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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의 기사입니다
[70]
성녀가 사제도 아닌 성기사, 그것도 불명예스러운 일로 기사 직위를 잃은 남자를 시종으로 둔 일로 사제들은 반발했다.
성녀의 시종은 사제에게도 명예로운 일인데 그것을 죄인에게 시킬 수는 없다느니, 한 번 주인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죄를 범했는데 두 번은 하지 못할 것 같냐느니, 로이드를 폄하하고 매도하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텔라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 제가 누구를 시종으로 둘지는 제가 결정합니다. ”
로이드는 분명 그녀에게 무례를 저질렀지만, 사과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얻기를 소망했다. 아리스텔라가 로이드를 시종으로 두는 것은 그를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로이드에게 제 신뢰를 얻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 로이드는 아직 이 신전의 소속이고, 저는 이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주인이니까, 죽게 할 수도 쫓아낸 수도 없습니다. ”
아리스텔라는 이곳에 오기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가정을 버리고 도망친 아버지가, 아리스텔라가 성녀라는 신탁을 받자마자 돈이 되겠다며 자신의 딸을 만나러 집으로 돌아왔다. 만약 그녀가 성녀가 아니었다면, 신전에서 빚을 갚아주겠다 말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를 도와 어린 동생을 키우던 아리스텔라는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일찍 철이 들었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만으로 일해서 세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은 힘이 들었고, 주위의 시선도 따사롭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었으니까.
어리광 한번 제대로 부려보지 못하고 어른이 된 아리스텔라는 가정을 책임지지 않는 가장, 수하를 돌보지 않은 상환, 자신이 벌인 일에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비겁자를 혐오하게 되었다.
아리스텔라는 이 신전의 주인이었다. 비록 그들과 혈연으로 맺어진 것도, 가족처럼 살가운 관계가 된 것도 아니지만, 아리스텔라는 주인으로서 제 종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처럼, 가족을 버리고 도망치거나, 딸을 팔아 제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로이드를 받아들이고, 크리스를 받아들이고, 이자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들이 아리스텔라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한, 결코 먼저 자신이 내치지는 않겠다고.
대신관 히페리온과 집행관 클로비스의 제재로 사제들의 반대는 무산되고, 아리스텔라는 로이드와 함께 공회장을 나왔다. 아침까지 그녀의 시종이었던 케인은 이제 기사단장으로서, 공회장 밖에 늘어서 있던 성기사들을 지휘했다.
“ 미안해요, 케인. 당신과 의논하지 않고 시종을 바꿔버려서. ”
“ 아닙니다, 성녀님. ”
케인은 로이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직하게 말해서 한 번 기사도를 어긴 로이드를 어떻게 다른 성기사들에게 받아들이게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해 속을 앓았다. 아리스텔라가 설마 로이드를 제 시종으로 삼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케인에게도 다른 성기사들에게도 그리고 로이드에게도, 아리스텔라의 결정은 평화로운 것이었다.
아리스텔라와 로이드는 공회장을 나와 남쪽 회랑을 거닐었다. 높게 떠 있는 밝은 햇살이 신전의 정원에 내리쬐었다. 골렘이 관리하여 살풍경한 정원이지만,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자연의 모습을 유지하는 정원은 한낮의 햇볕 아래서 싱그럽게 빛났다.
“ 로이드. 감옥에 있는 동안은 바깥 풍경을 보지 못했지요? ”
“ 예. ”
“ 그럼 잠깐 햇볕을 쐬기로 해요. ”
아리스텔라가 계단을 내려가 정원으로 나왔다. 로이드는 그녀의 뒤를 따라 정원으로 나왔다. 키가 큰 나무의 무성한 이파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한낮의 태양이 바닥에 만든 그림자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 로이드. 이 신전에 머무는 사람은 총 몇 명인가요? ”
“ 기사단장 아래 성기사가 서른 명. 평사제와 수습사제가 각각 열세 명. 신관이 다섯 명. 요리장과 관리인이 각각 네 명. 총 일흔 명입니다. ”
“ 100명도 채 되지 않는군요. 이렇게나 건물이 넓은데도. ”
신전의 규모는 정말로 거대했다. 수십 명의 사제와 성기사가 평생을 머무르는 신전의 규모는 어지간한 마을 하나보다도 거대했다. 어쩌면 아리스텔라가 살던 마을보다도 클 지도 모른다. 그러니 길을 잃지 않도록 늘 시종을 붙이고 다녀야 하고, 성기사나 사제들이 활동하는 구역이 달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거겠지.
“ 로이드. 사제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요? ”
“ ……예. 공회장에서 사제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
“ 저는 사제들이 당신을 비난하는 말을 부정할 수도, 당신을 변호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로이드, 당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에요. ”
“ 예, 성녀님. ”
아리스텔라는 고개를 돌려 로이드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커다란 덩치에 아름다운 은발이지만, 차가운 감옥에서 내내 고생한 탓일까. 로이드의 얼굴은 조금 야위어 있었다. 자신을 구하고, 자신을 따르는 성기사를 홀로 버려둔 것이 조금 미안해져 아리스텔라는 살며시 로이드의 손을 잡았다.
“ 아, 참. 알고 있나요? 제가 성기사들에게 축복을 내렸기 때문에, 이제는 성기사도 사제들과 함께 미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어요. ”
“ 성기사가 미사에요? ”
로이드는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박였다. 감옥에 있던 그에게 처형 소식은 전달해도, 성기사들이 성녀의 축복을 받은 이야기는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았다.
“ 저는 사제분들과 성기사들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하거든요. ”
“ ……사이좋게, 말입니까……. ”
사제들이 성기사들을 낮잡아보는 것도, 성기사가 사제들에게 열등감을 가지는 것도 잘 알고 있는 로이드로서는 아리스텔라의 말이 허황되게만 들렸다. 그 두 집단의 사이가 좋아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 우리는 이 신전에서 평생 나갈 수 없으니까요. ”
아리스텔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웅장한 신전의 건물과 높이 뻗은 나무가 가득한 정원. 아무리 넓다고는 해도 평생 다른 사람과 마주하지 않고 지내기엔 외로울 것이다.
“ 사제도 성기사도, 저를 따르는 사람들이니까요. 저는 누구도 차별하고 싶지 않아요. ”
성녀가 사제들의 비호를 받고, 사제들이 성기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구조에서는 사제와 성기사의 사이가 나쁘더라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하관계가 잡혀 있고, 역할 분담이 확실히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텔라가 성기사들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그들을 가까이하면서, 성기사와 사제의 지위가 동등해지고, 공유하는 영역이 생겨버렸다. 본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당연한 지위를 빼앗긴 사제들은 어떻게든 성기사를 폄하해서 끌어내리려 할 것이다.
아리스텔라는 신전의 주인으로서, 신전의 평화를 위해 사이 나쁜 두 집단을 화해시킬 의무가 있었다.
“ 성녀님. 그것은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
“ 로이드. ”
“ 하지만 성녀님이라면 해내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로이드는 자신이 눈이 뒤집혀 그녀를 범한 이후, 아리스텔라가 자신을 혐오하여 죽게 내버려두리라고, 죽길 바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리스텔라는 그런 일을 겪고도, 다시 한 번 로이드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심했다. 그 결정에 사제들이, 다른 성기사들이 반발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 아리스텔라가 무엇을 포기하고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모를 만큼 로이드는 바보가 아니었다. 우수한 성기사였던 만큼, 사제는 물론이고 다른 성기사들마저 자신을 곱게 바라보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로이드는 그것을 극복해야 했다. 자신을 믿어준 그녀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 고마워요, 로이드. 저를 믿어줘서. ”
“ 이제는 성기사가 아니지만, 저는 영원히 성녀님의 종입니다. 신을 믿는 것은 당연하지요. ”
“ 후후. 그러네요. ”
아리스텔라는 생긋 웃으며 로이드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키가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기에 덥지는 않았다. 아리스텔라는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정원을 거닐었다.
남쪽 구역의 정원을 지나자 사제들이 머무는 동쪽 구역이 나타났다. 사제들이 미워하는 로이드를 데리고 동쪽 구역을 돌아다녀도 되나 잠시 고민했지만, 아리스텔라는 과감하게 그곳에 발을 들였다.
“ 로이드. 동쪽 구역에 와본 적이 있나요? ”
“ 지도를 익혀 두었기에, 어지간한 장소는 외우고 있습니다. ”
“ 아, 그럼 이곳 지리도 알고 있겠군요. ”
“ 예. 이쪽 복도로 쭉 나아가면 기도실, 모퉁이를 돌아 계단으로 올라가면 사제들의 회의실입니다. ”
로이드는 아리스텔라보다도 이곳의 지리에 상세한 것 같았다. 성기사였던 사람이니까 동쪽 구역을 다닐 때는 지리를 몰라 헤매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그럴 일은 없을 듯하여 다행이었다.
“ 그럼……. ”
“ 성녀님. ”
분위기도 파악할 겸 동쪽 구역을 한번 둘러볼 셈이었는데, 건너편에서 대신관 히페리온이 다가왔다.
“ 히페리온 대신관님. ”
“ 방으로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이곳에는 어쩐 일이신지요? ”
“ 오전에 공회장에서 재판을 여느라 정오 미사가 취소되었잖아요. 사제분들이 많이 불만스러워 하시는 것 같아서, 분위기를 알아보려고 찾아왔어요. ”
아리스텔라의 말에 히페리온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녀가 성기사를 편애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는 전부터 있어 왔다. 로이드를 시종으로 삼은 일은 그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으니 여론이 좋을 리 없다. 그러나 그 일을 아리스텔라에게 말하면 분명 그녀는 사제들을 설득하겠노라 회의실로 향할 것이다. 지금 사제들을 자극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 성녀님께서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
사제들을 관리하는 것은 대신관인 히페리온의 일이었다. 성녀가 일일이 사제들을 설득하고 분위기를 바꾼다면 대신관인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또한 대신관의 일. 히페리온은 그렇게 생각하여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아리스텔라를 안심시켰다.
“ 그런가요? 굉장히 화내고 있을 줄 알았어요. ”
“ 성녀님의 결정입니다. 그것을 번복할 수 있는 것은 성녀님 자신뿐입니다. ”
“ 납득한 게 아니라, 제 결정이기 때문에 억지로 따르는 거로군요. ”
필사적으로 로이드의 처형을 막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성기사들을 설득하고, 집행관 클로비스를 설득했던 것이다. 제가 억지를 부려서 사제들의 의견을 묵살하려는 것이었다면 그 고생은 하지 않았다.
“ 독재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데……. ”
합리적으로 일을 해결하고 싶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제들의 반발이 컸음을 뒤늦게 깨달은 아리스텔라는 조금 침울해졌다.
“ 성녀님께서는 이 신전의 주인이시니까요. 주인을 따르는 것은 종의 의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 그러니까 그 ‘종’이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
거기까지 말하다가, 아리스텔라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 히페리온 대신관님. 크리스는 요즘 왜 보이지 않나요? ”
“ 예? ”
어제도 그제도, 크리스를 보지 못했다. 아리스텔라의 밤에 한밤중에 숨어들어와 그녀를 범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에게 화를 낸 뒤로 크리스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 미사에는 나올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해서요. 오늘 공회장에도 나오지 않았고. ”
“ 그건……. ”
히페리온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로이드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히페리온에게 재차 물었다.
“ 성녀님께서 궁금해 하십니다. 히페리온 대신관. 말씀해 주십시오. ”
“ ……. ”
로이드까지 합세하자 히페리온은 결국 포기하고 전부 털어놓기로 했다. 순진한 아리스텔라는 속일 수 있어도, 전 기사단장인 로이드까지 속일 만큼 히페리온의 표정 연기는 뛰어나지 않았다.
“ 사실은 이틀 전부터, 크리스가 보이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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