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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69화 (6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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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의 기사입니다

[69] 당신만의 기사입니다

이자크가 깨어난 것은 새벽이었다. 뒤처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기절하듯 잠들었던 그는 제 방의 침대와는 다른 포근하고 부드러운 시트의 감촉에 위화감을 느껴 눈을 떴다. 눈앞에 잠든 아리스텔라의 얼굴을 보고 이자크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넓은 창 너머로 파란 새벽하늘이 보였다.

‘ 내가 성녀님의 방에서 잠든 건가? ’

이자크는 제가 알몸인 것을 깨닫고 다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입었다. 새벽의 공기는 차갑고 방아은 고요한데, 이자크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에 열이 올라서 미칠 것만 같았다.

‘ 이게 대체 무슨 추태야…. ’

한숨을 쉬면서 옷을 챙겨 입은 이자크는 아리스텔라를 깨워야 하나, 이대로 계속 자도록 두어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한나절 사이에 남자와 두 번, 아니 세 번이나 섹스를 했으니 무척 피곤할 것이다. 함께 잠든 이자크가 깨어났을 때 아리스텔라의 곁에 없으면 그녀가 불쾌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아직 보는 눈이 없을 새벽에 얼른 방을 빠져나가는 것이 자신과 그녀를 위해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자크는 아리스텔라의 몸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 으응…. ”

잠꼬대를 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아리스텔라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자신은 밤새 이 가련한 여인이 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 고개도 들지 못하고 쩔쩔맸던 것인가. 이자크는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얼굴을 붉히면서도, 잠든 아리스텔라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몸집이 작은데도 있을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침대 위에 퍼지는 물빛의 긴 머리카락과 하얀 얼굴에 붉은 입술, 가느다란 콧대, 감은 눈꺼풀 밑으로 보이는 긴 속눈썹까지. 코끝에 손을 가까이하고 숨결을 느끼지 않는다면 정말 인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리 여자에 서툴다고는 해도 이자크도 살면서 아름다운 여자는 몇 명이나 보았다. 하지만 아리스텔라의 아름다움은 시선을 빼앗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어쩐지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며 두근거리는 아름다움이었다.

“ 성녀님…. ”

“ 응…. 후우…. ”

이자크가 부르는 목소리가 방해되는지, 아리스텔라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 바람에 그녀의 긴 머리가 흘러내려 작은 얼굴을 가려버렸다. 머리카락에 가려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쉬워져, 이자크는 저도 모르게 손끝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넘겨 얼굴을 드러냈다. 어서 방을 나와 기사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아직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똑똑.

넋을 잃고 아리스텔라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자크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창밖의 하늘은 여전히 파란 색이었으나 막 일어났을 때 보던 것보다 확실히 밝아져 있었다.

아리스텔라를 깨워 아침 준비를 하기 위해 시종이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성녀의 시종은 신전의 새로운 기사단장인 케인, 이자크의 상사였다.

―똑똑.

문밖에서 노크하는 소리에 다급해진 이자크는 아리스텔라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붙잡고 흔들었다.

“ 성녀님, 성녀님. ”

“ 으응…. 케인? ”

“ 성녀님, 저입니다. 이자크입니다. ”

“ …네? ”

낯선 목소리에 의아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가, 눈앞에 있는 것이 이자크임을 확인하자 아리스텔라의 눈이 크게 떠졌다.

“ 어, 어머나! ”

후다닥 이불로 몸을 가리긴 했지만 어차피 간밤에 함께 잠든 사이였다. 클로비스와 이야기를 마치고 알몸인 상태로 방으로 돌아왔고, 그대로 이자크와 관계를 가져버렸다. 제가 간밤에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린 아리스텔라는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면서 양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 이자크…. 그, 왜 아직 가지 않으신 거예요? ”

“ 죄송합니다. 제가 준비가 늦어서 그만…. 그보다, 케인 단장님께서 오셨는데요. ”

“ 네? 케인이요? ”

아리스텔라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다시 한 번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스텔라가 허락하지 않는 한 케인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오지는 않을 테지만, 케인이 모르게 이자크를 이곳에서 내보낼 방도가 없었다.

“ 저어, 성녀님…. 저는 어디에 숨는 것이 좋을까요? ”

“ …아니에요. 숨지 마세요. ”

아리스텔라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왔다. 간밤에 그렇게 격렬하게 몸을 섞었는데도 이상하게 몸은 가뿐했다. 체력이 좋아진 것일까. 아리스텔라는 바닥에 흘러내린 그녀의 성의를 가리키며 이자크에게 손짓했다.

“ 이자크.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시겠어요? ”

◇ ◆ ◇ ◆ ◇

케인은 성녀의 방에 이자크가 있던 것을 보고 무척 놀라기는 했지만,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이자크를 한 번 바라보았을 뿐 아리스텔라에게 별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 성녀와 무슨 일을 한 것인지는 적어도 그녀 앞에서 물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성녀님, 아침 준비를 돕겠습니다. ”

“ 네, 부탁할게요. 케인. ”

케인은 침대 시트를 걷어낸 다음 이불을 정리했다. 이 폐쇄된 신전이 지독히 넓고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수가 적어, 청소와 빨래를 마법으로 만든 요정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케인이 걷어낸 침대 시트를 문 밖으로 내밀자 반짝반짝한 초록빛의 반딧불이 같은 것이 모여들어, 시트를 끌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자크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저를 힐난할 줄 알았던 케인이 묵묵히 그녀의 시종 일만을 하는 것을 보고 멍한 얼굴로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침대 정리를 마친 케인은 아리스텔라의 머리를 빗겨 주고, 옷차림을 정돈해 주었다.

“ 성녀님. 오전 일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 클로비스 집행관님은 일어나셨나요? ”

“ 예. ”

“ 그럼 곧바로 의회를 소집하죠. 로이드의 처분이 끝나야 그분도 다시 황성으로 돌아갈 수 있으실 테니까, 제가 시간을 뺏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

“ 알겠습니다. ”

케인은 아리스텔라의 명령을 클로비스에게 전달하기 위해 먼저 방을 나섰다. 죄인의 판결은 남쪽 건물에 있는 공회장에서 이루어질 거라고 했다. 사제와 기사들을 모으고, 죄인인 로이드를 소환하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 이자크. 당신도 따라오세요. ”

“ 예? 제가 말입니까? ”

이자크의 질문에 아리스텔라는 대답하지 않은 채 곧바로 발을 돌려 방문을 나섰다.

“ 아, 성녀님! 잠시만요! ”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아리스텔라의 뒤를 쫓아, 이자크도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 ◆ ◇ ◆ ◇

공회장의 문을 열고 들어온 아리스텔라와 이자크를 보고 사제들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 성녀님? ”

“ 성녀님, 그 자는…! ”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자크가 성녀에게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로이드는 차치하고서라도, 미사실에서 직접 성녀의 호통을 듣고 쫓겨난 자는 이자크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제들도, 기사들도 감시 성녀에게 왜 이자크를 데리고 왔느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이 신전의 공회장에는 사제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죄인 로이드의 형을 집행하기 위해 황성에서 온 집행관, 클로비스가 단상 위에 올라서 있었다. 그리고 공회장의 대문 밖에는, 공간이 부족하여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신전의 성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성기사들이 서 있는 대문을 지키고 있는 것은 성녀의 시종, 기사단장 케인이었다. 사제들은 케인의 단호한 눈빛에 기가 죽어서, 차마 뭐라고 지적할 수가 없어 가만히 이자크와 아리스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 이자크. 케인과 함께 문을 지키도록 하세요 ”

“ 예, 성녀님. ”

아리스텔라가 이름을 부르자, 이자크는 문가로 걸어가 케인의 맞은편에 섰다. 문 밖에 서있는 기사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과 동시에, 공회장의 대문을 닫지 못하게 해 안에 있는 사제들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 클로비스 집행관님. 전 기사단장 로이드의 처우는 어떻게 되는지요? ”

단상에 서있던 클로비스는 공회장 안을 메우는 사제들을 슥 둘러보고는, 단상 앞에 포박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로이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제가 교황청에서 전달받은 것은, 전 기사단장 로이드가 성녀님을 강제로 범하는 극악무도한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뿐입니다. ”

클로비스의 말에 로이드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변명을 하지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모든 판결을 신에게 맡기기로 한 것처럼, 겸허한 태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 이미 신전의 사제분들이 회의를 통해 로이드의 처형을 결정하였으니, 저는 그 집행을 맡을 뿐입니다. ”

“ 저는 사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어요. ”

“ 예. 하지만 사제의 과반수가 찬성하였고, 대신관인 히페리온께서 허가하셨으니 성녀님의 반대가 없는 한 저는 형을 집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집행관이라 한들 저는 이 신전의 소속이 아니니, 신전의 결정에는 끼어들 수 없습니다. ”

아리스텔라는 히페리온을 바라보았다. 서서 참관해야 하는 평사제와는 달리 신관들은 앉아서 판결이 이루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리스텔라와 눈이 마주친 히페리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 성녀님께서 의식을 잃으셨기에 사제들만으로 급하게 회의를 열었습니다. 저는 당시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에 사제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결론을 존중해야 한다고 판단했지요. ”

“ 그렇다면 결국 판결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히페리온 대신관님. ”

“ 아닙니다. 이 신전에서는 저희 사제들 모두의 의견보다도 성녀님의 의사가 더 중요하니까요. ”

성녀는 신전의 주인으로서, 저를 따르는 사제와 성기사들을 모두 돌보아야 한다.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다는 위그멘타르의 신전. 그 평생을 자신에게 바치기로 맹세한 자들의 목숨을 쉬이 여겨서는 안 된다고 아리스텔라는 생각했다.

이미 다른 사제나 기사들과 관계를 가져온 아리스텔라로서는 로이드만이 처형당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저와 관계한 모든 이들을 전부 처형대에 올릴 수도 없었다.

조슈아는 아리스텔라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고, 케인과 이자크는 그녀가 의식을 잃은 사이 위그멘타르에게 홀렸기 때문이니까. 이 자리에는 없지만, 아마 크리스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기억이 없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해도 여신의 현신으로서, 제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아리스텔라는 그들 모두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 저는 로이드의 처형을 원하지 않습니다, 클로비스 집행관님. ”

아리스텔라의 말에 공회장을 채우던 사제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들은 아마도 아리스텔라의 말을, 성녀가 성기사를 편애하여 편을 드는 거라고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 편협한 생각을 하는지 아리스텔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제에게도 성기사에게도 공평해지고 싶었던 아리스텔라는 제게로 쏟아지는 불안한 시선을 흘려 넘겼다.

“ 하지만 성녀님. 성기사가 자신의 주인을 범한 행위는 분명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입니다. ”

“ 예. 저도 로이드의 행동이 죄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다만 죽어서 목숨으로 죗값을 치르기보다는 살아서, 그녀의 곁에서 행동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를 원했다.

“ 성녀님께서는 로이드에게 어떤 처분을 내리실 계획이신지요? ”

“ 로이드를 신전 기사단장에서 해임한다는 판결에는, 저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

“ 그렇다면 평기사로 강등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

아리스텔라는 시선을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케인과 이자크는 요전히 문가에, 그리고 그 밖에는 성기사들이 서있었다.

케인은 기사단의 단장이고, 이자크는 로이드를 존경하는 기사였다. 그리고 기사단의 성기사들은, 로이드의 행동을 두고 ‘ 기사도를 어겼다 ’고 평했다. 평기사라고 한들 그를 기사단에 두는 것은 사제들에게 기사들을 얕잡아볼 빌미만 주는 것이다.

“ 아뇨. ”

아리스텔라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로이드에게로 다가갔다. 로이드는 저에게 다가오는 아리스텔라를 보고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나 커다란 남자인데도,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있을 때는 정말로 온순하게 길들여진 맹수와도 같았다.

“ 케인은 기사단장입니다. 기사단에서 성기사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제 시종과 기사단장 일을 병행하는 것은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

“ 성녀님…. ”

케인이 그녀를 부르는 말끝을 살짝 흐렸다. 실력을 의심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케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의 몸이 하나인 이상 성녀의 시종으로서 아리스텔라의 곁을 지키는 일과 기사단을 이끄는 일을 병행하는 것은 분명히 무리다. 의욕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아리스텔라는 알고 있었다.

신전의 성기사들은 성녀와의 교감을 원했다. 그녀에게 직접 명령을 받기를 원했다. 그러니 사제를 시종으로 삼아 사제를 통해 성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이 신전의 주인으로서, 사제와 기사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제 의무를 소홀히 여기는 것이라고, 아리스텔라는 생각했다.

“ 앞으로는 사제도, 기사도, 시종으로 삼지 않겠습니다. ”

아리스텔라는 로이드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의 몸을 포박한 성스러운 밧줄을 끌어당겼다. 성녀의 신성력에 감응한 밧줄의 매듭이 풀어져, 로이드는 몸의 자유를 얻었다.

“ 일어나세요, 로이드. ”

“ 성녀님…. ”

“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이 신전의 성기사가 아닙니다. ”

아리스텔라는 아직 멍한 얼굴의 로이드를 바라보며, 차가워진 그의 커다란 손을 살며시 쥐었다.

“ 앞으로는 제 시종으로서, 제 곁에 있어주세요. ”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로이드를 구해오느라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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