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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56화 (5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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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혹한 밤이었다

[56] 가장 잔혹한 밤이었다

밤 산책을 마친 케인은 아리스텔라를 방까지 바래다주었다.

크리스가 시종일 때는 성녀의 방에서 종을 울리면 바로 소리가 들리는 시종의 방에 머물렀지만, 케인은 지금 기사단장이다. 부단장으로서 잠시 성녀의 시종을 맡았을 때와는 처지가 달랐다.

케인은 아리스텔라에게 내일 미사 준비에 늦지 않도록 해가 뜨는 시각에 오겠노라 약조를 하고 돌아갔다.

‘ 노엘에게는 케인을 시종으로 두겠다고 말했지만 시종 역할과 기사단장직을 역임하려면 케인도 힘들겠지. 내일부터는 다른 사람을 시종으로 두는 것이 좋을까. ’

크리스에서 케인으로, 그리고 또 다른 사람으로. 제 곁을 지키는 사람이 휙휙 바뀌는 것은 싫었지만, 기사단장으로서 기사단에 머물며 성기사들을 이끌어야 하는 케인에게 성녀의 곁을 온종일 지켜야 하는 시종 일을 계속 시키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아리스텔라는 침대에 누워 오늘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내일 미사 때 히페리온에게 부탁해 그녀의 곁을 지킬 시종을 정하기로 했다.

‘ 크리스. 그때 이후로 만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고 있을까. ’

크리스가 그녀를 빈 방에 감금하고 난 이후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리스텔라의 몸에 남아있던 정사의 흔적은 착각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다리를 다치고, 시종직에서 잘렸으며, 사제의 계율까지 어기게 된 수습사제를 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 내일 크리스를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리고 대신관님께 부탁해서 다시 한 번 크리스를 내 시종으로 삼고 싶다고 말해야겠어. ’

히페리온은 노엘을 그녀의 시종으로 보냈으나 아리스텔라는 노엘이 낯설었다. 사제 중에서 제 시종을 두어야 한다면 얼굴을 알고 있고, 그녀에게 친절했던 크리스가 좋았다.

게다가 크리스는 아리스텔라 때문에 뭔가 곤란한 일을 당한 것 같았다. 수습사제인 그로서는 다른 사제들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더라도 저항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지켜주고 싶었다.

신전 문화를 모르는 아리스텔라에게 사제와 성기사들이란 신에게 몸과 마음을 바치기로 맹세한, 이를테면 인간이라는 인식을 벗어난 신의 사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리스텔라의 생각보다도 신전의 사람들은 인간적이었다. 세력과 계급이 존재했으며, 자신과 다른 이들을 기피하고 무리에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아리스텔라는 그것을 바꾸고 싶었다. 사제와 성기사를 합쳐 겨우 수십 명의 인원이다. 그들이 평생 이 신전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이 적은 인원끼리 서로 싸우고 혐오하며 계급을 나누어 차별하는 행태를 두고 볼 수는 없었다.

‘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

아리스텔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슴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 ◆ ◇ ◆ ◇

잠에 들었던 아리스텔라는 뭔가가 피부를 간질이는 이상한 감각에 얼굴을 찡그렸다. 마치 누군가 그녀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것 같았다. 고운 손이 천천히 그녀의 몸 선을 따라 더듬어 내려가다가, 굴곡이 진 부위를 살며시 문질렀다.

“ 으응……. ”

아리스텔라는 야릇한 한숨을 흘리면서 몸을 비척거렸다. 누군가 자신을 깨우는 것인가. 아직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케인이 벌써 도착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리스텔라는 졸음 때문에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깜박거리며 제 시종의 이름을 불렀다.

“ 케인……? ”

대답은 없었다. 그녀의 몸을 쓰다듬던 손이 위로 올라와 뺨을 감쌌다. 케인의 크고 단단한 손이 아니라 사제의 곱고 부드러운 손임을 자각한 아리스텔라는 흠칫 놀라 눈을 떴다.

“ 꺄아! 누구……, 흡! ”

고운 손이 아리스텔라의 입을 틀어막았다.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설마 아리스텔라가 자는 중에 그녀의 방에 들어와 몸을 만지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성녀님. 소리를 내시면 안 돼요. ”

“ 흐읍……, 크리스……? ”

“ 소리를 내셔도, 어차피 밖에는 들리지 않겠지만요. ”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는 하얀 피부에 예쁜 금발. 붉은 눈동자의 앳된 얼굴을 한 아리스텔라의 옛 시종이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크리스? 대체 왜……. ”

“ 성녀님. 여기서 도망치셔야 해요. ”

“ 네……? ”

크리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더니, 아리스텔라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고 속삭였다.

“ 도망치시지 않으면, 사제들이 성녀님을 범하려 할 거예요. ”

“ 뭐, 뭐라고요? ”

“ 제가 숨겨드릴게요. 신전은 넓으니까, 계속해서 도망 다니면 숨을 수 있을 지도 몰라요. ”

아론이 보여준 전대 대신관의 일기를 읽고, 크리스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정화의 의식. 음욕으로 타락한 성녀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사제가 직접 성교의 형태로 성녀를 정화하는 방법. 여신을 봉인한 성녀라는 ‘ 그릇 ’을 타락하기 전의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필요하기에, 신전의 사제들이 돌아가며 성녀를 정화해야 한다고, 전대 대신관의 일이게는 적혀 있었다.

“ 성녀님이 타락하여, 자신을 범한 성기사를 감싸려 하고, 사제보다 기사를 더 가까이하는 거라고……. 그래서 정화해야 한다고, 다른 사제들이 그랬어요. ”

“ 아, 아니에요. 저는……. ”

“ 네. 그러니까 저와 함께 도망쳐요, 성녀님. ”

크리스는 아리스텔라에게 순정을 바쳤다. 사랑하는 그녀를 독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환상에 빠져 그녀를 가두고 범했다. 그 열망을 이제 와서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타락한 성녀를 제단에 눕히고 기절할 때까지 돌아가며 범하는 정화의 의식. 크리스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리스텔라가 쾌락에 들떠 신음하는 모습을 다른 남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제 하나뿐인 주인을 다른 종들이 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그녀와 함께 타락하는 것이 낫다. 그녀를 독차지할 수 있다면 세상이 멸망한다한들 상관없었다.

어리석은 신의 종은 그렇게 생각하고 도망칠 결심을 하여 이 한밤중에 제 주인을 데리러 온 것이다.

“ 제가, 제가 지켜드릴게요. 신전 지도도 가져왔어요. 숨어 다니다가 적당히 때를 봐서 빠져나가기로 해요. ”

“ 안 돼요, 크리스. 여긴 폐쇄된 신전이잖아요. 제가 도망치면……. ”

“ 그럼 성녀님은 정화의 의식을 치르고 싶으신 건가요? ”

크리스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은 것을 느끼고 아리스텔라는 숨을 삼켰다. 천천히 뱉은 숨이 입술에 닿았다. 크리스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속을 진정시키더니, 킥 하고 웃었다.

“ 하긴, 성녀님은 저 같은 걸로는 만족을 못하셨으니까. ”

“ 네……? ”

“ 제가 이렇게, 몸을 만져드렸는데. 케인의 이름을 부르셨잖아요? ”

“ 아니, 저기! 그건……. ”

“ 괜찮아요. 알고 있었어요. 성녀님이 다른 남자와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거. ”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데도, 한마디 한마디다 마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에 꽂히는 것 같았다. 아리스텔라는 쿵쿵 뛰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짧게 숨을 토하며 크리스를 노려보았다.

“ 제가 잘할게요, 성녀님. 잘할 테니까……. 이제부터는 저 하나만 곁에 두고 사랑해주세요. ”

“ 크리스, 나는……. ”

“ 저를 사랑해주세요, 성녀님.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바칠게요. 몸도, 마음도, 영혼까지 전부. ”

크리스의 고개가 밑으로 내려가더니, 목깃에 따스한 입술이 닿았다.

“ 응……! ”

“ 저와 함께 도망가요, 성녀님. ”

“ 아, 안돼요. 도망칠 수는 없어요! ”

이곳은 폐쇄된 신전이다. 몇 겹이나 되는 결계로 엄중하게 보호받고, 골렘이 그것을 관리하고 있는 것은 단지 외부의 적으로부터 이곳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성녀는 절대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아무리 아리스텔라가 마법이나 결계에 대해 무지해도 그런 것을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도망치면 남은 이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로이드는 누가 구할 것이며,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은 누가 이끈단 말인가. 그녀를 위해 계율을 어기고 봉사한 조슈아와 히페리온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아리스텔라에게는 신전의 주인으로서, 여신의 현신으로서 지고 있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그것을 내팽개치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 정말로, 타락하셨네요. ”

“ 뭐, 뭐라고요? ”

“ 그렇잖아요? 정화의 의식을 받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곳에 남아 계실 이유가 없는데. ”

크리스는 키들거리면서 아리스텔라의 옷섶을 물고 잡아당겼다. 옷깃은 간단히 벌어졌다. 크리스는 그녀의 드러난 맨살에 뺨을 비비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 하윽! ”

“ 아아……. 정말 부드러워요. 성녀님의 이 하얗고 달콤한 피부를, 다른 사제들이 손으로 더듬고 혀로 핥는다고 생각하면……. ”

크리스는 아리스텔라의 가슴을 혀로 핥으면서 허리띠를 풀었다. 옷자락이 흐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손으로만 입하고 벗길 수 있다는 성의는, 겨우 손짓 한 번에 그녀를 알몸으로 만들 만큼 몸을 가리는 의미가 없는 의복이었다.

“ 아흣, 크리스! 그만……! ”

“ 다른 사제들이 성녀님의 옷을 벗기고, 마구 만질 거예요. 그래도 괜찮으신 건가요? ”

“ 흐읏, 싫어……. ”

아리스텔라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동그랗고 순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크리스가, 어느새 남자가 되어 사랑하는 여인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밝고 천진한 크리스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모르는 남자들 사이에서 지내야 하는 신전에서도 겁먹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처음엔 그녀의 가슴을 만진 것만으로 깜짝 놀라서 얼굴을 붉히던 크리스가 언제부터 욕망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보게 되었는가.

아리스텔라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크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이 되었다. 제 안의 여신이 음욕을 불태우며 그를 모욕했을까? 그래서 상처를 받아 아리스텔라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

“ 크리스. 잠깐만, 기다……, 아읏! ”

크리스를 밀어내고 그와 천천히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 위로 미끄러지는 음란한 손짓에 아리스텔라는 자꾸만 정신을 빼앗겼다.

“ 아, 아아……! ”

“ 이렇게 야한 소리를 내면서, 허리를 흔드시고……. 이런 모습을 다른 사제들에게 보이실 건가요? ”

“ 아, 아니에요……! ”

“ 네. 저한테만 보여주세요. 성녀님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알고 있는 건 저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

어느새 옷을 벗고 알몸이 된 크리스가 아리스텔라의 귓가에 속삭이며 그녀의 귓불을 깨물었다. 아리스텔라의 몸이 움찔거리며 호흡이 가빠졌다.

여자의 몸에 무지한 크리스라도 품에 안긴 여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위가 어디인지는 알 수 있었다. 크리스는 아리스텔라의 귓가에 숨을 불어넣으면서, 그녀가 제 밑에서 비척거리며 달뜬 신음을 흘리는 것을 듣고 희열을 느꼈다.

“ 아름다워요, 성녀님.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 ”

“ 그만, 싫어……! ”

“ 온몸이 분홍빛으로 물들고, 달콤한 향기가 나서……. 꼭 과일 같아요. ”

“ 흐읏! ”

봉긋한 가슴을 베어 물자, 아리스텔라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바르르 떨었다.

아리스텔라의 몸 어디에서든 달콤한 향기가 났지만 그녀의 가슴에서 나는 향기는 특히 더 부드러웠다. 말랑한 가슴 사이에 제 뺨을 비비며 크리스는 눈을 감고 신음했다. 향기에 취할 것 같았다. 몸은 이리도 뜨거운데, 기분은 무척이나 편안했다.

마치 꿈을 꾸듯 행복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면서, 크리스는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단단한 성기를 아리스텔라의 허벅지에 문질렀다.

“ 아아! 성녀님, 너무 좋아요……. ”

“ 크리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싫어……. ”

“ 왜요? 제가 성녀님을 만족시켜드리지 못하기 때문인가요? ”

크리스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아리스텔라의 입가를 핥았다.

“ 기사들처럼 커다란 몸도 단단한 근육도 힘도 없어서, 제게는 은총을 내려주시지 않는 건가요? ”

“ 크리스, 으응……! ”

크리스가 아리스텔라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빨아들였다. 달콤하고 촉촉한 두 입술이 맞닿아 비벼졌다.

============================ 작품 후기 ============================

57화까지 연참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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