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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비밀
[14] 밤의 비밀
해가 떨어지고 달이 떴다. 청량한 달빛이 창문으로 스며들어 복도를 파랗게 비췄다. 신전 안의 청정한 공기와 더불어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와, 아리스텔라는 살짝 어깨를 감싸고 몸을 떨었다.
“ 성녀님. 추우신가요? ”
“ 아뇨, 괜찮아요. ”
신전 안은 신성력으로 가득 차 있다. 분명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도 겸하고 있을 것이다.
이곳의 온도가 원래 약간 낮은 것은 대신관의 지시 때문이라고 크리스는 말했다. 기온이 너무 따스하면 마음이 풀어지기 쉬워서, 사제로서 정신이 해이해지는 것을 경계해 바람을 맞으면 딱 정신이 들 정도의 시원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 히페리온 대신관님은 굉장히 철저하신 분 같아요. ”
“ 예. 그분은 처음 수도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계율을 어긴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를 올리고 청소를 하고 성서를 읽고. 금욕과 절제로 이루어진 사제의 삶은 얼마나 고될까.
크리스는 습관이 되면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말했지만 아리스텔라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자신은 그렇게 자로 잰 듯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 대미사 준비로 반나절을 굶는 것도 힘들어 했는걸요. 저는 욕망에 약한 인간인가 봐요. ”
“ 차차 나아지실 거예요. ”
배고픔은 핑계였고 사실은 정욕에 불타 이성을 잃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으나, 사정을 모르는 크리스는 아리스텔라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그녀를 위로했다.
‘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
분명 아리스텔라는 성녀가 되기 전까지 성적인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일부러 정절을 지킨 것은 아니지만, 집을 나간 아버지 대신 혼자서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던 아리스텔라는 먹고사는 일에 바빠 연애는 꿈도 꾸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에는 이웃으로부터 나이가 찼으니 적당히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리스텔라는 동생이 어른이 되기 전까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남자가 재물을 싸들고 와 아리스텔라의 집에 살면서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남동생을 돌본다면 모를까, 두 사람을 내버려두고 자신이 출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신탁이 아리스텔라를 17대 성녀로 임명한 덕분에, 신전으로부터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평생 풍족하게 지낼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다.
‘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 내 인생에 걱정거리는 없을 줄 알았는데. ’
큰 산을 넘었다 싶었는데, 더 큰 산이 나타난다. 욕구를 절제해야 하는 신전에서 과연 성녀로서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 어째서 신탁은 나를 가리켰을까. ’
평범한 여자를, 아니, 이토록 욕망에 약한 여자를 어째서 성녀로 삼았을까. 아리스텔라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이 몸 안에 여신 위그멘타르가 잠들어 있다.
아리스텔라가 성욕을 참지 못해 신관과 부정을 저지르는 더러운 여인이라 여겨 여신이 벌을 내리지 않을까 조금 무서워졌다.
“ 성녀님, 왜 그러세요? 아까부터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
“ 아……. ”
생각에 빠져 있느라 크리스가 말을 건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무시했던 것 같다.
“ 미안해요, 크리스. 조금 생각할 것이 있어서……. 여기는 어디쯤인가요? ”
“ 북쪽 탑으로 이어지는 회랑이에요. 저쪽 창 너머로 보이는 곳이 도서관이고요, 반대편에는 기사들의 연무장이 있어요. ”
“ 그렇군요. ”
크리스의 안내를 받으며 달빛이 비치는 복도를 걷던 아리스텔라는 문득 위화감을 눈치채고 멈춰 섰다.
“ 크리스. 이 문은 뭔가요? ”
아리스텔라는 복도의 모퉁이에 있는 낡은 문을 가리켰다.
“ 네? 어라……. 이런 곳에 방이 있었나? ”
여신 위그멘타르의 신전은 성녀가 평생을 지내야 하는 폐쇄된 공간인 만큼 무척 넓었고, 사제와 기사는 기본적으로 거주지와 활동 구역이 달랐다. 그래서 사제도 기사도 신전 내부 구조를 전부 알고 있지는 못했다.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다가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는 아리스텔라를 위해 크리스는 대충 지도로만 접했던 길로 안내하는 중이었다.
이런 곳에 방이 있다는 건, 그도 금시초문이었다.
“ 창고 같은 걸까요? ”
“ 한 번 열어보겠습니다. ”
신전 내부는 신성마법사들이 만든 골렘이 관리하고 있었고, 몇 겹이나 되는 결계로 엄중하게 보호받고 있었기에 도둑이나 강도가 숨어들 수 없었다.
위험한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완벽하게 믿고 있는 크리스는 수상하게 보이는 문을 여는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덜컹.
문을 열어본 크리스는 깜짝 놀랐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방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이어지는 통로였다.
“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네요. ”
“ 여기가 1층입니다만……. ”
“ 그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인가 보죠. ”
신전에는 지하가 없었다. 아니,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도에는 없었다. 사제의 기도실도 기사들의 숙소도 주방도 미사실도 전부 지상에 있었다.
그렇다면 지하에는 무엇이 있을까.
“ 내려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
“ 크리스? 같이 가요! ”
크리스는 이 신전이 완전히 안전한 곳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숨겨진 지하라고 해봐야 골렘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이나 잡동사니를 쌓아놓은 곳 아닐까. 어쩌면 신전의 결계를 유지하는 마법진을 둔 것일 수도 있고. 골렘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결계를 생성하는 마법을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한 번쯤 구경해보고 싶기는 했다.
크리스는 아리스텔라가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어두운 계단을 등불로 밝히면서, 그녀를 아래로 안내했다.
“ 크리스, 조심해요……. ”
“ 저는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계단이 꽤 긴 것 같으니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천천히 내려오세요. ”
크리스는 아리스텔라를 향해 생긋 웃어보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크리스는 지하에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이 동했고, 아리스텔라는 어두운 지하로 뻗은 계단에 홀로 남겨지는 것이 무서워서 서둘러 크리스를 따라 내려갔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지상으로 이어지는 문에서 들어오는 달빛이 점처럼 작게 보인다고 생각할 즈음,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촤악!
돌연 검붉은 무언가가 튀어나와서 아리스텔라의 허리에 휘감겼다.
“ 꺄악! ”
“ 성녀님! ”
마치 뱀 같기도 하고, 문어나 낙지의 긴 다리 같기도 한 괴상한 그것은 아리스텔라의 몸에 제 다리를 칭칭 감고 지하로 이끌었다. 크리스가 다급하게 그녀를 쫓아갔지만 그만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 우왓! ”
“ 크리스! ”
우당탕!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크리스는 욱신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서 아리스텔라를 쫓아갔다.
“ 성녀님! 제 손을 잡으세요! ”
“ 크리스, 오면 위험, ……꺄아! ”
아리스텔라의 허리에 감긴 굵은 촉수가 그녀의 몸을 위로 들어 올리더니, 밑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촉수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크리스의 접근을 막았다.
“ 크리스……! ”
“ 성녀님! ”
숨이 막힐 정도로 허리를 꽉 조르는 검붉은 촉수는 크리스의 시야로부터 아리스텔라의 모습을 감추듯 그녀의 몸을 제 안으로 이끌어 집어삼켰다.
“ 꺄악! 이게 뭐야, 싫……흡! ”
괴물의 몸 안에는 미끌미끌한 촉수가 가득했다. 크기와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그것들은 천천히 꿈틀거리며 아리스텔라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시, 싫어! 저리 가! ”
아리스텔라는 비명을 지르며 저를 향해 다가오는 촉수를 뿌리쳤다. 하지만 촉수에게 말이 통할 리도 없고, 마법도 검술도 쓸 줄 모르는 여자의 힘으로는 질척질척한 액체를 뿜으며 자신의 다리에 감겨오는 촉수를 떼어낼 수도 없었다.
가느다란 촉수가 아리스텔라의 옷섶을 벌리고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제 가슴 위를 기어 다니는 촉수의 소름끼치는 감촉에 아리스텔라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 싫어! 싫어어어……. ”
분명 크리스는 아리스텔라가 입은 성의가 신성력으로 지어진 옷이라, 남자가 벗기지 않으면 벗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설마 그 < 남자 >라는 것이 인간이 아닌 수컷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일까.
아리스텔라는 제 가슴에 미끌미끌한 몸통을 비벼대는 촉수의 불쾌한 움직임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신음했다.
“ 안돼, 아응……! ”
굵은 촉수가 그녀의 가는 발목을 감아 위로 들어 올렸다. 그 바람에 발목까지 덮고 있던 성의가 주륵 흘러내려 하얀 맨다리가 드러났다. 검붉은 촉수들은 하얗고 매끈한 성녀의 다리에 제 몸을 비벼대며 달콤한 향기가 나는 다리 사이의 은밀한 곳을 향해 기어 내려갔다.
“ 아, 아앙! ”
음부에 뭔가 후끈한 바람이 닿더니, 굵고 촉촉한 것이 그녀의 다리 사이에 파고들어 제 몸을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음모로 덮인 보드라운 살에 몸통을 비비던 촉수가 음부의 갈라진 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촉수가 점액질을 토해내며 그녀의 여린 꽃잎을 마구잡이로 문질러대자 아리스텔라는 참지 못하고 교성을 질렀다.
“ 흐아아앙! ”
굵은 촉수에서 뻗어 나온 가는 촉수다발이 그녀의 성기 주변을 간지럽히며 클리토리스를 자극했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 없이 꼭 닫혀있던 좁은 입구에서 뜨거운 애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촉수는 굶주린 짐승처럼 그녀의 애액을 빨아들였다.
“ 히익, 싫어……아아앙……! ”
“ 성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