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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리는 사랑의 행로
[96] 엇갈리는 사랑의 행로
“ 하아, 하아……. ”
조슈아의 혀끝에서 절정에 오른 아리스텔라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옷 위로도 알 수 있을 만큼 빳빳하게 젖꼭지를 세운 그녀는 손끝이 하얗게 될 정도로 꽉 쥐고 있던 진료대 모퉁이를 놓고 저릿저릿한 손끝을 얼굴로 가져갔다.
“ 후우우……. ”
아직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밖에 있는 로이드가 들을까 걱정되어 억눌러 참던 것이 도리어 그녀를 흥분시켰다. 음부에서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 찌릿찌릿한 쾌감이 아직도 전부 빠져나가지 못하고 몸 안을 배회하는 것 같다.
조슈아는 자세를 고치고 안경을 다시 쓴 뒤, 흥분으로 덜덜 떨리는 아리스텔라의 허벅지를 천천히 주물러주었다.
진료대 위는 침대처럼 폭신폭신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몸을 겹쳤다가는 아리스텔라의 허리가 아플 것을 염려해 입으로 봉사했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소리를 참느라 무리한 모양이었다.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허벅지를 살며시 손바닥으로 쓴 다음 조금 힘을 주어 주물러주자, 아리스텔라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비척거렸다.
“ 으응……. 조슈아……. ”
걷어 올린 성의를 아직 내리지 않은 탓에 그녀가 몸을 움찔거릴 때마다 타액과 애액으로 젖은 음부가 실룩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새하얀 피부는 성욕을 느낄수록 분홍빛으로 물들고, 체향 또한 달콤해진다. 이 아름다운 몸을 보고 성욕이 일지 않는 남자가 있을까. 조슈아는 다리 사이에서 팽팽해진 제 물건을 느끼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 조슈아는, 하지 않는 건가요……? ”
“ 아직 부족하신가요, 성녀님? ”
“ 그게 아니라……, 늘 저만 기분이 좋아지고 끝이잖아요. ”
아리스텔라는 조슈아가 몸을 만져준 것만으로 흥분해서 애액을 흘리고 그가 혀로 애무해준 것만으로 절정에 올랐는데, 조슈아는 아리스텔라를 안으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처음 관계했을 때는 아리스텔라가 입으로 애무하는 것 그 이상을 요구했고, 두 번째 관계했을 때는 기억에 없으나 아마도 여신 위그멘타르가 관계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욕을 느낀 아리스텔라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조차, 조슈아는 그녀에게 봉사했을 뿐 제 욕구를 채우려 하지는 않았다.
‘ 내가 요구하지 않으면, 조슈아는 나를 안아주지 않는구나. ’
오감을 민감하게 하는 성수에 몸을 담그고도 욕구를 참을 수 있다니, 욕망에 약한 몸을 지닌 아리스텔라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 조슈아는 저를 안고 싶지 않나요? ”
“ 성녀님을 만족시켜드리는 것이 제겐 가장 큰 기쁨입니다. ”
그저 상대에게 맞춰주기만 하는 것. 그것이 조슈아가 여인을 사랑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받고 싶은 남자가 제 몸에 안달하지 않는 것에 조금 심통이 난 아리스텔라는 허벅지를 주무르던 조슈아의 손을 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 이제 됐어요……. ”
“ 그런가요? 옷차림을 정돈해 드리겠습니다. ”
아리스텔라의 거부반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조슈아는 수긍하고 그녀의 옷자락을 내려주었다.
“ 성녀님을 괴롭히던 근심은 사라지셨습니까? ”
“ ……. ”
조슈아가 제안한 해결책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아리스텔라 자신조차 부정하고 있던 속마음을 낱낱이 까발린 것과 일맥상통하기도 했다. 제 안의 부끄러운 욕망을 지적당한 아리스텔라는 조용히 뺨을 붉혔다.
“ 모, 모르겠어요. ”
“ 천천히 생각하셔도 된답니다. 시간은 아직 많이 있으니까요. ”
조슈아는 요즘 크리스의 치료를 맡고 있다. 히페리온으로부터 지하에서 있었던, 촉수 괴물로 변해버린 크리스의 이야기를 들은 조슈아는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히페리온은 그에게 사제가 타락하며 괴물이 되어버린 일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마도 성녀와 크리스가 처음 밤 산책을 하다가 지하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두 사람을 습격한 것은 그들보다 더 이전 대의 성녀를 모시던 사제였을 것이다.
전대 성녀와 사제들 사이에서 어떠한 사건이 있었는지 조사하던 와중 조슈아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놀라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성녀를 모시던 사제나 성기사 중에는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 자들이 존재했다. 음욕의 여신을 품은 성녀가 다른 이들과 난교를 벌이는 것을, 과연 성녀를 사랑하는 남자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성녀를 독점하고 소유하려 했다. 그 와중에는 질투에 미쳐 이성을 잃고 타락한 이들도 있었다.
과거 사제들의 기록 가운데 성녀가 타락했다고 비난하며 정화의 의식을 베풀던 사제들이 갑자기 의문사를 당한 사례가 있었다. 범인으로는 성녀의 시종이 지목되었으나, 사제들을 죽인 죄를 범하고도 시종이 처벌당한 기록은 없었다. 마치 존재 자체가 지워진 듯, 그 이후로 시종에 대한 기록은 끊겨 있었다.
히페리온의 말대로라면, 아마도 그 시종은 타락하며 괴물이 되어 지하에 살고 있던 것이 아닐까. 성녀가 정화했다는 초로의 사제가 그 시종인지 아닌지, 당시 자리에 없었던 조슈아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분명 지하의 괴물의 정체가 성녀를 사랑하다가 질투에 미쳐 타락해버린 사제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성녀와 성관계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애써 정화의 의식이라 이름붙인 이들의 기록은 존재하지만, 그녀를 연모한 이들의 기록은 하나같이 도중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 성녀님은 저희 종들의 주인이십니다. 사랑하는 당신께 마음을 거절당한다면,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
그날 밤, 크리스는 아리스텔라가 거부하자 상처받은 얼굴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사라져버렸다. 지하에서 발견했을 때는 이미 질투에 마음을 먹힌 뒤였다. 아리스텔라가 정화하지 않았더라면, 진짜 괴물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독점하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요. 제가 모두를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질투하지 않을까요? ”
“ 물론 그렇겠지요. ”
“ 그럼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
아리스텔라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높이자, 조슈아는 가만히 웃으며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직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아 발그레한 아리스텔라의 뺨은 보드랍고 따뜻했다.
“ 어리석은 저희가 질투에 마음을 먹히지 않도록 이끌어주시는 것이, 성녀님의 일이랍니다. ”
조슈아는 살며시 고개를 숙여, 아리스텔라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 ◆ ◇ ◆ ◇
옷차림을 가다듬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얼굴의 열기까지 완전히 식은 뒤에 겨우 진료실을 나온 아리스텔라는 문 밖에 크리스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 크리스? 여긴 어쩐 일이에요? ”
“ 매일 미사가 끝나면 조슈아 신관님께 치료를 받고 있거든요. ”
크리스는 지하에서 아리스텔라에게 정화를 받은 뒤로, 아직 몸 안의 신성력이 안정되지 않아 조슈아에게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상태가 제법 안정되어 위험하진 않지만, 만약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당분간은 조금 더 왕래해야 한다고.
‘ 정화만 한다고 끝이 아니었구나……. ’
진작 알았더라면 크리스의 상태를 보러 가거나 그를 불렀을 텐데, 누구도 그녀에게 크리스의 사정을 말해주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내내 로이드와 함께 다니면서 기사단 쪽에만 들렀으니 사제들의 사정을 모를 만도 했다.
“ 성녀님께서는 고민이 있어 조슈아 신관님께 상담을 하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
“ 아, 그, 그거요? ”
진료실 안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아리스텔라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밖에 로이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 아리스텔라는 참지 못하고 조슈아를 유혹해 버렸다. 사랑받고 싶다며 매달린 것은 처음이었다.
‘ 설마 나와 조슈아가 나눈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겠지? ’
아리스텔라는 조심스럽게 크리스와 로이드의 눈치를 살폈다. 두 사람은 그저 그녀를 걱정하는 얼굴로 바라볼 뿐 진료실 안에서 조슈아와 밀애를 나누던 것을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것이 두 사람의 표정 연기가 아주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기를 바라며, 아리스텔라는 환자인 크리스를 밖에 내내 세워둔 것을 사과했다.
“ 미안해요, 크리스. 당신이 기다리는 줄 알았으면 더 빨리 나왔을 텐데. ”
“ 아닙니다. 성녀님의 기분이 나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저는 온종일이라도 기다릴 수 있어요. ”
아리스텔라의 앞에서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크리스를 보고, 로이드는 저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천진한 표정을 짓는 소년이 아까 자신을 비꼬며 인상을 구기던 남자와 동일인물이 맞는지 혼란스러워 했다.
“ 그럼 저는 돌아가 볼게요, 크리스. 들어가 보세요. ”
“ 예, 성녀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
노엘의 조교가 되어 그녀의 마법 수업에 동참하기로 한 것을 크리스는 아직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나타나 놀라게 해줄 셈이었다.
크리스의 속내를 모르는 아리스텔라는 그를 진료실 안으로 들여보내고, 로이드와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
============================ 작품 후기 ============================
96, 97화 연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