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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사
[10]
아리스텔라와 아론이 미사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일반 사제와 수습사제들이 열을 맞추어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기사단의 성기사들은 미사실 밖에서 미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로이드도 문 밖에 있을까. 저가 제일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리스텔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뒷줄에 서 있는 크리스가 보인다.
‘ 어젯밤에는 미사 준비를 크리스가 돕겠다고 했는데, 왜 아론이 왔을까. ’
아리스텔라는 궁금했으나 물어볼 상황이 아닌지라 흘긋 시선을 돌려 아론의 눈치를 보았다.
간밤의 정사로 생각을 바꾼 히페리온이 수습사제인 크리스가 성녀의 색향에 홀려 자칫 실수할 것을 염려해 믿을 수 있는 아론을 대신 보낸 것이었으나, 아리스텔라는 그런 뒷사정을 모르므로 속으로 의문만 삼켰다.
“ 성녀님께서는 이곳에 서 계시면 됩니다. ”
“ 네. 알겠어요. ”
자꾸 두리번거리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아리스텔라는 고개를 들고 제단을 바라보았다. 제주를 받아 올리려던 히페리온과 시선이 마주치자, 아리스텔라는 살짝 눈을 내리깔며 눈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히페리온은 답하지 않고 휙 고개를 돌려버렸다.
‘ 미사 준비 중에는 눈인사를 하는 것도 실례인가 봐. 실수하지 않도록 얌전히 있어야지. ’
아론이 히페리온의 옆으로 가서 뭐라 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였지만 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아리스텔라의 뒤에는 두 명의 사제가 그녀를 보좌하듯 나란히 서 있었다.
“ 성녀님. 앞을 보세요. ”
“ 네, 네! ”
아리스텔라의 뒤에 서 있던 붉은 머리의 평사제 노엘이 작은 소리로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리스텔라는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노엘은 그녀의 뒤에 서서 가만히 성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처음 성녀를 맞이하러 나갔을 때는 계속 히페리온과 아론의 뒤만 따르느라 성녀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성녀의 시종이 되었다며 죽을상을 하고서 사제들의 방을 떠난 크리스가 상기된 얼굴로 돌아와 성녀에 대한 칭찬을 하는 것을 보고 노엘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 성녀님의 미사 준비를 아론 신관님이 맡게 되었다는 통지가 나왔을 때, 크리스가 무척 서운해 했지. ’
분명 아리스텔라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그녀는 평범한 소녀 같았다. 수습사제 시절 지도사제 몰래 돌려본 속세의 잡지에 그려진 화려하고 아찔한 노출을 한 여배우를 보며 여자를 배웠던 노엘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화장기도 없고 가슴이 큰 것도 아닌데, 순진하고 청초한 인상의 아리스텔라의 어느 부분에 크리스가 반했다는 건지.
‘ 크리스 녀석은 아직 어리니까, 여자를 몰라서 그런 걸 거야. ’
정작 여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노엘 자신이라는 것을 모른 채, 노엘은 아리스텔라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돌려 제단을 바라보았다.
성녀의 탄생을 맞이하는 대미사가 시작되었다.
제단 중앙에 마련된 성령석을 통해 다른 신전에 중계되는 대미사는, 대외적으로 성녀가 여신의 현신임을 공표하는 중대행사였다. 청정하고도 엄숙한 공기가 미사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것은 사제들이 발하는 신성력이면서, 동시에 여신 위그멘타르를 성녀의 안에 가두는 강제력이기도 했다.
‘ 으응……? ’
허리와 다리 사이가 아픈 것을 참아가며 최대한 표정을 가다듬고 미사에 참석하던 아리스텔라는 어쩐지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덥지도 않은데 땀이 나고, 호흡이 점차 가빠졌다.
미사 중에는 반듯한 자세로 서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자꾸 다리 사이가 욱신거리며 조여들어, 아리스텔라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게 몸을 비틀었다.
‘ 아, 안 돼. 미사 중이니까……참아야……. ’
진정하려고 해도 쿵쿵거리는 심장소리는 잦아들 일 없이 점점 커지기만 했다.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을까 두려울 정도였다. 아리스텔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혹스런 마음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 흣……! ”
다리 사이에서 뜨거운 액체가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상한 신음이 나올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호흡이 가빠지니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아리스텔라는 최대한 작게 입술을 벌려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입술을 꽉 깨물었다.
‘ 아, 으……몸이 이상해……. ’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긴 소맷자락에 가려진 손이 주먹을 꼭 쥔 채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허리를 비틀며 다리를 꼬고 싶은 것을 입술을 깨물며 참는 것도 한계였다. 아리스텔라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특별히 뭔가를 한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심정이 되면서 몸이 달아오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대미사 중인데, 미사실에 모인 사제들은 물론이고 성령석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다른 신전에도 비치고 있다고 하는데, 온몸 구석구석이 간질간질하면서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지만 허리와 아랫배가 저절로 움찔거렸다.
아리스텔라의 상태를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미사를 진행하고 있던 대신관 히페리온이었다.
발그레한 뺨에 촉촉한 눈가, 가늘게 떨리는 어깨와 허리. 색을 모르는 사제들은 그저 아리스텔라가 첫 대미사라 긴장해서 떨고 있다 여겨 흘려 넘기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히페리온은 간밤 여신 위그멘타르와 관계를 가진 탓에 그녀가 절정을 느낄 때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아리스텔라는 정욕에 불타 한껏 몸이 달아올랐을 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미사는 성녀와 여신을 일체화하는, 즉 성녀가 인간이 아닌 여신의 현신 그 자체임을 증명하는 미사이기도 했다. 평범한 여자인 아리스텔라가 음욕의 여신이 발정하는 것을 억누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 어쩔 수 없군. ’
히페리온은 속으로 쯧 하고 혀를 차고는, 미사의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 여신 위그멘타르의 현신인 성녀시여. 당신의 종에게 은총을. ”
갑자기 미사 순서를 바꾸어 성녀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 다가오는 히페리온을 보고 사제들은 당황했으나, 미사의 집행권은 전적으로 대신관에게 있었기에 얌전히 비켜나 그가 성녀에게로 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 성녀님. 손을. ”
“ 흐……, 읏. 네……. ”
아리스텔라는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신음을 간신히 입술을 깨물어 참으며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의례적인 동작임에도 손등에 입술이 닿은 것만으로 아리스텔라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지며 눈가가 붉어졌다. 얇은 성의 너머로 긴장한 듯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의 윤곽이 보였다.
성적 흥분을 일으킨 상태긴 하지만, 성녀의 의식을 억누르고 몸 안의 여신이 뛰쳐나온 것은 아니었다. 아리스텔라는 아직 이성을 붙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를 방으로 돌려보내 쉬게 하는 것으로 진정시킬 수 있지 않을까. 성녀로부터 축복을 받는 의식이 끝나고, 히페리온은 몸을 일으켜 여신의 축복을 사제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돌아섰다. 히페리온은 제일 먼저 성녀를 보좌하려 그녀를 방으로 데려갈 인물을 호명했다.
“ 크리스. ”
대신관을 보좌하는 아론도, 다른 신관이나 정식 사제도 아닌 일개 수습사제를 제일 먼저 호명하자 미사실에 있던 사제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네, 네에! ”
잠시 얼이 빠져있던 크리스는 무심코 큰 소리로 대답하며 헐레벌떡 앞으로 나왔다.
히페리온은 크리스의 이마와 어깨에 축복을 나누는 손동작을 하고, 눈짓으로 아리스텔라를 가리켰다. 새로이 모시게 된 성녀의 신성력을 사제들에게 나누기 위한 대미사다. 원칙적으로는 축복을 받은 사제는 곧바로 미사실에서 나갈 수 있었다.
수습사제인 크리스가 아직 다른 사제들이 있는 미사실에서 나가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으나, 그는 대신관이 생각 없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 믿었기에 결심을 다졌다.
“ 여신의 은총을. ”
크리스는 짧게 대답하고 서둘러 아리스텔라를 데리고 미사실을 빠져나왔다. 아리스텔라는 크리스의 손이 어깨에 닿자마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크리스가 부축했다.
“ 하읏, 아……, 크리스……. ”
“ 서, 성녀님. 어디 불편하세요? ”
멀리서는 아리스텔라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아 단순히 첫 대미사라 긴장해서 얼어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아무래도 그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날이 덥지도 않은데 아리스텔라의 얼굴이 붉고 호흡이 거칠었다. 몸에서 열이 나는 걸 보니 어딘가 아픈 것 같다고 크리스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치료술에 능한 사제를 불러야겠다, 그렇게 판단한 크리스는 서둘러 아리스텔라를 부축해 그녀를 방으로 옮겼다.
아리스텔라를 방으로 데려온 크리스는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 하으윽……. ”
등에 부드러운 시트가 닿자 아리스텔라는 가늘게 신음을 흘렸다. 내내 긴장하여 서 있다가 겨우 눕게 되었으니 몸이 편해져야 할 터인데,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다. 긴장이 풀리자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몸이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 잠시만 누워 계세요, 성녀님. 제가 치료술에 능한 사제님을 불러올게요. ”
“ 으윽……. ”
아픈 것이 아니니 곁에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는 서둘러 다른 사제를 부르기 위해 방을 나갔다.
“ 으……아읏……. ”
더워서 옷을 벗고 싶었지만, 손으로 잡아당겨도 옷깃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크리스가 방을 나가 자신 혼자 있어 신음하고 움직여도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아리스텔라는 가쁘게 숨을 토해내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분명히 깨어 있는데도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다리 사이가 욱신거리면서 자꾸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 아으응……. ”
아리스텔라는 저도 모르게 다리 사이로 손을 뻗었다.
성의는 벗을 수 없었으나 얇은 옷자락 너머로 음부를 자극하는 것은 가능했다.
“ 앗, 아으……! ”
욱신거리는 부분을 손끝으로 문지르자 찌릿 하고 오싹한 감각이 전신을 관통했다. 쾌감은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몸이 멋대로 달아오르는 것도 당혹스러운데 쾌감마저 아슬아슬하게 제가 원하는 곳을 비껴가자 아리스텔라는 속상해서 눈물을 흘렸다. 대체 왜 자신이 이런 황당한 고통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 흐윽, 흑……. 제발……. ”
누구라도 좋으니 이 열기를 잠재워줬으면 좋겠다. 아리스텔라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면서 속으로 절규했다.
거의 반쯤 이성이 날아간 상태로 허덕이다가 정신을 놓으려 하던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