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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수업시간
[99]
“ 아으읏……. ”
성의는 성녀의 몸을 보호하는 기능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계단에서 구르거나 모서리에 찧어도 피부가 찢어져 피가 나거나 멍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처를 입는 것을 막아줄 뿐 고통을 줄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 우우, 아파……. ”
바위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필사적으로 마법 연습을 하던 아리스텔라는 갑자기 노엘이 바위를 퍽 걷어차는 바람에 그대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돌바닥에 그대로 부딪힌 충격으로 얼굴을 찡그리던 아리스텔라는 저릿저릿한 팔꿈치와 손목을 쓰다듬었다.
“ 아읏, 바닥에 찧어서……꺄아! ”
욱신거리는 부위를 매만지며 신음하던 아리스텔라는 제 가슴 사이를 비비작거리는 무언가를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그것이 노엘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당황하여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던 손에 길게 땋아 내린 붉은 고수머리가 잡힌 까닭이었다.
아리스텔라가 노엘을 깔고 누워버린 탓에 그녀의 가슴에 폭 파묻힌 노엘은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것이 제 뺨을 감싸는 것을 느끼고 정신이 멍해졌다.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지도 알지 못하고 넋을 놓고 있던 노엘이 겨우 이성을 되찾고 황급히 고개를 털다가 아리스텔라를 놀라게 한 것이다.
“ 노, 노엘? 무슨……, 아앙! ”
“ 저기, 성녀님? 지금……우웁! ”
제 가슴 사이에 얼굴을 문지르는 노엘의 행동에 놀란 아리스텔라는 무심결에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큰 가슴도 아닌데, 달콤한 향기가 나는 말캉한 가슴이 얼굴을 짓누르니 노엘은 숨이 막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미, 미치겠네……! ’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그 보드라운 감촉에 취해 정신을 빼앗길 것 같았는데, 따스한 체온과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에 한층 짙어진 달콤한 향기까지 지근거리에서 느껴지니 정말로 이성이 날아갈 것 같았다.
“ 앗, 아! 노엘, 제발 그만 해요……! ”
“ 서, 성녀님이야 말로……, 이러지 마세요……! ”
생소한 자극에 흥분한 두 남녀가 서로를 원망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크리스보다 연상이라고는 하더라도 노엘은 여자를 모르는 풋내기였다. 지도사제 몰래 돌려보던 속세의 잡지에 그려진 야한 옷차림의 여배우가 이성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던 노엘에게 아리스텔라의 몸은 혁명급이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물론 이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비유지만―그녀의 말랑말랑한 가슴이 미치는 파괴력은 엄청났다.
“ 에잇! ”
“ 꺄아악! ”
노엘은 눈을 질끈 감고, 아리스텔라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는 그대로 몸을 뒤집었다. 차가운 돌바닥에 등을 부딪친 아리스텔라가 신음했지만, 어쨌거나 두 사람의 위치가 반전된 덕분에 노엘은 겨우 고개를 들고 숨을 쉴 수 있었다.
“ 하아, 하아……. 아니, 대체……. ”
정말로 아찔한 경험이었다. 수습사제였던 어린 시절 야밤에 몰래 베개싸움을 하다가 패배한 벌칙으로 겨울 이불에 파묻혀야 했을 때도 이렇게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숨이 막혀서 숨을 쉴 수 없었던 게 아니라 그녀의 가슴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 성녀님, 그렇게 머리를 꽉 끌어안으시면 제가 어떻게 숨을 쉽니까. ”
“ 노, 놀라서 그런 거란 말이에요. 노엘이 바위를 그렇게 세게 밀치지만 않았어도……! ”
아리스텔라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가리면서 노엘을 쏘아보았다.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에 원망의 빛이 서린 것을 보고 가슴이 뜨끔한 노엘이었으나, 그는 모르는 척 헛기침을 하고는 아리스텔라의 상태를 살폈다.
“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
“ 아파요……. ”
피가 나거나 멍들지 않았다 뿐이지 벽에 부딪쳤다가 튕겨져 나온 바위에서 굴러 떨어졌으니,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다. 아리스텔라는 아직도 욱신거리는 팔꿈치와 무릎, 그리고 노엘이 몸을 뒤집느라 부딪친 등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렸다.
“ 어디 보여주세요. ”
“ 네? ”
노엘이 아리스텔라의 팔을 붙잡더니 소매를 걷어 올리고 상태를 확인했다. 부딪힌 자리가 약간 붉게 변해 있었다. 상처가 난 것이 아니니 치료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지만 열 때문에 화끈거릴 것이다. 노엘은 마찰로 붉어진 그녀의 팔에 입술을 가까이 했다.
“ 아……! ”
아리스텔라가 깜짝 놀라 소리를 높였다. 매끈한 입술과 촉촉한 혀가 화끈거리는 피부를 식혀 간다.
침 바르면 낫는다, 같은 민간요법을 쓰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붉어진 피부를 본 순간 저절로 입술이 그곳으로 향했다. 달콤한 향기 때문일까, 가느다랗고 보드라운 팔은 무척이나 맛있을 것 같았다.
“ 읏, 아……. 노엘……! ”
달콤한 체향에 달콤한 목소리. 새하얀 피부에 보드라운 몸. 어쩌면 그녀는 설탕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 바보같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노엘은 홀린 것처럼 그녀의 소매를 걷어 팔 안쪽의 부드러운 피부를 혀로 훑었다.
“ 아읏! 아……! ”
아리스텔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노엘이 처음 가슴을 만졌을 때는 화를 내면서 딱 잘라 거부하던 그녀가, 그의 몸 아래 깔려버린 지금은 거절의 한 마디를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 성녀님……. ”
“ 으응, 노엘……. ”
조슈아의 혀끝에서 절정에 오르긴 했지만 그에게 충분히 애무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성교에서 얻는 절정의 쾌감만큼이나 서로 끌어안고 체온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아리스텔라는 노엘이 제 팔을 핥아주자 간지러운 느낌과 함께 등줄기가 오싹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닥에 부딪혀서 붉어진 피부를 혀로 적셔주고 있을 뿐인데, 그의 혀가 제 피부 위를 기어 다니는 것만으로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 안 돼. 여기서 또 분위기를 타버리면 돌이킬 수 없을 거야. ’
그녀에게 고백한 세 남자에 조슈아, 거기에 히페리온과 이자크까지. 아무리 아리스텔라가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 할지라도 노엘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아리스텔라에게 고백을 한 것도 충성 맹세를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가슴을 만지게 해달라는 어이없는 부탁을 하긴 했지만, 그 말은 아리스텔라를 향한 이성적인 호감에서 나온 말은 아닌 듯했다. 아리스텔라는 제 위에 엎드린 채 팔을 핥고 있는 노엘을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 노엘, 이제 괜찮아요. 수업을 해야죠……. ”
“ 수업 말이지요. ”
노엘은 아리스텔라의 몸 위에서 비키지 않은 태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위로 올렸다.
“ 그럼 이대로 집중력 훈련을 할까요. ”
“ 노엘? ”
“ 손끝에 신성력을 모아 빛의 구슬을 만들어 보세요, 성녀님. ”
노엘의 몸 아래 깔린 채로 손만을 위로 올려 마법을 행사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아리스텔라는 당혹스러웠으나 노엘이 제 위에서 비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대로 연습을 하기로 했다.
‘ 신성력을 형태화해서 빛의 구슬을 만들고, 거기서 다시 모양을 잡아…. ’
얇은 성의 너머로 느껴지는 가슴에서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이 느껴졌다. 크리스보다 작다고 하더라도 노엘은 아리스텔라보다 체격이 컸다. 남자의 품안에 반쯤 갇힌 채로 하는 마법 훈련이라니 얼토당토않은 억지였으나 마법에 문외한인 아리스텔라가 알 리가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리스텔라는 노엘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손끝에 신성력을 모아 빛의 구체를 만들었다.
“ 이제 여기서 다시 손끝으로……꺄아! ”
노엘의 손이 아리스텔라의 옆구리를 슥 쓸었다. 아리스텔라가 깜짝 놀라 몸을 뒤척이자 노엘이 제 몸으로 그녀의 몸을 누르며 재촉했다.
“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시면 안돼요. 계속하세요. ”
“ 하, 하지만 지금 노엘이 제 몸을……! ”
“ 요령만 생기면 자세가 바뀌거나 신체에 자극이 주어진 정도로 신경이 분산되지 않습니다. 집중하세요. ”
“ 그, 그런 건가요? ”
아리스텔라는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어떻게든 열심히 손끝의 구체를 유지하려 애썼다. 손끝에서 빛의 실을 늘어뜨려 형체를 만들려 해도, 노엘이 그녀의 몸을 쓰다듬을 때마다 자꾸 아찔해져서 제대로 모양을 잡을 수가 없었다.
“ 아, 응……. 노엘……! ”
“ 이 정도로 우는 소리를 하시면 실력이 늘지 않을 거예요. ”
노엘의 목소리가 너무도 멀쩡했기에 아리스텔라는 설마 그가 흑심을 품고 그녀의 몸을 만지는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 신전에서는 이렇게 마법을 배우는 건가? ’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도, 노엘의 태도와 그가 몸을 만져주는 자극 때문에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억누르느라 필사적이었던 아리스텔라는 순진하게 그의 말을 따랐다.
“ 응, 으응……. 아읏……. ”
“ 후우……. ”
끙끙거리면서 자신이 만들어낸 노란 빛의 구슬의 형태를 유지하는 데에 안간 힘을 쓰는 아리스텔라를 속이는 죄책감보다도, 그녀의 몸을 만지면서 얻는 야릇한 충족감에 노엘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흥분할수록 횡설수설하여 실수가 많아지던 노엘은 오히려 이성의 끈을 놓은 순간 멀쩡한 얼굴로 그녀를 속일 수 있게 되었다.
‘ 여자의 몸이라는 건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건가……. ’
제 밑에 누워 가늘게 몸을 떨며 순순히 마법 훈련에 힘쓰는 아리스텔라의 모습은 우스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노엘은 얇은 성의 아래로 여실히 드러나는 가느다란 몸의 라인을 따라 천천히 쓰다듬으며 보드라운 여인의 몸을 탐닉했다.
삽화에 그려져 있던 여배우들은 탱글탱글하면서도 필요한 곳에 근육이 잡힌 탄탄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아리스텔라의 몸은 그야말로 뼈와 살로 이루어진 것처럼 가늘고 말랑말랑하기만 했다.
이 팔에도, 다리에도 근육이 있어 움직이고 있는 거겠지. 노엘은 신비로운 그녀의 몸에 감탄하며 가슴 밑에서부터 아랫배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 앗, 흐읏……. 노엘, 그만……. 못 하겠어요……. ”
“ 쉬이……. 괜찮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
뭘 도와주겠다는 건지. 아리스텔라가 울먹이는 것을 본 노엘은 그녀의 목깃에 얼굴을 묻으며 아래로 손을 뻗었다. 엉덩이와 허벅지를 천천히 쓰다듬자 그녀가 작게 숨을 삼키며 몸을 비틀었다. 저절로 허벅지가 벌어지며 체향이 한층 짙어졌다.
“ 아, 아아아……! ”
“ 성녀님……, 어라? ”
아리스텔라의 다리 사이를 더듬던 노엘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 어, 어떻게 된 거지? ’
수습사제 시절 의학수업을 건성으로 들었던 노엘은 여자의 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교재에 그려진 그림은 내장기관뿐으로 노엘은 여자의 알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이 없었다.
지도사제 몰래 돌려보았던 속세의 잡지에 그려진 여배우들은 가슴이 과감하게 파인 야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딱 그뿐이었다.
노엘의 생각에 여자의 몸은 남자보다 작고 동글동글하며 가슴에 지방으로 이루어진 유방이 달려있다는 것밖에 차이가 없었다. 남녀의 생식기 차이를 모르는 노엘은 여자의 사타구니에도 당연히 음경이 있을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마치 사람의 눈과 귀가 두 개이고 입술을 벌리면 치아와 혀가 드러나듯, 다리 사이에 음경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었다.
남녀의 성교 방법을 모르니 남녀의 성기가 다르게 생겼으리라는 것 자체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노엘은 아리스텔라의 다리 사이가 매끈한 것을 느끼고 적잖이 당황했다.
‘ 혹시 성녀님은……. 거기가 엄청 작은 게 아닐까? ’
야들야들 부드럽고 아기 같은 몸이었으니, 그곳이 작은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엘은 머릿속에서 황당한 결론을 내려버렸으나 그의 판단을 정정해줄 이가 없었기에 그대로 믿어버렸다.
============================ 작품 후기 ============================
사제들에게 성교육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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