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46화 (4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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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야 하는 마음

[46]

아리스텔라의 몸은 부드럽고 향기로웠다. 처음 위그멘타르와 관계를 맺었을 때는 히페리온도 처음이라 당황해서 그녀의 몸을 찬찬히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 위그멘타르가 아닌 ’ 아리스텔라는 무척 얌전했다. 그가 몸을 쓰다듬고 등줄기에 입을 맞춰도 작게 신음하며 몸을 움찔거릴 뿐, 위그멘타르가 그랬던 것처럼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흔들지는 않았다.

성교에 서투른 히페리온으로서는 아리스텔라의 반응이 한결 집중하기 편했다.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를 바로 눕히고, 그녀의 가녀린 몸 위에 제 몸을 드리웠다. 히페리온의 긴 머리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 아……. ”

조슈아의 머리카락은 사락사락 부드러웠는데, 히페리온의 머리카락은 찰랑찰랑 매끄러웠다. 아리스텔라는 무심코 그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고 손끝으로 매만졌다.

‘ 사제들은 검소한 생활을 하니까 따로 머리카락을 관리하지도 않을 텐데, 대신관님의 머릿결은 타고난 걸까. ’

그런 쓸데없는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리스텔라가 멍하니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는 것을 지루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한 히페리온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쇄골에 입을 맞췄다.

“ 으응……! ”

쇄골에서 가슴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입술의 움직임에 머릿속에 떠오르던 의문이 날아가 버렸다. 아리스텔라는 무심코 히페리온의 머리를 끌어안으려다, 흠칫 놀라 손을 거두고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히페리온의 입술이 봉긋한 가슴 위를 더듬어 올라가 붉은 젖꼭지를 머금었다. 따뜻하고 촉촉한 입술에 민감한 부분을 감싸이자 가슴에서 심장을 타고 찌르르한 감각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 앗, 대신관님……. ”

그저 가슴을 핥아주는 것뿐인데도 날아오를 듯 기분이 좋았다. 아리스텔라는 눈을 감고 쾌감에 집중했다.

“ 앗, 아……. ”

눈을 감고 신음하는 아리스텔라의 가슴에 입을 맞추던 히페리온은 살며시 몸을 일으켜 그녀를 불렀다.

“ 성녀님. ”

“ 으응……, 네……. ”

“ 성녀님. 눈을 뜨십시오. ”

히페리온의 말에 감겨진 눈꺼풀이 올라가고, 긴 속눈썹 아래 감춰져 있던 보랏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물기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정욕과 쾌감의 빛이 어려 있었으나 무척 맑았다.

“ 눈을 뜨시고, 저를 바라보십시오. ”

“ 네? 하지만……. ”

남자와 몸을 겹치고 성교하는 것도 부끄러운데 눈을 마주치라니, 아리스텔라는 민망해서 히페리온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의 옆구리를 살며시 쓸어내리며 그녀의 가슴에서부터 배까지 천천히 입맞춤을 이어 나갔다.

“ 성녀님께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해하시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욕구를 부끄럽다고 생각하여 피하려 하지는 마십시오. ”

아리스텔라가 그녀 안의 여신 위그멘타르를 통제하지 못하고 이성을 잃고 그녀에게 몸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은, 그녀가 제 안의 음란한 욕망을 인정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욕구만 충족한다면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다는 위그멘타르와는 달리, 아리스텔라는 자신이 모르는 남자에게 안기며 쾌감을 느끼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리스텔라가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를 친숙하게 여긴다면, 그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정신이 날아가 음욕의 여신의 지배를 받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 성녀님. 지금 당신을 안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

“ 히페리온 대신관님……. ”

“ 예. 당신의 종, 히페리온입니다. ”

히페리온과 처음 몸을 섞었을 때의 기억이 없는 아리스텔라로서는 이것이 그와의 첫 성교일 것이다.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가 자신을 ‘ 낯선 남자 ’로 인식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와의 섹스를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비록 두 사람이 몸을 섞는 행위가 사랑으로 인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만은 보고 싶지 않았다.

“ 좋아하는 곳이 있으신지요? ”

“ 네……? ”

“ 어디를 어떻게 해 주었으면 한다거나,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봉사하겠습니다. ”

“ 아니, 그, 그런……! ”

아리스텔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대신관인 히페리온과 몸을 겹치고 있는 것도 부끄러운데, 어디를 어떻게 애무해달라는 주문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리스텔라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 그, 그런 부끄러운 말씀 하지 마세요……. ”

“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종이 주인을 섬기는 일에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요. ”

성녀는 여신의 현신. 사제는 그 여신을 섬기는 존재.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를 주인으로, 자신을 종으로 부르는 데에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으나 아리스텔라는 그것이 불편하고 민망했다.

어떻게 보아도 고위 사제인 히페리온이 시골 처녀인 아리스텔라보다 신분도 지위도 높을 터인데, 자신에게 말을 높이고 정중히 대하는 것이 그녀는 어색하기만 했다.

“ 그……, 종……이라는 표현은, 그만 하시면 안 될까요? ”

“ 예? ”

종이 주인을 섬기기 위해 본분을 다한다. 사제인 그로서는 그것이 마땅한 역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리스텔라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남자와 몸을 섞고 있는데, 그것이 서로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에게 복종해야 하기에 봉사하는 것은 아리스텔라의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 히페리온 대신관님, 저는……. 저는, 사랑이 없는 관계는, 싫어요……. ”

성령석이 반응할 당시에는 순결한 처녀였으나, 아리스텔라는 더 이상 숫처녀가 아니었다. 그러나 성녀인 그녀로서는 남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니 아이를 만들기 위한 섹스는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서로 사랑하여 몸을 섞는 연인들처럼 섹스하고 싶었다. 짐승처럼 욕구를 참지 못해 아무 남자에게나 다리를 벌리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섞고 싶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 진심이 아니라도, 흉내라도 좋아요……. 종이 주인에게 하는 봉사가 아니라, 연인처럼……. ”

아리스텔라는 제가 누구를 상대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자각이 없었다. 그저 솔직한 심정을 말할 뿐이었다. 히페리온은 이 신전의 대신관이고, 그녀와 친밀한 관계도 아니었다. 당연히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리스텔라가 성녀로서, 여신의 현신으로서 그녀를 섬기는 종에게 단 한 가지 명령을 내린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연인처럼, 사랑을 나누고 싶어요……. ”

음욕에 지배당한 아리스텔라의 몸은 누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더라도 쾌감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아리스텔라 자신의 의지로 억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독한 쾌락의 끝에 남는 것은 자기혐오뿐이었다.

조슈아와 첫 관계를 맺었을 때는 무척 혼란스러웠어도 비참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조슈아는 친절하고 다정했으며, 행위가 끝난 뒤에도 곧바로 멀어지지 않고 그녀를 끌어안고 다독여 주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음에도 비참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두 번째 조슈아와 관계를 가졌을 때는, 분명 밤새 흥분감에 허덕이다가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달려갔기에 이성을 잃었던 거겠지.

사제가 의식을 치를 때 몸을 정화하는 욕실에서 조슈아에게 봉사를 받았던 세 번째 관계에서는 이성이 날아가지도, 기억을 잃지도 않았다.

“ 제가 거부감을 가지지 않으면, 정신을 잃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

크리스와 관계할 때나 그 젊은 기사와 관계할 때 아리스텔라는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던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이 주는 쾌감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다가 그만 정신을 빼앗긴 것이 아닐까, 아리스텔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로이드에게 강제로 안길 때는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째서 이성이 날아가지 않았는지 알 수 없으나, 아리스텔라로서는 자신이 이성을 유지하면서 성욕을 해소하려면 먼저 자신과 몸을 섞는 남자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리스텔라를 안는 것이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여야 했다.

“ 무리한 부탁인 건 알아요. 히페리온 대신관님은, 사제니까……, 신에게 몸과 마음을 바치기로 맹세한 분이니까.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

흉내라도 좋다. 적어도 섹스하는 그 순간만큼은 연인처럼 다정하게 안아준다면, 아리스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 성녀님. ”

히페리온은 살며시 그녀의 몸을 옆으로 뉘여, 끌어안았다. 그의 품안에 쏙 들어올 만큼 아리스텔라의 몸은 가녀리고 부드러웠다. 이 향기로운 몸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신전 안에서는. 히페리온은 그렇게 확신했다.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와 조슈아가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솔직히 질투했다. 그녀의 욕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겨우 한 번 몸을 섞었음에도 그런 집착과 탐욕이 생겼다. 그런데 사랑이라니.

아리스텔라를 사랑하게 되어버린다면, 자신은 그녀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다른 남자와 살을 섞는 것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사제로서 물욕과 집착을 버린다 해도 히페리온은 사람이었고 남자였다. 제가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와 공유하는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신의 종으로 살기로 맹세했을 때는, 그와 마찬가지로 신을 섬기는 다른 사제들이 있는 것을 질투하지 않았다. 히페리온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모두 신에게 바쳤으나 신은 히페리온 한 사람에게만 은총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제에게도 똑같이 나누어주었다. 히페리온은 그것을 시기하지 않았다. 주인인 신이 여러 명의 종을 부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러나 아리스텔라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고 쾌락에 들떠 신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질투심이 생긴다. 이것을 대체 어쩌면 좋을까.

“ 성녀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

고지식하고 성실한 여신의 종은, 그녀 앞에서 또다시 거짓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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