 아응! ”

음부에 따스한 숨결이 닿고, 이어서 촉촉한 혀가 음순을 간질이자 아리스텔라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가늘게 신음했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몸에 또다시 주어지는 자극은 은근하게 그녀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 제 것이 흘러나오고 있네요. ”

“ 아읏, 그런……. ”

민망하니까 말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부끄러운 듯 다리를 오므리려는 것을 양손으로 감싸 벌리고, 로이드는 붉게 충혈된 채로 실룩거리는 그녀의 음부를 혀로 핥았다.

“ 아, 아아……! 아으응……. ”

“ 방금까지 이 안에, 제 것이 들어가 있었지요……. ”

이토록 작고 가녀린 몸을 자신은 그렇게 무참하게 범했던 것인가. 로이드는 제게 환멸을 느끼는 한편 성녀의 몸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힘주어 잡으면 부서질 것만 같은데, 어떻게 그런 격렬한 정사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일까.

부드럽고 연약하게만 보이는 그녀의 몸은 사실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쥐어 짜내듯 그의 성기를 졸라대던 뜨겁고 촉촉한 속살을 떠올리자, 로이드는 다시금 아랫배가 욱신거리며 허리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 아, 아아……. 그만……. ”

음부를 희롱하는 혀끝에서 또다시 이성을 잃을 것 같아, 아리스텔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음성에 곤혹스러움이 뒤섞인 것을 간파한 로이드는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살짝 빨아들였다가 아쉬운 듯이 놓아주었다.

“ 하으응……. ”

몸을 깨끗하게 닦고, 아직 몸을 채 가누지 못하는 아리스텔라를 살짝 안아 일으켜 성의를 입혀주었다. 아리스텔라가 고맙다는 듯 입을 뻐끔거릴 때마다 로이드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 사랑스러운 분. ’

이 여인을 독차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로이드는 괴물이 되어버린 크리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신전의 모든 사제와 성기사를 죽이고, 자신만이 그녀의 남자가 되어 이 신전을 둘만의 낙원으로 만드는 상상. 그러나 그 상상을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두 번 다시 그녀의 미소는 보지 못할 것이다.

로이드는 아리스텔라를 사랑하게 된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토록 가슴 아픈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제 욕망에 눈이 멀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로이드는 아리스텔라에게 성의를 입히고 옷자락을 여며준 다음 도로 침대에 뉘였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 성녀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

“ 으응, 네……. 뭐죠……? ”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아 몽롱한 상태로 고개를 돌리자, 눈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로이드의 얼굴이 보였다.

“ 성녀님의 시종에서 물러나고 싶습니다. ”

“ 네……? ”

아리스텔라는 로이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박거렸다. 그 스스로 물러날 이유를 알지 못하니 되묻는 것이리라. 로이드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금 단호하게 말했다.

“ 지금의 저는 성녀님을 지키기에 실력도, 마음가짐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수련을 하고 돌아오고 싶습니다. ”

“ 로이드……. ”

성기사의 신분을 잃은 것은 개의치 않았다. 사제들이 자신을 경멸하고, 성기사들로부터 기사도를 저버렸다며 멸시를 받는 것도 로이드는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성녀가 자신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조슈아에게는 털어놓는 것을 보고 로이드는 충격을 받았다. 시종으로서, 성녀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로서 그녀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저녁 훈련에서 케인에게 패배했다.

로이드는 이제까지 승패에 연연했던 적이 없었다. 성기사 가운데 최강인 그라도 대련에서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생각에 주의를 빼앗기거나, 새로운 검법을 시도하려다 익숙하지 않아 패배한 적도 있지만, 그때는 이런 비참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 수련이라면, 연무장에서 다른 성기사분들과 함께 하고 있잖아요. 시종 일과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러는 건가요? ”

“ 아닙니다. ”

전력으로 싸워서, 케인에게 졌다. 그것은 이제까지 성기사 최강이라는 칭호를 달고 있었던 로이드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케인이 무릎을 꿇고 성녀에게 은총을 받지 않고, 아리스텔라를 끌어안고 마치 연인처럼 키스하던 모습은 로이드의 질투심을 불러 일으켰다.

로이드는 아리스텔라를 범한 죄를 아직 다 씻지 못했다. 그녀에게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도 모자란 처지에 질투심을 품는다니. 적반하장에도 분수가 있다.

그런데도 로이드는 질투심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제 마음인데도 뜻대로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아리스텔라를 안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것보다도, 그녀를 사랑하는 다른 남자에 대한 질투심을 감추는 것이 더 힘들었다.

‘ 이것은 내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인가. ’

성녀의 가장 곁에서 그녀를 돌보는 시종. 성기사의 신분을 잃었다 할지라도 시종의 권한은 막강했다. 차라리 지위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여신의 현신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영광을 얻겠다며 자원할 자가 한 가득일 것이다.

그 영광된 자리에 있는데도, 로이드는 발밑이 불안했다. 매일 아침 가장 먼저 성녀에게 아침 인사를 올리고, 밤에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밤 인사를 하고 나올 수 있는 위치임에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분에 겨운 행복을 누리면서도 타인이 그녀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질투했다. 이것은 제가 탐욕스런 인간이기 때문인가.

“ 저는 당신을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

간절함을 담은 무거운 한마디에, 아리스텔라가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 빼, 빼앗기다니요……. 로이드, 지금 그건……. ”

“ 죄인의 몸으로 분수를 모르고 감히 청을 올린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곁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겸허히 따르겠습니다. ”

아리스텔라는 당혹스러웠다. 그를 시종으로 삼아놓고 시원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이 곁에 없다며 속으로 불평을 하는 모순되는 마음을 품기도 했지만, 로이드가 부탁한다면 들어주고 싶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지만.

“ 신전에서는 나갈 수 없잖아요. 시종을 그만두면, 어떻게 하려고요……? ”

“ 성녀님. 신전은 무척 넓습니다. 기사단의 중심부에는 훈련시설이 많지요. 그곳에서 수행을 하고 싶습니다. ”

“ 수행이요……? ”

연무장에서 기사들이 대련을 하는 것은 보았지만, 수행이라.

‘ 수행은 어떤 것일까. ’

언젠가 얼핏 케인이 골렘과 싸워 보이겠다던 말을 한 것이 생각났다. 집행관 클로비스가 신전의 정문을 지키던 골렘을 쓰러뜨린 것도 기억났다. 어쩌면 로이드도 그 비슷한 수련을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해지기 위해.

‘ 지금 상태로도 로이드는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지키는 것과는 별개로, 로이드도 무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바가 있는 거겠지. ’

성기사라고 하더라도 기사. 검을 사용하여 무예를 연마하는 이들이다. 강해지고픈 욕구가 없을 리가 없다. 케인에게 패배한 것이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구나, 하고 아리스텔라는 넘겨짚었다.

“ 시종을 그만두고 수련에 들어가면, 미사에도 참석하지 못하겠군요? ”

“ 예. ”

그렇다는 건, 당분간 로이드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아리스텔라는 갑자기 심란해졌다. 시종으로서 그녀의 곁을 지키던 로이드가 갑자기 사라진다니, 적적할 것 같았다.

“ 로이드. 그 수행이라는 걸 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

“ 그것은……. ”

“ 당신을 오랫동안 보지 못하는 건 싫어요. ”

처음 그녀를 구해서 신전에 데려온 뒤, 아리스텔라는 한동안 로이드를 만나지 못했다. 가까스로 재회한 순간에 하필이면 오해에 오해가 겹겹이 쌓여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로이드가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또 한참을 만나지 못했다.

이제야 겨우 그를 시종으로 삼아 가까이에서 매일 보게 되었는데, 수행을 하러 떠난다면 또 얼마나 오래 보지 못한다는 것일까. 아리스텔라는 그저 그것이 쓸쓸했다.

“ 일주일, 아니……. ”

로이드는 망설이다가 입을 다물었다. 눈을 감았다 뜨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 닷새 안에 성녀님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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