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94화 (9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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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94]

“ 사랑하는 사람은 꼭 한 사람이어야만 하는 건가요? ”

“ 네……? ”

아리스텔라는 조슈아의 질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리스텔라는 사랑이 없이 욕구만을 해소하기 위해 섹스하는 것이 싫었다. 그런 행위는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리스텔라의 생각에 사랑하는 사람은, 연인은, 부부가 되고 싶은 이는 반드시 한 명이어야 했다.

“ 신께서는 모든 인간을 공평하게 사랑하십니다. ”

그러니 여신의 현신인 그녀도 다른 이들을 공평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 하지만 신의 사랑은 한결같은, 베푸는 사랑이잖아요. 인간처럼 육욕이 깃든 사랑이 아니라……. ”

“ 인간의 모습은 신의 모습을 본뜬 것, 인간의 감정은 신의 감정을 나누어받은 것. 그리고 인간의 사랑은, 신의 사랑을 물려받은 거랍니다. ”

조슈아는 누워있던 아리스텔라를 조심스럽게 안아 일으켰다. 늘 조용하고 부드러운 조슈아는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도 같은 존재였다. 결코 성급하지도 거칠지도 않지만, 조용히 그녀의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로이드가 그녀를 덮치는 타오르는 불과 같고, 케인이 그녀를 삼키는 깊은 물과 같다면, 조슈아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쉬고 싶을 때 찾아가 기댈 수 있는 휴식처일까.

“ 저희 사제들은, 그리고 성기사들은 모두 당신을 위해 이 몸과 마음을 바치기로 맹세한 자들입니다. ”

아리스텔라를 진료대에 앉히고, 잡고 있던 손을 무릎 위에 돌려준 조슈아는 아리스텔라로부터 손을 떼고 앉은 자세를 바로 했다.

“ 이 신전의 모든 것은 오로지 성녀님께 행복과 평안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성녀님을 괴롭게 한다면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

“ 조슈아……! ”

“ 성녀님을 괴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조슈아가 아리스텔라의 눈을 마주보며 물었다. 그저 다정하고 상냥하기만 했던 그녀의 숭배자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성녀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종 가운데 하나를 각별히 여기시어, 그자 하나만을 곁에 두고 사랑하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

여신 위그멘타르는 음욕의 여신. 대대로 성녀는 신전의 사제와 성기사들과 난잡한 관계를 맺어왔지만, 아리스텔라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삶을 살 이유가 없었다.

성녀가 한 남자와 사랑하여 정절을 지키려 한다면 아무리 그녀를 사모한다 하더라도 평생 금욕해야 했다. 그것이 이 신전의 계율이었다.

“ 그러나 하나를 고르는 것이 망설여지고, 그것이 성녀님을 괴롭게 한다면, 성녀님을 괴롭게 하는 그 갈등 자체를 지워버리십시오. ”

“ 그, 그럴 수는 없어요! ”

“ 어째서입니까? ”

“ 그런, 그런 건……. 한 사람과만 해야 하는 거잖아요. 상식이라고요. ”

“ 이 신전은 속세와 격리된 곳. 그리고 성녀님, 당신은 인간이 아닌 여신의 현신입니다. 인간의 상식도 가치관도 그 무엇도, 신의 의지를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

“ 그런 건 궤변이에요. 저는 독재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고요! ”

조슈아는 지금 그녀에게, 한 명이 아닌 여러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 모두와 육체관계를 갖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말하는 것일까. 아리스텔라는 당혹스러웠다.

그저 욕구를 풀기 위해서도 아니고, 진심으로 사랑해서 관계를 맺는 상대가 여러 명이라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안 돼요.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

“ 성녀님을 사모하는 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시는 것과, 누군가를 내치지 않고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 어느 쪽이 괴로움이 덜할지, 선택하는 것은 성녀님께 달린 일입니다. ”

고민 상담을 할 셈이었는데, 조슈아가 내놓은 해결책은 아리스텔라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아리스텔라는 조슈아의 대답에 기가 막히는 한편, 이런 어이없는 문제를 놓고 자신이 또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조슈아, 내게 거짓말을 했군요. ”

“ 예? ”

“ 털어놓으면 편해진다고 해놓고서, 전혀 편해지지 않았잖아요……! ”

아리스텔라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당초 세 사람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지는 자신에게 달린 문제였다. 제 마음이 결정할 문제를 조슈아에게 내민 것부터 잘못되었다. 현명한 조슈아라면 명쾌한 해답을 내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 실책이다.

생각해 보니 조슈아는 처음부터 그랬다. 아리스텔라가 처음 관계를 가진 그를 특별하게 여겼을 때, 갓 피어오르기 시작한 사적인 감정을 단칼에 잘라버린 남자가 아니었던가.

“ 미안해요, 조슈아. 내 일인데 당신에게 책임을 미뤄서……. 오늘 제가 한 말은 잊어주세요. 그만 가볼게요. ”

아리스텔라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입술을 깨물어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조슈아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아리스텔라는 다시 진료대에 주저앉아 버렸다.

“ 조슈아? ”

“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가실 수 없습니다. ”

“ 네……? ”

치료라니, 고민 상담은 끝난 것이 아니었던가. 아리스텔라가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자, 조슈아는 살며시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 성녀님께서 처음 몸이 뜨거워 괴로워하셨을 때, 제가 치료를 해드렸지요. ”

“ 읏, 네……. ”

“ 지금 성녀님을 괴롭히는 문제는,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거랍니다. ”

조슈아의 긴 손가락이 아리스텔라의 등줄기를 따라 쭉 미끄러지자, 아리스텔라는 작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었다.

“ 아, 아흣! 조슈아……! ”

“ 성녀님께서 선택하신, 단 한명의 남자와만 관계를 맺고 싶다고 하셨지요. ”

“ 읏, 그건……. 당연한 거잖아요……. ”

옷 위로 문지르는 것뿐이지만, 조슈아의 손길은 무척이나 섬세해서, 아리스텔라의 약한 곳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자극했다. 아리스텔라는 조슈아답지 않은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그가 주는 자극에 아찔한 쾌감을 느끼고 신음했다.

“ 으응, 아아……! ”

“ 괴롭기 때문에 자신을 속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허나 자신을 속이느라 괴로워하는 성녀님을 방치하는 것은 당신을 섬기는 제 의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

“ 조, 조슈아? 잠깐……, 아앙! ”

조슈아의 손이 엉덩이를 감싸자 아리스텔라가 화들짝 놀라 몸을 바르르 떨며 소리를 높였다. 그의 가슴을 밀어내려는 아리스텔라의 몸을 진료대 위에 눕히며, 조슈아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낮게 속삭였다.

“ 성녀님. 진료실은 방음이 잘 되지 않습니다. ”

조슈아의 속삭임에 아리스텔라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진료실 밖에는 로이드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로이드에게 신음소리를 들려줄 수는 없었다.

아리스텔라는 재빨리 입을 틀어막았다. 그를 거부하는 손길이 사라진 틈을 타, 조슈아는 아리스텔라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 하, 하으……. 조슈아……. ”

“ 성녀님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습니다. ”

“ 그야, 당신이 이런 짓을 하니까……. ”

“ 흥분하면 남자를 원하게 되지만, 마음이 통하지 않은 상태로 관계를 맺는 것은 괴롭다고 하셨지요. ”

조슈아가 아리스텔라의 말랑한 가슴에 얼굴을 문지르자, 그의 부드러운 갈색머리가 그녀의 옷 위로 흘러내렸다. 아리스텔라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손가락을 깨물면서, 조슈아의 긴 머리가 흐트러지는 것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 흐응, 응……. ”

“ 괴로우십니까? ”

“ 아읏, 조슈아……. ”

“ 저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괴로우십니까? ”

그저 옷 위로 몸을 더듬고 있을 뿐이다. 옷을 벗긴 것도 가슴을 핥은 것도 성기를 연결한 것도 아닌데, 아리스텔라는 조슈아가 제 몸을 만져주는 것만으로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다.

처음으로 관계를 가진 남자였다. 처음으로 특별하게 생각한 사람이었다. 조슈아와의 관계에서 아리스텔라는 단 한 번도 거부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 조슈아는, 조슈아는……. 저를 사랑하지 않잖아요……. ”

“ 성녀님. ”

“ 그래요. 당신이 만져주면 기분 좋아요. 그저 몸이 반응해서가 아니라……. ”

이 남자와 몸을 섞으면서 처음으로 쾌락을 느꼈다. 이 남자의 팔에 안겨 절정에 올랐다. 혼란스러워하던 아리스텔라를 끌어안고 달래주던 것이 조슈아였다.

부드러운 갈색머리와 다정한 목소리, 호리호리한 몸에서 나는 살짝 매운 약초 냄새와 따스한 체온까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때 조슈아가 그녀가 원하는 말을 해주었더라면,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더라면, 지금 고민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

“ 나는 정말 한심한 여자네요.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가 몸을 만져주는데, 이렇게 흥분하기나 하고……. ”

“ 성녀님. ”

“ 비참한 기분도 들지가 않아요. 미친 것 같아……. ”

아리스텔라는 흐느끼면서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 조슈아가 특별했는지 이제야 이유를 안 기분이었다.

아리스텔라는 조슈아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크리스처럼, 로이드처럼, 케인처럼. 조슈아가 그녀를 사랑하고, 안고 싶다며 안달하기를 원했다. 자신의 몸에 흥분하고 욕정하기를 바랐다.

말도 못하게 탐욕스러운 여자다. 세 남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남자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다니.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가 늘어봐야 선택이 어려워질 뿐이라는 것을, 선택의 순간 상처받는 사람이 늘어날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

‘ 나는 정말로 못된 여자인 걸까? ’

여신 위그멘타르는 음욕의 여신이며, 탐욕의 여신이기도 했다. 아리스텔라가 쉽게 흥분하고 남자에게 안기고 싶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들의 마음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남자의 사랑을 원하는 것은 그녀 안의 여신이 탐욕의 화신이기 때문일까.

‘ 아니, 내 안의 여신님 때문이 아니야. ’

잊고 있었다. 정확히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했던 아리스텔라는 늘 애정에 갈증이 있었다. 누군가의 한없는 사랑을 원했다. 동생과 나누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고, 온전히 자신 하나만을 사랑해주길 원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놀러 온 이웃집 부부나 친구들조차도, 모두의 사랑과 관심이 오직 자신에게 향해야만 했다. 분명 아리스텔라에게도 그런 욕심으로 똘똘 뭉쳤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다만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사라져 버렸기에 잊었던 것뿐이다.

‘ 사랑받고 싶어. ’

크리스도 로이드도 케인도 소중하기 때문에, 세 사람 가운데 하나를 택하면 다른 두 사람이 상처받는 것이 싫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아리스텔라는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세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한 사람을 택하면 다른 두 사람의 사랑을 잃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제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여자인지를 자각한 아리스텔라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는데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를 않았다.

“ 조슈아, 부탁이에요……. ”

“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성녀님. ”

“ 사랑받고 싶어요. 나를, 나를 사랑해주세요……. ”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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