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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53] 산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신전의 성기사는 주인인 성녀를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임무에 충실하려면 주인에게 사심을 품으면 안 되었다. 지켜야 할 주인을 사랑하든 혹은 미워하든, 임무수행에 감정을 담아서 일이 잘 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케인이 아리스텔라 안의 여신에게 유혹당해 그녀를 안았을 때는 분명 자제력을 잃고 욕망을 따르고 말았지만, 그 행위에 감정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주인인 성녀가 성욕을 느껴 흥분했고, 그 또한 욕정하여 그녀를 안았다.
하지만 지금 아리스텔라는 흥분한 상태가 아니었다. 케인을 유혹한 것도 아니었다. 허락도 없이 주인의 몸에 손을 대고 입을 맞추는 것은 다시없을 무례한 행위다.
그런데도 케인은 주저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입술을 비비며 틈을 벌려, 그녀의 작은 입 속으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아리스텔라는 살짝 눈썹을 찡그렸을 뿐 저항은 하지 않았다.
“ 으응, 음……. ”
작은 신음소리를 들으니 불현듯 그녀를 욕실에서 안았을 때의 감촉이 떠올라 케인은 아리스텔라의 몸을 조금 더 제 품으로 끌어당겨, 각도를 바꾸어 입술을 겹쳤다. 더 깊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케인의 혀를, 아리스텔라는 머뭇거리다가 받아들였다.
작은 혀가 주저하며 케인의 혀를 피하다가 마지못해 허락하듯 혀끝을 톡톡 두드렸다. 케인은 아리스텔라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혀를 섞었다. 아리스텔라의 달콤한 체향이 짙어졌다.
“ 하, 으음……. ”
조금 숨이 막혔는지 아리스텔라가 케인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갑옷을 입지 않아도 케인의 몸은 갑주를 걸친 것처럼 단단했다. 얇은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한 근육의 감촉에 아리스텔라는 흠칫 놀라 손을 떼었다가, 다시 그의 가슴에 손을 짚었다.
“ 케인……. ”
“ 성녀님. ”
케인은 천천히 손을 내려 아리스텔라의 봉긋한 가슴을 쥐었다. 그녀의 몸이 움찔 떨렸으나 그의 손을 피하지는 않았다. 손바닥으로 감싸 천천히 주무르다가, 옷 너머로도 느껴지는 솟아오른 젖꼭지를 손끝으로 쥐고 잡아당기자 아리스텔라의 코끝에서 높은 신음이 샜다.
“ 으으응! ”
아리스텔라가 허리를 움찔거리면서 몸을 비틀었다. 케인은 그녀가 몸을 움직이는 것에 맞춰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쓰다듬었다. 아리스텔라는 감은 눈꺼풀을 올려 촉촉한 눈빛으로 케인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그의 가슴을 살며시 밀어냈다.
“ 케인, 잠깐……. ”
“ 죄, 죄송합니다. ”
그녀가 밀어내는 것을 거부의 의미로 생각한 케인은 다급하게 사과했다. 가슴을 매만지던 손이 어중간하게 공중에 뜬 채로 멈춰 버렸다. 붉어진 얼굴로 손을 멈춘 채 난감해하는 케인의 모습을 보고, 아리스텔라는 조금 당혹스러웠으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 나를 원하고 있는 걸까. ’
신전의 사제들은 신과 교감하면서 신의 영향을 받는다고 히페리온은 말했다. 본래 성기사들은 신과 교감할 수 없기에 미사에도 참석할 수 없었지만, 아리스텔라는 케인에게 직접 축복의 입맞춤을 내리면서 그와 교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내가 쉽게 욕구를 느끼고 참지 못하는 것처럼, 앞으로는 이 사람들도 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일지도 몰라. ’
여신 위그멘타르를 봉인한 성녀로 있는 이상, 아리스텔라는 주인으로서 그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성욕을 참지 못하고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하면서, 남자가 자신에게 욕구를 느낄 때 무책임하게 외면하는 것은 주인답지 못했다.
케인은 처음 그녀의 시종이 되었던 날, 욕실에서 흥분한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케인과 자신이 어떤 식으로 몸을 섞었는지, 아리스텔라는 기억하지 못했다.
“ 케인. 저기, 옷……. 벗겨 주시겠어요? ”
“ 예? ”
“ 저, 저는 스스로 옷을 벗을 수 없으니까요. ”
아리스텔라는 얼굴을 붉히며 케인의 손을 제 목깃으로 이끌었다. 성녀가 거절의 의사를 보였다고 생각해 얼어있던 케인은 그녀가 갑자기 옷을 벗겨달라고 요구하자 당황했다.
“ 성녀님? 어째서……. ”
“ 저도 케인을 알고 싶어요. ”
케인 쪽에서만 그녀의 흐트러지는 모습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아리스텔라를 불안하게 했다. 차라리 정신이 멀쩡한 채로 한 번 더 안긴다면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와 동일한 경험을 하여 기억을 일치시키면, 아리스텔라도 케인과 있었던 일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 한 번 더, 끝까지……. 해주세요. ”
눈을 내리깔며 부끄러운 듯 속삭이는 그 목소리에, 케인은 홀린 듯 그녀의 옷섶을 벌리고 드러난 앞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 하읏! 아……. ”
뜨거운 입술이 피부를 빨아들이고, 이어서 촉촉한 혀가 그녀의 살갗을 간질인다. 아리스텔라는 떨리는 한숨을 내쉬면서 케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손끝에 케인의 머리를 묶은 머리끈이 걸렸다.
아리스텔라는 그것을 잡아당겨 케인의 머리를 풀어버렸다. 사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금발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그녀가 케인의 머리끈을 푼 것과 동시에, 케인도 아리스텔라의 허리띠를 풀어버렸다. 그녀의 성의가 스르륵 바닥에 떨어지고 아리스텔라는 알몸이 되었다.
“ 아……. ”
케인에게 알몸을 보인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목욕을 하기 위해 옷을 벗었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제가 옷을 벗겨달라고 요구했음에도 부끄러워진 아리스텔라는 가슴을 가리며 한 발 물러났다.
정오 미사가 끝난 오후였다. 창문에서 쏟아지는 오후의 햇볕이 아리스텔라의 새하얀 몸을 비췄다.
“ 그, 저기……. 방이 너무 밝지 않아요? ”
“ 성녀님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
“ 네? 무슨 그런……, 꺄아! ”
케인이 아리스텔라의 어깨를 끌어당겨 침대에 눕혔다. 부드러운 시트가 등을 감싸고, 거칠고 단단한 남자의 손이 가슴을 매만졌다. 상반되는 감각에 아리스텔라는 당황해서 얼굴을 붉히며 신음했다. 거친 손가락이 제 민감한 곳을 만져주니 은근한 쾌감이 전신에 퍼졌다.
“ 하읏, 잠깐……. 케인, 그, 그때도……, 이런 식으로 관계를 했나요? ”
“ 아닙니다. 그때는 욕실 안이었으니까요. ”
욕실이니 침대 위니 그런 장소를 물은 것이 아닌데. 아리스텔라는 민망해서 얼굴을 가린 채로 몸을 움찔거렸다.
케인이 제 몸을 만지는 감촉은 익숙하면서도 생소했다. 로이드보다도 훨씬 거칠고 단단한 손인데, 마치 부서질 것처럼 애지중지하며 천천히 보듬어주는 손길이 그녀를 애타고 초조하게 했다.
“ 으응, 아! 케인……. ”
아리스텔라가 붉어져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부르는 것이 제 거친 손이 그녀의 여린 피부를 문질러 아프게 한 탓이라고 받아들인 케인은 손을 침대 위로 옮겨 그녀의 몸 위에 제 몸을 드리웠다. 커다란 침대 위에서, 가녀린 아리스텔라의 몸은 거구인 케인의 몸에 간단히 가려졌다.
“ 아……. ”
로이드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남자다. 양팔을 침대에 짚고 아리스텔라의 위에 엎드린 자세는 로이드가 그녀를 겁간할 때와 같은 자세였는데도, 이상하게 아리스텔라는 케인이 무섭지 않았다.
‘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기 때문일까. ’
아리스텔라는 살며시 손을 뻗어 케인의 어깨와 가슴을 만져보았다. 갑옷처럼 단단한 근육이지만, 때때로 움푹 파인 거친 무언가가 셔츠 너머로 느껴졌다.
“ 케인. 흉터가 있네요? ”
“ 예. 전장에서 오래 싸워온 몸인지라……. ”
가슴에서 배까지 가로지르는 커다란 자상과 이곳저곳에 입은 잔 상처의 흉터를 느끼고, 아리스텔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얼마나 아팠을까.
“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
“ 네? 아, 아니에요! ”
아리스텔라가 얼굴을 찡그린 것을 상처가 가득한 제 몸을 흉측하게 여긴 탓이라고 케인은 생각했다. 흉터가 가득한 몸은 확실히 겁이 많고 온순한 성녀에게 보일만한 것이 아니었다. 케인은 아리스텔라의 몸을 뒤로 돌려, 가느다란 목과 동그란 어깨에 입을 맞췄다.
“ 앗! ”
“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성녀님. ”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케인이 옷을 벗고 있는 것일까. 아리스텔라는 달아오르는 얼굴을 침대 시트에 묻으며 눈을 감았다. 어쩌면 케인은 흉터가 있는 몸을 아리스텔라에게 보이기 싫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상처가 얼마나 나 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케인이 보여주기 싫어하는데 곁눈질해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그의 마음을 존중하고 싶었던 아리스텔라는 가만히 엎드린 채로 눈을 감고 기다렸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몸을 겹쳤다.
“ 성녀님. ”
알몸이 된 케인이 그녀를 부르며 그대로 드러난 등뼈를 따라 입맞춤을 이어갔다.
“ 앗, 아으! ”
아리스텔라는 케인의 팔에 안겨 등줄기를 자극당해 신음했다. 단단하고 뜨거운 남자의 피부가 매끈한 여자의 피부에 닿아 미끄러졌다.
“ 아아, 케인……! ”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십 수 년을 구른 용맹한 기사가 이 신전에 갇혀, 싸움도 할 줄 모르는 그녀의 곁을 지킨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부끄럽고 떨리긴 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비록 케인과 관계했을 때의 경험은 없지만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지금이라면 케인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등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 입술이 엉덩이에 닿았을 때는,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 꺄아! ”
아리스텔라의 희고 부드러운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이 그것을 양쪽으로 잡아 벌렸다. 그 사이를 촉촉한 혀가 미끄러져 내리자, 아리스텔라는 헉 하고 숨을 삼키며 바르르 떨었다.
“ 하으, 앙! 케인, 지금, 뭘……! ”
“ 기분 좋게 해드리겠습니다. ”
“ 꺄아! 거긴, 안……! 아, 아앙! ”
촉촉한 혀가 애널 입구를 자극하자 아리스텔라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달달 떨었다. 그 부위를 애무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람의 혀가 닿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촉촉한 혀가 닿고 부드럽게 훑어 올리자, 아리스텔라의 교성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높아져만 갔다.
“ 아앙! 아아앙! 안 돼……! ”
아리스텔라는 민망하고 어색해서 몸을 파닥거렸으나 케인은 그녀의 엉덩이를 꽉 쥐고 놓지 않았다. 아리스텔라의 하얀 엉덩이와 허벅지에 커다란 손자국이 났다.
“ 아으응, 아흐! 케인, 케인! 제발……! ”
아리스텔라는 뜨거운 숨을 토하면서 본능적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그것은 낯선 쾌락에 함락되어가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눈앞이 흐려지면서, 머릿속이 흐믈흐믈하게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53화와 54화 2화 연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