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71화 (71/219)

0071 / 0219 ----------------------------------------------

타락한 실종자

[71] 타락한 실종자

“ 사실은 이틀 전부터, 크리스가 보이지 않습니다. ”

“ 네? 크리스가 왜요? ”

히페리온의 말에 아리스텔라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크리스가 사라졌다니. 이 신전 안에서 사제가 사라질만한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아무리 수습사제라고는 해도 사람이 사라진 지 이틀이나 되었는데 그걸 성녀에게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에 아리스텔라는 당황했다.

“ 왜 제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

“ 저희들끼리 찾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성녀님께서 성기사들의 일로 다망하신데다 집행관이 예정보다 일찍 방문한 탓에……. ”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

한밤중에 몰래 그녀의 방에 숨어들어온 크리스에게 크게 화를 내고 쫓아낸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로이드의 일을 해결하고 마음에 안정이 되면 그와 천천히 대화를 나룰 생각이었다. 그런데 크리스가 사라졌다니. 아리스텔라는 황당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제 시종이었던 크리스가 사라진 것도 모른 채 내내 제 할 일만 하고 다녔다는 건가. 그것도 일만 한 것도 아니었다. 간밤 이자크와 몸을 섞었던 기억이 떠올라 아리스텔라는 저도 모르게 뺨을 붉혔다.

“ 크리스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나요? 마지막으로 크리스를 본 것은 누군데요? ”

“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이틀 전 밤, 크리스와 같은 방을 쓰던 평사제 노엘입니다. 한밤중에 잠시 볼일이 있다며 방을 나간 후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

이틀 전 밤이라면 아리스텔라의 방에 숨어든 날이다. 다음날 집행관 클로비스가 신전의 결계를 부수고 쳐들어온 탓에 그것을 보수하느라 사제들은 내내 정신이 없었고, 그 다음날은 아리스텔라가 공회장에서 로이드의 재판을 여느라 정오 미사도 취소한 탓에 모일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 신전이 너무 넓어서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걸지도 몰라요. 히페리온 대신관님. 사람을 풀어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

“ 성녀님. 신전 안에서는 신성력으로 방향을 가늠할 수 있기에 사제가 길을 잃을 리는 없습니다. ”

사제들이 모여 있는 동쪽 구역은 확실히 공기의 농도가 짙었다. 신성력을 다룰 줄 모르는 아리스텔라조차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 수습사제라고는 하나 사제인 크리스라면 당연히 이 신전 어디에 떨어지든 제 방을 찾아올 수 있을 터였다.

“ 그럼 혹시 다리를 다쳐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의식을 잃은 상태라거나……. ”

아리스텔라의 노여움을 사고 도망치다가, 계단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크게 다친 것이 아닐까. 아리스텔라는 갑자기 크리스가 걱정이 되었다.

밤 산책을 하다가 촉수 괴물을 만나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던 크리스다. 아무리 그녀를 화나게 했다고는 하더라도, 자신 때문에 또 그가 다치는 것은 싫었다.

“ 크리스를 찾아야겠어요. 사제분들께 도움을 청할 수 있나요? 아론 신관님이 실종된 저를 찾을 때는 제 신성력을 감지해서 찾아왔다고 하던데……. ”

로이드에게 안기다가 기절한 그녀를 발견한 것이 아론이었고, 그 바람에 로이드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는 민망한 기억이지만 분명 신관급이 되면 상당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을 터였다. 대신관 히페리온은 침대 시트로 성의마저 지어내지 않았나.

“ 성녀님. 사실 사제들은 성기사들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

“ 네? ”

“ 동쪽 구역과 남쪽 탑, 북쪽 탑을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의 신성력을 읽어낼 수 없었습니다. 남은 곳은 기사들이 기거하는 서쪽 구역뿐입니다. ”

아무리 대신관이라고 한들 기사들의 구역을 마음대로 순찰하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폐쇄된 신전에서 동쪽과 남쪽, 북쪽과 중앙에서도 찾을 수 없다면 남은 장소는 서쪽 구역뿐이다.

“ 성기사들이 크리스를 숨겼으리라고, 의심하고 있는 건가요? ”

“ ……그렇습니다. ”

“ 그럴 리가 없잖아요! 대체 왜……? ”

히페리온은 대신관으로서 사제와 성기사 사이에 싸움이 생길 만한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제와 성기사들은 본래 사이가 나쁘다. 처음엔 그 정도로 골이 깊지 않았지만, 아리스텔라의 시종이 사제에서 기사로 바뀌고, 성녀가 실종되었다가 기사단장의 침실에서 발견되면서, 이제는 사제와 성기사가 서로를 믿지 않게 되었다.

사제들은 성기사들이 크리스를 숨겼다 여기고 있었다. 만약 서쪽 탑을 수색하겠다고 한다면, 성기사들은 사제들이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수습사제를 실종시키는 일을 꾸몄다고 여길 것이다.

“ 사제분들이 성기사와 사이가 나쁜 것은 알지만, 이런 식으로 의심하는 건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해요. 사제들이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처럼, 성기사에게도 기사도가 있다고요. ”

“ 하지만 다른 곳을 아무리 둘러봐도 흔적을 찾을 수조차 없으니……. ”

“ 지하는요? ”

“ 예? ”

아리스텔라는 밤 산책을 하다가 북쪽 탑의 지하에서 사고를 당했다. 그때 크리스는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쳤고, 히페리온이 그녀를 구해 주었다. 지하에서 겪은 끔찍한 기억을 잊고 싶은 마음과, 다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는 바람에 잠시 잊어버린 것뿐이다.

이 신전 지하에는 수상한 괴물이 살고 있다. 어쩌면 크리스가 그 괴물한테 납치당한 걸지도 모른다. 빛에는 약한 것 같았지만, 밤에는 밖으로 나올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 지하는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

“ 그럼 북쪽 탑의 지하를 찾아보기로 해요. ”

“ 성녀님, 위험합니다. 우선은 서쪽의 기사단부터……. ”

“ 만약 크리스가 괴물의 습격을 받은 거라면 한시라도 빨리 구해내야 한다고요? ”

만에 하나라도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차라리 성기사들이 크리스를 감금한 거라면 적어도 안전은 보장되었다. 그러나 만약 지하에서 사고를 당한 거라면? 지금쯤 크게 상처를 입고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크리스를 구해야 해요. 지하에 가볼래요. ”

“ 안 됩니다, 성녀님. 적어도 조사를 해서 단서를 잡은 후에……. ”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를 만류하려 했지만, 로이드가 가로막으며 앞으로 나섰다.

“ 성녀님. 제가 보필하겠습니다. ”

“ 로이드. ”

“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제가 성녀님을 지키겠습니다. 성녀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이루기 위해 제가 곁에 있는 것이니까요. ”

로이드는 죄인으로 내내 감금되어 있다가 겨우 풀려난지라 갑옷도 걸치지 않았고 성검도 지니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 로이드. 당신은 아직 무장을 허락받지 않은 상태입니다. ”

“ 상관없습니다. 지금은 기사가 아니니까요. 맨손으로도 성녀님을 지킬 수 있습니다. ”

검을 들지 않아도 로이드의 실력은 케인보다 위였다. 공으로 기사단장의 직위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던 로이드는 맨손으로도 아리스텔라를 지킬 수 있다 장담했지만, 히페리온은 로이드가 영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 그럼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

성검을 쓸 수 없는 성기사보다는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신이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와 동행하기로 했고, 세 사람은 북쪽 탑으로 향했다.

◇ ◆ ◇ ◆ ◇

사제들이 거주하는 동쪽 구역, 기사들이 거주하는 서쪽 구역, 성녀가 머무르는 중앙 건물과는 달리, 남쪽 탑과 북쪽 탑은 평소 기거하는 사람이 없는 구역이었다.

그나마 남쪽 탑에는 만찬장이나 공회장처럼 넓은 장소가 많아 밝고 탁 트여 있지만, 북쪽 탑에는 그리 넓은 장소가 없고 창문도 작았다. 로이드가 갇혀있던 감옥 역시 난방이 되지 않아 춥고 창문이 작아 볕이 잘 들지 않는 장소였다.

“ 분명 저쪽 모퉁이에 작은 문이 있었는데……. ”

“ 성녀님, 이쪽이 더 가깝습니다. ”

히페리온이 두 개의 기둥 사이에 있는 벽에 손을 짚자, 끼기긱 하고 바닥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벽이 돌아가고 숨은 공간이 나타났다.

“ 이런 곳에도 문이 있었군요. ”

“ 아주 오래 전에는 지하도 사제들이 이용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몇 대 전에 폐쇄되어 입구를 숨겨둔 모양입니다만. ”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이 폐쇄된 신전에서도 더욱 폐쇄된 공간인 신전 지하의 존재는 대대로 대신관만이 알고 있었다.

여신 위그멘타르의 신전은 폐쇄되어 있기에, 밖에서 들어오는 것도 안에서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곧, 신전 안에서 타락한 자가 나오더라도 밖으로 쫓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

신전의 지하는 감옥에도 가둬둘 수 없는 타락한 자들을 격리하기 위한 장소였다. 성녀가 타락하면 사제들은 ‘ 정화의 의식 ’을 베풀었지만, 사제나 성기사가 타락하는 경우에는 ‘ 처리 했다 ’고 전대 대신관의 일기에는 적혀 있었다.

사제는 피를 볼 수 없으니 외부에서 집행관을 불러 처형하는 수밖에 없는데, 일기에는 외부에서 집행관을 부른 기록이 없었다. 그렇다면 타락한 사제들은 어디로 갔을까.

“ 성녀님.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몹시 길고 주위가 어두운 것을 경계했는지, 로이드가 앞장섰다.

“ 조심하세요, 로이드. ”

“ 예. 이 아래로 갈수록 공기가 습해지는군요. ”

지상에서는 청량한 신전의 공기도, 지하에서는 축축하고 습하게 느껴질 뿐이다. 속세의 기운을 정화한다는 신성력이 지하에는 작용하지 않는 것일까. 아리스텔라는 조금 불안해졌다.

―쿠웅.

뭔가가 크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워낙 좁고 긴 탓에, 아리스텔라는 그 소리가 앞에서 들리는지 뒤에서 들리는지조차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 이게 무슨 소리죠? ”

“ 성녀님. 움직이지 마십시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야 합니다. ”

로이드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한쪽 벽에 몸을 딱 붙이고 정신을 집중했다.

―쿵.

이번에는 조금 더 짧게, 선명한 소리가 들렸다.

“ 소리가 가까워졌습니다. ”

―쿵. 쿵쿵.

아리스텔라가 말한 그 괴물이라는 것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로이드는 바짝 긴장해서 아리스텔라에게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 로이드. 역시 제가 앞에 서겠습니다. ”

“ 아닙니다, 히페리온 대신관. 갑작스런 습격에 대응하는 거라면 제 쪽이 더 빠릅니다. ”

성기사를 벗어나 시종의 신분이 되었어도 여전히 마음만은 성기사였던 로이드는 대신관인 히페리온보다 자신이 도움이 되리라 여겼다. 만에 하나 아리스텔라가 말한 ‘ 괴물 ’이 급습한다면, 샌님인 대신관보다야 튼튼하고 강인한 자신이 방패막이가 될 수 있을 터였다.

―툭.

점점 가까워지던 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바짝 긴장해서 귀를 기울이던 로이드는 주위가 조용해지자 당황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자신들을 노리고 다가오던 것이 아니었나?

“ 로이드. 왜 그래요? ”

“ 성녀님, 가까이 오지 마십……우왓! ”

―콰앙!

갑자기 발밑이 크게 흔들리더니, 그들이 서 있던 계단이 무너져 내렸다.

“ 꺄아아아! ”

“ 성녀님! ”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아찔한 느낌에 아리스텔라가 비명을 지르자, 로이드와 히페리온이 동시에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리스텔라는 밑으로 떨어지면서 누군가의 손을 강하게 붙잡았지만, 두 사람은 어둠에 삼켜지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도 감사합니다!

최근 업로드 시간이 대중없어서 죄송합니다.

비축분을 쌓는 대로 정시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