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95화 (9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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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95]

“ 조슈아. 나를 사랑해주세요……. ”

경멸당하고 싶지 않다니, 그것으로 만족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탐욕의 동물이다. 그리고 그 인간의 욕구를, 히페리온은 신의 지극한 일부를 나누어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탐욕의 여신인 위그멘타르의 현신인 그녀는 대체 얼마나 탐욕스러운 인간인가.

아무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 싫다며, 사랑하는 남자와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하고서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니. 이것이 결국 제가 다가오는 모든 남자와 진심을 나누는 섹스를 하고 싶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아리스텔라는 제 안의 황당한 욕망에 진저리치며 조슈아에게 팔을 뻗었다. 몸과 마음이, 아니, 이성과 감정이 따로 논다는 것은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일 것이다.

“ 아, 아아……. ”

제 몸 위에 드리워진 조슈아의 몸을 느끼며 아리스텔라는 흥분감에 몸을 떨었다.

“ 성녀님. 소리를 낮추세요. 밖에까지 들릴 겁니다. ”

“ 아흣……. 조슈아……. ”

아리스텔라가 손가락을 깨무는 것을 본 조슈아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깨끗한 타올을 말아 아리스텔라의 입에 물렸다. 순순히 그것을 문 채로 가늘게 신음하는 아리스텔라를 본 조슈아는 그녀의 몸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가느다란 발목을 붙잡고 신발을 벗기자, 자그마한 맨발이 드러났다. 조슈아는 그녀의 발등에 입을 맞췄다.

“ 저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 ”

사랑해달라는 말 같은 것은 사실 할 필요가 없었다. 조슈아는 이미 이 신전에 왔을 때 그녀에게 제 육신과 영혼을 바치기로 맹세했다. 조슈아가 생각하는 사랑과 아리스텔라가 요구하는 사랑은 그 표현 방식이 달랐으나,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 나는 이 아름다운 분께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맹세했으니까. ’

아리스텔라의 육체는 금욕적인 삶에 익숙한 조슈아에게도 무척 유혹적이었다. 그녀와의 관계에서 이성을 잃고 쾌락에 내몰리는 경험을 한 조슈아는 그저 봉사할 뿐 직접적으로 몸을 겹치는 일은 피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욕망에 빠져 흐트러지는 모습을 아리스텔라에게 보이기 두렵기 때문은 아니었다. 조슈아는 그저 제 욕망으로 연약한 성녀를 망가뜨릴까 저어했던 것뿐이다.

“ 으응……. ”

“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성녀님. ”

발등에 입을 맞추고 복사뼈를 핥던 조슈아의 입술과 혀가 종아리 안쪽을 지나 허벅지를 타고 기어 올라왔다. 아리스텔라가 살며시 다리를 들어 올리자, 조슈아는 그녀의 성의를 걷어 올렸다.

여전히 숨이 막힐 만큼 달콤한 향기가 나는 몸이다. 조슈아는 눈을 깜박이며 흥분을 가라앉힌 뒤,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 입으로 해드리는 것을 좋아하셨지요. ”

음부에 따스한 숨결이 닿고, 이어서 촉촉한 혀가 닿았다. 흥분한 상태로 액을 뚝뚝 흘리는 상태였던 음부를 핥아 올린 혀가 위쪽의 클리토리스를 자극하자, 아리스텔라는 타올을 문 채로 다리를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 읏, 응, 으응……! ”

추릅거리며 애액을 빠는 소리와, 촉촉한 혀가 클리토리스를 할짝거리는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렸다. 자신의 신음소리보다 이 추접스러운 물소리가 밖에 울리는 것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민감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혀놀림을 버티지 못하고 아리스텔라가 크게 몸을 들썩일 때마다 진료대가 덜컹거렸다. 이러다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아리스텔라는 진료대의 모퉁이를 부여잡고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조슈아의 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가 가장 느끼는 부분을 감싸 자극했다. 찌릿찌릿한 자극과 함께 다리가 저절로 위를 향했다. 아리스텔라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쾌감에 몸부림쳤다.

“ 흐으, 하으응……! ”

간밤에 케인과 몸을 섞어놓고도, 자극만 주어지면 또 몸은 굶주렸던 것처럼 애액을 흘리며 반응한다.

그저 욕망에만 솔직한 제 몸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조슈아의 혀가 쾌감을 전해줄 때마다 아리스텔라는 이런 아찔한 쾌락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 제 몸에 감사했다.

◇ ◆ ◇ ◆ ◇

조슈아에게 신성력을 안정시키는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 크리스는 문 앞에 서있는 커다란 남자를 보고 멈춰 섰다.

“ 거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

“ 성녀님께서 진료를 받는 중이다. 들어가지 마라. ”

진료실의 문이 작아 보일 정도의 거구. 무장을 하지 못했음에도 단단한 근육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는 은발의 남자는 크리스의 뒤를 이어 성녀의 시종이 된 세 번째 남자였다.

기사의 신분을 잃어도 여전히 고고한 태도의 로이드를 보고 속으로 혀를 차며 크리스는 그에게 다가갔다.

“ 성녀님께서 어디가 불편하시기에 조슈아 신관님의 치료를 받고 계시는지요? ”

“ 그것을 내가 너에게 말할 이유는 없을 텐데. ”

로이드는 제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를 내려다보았다. 로이드보다 머리 하나가 작은 금발의 수습사제는 아직도 채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한 하얀 피부와 동그란 눈매를 지니고 있었다.

처음 성녀와 밤 산책을 하다가 다친 모습을 보고 달려가 물었을 때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던 소년. 그러나 성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신전의 모두를 저주하는 괴물로 변해버린 크리스는 지하에서 로이드를 공격했다.

괴물이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한 모습인데도, 크리스는 로이드 앞에서 전혀 주눅 드는 기색이 없었다.

‘ 맹랑한 녀석이로군. ’

성녀의 앞에서는 그리도 구슬프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백하던 순진한 소년은 어느덧 어엿한 사제의 얼굴을 하고 로이드의 앞에 서있었다.

비록 수습사제라고는 하나 기사에게, 그것도 기사 직위까지 잃어버린 남자에게 꿇릴 것이 없었다. 크리스는 저보다 배는 덩치가 큰 로이드를 상대로도 반듯하게 고개를 들고 대꾸했다.

“ 성녀님을 보필하는 것이 사제의 의무입니다. 당연히 그분의 일이라면, 이 신전의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

“ ……. ”

성녀의 가장 가까이서,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로이드도 그녀의 고민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저보다 한참 어린 수습사제조차 당당히 하는 소리를 어째서 그는 성녀의 앞에서 하지 못했던가.

“ 근심이 있으신 모양이다. 지금 조슈아 신관에게 상담을 받고 계신다. ”

로이드는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대답했다.

“ 시종에게 털어놓지 않는 근심을 다른 사제에게는 털어놓으신다니, 어지간히 신뢰받지 못하는 모양이네요. ”

“ 너……! ”

크리스의 비꼬는 말에 발끈한 로이드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내보이려던 순간, 진료실 안쪽에서 아리스텔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 조슈아……! ”

성녀와 함께 밤을 보내본 로이드와 크리스에게는 아주 익숙한, 달콤한 신음소리. 두 남자는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려던 태도를 멈추고 진료실의 문 안쪽으로 온 신경을 기울였다. 그러나 더 이상의 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

조슈아는 아리스텔라에게 진료실의 방음이 나쁘다고 말했지만, 사실 성녀의 방처럼 방음이 철저하지 않을 뿐 문을 닫으면 대부분의 소리는 새어나가지 않았다. 두 사람이 아리스텔라의 신음소리를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놓쳤을 만큼 작은 소리였다.

“ 로이드, 분명 상담을 받고 계신다고 하셨지요? ”

“ 그, 그렇다. ”

크리스는 로이드가 성녀를 강간했던 사실을 알고 있고, 로이드도 아리스텔라로부터 크리스가 그녀를 범했다는 고백을 들어 알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조슈아가 아리스텔라와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것도 세 번이나.

“ 설마, 조슈아 신관이……? ”

“ 조슈아 신관님이 당신인 줄 압니까? 신관님을 모욕하지 마세요! ”

크리스의 지적에 울컥한 로이드가 소리를 높였다.

“ 그러는 너야말로 성녀님께 무례한 짓을 하지 않았나! ”

“ 제게 처음 은총을 내려주신 것은 성녀님이었다고요! ”

로이드에겐 저보다 열한 살이나 어린 크리스가 가소로울 뿐이었고, 타락하여 괴물이 되었다가 성녀의 정화를 받고 구사일생으로 되돌아온 크리스는 죽음의 경계선도 넘어선 마당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죄질은 다를지언정 아리스텔라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한 것은 똑같았던 두 남자가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댔다.

“ 허, 참. ”

로이드는 조바심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크리스도 불쾌한 마음을 숨기며 고개를 돌렸다.

만약 혼자 있었더라면 문가에 귀를 가까이 대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엿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경쟁자인 상대 앞에서 그런 추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 그래. 이 녀석도 아닌데 정식 사제, 그것도 신관이 허튼 짓을 할 리는 없겠지. ’

‘ 조슈아 신관님이 아무리 괴짜라도 그런 몰상식한 짓을 할 리가 없어. 괜히 성녀님이 이런 남자를 시종으로 삼는 바람에 오해나 하고. ’

한 여인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알량한 자존심 덕분에 진료실 안의 두 사람은 밀애를 나눌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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