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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 클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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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라우트 공작은 공작부인과의 사이에 두 아들과 세 딸을 두었다. 공작부인은 현숙한 여인이었으며 공작은 그녀를 정중하게 대했다.
장남인 클로비스는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교육받으며 귀공자로 자라났다. 그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내로라하는 학자이며 기사였고, 클로비스는 그런 선생의 가르침을 흡수하여 제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다. 학술도 무예도, 또래 영식들은 물론이고 제 스승들과 비교해도 클로비스의 능력은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공작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으며, 곧 아버지의 공작위를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그런 클로비스 앞에 이자크가 나타났다.
창녀의 아들. 형제라고는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더러운 여인의 배에서 나온 제 형제를, 클로비스는 외면했다. 근엄한 아버지가 창녀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보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가.
공작부인이 사생아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며 공작에게 이혼을 요구하자, 공작은 이혼을 무산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자크의 어머니를 수도원에, 이자크를 기사들의 훈련소에 보냈다. 사생아인 이자크는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을 수 없었기에 평민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이자크가 스프라우트 공작의 아들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훈련소의 교관인 클로비스과 이자크는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꼭 닮았기 때문이었다.
「 네 녀석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
클로비스는 되도 않는 트집을 잡아 이자크를 비난하고 매도했다. 자존심이 상한 것을 해소할 수단이 필요했다. 저보다 약하고 어린 동생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 더러운 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클로비스는 이자크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이자크가, 그런 형의 처지를 헤아려줄 만큼 어른스럽지도 관대하지도 않은 동생이라는 점이었다.
클로비스보다 열 살이 어린 이자크는 형에게 정면으로 반항했다. 클로비스가 그를 꾸짖으면 소리를 지르고, 클로비스가 그를 매도하는 말을 하면 마구 욕을 했다. 벌을 세우면 물건을 부수고 힘으로 꺾으려 들면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훈련소의 교관과 훈련병의 트러블은 꼰대와 양아치의 싸움으로 번져버렸다.
결국 먼저 손을 들고 항복한 것은 클로비스 쪽이었다. 동생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짐승처럼 천지분간을 못하고 달려드는 철부지를 일일이 상대하는 것은 클로비스 자신의 명예에 흠이 가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 이자크. 네가 사고치지 않고 얌전히 졸업하면 너를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해주마. 」
「 당신 인정 따위 필요 없는데? 」
「 또 그런 건방진 소리를. 」
「 진짜야. 난 성기사가 될 거니까. 가문이고 부모고 다 필요 없어. 어차피 연 끊어야 하는데, 뭐. 」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듣고 당황한 것은 클로비스 쪽이었다. 이자크의 어머니는 창녀였기에 수도원에 보내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자크를 훈련소에 보낸 것은 제 어머니인 공작부인의 화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사생아라고는 해도 스프라우트 공작의 아들인데, 위대한 공작가의 핏줄을 신을 위해 일생을 바치며 결혼도 하지 못하는 성기사로 만들 수는 없었다.
「 그럴 수는 없다, 이자크. 기사로 살고 싶다면 황궁 기사단에 입단하거라. 」
「 당신 말 들을 생각 없다니까? 」
「 ……혼 좀 나봐야겠구나. 」
그날의 형제 싸움에서, 클로비스는 처음으로 이자크에게 졌다. 아무리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달려드는 이자크를 클로비스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클로비스는 이자크를 싫어했지만 그가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자크는 죽을 각오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실력 차가 있다한들 목숨을 건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싸움에서 결과는 뻔했다. 클로비스는 결투를 포기했고, 훈련소 교관을 그만두었다.
처음부터 오래 교관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자크를 감시할 생각으로 몸담고 있었던 것이다. 장차 공작이 될 그에게 훈련소 교관 따위의 직함은 어울리지 않았다.
「 나에게 어울리는 건 뭐지? 」
공작이 되어 영지를 경영하고, 부인을 맞아들여 아이를 낳아 후계를 잇는 일인가. 시시하고 뻔한 일이다. 클로비스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장군직을 주겠다는 황제의 배려를 거절하고, 클로비스는 집행관이 되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고 심판한다. 황제의 명에 따라 군사를 이끌고 지휘하는 장군직보다 혼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집행관은 관직은 낮을지언정 훨씬 매력적인 직위였다.
당연히 그의 어머니인 공작부인은 반대했으나, 역시 당연히 그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는 이혼을 요구해도 아들에게 모자의 연을 끊자고는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클로비스의 어머니는 언제고 가문으로 돌아오라는 말만을 남기고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 ◆ ◇ ◆ ◇
“ 신전을 방문한다는 황성의 집행관이 클로비스 형님인 줄은 몰랐는데. ”
“ 가족의 연을 끊는다더니 잘도 형님 소리를 하는구나, 이자크. ”
훈련소에 있을 때는 꿋꿋하게 「 교관 」, 「 당신 」으로 불러댄 주제에. 클로비스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이자크의 손목을 놓았다.
“ 위그멘타르 신전의 경비가 무척 삼엄하다고 소문이 자자하기에,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뿐이다. 이제 되었어. ”
“ ……시험을 위해 이 난리를 피웠다고? ”
“ 난리를 피웠다고 하기엔, 너 말고 마중 나온 이가 아무도 없다만? ”
클로비스가 씩 웃으며 바닥에 꽂힌 검을 뽑아들었다. 그때, 그들을 가리키는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침입자다! ”
“ 아니, 다른 하나는 이자크다! ”
“ 이자크가 침입자를 끌어들인 건가? ”
클로비스를 침입자로 판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말에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던 이자크는 아픈 손목을 부여잡고 소리를 빽 질렀다.
“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희들이 미사에 참석한다고 전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나 혼자 싸웠다고! ”
“ 하지만 지금은 안 싸우고 있잖아. ”
“ 침입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
이자크의 말에 기사들이 멍청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가, 클로비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시선을 받은 클로비스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한발 물러나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 집행관 클로비스입니다. 사제분들의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 ”
“ 집행관이라고? ”
“ 집행관이 왜 이런 짓을 해? 결계를 부수고 골렘을 망가뜨릴 이유가 없잖아! ”
기사들이 의심하며 아우성치자, 케인이 소란해진 기사들을 조용히 시켰다. 아리스텔라를 기사들 사이에 세우고, 케인은 클로비스를 향해 다가갔다. 케인은 이 신전에 오기 전, 황궁 기사단에 몸담고 있었기에 클로비스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 클로비스 집행관. 분명 저녁에 도착하신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만. ”
클로비스는 무거운 검을 휙 들어 올려 어깨에 걸치고는 씩 웃었다.
“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것이 제 신조라서. ”
집행관 클로비스의 나이는 로이드와 비슷한 정도로 보였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구릿빛 피부를 지닌 그는 이자크와 무척 닮은 인상이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배다른 형제라고 한다. 아리스텔라는 기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클로비스와 이자크의 관계를 추측했다.
‘ 확실히 많이 닮았네. 오히려 생판 남이었다면 더 믿기 어려웠을 거야. ’
아리스텔라는 클로비스를 향해 가볍게 목례했다.
“ 성녀 아리스텔라입니다. ”
“ 이번에 큰일을 겪으셨다면서요. 무사하신 듯하여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
로이드와의 일을 말하는 것인가. 아리스텔라의 어깨가 흠칫 떨렸으나 그녀는 태연하게 표정을 가다듬고 신전 안쪽을 가리켰다.
“ 먼 길을 오시느라 고단하실 텐데 안으로 드시지요. ”
◇ ◆ ◇ ◆ ◇
아리스텔라는 클로비스를 자신이 머무는 중앙 건물로 안내했다. 황성에서 신전까지 혼자서 온데다가 골렘과 싸움까지 했으니 지쳤으리라 판단해 쉬게 하려 했지만, 클로비스는 휴식이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 로이드의 처형에 대한 건으로 성녀님과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만. ”
“ 그럼……. 응접실로 안내하겠어요. ”
중앙 건물에는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이 있었다. 외부인이 들어올 일이 없는 폐쇄된 신전이지만 아주 간혹, 특별한 이유로 외부인이 방문하는 일이 있긴 했다고 한다.
그 때를 위해 이렇게 응접실까지 따로 만들어놓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이토록 넓은 신전인데 아주 드물게 사용하는 용도의 공간이 있다한들 크게 문제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성벽의 결계를 보수하고 새로 골렘을 만드는 일은 사제들이 하기로 했다. 응접실의 문을 열고 아리스텔라가 들어가자, 클로비스는 성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려는 케인을 막아섰다.
“ 성녀님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
“ 저는 성녀님의 시종입니다. ”
성녀의 곁을 지키는 것이 시종의 역할. 케인은 우직하게 답변했다.
“ 성녀님. 시종이 옆에 없으면 대화가 불가능하십니까? ”
“ 네? 아니에요! ”
“ 그렇다면 시종을 물러주실 수 있으신지요? 저는 성녀님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보는 눈이 없는 자리에서요. ”
“ 그 말씀은, 사제들이 올린 보고를 믿지 않으신다는 뜻입니까? ”
“ 제삼자의 의견은 제삼자의 의견으로, 당사자의 말은 당사자의 말로 받아들일 뿐이지요. ”
클로비스는 아리스텔라를 가리키며 케인에게 양해를 구했다.
“ 괜찮아요. 다들 자리를 비켜주세요. ”
황성에서 집행관이 온다기에 사제들의 의견만 듣고 다짜고짜 로이드를 처형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아리스텔라의 걱정과는 달리 클로비스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판단하는 타입인 것 같았다.
이 사람이라면 분명 아리스텔라가 로이드의 처형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에도 귀를 기울여 줄 것이다. 아리스텔라는 그렇게 판단하고 사제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 하지만 성녀님, 단 둘은……. ”
“ 괜찮아요, 케인. 이곳에서는 제 방이 멀지 않으니까, 이야기가 끝나면 혼자서 돌아갈 수 있어요. 케인은 기사단으로 돌아가세요. ”
케인은 기사단의 단장이다. 로이드가 해임되는 바람에 맡게 된 직책이지만, 로이드가 처형을 면한다 한들 바로 기사단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당분간은 계속 케인이 기사단을 이끌어야 하는데, 제 시종이라는 이유로 클로비스와 이야기하는 내내 밖에 세워둘 수는 없었다.
케인은 아리스텔라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못내 걱정이 되는 듯 난처하게 뒤를 바라보다가, 결국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사제들과 기사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들렸다.
============================ 작품 후기 ============================
61화까지 마저 연참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