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73화 (7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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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실종자

[73]

“ 으응, 윽…. 흐윽…! ”

촉수는 보드랍고 통통하면서도 작은 돌기가 가득해 그녀의 피부 위를 미끄러질 때마다 간지러운 쾌감을 전해주었다. 음부에 문질러지던 남자들의 성기와는 확연히 다른, 탄력이 있고 유연하게 휘어지는 굵은 줄기였다.

“ 아, 응…. 하으응…. ”

부드럽게 출렁이는 가슴을 핥아내려 배꼽을 지나 음부로 향한 긴 촉수가 클리토리스에 몸통을 비벼대자 아리스텔라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 아앙! 그만! ”

불쾌함과 쾌감, 절망감과 공포심이 뒤섞여 머릿속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간다.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무언가에게 능욕당하고 있다는데, 여전히 몸이 솔직하게 쾌감을 느낀다는 점이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 아, 응, 아흑! ”

촉수가 몸통을 비비는 속도를 높이자, 아리스텔라도 짧은 숨을 반복적으로 토하면서 저절로 허리를 흔들게 되었다. 미끈미끈하던 촉수가 점점 따뜻해지더니, 이내 뜨거운 체액을 왈칵 쏟으면서 그녀의 안으로 침범했다.

“ 아아아악! ”

좁은 입구를 억지로 넓히면서 들어온 촉수는 빠르게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몸이 꿰뚫리는 듯한 오싹한 공포와 온몸을 관통하는 저릿저릿한 쾌감에 헐떡이면서 아리스텔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 흐윽, 흑…. 미안해…. ”

아리스텔라의 입에서 제 의지와는 상관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 미안해. 내가, 내가 잘못했어…. ”

그것은 아마도 이 몸의 주인이 울면서 외치던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촉수에게 범해지며 정신없이 신음하는 아리스텔라로서는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 아, 아응! 흐으…, 아! ”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가, 마치 뻥 터지듯이 상쾌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그녀의 안을 누비던 울퉁불퉁한 촉수가 빠져나오더니, 끈적거리는 액체를 뿜으며 피부에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배를 타고 기어 올라와 목을 감쌌다.

“ 흐윽…! ”

“ 성…녀…님…. ”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일까. 사람의 목소리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리스텔라가 고개를 돌리자 촉수의 가는 다발이 올라와 그녀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 하으응! ”

“ 성녀, 님…. ”

귓전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머릿속을 흔드는 듯한 무거운 울림.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인가. 어쩌면 그녀가 아는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 우웃…. 누, 구…? ”

아리스텔라는 귓전을 자극당해 움찔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저를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을 파악하려 애썼다.

“ 하응, 당신…. ”

“ 성…녀…. ”

성녀라. 그것은 아리스텔라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몸의 주인을 말하는 것일까. 아리스텔라는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틀린 의미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대체, 누구…? ”

아리스텔라의 꿈에 나타난, 어둠 속에서 울고 있던 여인.

앞을 보지 못하고 다리도 불편하지만, 그녀와 같은 성의를 입고 사제들에게 ‘ 정화의 의식 ’을 받으며 쾌락에 신음하던 여인.

그것은 아마도 아리스텔라가 아닌 여신 위그멘타르가 기억하는 과거의 편린이 아닐까.

‘ 전대 성녀, 인가? ’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갑자기 몸이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하여 아리스텔라는 비명을 질렀다.

“ 꺄아아악! ”

“ 성녀님! ”

커다란 손이 어깨를 감싸 쥐며 끌어당기자 방금 전까지 제 안을 파고들려던 촉수의 감각이 멀어졌다. 마치 전신이 녹아내리듯 흐믈흐믈하게 풀어졌다가, 강한 압력으로 꽉 눌러 형태를 빚어내는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이었다.

“ 성녀님, 정신이 드십니까? ”

“ 허윽, 헉…. ”

암흑을 벗어난 아리스텔라의 시야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부르고 있는 로이드의 얼굴이었다.

“ 로이드…? ”

겨우 시야가 트이고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아리스텔라는 기진맥진해서 한숨을 내쉬며 로이드를 붙잡았다.

“ 하읏, 로이드…. 괴물은…? ”

“ 괴물이라니요? ”

아리스텔라는 헉헉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하긴 했지만, 꿈속과는 달리 주위의 풍경을 어느 정도는 인지할 수 있었다. 축축한 바닥 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무너진 돌무더기가 보였다.

“ 꿈…? ”

그래. 분명 정화의 의식이 일어난 것은 꿈이었다. 자신이 촉수에게 범해지던 것 또한 꿈이다. 아무리 생생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꿈이어야 했다. 아리스텔라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구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꿈속과는 달리 그녀의 성의는 빈틈없이 여며진 상태였다.

“ 여기는 어디죠…? ”

“ 저희가 서있던 계단이 무너졌습니다. 다행히 깊이가 깊지 않아 성녀님을 안고 착지할 수 있었습니다만, 무너진 잔해가 길을 막고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

“ 그런…! ”

아리스텔라는 당황한 얼굴로 위를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얼마나 아래로 떨어진 걸까. 위쪽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비춰지는 것을 보니 지상과 차단된 지점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천장이 너무 높아 자력으로 기어 올라갈 수는 없었다.

“ 로이드, 히페리온은? 히페리온 대신관님은요? ”

“ 모르겠습니다. 저는 성녀님을 안고 뛰어내리느라…. 휘말리지 않았다면 아직 위쪽 계단에 있으실 겁니다. 어쩌면 저희를 구할 다른 이들을 부르러 가셨을지도 모릅니다. ”

“ 휘말리지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휘말렸다면…. ”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

유연하고 순발력이 뛰어난 로이드는 갑자기 계단이 무너져 내렸음에도 아리스텔라를 안고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지만, 몸을 단련하지 않는 대신관은 어떠할까. 떨어졌다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리스텔라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로이드는 굳이 그 말을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아리스텔라는 전 시종이었던 수습사제 크리스를 찾겠다며 이 깊은 지하까지 내려왔는데, 대신관까지 다쳐서야 실종자만 늘어날 뿐이다.

로이드는 무사히 히페리온이 도망쳤으리라고 간주했다. 물론, 그렇다고 원군이 올 것을 기대하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성녀를 지키는 일에 있어서만은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 성녀님. 일어나실 수 있겠습니까? ”

“ 네. 괜찮아요. ”

그런 꿈을 꾸는 바람에 몸이 흥분했는지, 다리 사이가 욱신거렸으나 아리스텔라는 내색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로이드 앞에서 추태를 부릴 수는 없었다. 지금은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 크리스를 찾아서 되돌아가야 한다.

“ 하지만 사방이 막혀버렸는데, 어떻게 하죠? ”

“ 벽으로 막힌 것이 아니라 무너진 잔해이니, 뚫고 나갈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큰 것은 밀어서 치우고 작은 것은 부수면서 앞으로 나가지요. ”

“ 괜찮겠어요, 로이드? 당신은 검도 없는데…. ”

“ 성녀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곁을 지키는 시종입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

로이드는 씩 웃어보이고는, 잔해가 제일 적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다가가 진로를 방해하는 돌무더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금방 잔해를 치우고 통로를 찾을 수 있었다.

“ 앞이 깜깜하네요. 뭐가 나올지 모르는데…. ”

갑자기 계단이 무너지리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다. 괴물의 습격도 습격이지만, 또다시 바닥이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 대신관님이 계셨으면 신성 마법으로 빛을 밝힐 수 있었을 텐데…. ”

“ 제가 하겠습니다. ”

로이드가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펴니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든 정도로 작은 크기의 빛의 구슬이 생겨났다.

“ 로이드, 어떻게 한 거예요? ”

“ 빛을 만들어내는 신성 마법입니다. 대신관처럼 커다란 것을 만들 수는 없지만, 통로를 비추는 정도라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

“ 로이드가 신성 마법을 쓸 수 있는 줄 몰랐어요. 굉장해요! ”

아리스텔라는 기쁜 마음에 무심코 로이드의 팔을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그 바람에 로이드는 순간 긴장해서 겨우 밝힌 불빛을 꺼뜨릴 뻔했다.

“ 서, 성녀님. 잠시…. ”

“ 네? ”

“ 그, 계속해서 빛을 밝히려면….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

“ 아, 미안해요. 제가 방해했군요. ”

아리스텔라가 얼른 로이드의 팔을 놓고 한발 물러났다. 부드럽고 따스한 감각이 멀어진 것은 아쉽지만, 그녀가 달라붙어 있으면 분명 정신이 흐트러질 거라고 생각한 로이드는 아쉬움을 내색하지 않고 자상하게 웃어 보였다.

작은 불빛이지만 이것으로 통로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은 불빛으로 통로를 비추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원고료 쿠폰 모두 감사합니다!

전대 성녀에 대해서는 차차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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