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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과 순수
[25]
벽의 장식과 천장의 그림을 구경하고 있던 아리스텔라는, 누군가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다.
반짝이는 금발에 붉은 눈. 크리스였다.
‘ 크리스. 다리는 다 나은 걸까? ’
안 그래도 걱정했는데, 잘 만났다 싶어 아리스텔라는 반가운 얼굴로 크리스에게 인사했다.
“ 크리스, 다리는 괜찮아요? 많이 혼났다면서요. ”
“ 성녀님……. ”
크리스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상태를 살피려 한 발짝 다가가자, 크리스는 아리스텔라를 잡아끌어 빈 방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 저기, 크리스? ”
그녀를 방안에 밀어 넣고 크리스가 안으로 들어온 뒤 문을 닫았다. 두터운 문이 닫히자, 안이 어두워졌다.
“ 크리스? 왜 그래요? ”
“ 죄송합니다, 성녀님……. 오늘 하루만, 이곳에 있어주세요. ”
“ 네? 저는 저녁 미사에 참석해야 하는데요. ”
아리스텔라는 당혹스러웠다. 아무래도 크리스는 자신을 이곳에 가둘 셈인 듯했다.
또 실수하지 않도록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는 건가? 하지만 지금은 케인도 없는데, 이곳에 갇혀 있으면 케인이 자신을 찾으러 다닐 것이다. 아리스텔라는 케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 으음, 혹시 제가 미사에 참석하면 안 되는 거라면, 케인이 돌아오는 대로 방으로 돌아갈게요. ”
“ 아, 안 됩니다! ”
아리스텔라가 문가로 발을 옮기려 하자, 크리스가 가로막았다.
“ 성녀님. 제발 오늘 하루만 여기 이대로 있어주세요.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 하지만 케인이 걱정할 거예요. 제가 사라졌다는 걸 알면 문책을 피하지 못할 거고……. ”
어둡긴 하지만 이곳이 신전이기 때문인가, 완전히 깜깜하지는 않았다.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신전의 공기 덕분에 아리스텔라는 크리스의 표정을 살필 수 있었다.
“ 대신관님께서 성기사를 성녀님의 시종으로 삼은 일로, 사제들이 항의하고 있습니다. ”
“ 네? ”
“ 본래 성녀님의 시종은 사제가 맡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기사가 시종을 맡은 일은 전대미문이지요. 이번 일로 케인 부단장이 시종에서 물러나면, 다시 다른 사제가 성녀님의 시종을 맡게 될 겁니다. ”
확실히 건장한 기사가 시종을 맡는 일은 불편하긴 하지만, 케인은 최대한 자신을 보필하려고 애썼다.
무엇보다 크리스에서 케인으로 시종이 바뀐 지 아직 반나절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 시종이 바뀐다니. 자신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계속해서 휙휙 바뀌는 것은 싫었다.
“ 대신관님이 직접 맡기신 거잖아요. 케인이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시종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어요. ”
“ 기사가 성녀님의 시종이 될 이유가 애초에 없습니다. ”
사제와 기사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아리스텔라는 몰랐다. 수습 사제라고는 해도 사제이기 때문인가, 크리스는 기사를 꺼려했다. 신전의 경비는 골렘이 서고 있는데 왜 기사단이 필요한지 의문이었다. 거기에다 성녀의 시종까지 맡는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대신관 히페리온이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내보내 주세요, 크리스. 사제 분들께는 제가 직접 말씀드릴게요. ”
“ 성녀님……. ”
“ 저는 시종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
아리스텔라의 대답에 크리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제까지는 여자인 그녀를 어려워하긴 했어도 온순한 태도를 보였는데, 지금의 그는 눈빛이 다르다.
“ 케인이……, 기사가, 그렇게 좋아요? ”
“ 네? ”
“ 그렇겠죠. 기사니까, 몸도 크고……, 그……, 굉장할 거고……. ”
크리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 어젯밤 절 찾아오셨을 때는, 정말 놀랐는데……, 그러네요. 그게 처음이셨을 리는 없겠죠. ”
“ 크리스……? ”
“ 성녀님을 모셔온 것은 기사단장님이었죠? 그래서 기사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 ”
불안하게 떨리면서도 끈적하게 들러붙는 시선에 아리스텔라는 오싹한 기분이 들어 뒤로 물러났다. 크리스가 그녀에게로 한발 가까워졌다. 멀어졌던 두 사람의 거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 사제를 타락시켜서 내쫓으라고, 기사단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던가요? ”
“ 저기,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가서 이야기해요. ”
“ 기사들한테, 힘으로 우리 사제들을 제압하게 하시려고요? 기사들은 성녀님 편이니까? ”
“ 그럴 리가 없잖아요! ”
“ 저, 저한테 그런 일을 하셔놓고……! ”
크리스가 분노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 때문에 다친 일을 말하는 걸까? 조슈아에게 혼이 났다고 들었는데, 설마 가혹한 처벌을 받은 건가? 정식 사제가 되는 길이 막혔다거나 하는 거면 어쩌지. 대신관 히페리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할까. 아리스텔라는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상냥한 음성으로 크리스를 불렀다.
“ 미안해요, 크리스. 나 때문에 당신이 피해를 입었으니, 어떻게든 보상해드릴게요. 그러니까……. ”
“ 정말이죠? ”
크리스가 더운 숨을 내쉬면서 아리스텔라를 끌어안았다.
“ 크, 크리스? ”
“ 저는 성녀님을 원해요. ”
아리스텔라는 크리스를 남동생 같은 소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몸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것은 남자의 팔이었다. 다른 사제들에 비하면 작은 키지만 그래도 크리스는 아리스텔라보다 한 뼘이 컸다. 마른 것 같아도 그의 품은 사랑하는 여자를 품기에 충분했다.
“ 좋은 향기가 나요……. ”
“ 크, 크리스……, 하읏! ”
등을 쓰다듬던 크리스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얇은 성의에 덮인 엉덩이를 쓰다듬으면서, 가느다란 목에 얼굴을 묻었다.
“ 앗, 크리스, 잠깐……. ”
“ 따뜻하고, 부드럽고……, 여자의 몸은 원래 이런 건가요? ”
크리스는 아리스텔라의 옷섶을 물고 빨아들였다. 그녀의 달콤한 체향을 맡으니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 하응, 그만……! 손 떼세요! ”
“ 왜, 왜 밀어내시는 거예요? 어제는 해주셨잖아요. ”
“ 하, 하다니 뭐를……. ”
“ 또 함께 해요, 성녀님. 그 기분 좋은 일. ”
이 신전에 들어오기 전까지, 아리스텔라는 남자를 모르는 여자였고 크리스는 여자를 모르는 남자였다. 아리스텔라와 크리스의 차이는 두 사람이 몸을 섞는 날부터 발생했다.
성녀는 이 신전의 유일한 절대자이며 사제와 기사들의 숭배를 받는 대상이었다. 아리스텔라를 따르는 것은 이 신전의 모든 남자들이었고, 크리스가 섬겨야 할 대상은 오직 아리스텔라 하나뿐이었다.
크리스에게 아리스텔라는 첫사랑이 아니다. 유일한 사랑이었다.
사제들 틈에서 자라 성년이 되어도 여전히 마음은 순수한 소년이었던 그를 남자로 만든 것은 그녀의 모습을 한 여신 위그멘타르였다. 여신과 성녀가 다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크리스는 그날 밤의 강렬한 첫경험 이후로 온종일 머릿속에서 그녀의 음란한 모습과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떠나지 않아 괴로워했다. 그녀를 욕망하는 자신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성서는 사제가 지켜야 할 계율과 욕망을 억누르는 방법은 가르쳐 주었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게 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 더, 더 가르쳐 주세요, 성녀님. 제가 무엇을 하면 되나요? ”
“ 크리스, 지금 무슨 말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제발……! ”
“ 저 혼자만 기분 좋아지면 안 되잖아요. 이, 이번에는 기절하지 않을게요. ”
“ 크리스……! ”
“ 당신의, 종에게……. 은총을……. ”
크리스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아리스텔라의 몸을 매만졌다. 사제의 계율을 어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녀와 함께라면 어떤 죄를 범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 기분 좋아요, 성녀님……. 흐으, 여기도 이렇게……. ”
크리스의 손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얇은 성의 너머로 음부를 문지르자, 아리스텔라는 헉 하고 숨을 삼키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 여기, 를……, 이렇게 만져 주면, 좋아하셨죠……? 분명……. ”
“ 핫, 하으응……! 그만, 싫어……! ”
크리스가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인지 아리스텔라는 알 수가 없었다. 크리스에게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식으로 자신을 벌주려는 걸까?
크리스를 밀어내려 했지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싫다면서 몸부림치고 얼른 도망가야 하는데, 다리 사이는 속절없이 젖어들기만 했다.
“ 서, 성녀님……, 허억……. ”
“ 그만……! 앗, 응! ”
집요한 애무에 다리가 점점 벌어진다. 귓가에 닿는 남자의 숨이 뜨거웠다. 음부를 쓰다듬는 손길이 점점 거칠어지면서, 아랫배에 뭔가 뭉툭한 것이 닿았다.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아리스텔라의 몸이 움찔 굳었다.
아리스텔라는 성녀다. 사제와 성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시종이었던 크리스가 그녀에게 욕정하며 달려드는 것이 무서운 한편, 아랫배에 닿는 묵직한 것이 제 안으로 들어오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하는 생각에 기쁨으로 몸이 떨렸다.
두려워하는 이성과 흥분하는 본능이 머릿속에서 서로 싸우며 날뛰자 그녀는 현기증을 느꼈다.
자극에 약한 그녀의 의식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여신 위그멘타르가 아리스텔라의 의식을 제 밑으로 깔아 누르며 뛰쳐나왔다.
“ 아! 흣, 앙! 옷, 벗겨줘, 빨리! ”
“ 흐읏, 성녀님……? ”
“ 빨리 벗겨줘. 하자, 우리. 응? ”
위그멘타르는 요염하게 웃으면서 발끝을 들어 높이를 맞춘 뒤 제 성기를 크리스의 성기에 문질렀다.
“ 흐윽! ”
얇은 성의 너머로 부드러운 여자의 성기와 단단한 남자의 성기가 문질러지자 크리스는 높게 신음하며 몸을 떨었다. 여자의, 아니, 성녀의 몸은 어째서 이토록 기분이 좋은 건가.
크리스는 헉헉 더운 숨을 몰아쉬며 성녀의 옷을 벗기고 제 옷도 벗어버렸다.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버린 남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성기를 비비면서 헐떡거렸다.
“ 아, 읏! 성녀님……! 기분 좋아요……! ”
“ 후후, 그렇게 좋으니? 나도 좋아. ”
“ 읏, 으……! 마, 만져 주시면, 안 돼요? 어제처럼……. ”
부드러운 음부에 비벼지는 것도 기분 좋지만, 역시 그녀가 손으로 만져줄 때처럼 섬세한 자극은 오지 않았다. 크리스가 촉촉한 눈으로 애원하자 위그멘타르는 생긋 웃어보이고는 그의 성기로 손을 뻗어 부드럽게 감아쥐었다.
“ 흐윽! ”
“ 어머, 어제보다 더 커졌네? ”
위그멘타르는 크리스의 성기를 양손으로 감싸 천천히 쓰다듬었다.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렸다가 손끝으로 귀두를 쿡쿡 눌러 자극했다. 능숙한 손놀림에 크리스가 신음하며 허리를 떨었다. 한껏 부풀어 오른 성기는 벌써 흰 정념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 아아, 성녀님……! ”
이대로 가게 해줄까, 아니면 조금 더 괴롭힐까. 위그멘타르가 생글생글 웃으며 귀두 밑을 살살 긁으며 자극하자, 크리스가 긁힌 듯한 신음을 내며 여신의 손목을 붙잡았다.
“ 으응? 뭐니? 아직 안 끝났어. ”
“ 너, 넣어도 되나요……? ”
솔직한 욕망을 담은 크리스의 질문에 위그멘타르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욕망을 모르는 순진한 청년을 길들이는 가장 큰 재미가 여기에 있다.
비틀린 정욕이나 주도권을 잡고 싶어 하는 쓸데없는 허세가 아닌, 그저 쾌락을 얻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
음욕의 여신이라고는 하나 그녀도 신이었다. 거짓이나 잘난 체보다는 솔직하고 순수한 것을 좋아했다.
“ 좋아. 대신─ ”
기분이 좋아진 여신 위그멘타르는 크리스의 성기에 제 음부를 문지르며 음란한 미소를 지었다.
“ 날 만족시켜줘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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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부터 27화까지 3화 연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