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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사
[9] 대미사
다음날 새벽, 아리스텔라는 허리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통증에 신음하며 눈을 떴다.
‘ 잠자리가 바뀌어서 낯설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역시 온몸을 꽁꽁 감싼 성의를 입고 잤기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가? ’
어차피 성녀가 되기로 결정한 이상 신전에서는 나갈 수 없고, 성의는 남자가 직접 벗기지 않으면 벗을 수 없으니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아리스텔라는 몸을 일으켰다.
시간은 새벽이었다. 방의 한쪽에 난 커다란 창밖에서 해가 떠오르며 방안이 청색 빛으로 서서히 밝아져가는 것이 보였다.
고향에서는 이 시간에 일어날 일이 없었지만, 아마도 새벽기도를 드리는 신전의 사제들은 벌써 일어나 있을 것이다.
─똑똑.
문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이 시간에 방을 찾아올 사람이라면 아마도 자신의 시종인 크리스겠지. 아리스텔라는 문밖의 남자를 향해 대답했다.
“ 들어오세요. ”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크리스가 아니었다. 사제로서는 걸출할 정도로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방안으로 성큼 들어와, 아리스텔라를 향해 인사했다.
“ 실례하겠습니다, 성녀님. ”
“ 히익? 누구세요? ”
갑자기 모르는 남자가 방안에 들어오자, 옷을 입은 상태라는 것도 잊고 아리스텔라는 이불로 몸을 감쌌다.
“ 오늘 성녀님의 대미사 준비를 보좌할 신관 아론이라고 합니다. ”
신관 아론.
그러고 보니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히페리온의 뒤에 저렇게 생긴 남자가 있었던 것도 같다. 나이는 히페리온보다 많아 보였다. 30대 초반쯤 될까. 남자다운 짧은 흑발에 금색 눈을 한 그는 날카롭고 진중한 인상이었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크리스나, 비교적 선이 고운 미남에 속하는 히페리온이라면 모를까, 남자다운 인상에 훤칠한 아론을 보고 아리스텔라는 움츠러들었다.
아론 역시 성녀에 대해서는 크리스와 견해를 같이 했다. 그는 재앙의 여신을 봉인한 성녀를 께름칙하게 여겼으나, 그래도 크리스보다는 더 많은 세월을 신전에서 보내온 바, 처세술에는 능했다.
성녀에게 다른 사제들과 같은 수도 생활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으나, 성녀의 탄생을 알리는 대미사만은 반드시 참석하게 해야 했다. 무사히 대미사 준비를 마치려면 성녀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아론은 평소 무표정하기만 했던 얼굴 근육을 움직여 나름대로 상냥하다고 판단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성녀님. ”
“ 앗, 으? 네! ”
그러나 아리스텔라는 아론이 무섭기만 했다.
이불속에 더 꼭꼭 숨으며 안절부절 못하는 아리스텔라를 본 아론은 그녀가 남자를 어색해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자신의 덩치가 커서 위압적인 분위기를 느낀 탓도 있을 것이다.
아론은 그녀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며 부드러운 말로 타일렀다.
“ 성녀님. 새로운 성녀의 탄생을 맞이하여 열리는 대미사는 이 신전의 가장 큰 행사랍니다. 당신을 위해 오늘까지 사제들이 많은 준비를 했사오니 나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십시오. ”
아리스텔라는 여전히 남자가 무서웠으나 그녀는 성녀였다. 자신을 맞이하는 대미사에 불참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머뭇거리는 것도 새벽부터 일어나 자신을 보좌하러 온 아론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 판단한 아리스텔라는 조심스럽게 몸을 가렸던 이불을 걷어냈다.
아리스텔라는 아론의 손을 잡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순간 허리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져 균형을 잃을 뻔했으나, 아론이 손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준 덕분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 거동이 불편하신지요? ”
“ 아, 아니에요! 혼자서 걸을 수 있어요. ”
허리가 아프다고 말하면 아론이 안아서라도 옮겨줄 듯한 태도였기에, 아리스텔라는 애써 태연한 척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허리가 저릿하며 다리 사이가 쑤셨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 그럼 정화를 하러 가시지요. 미사에 앞서 정결한 몸을 만들기 위해 목욕을 하셔야 합니다. ”
목욕이라는 말에 아리스텔라는 등골이 싸해졌다.
목욕을 한다는 것은 곧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벗어야 한다는 뜻이고, 이 성의는 남자가 직접 벗겨주지 않으면 스스로 벗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자기보다 어린 크리스가 벗겨주는 것도 부끄러워서 눈을 가리게 했는데, 하물며 성인 남자가 제 옷을 벗긴다니!
크리스 때처럼 눈을 가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수습사제인 크리스와는 달리 아론은 자신을 보좌하기 위해 직접 방문한 정식 사제, 그것도 평사제보다 한 급이 높은 신관이다.
무려 신관이 저를 데리러 왔는데 눈을 가려달라는 둥 그런 개인적인 부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도 부끄러웠다.
“ 저, 저기요, 아론! 옷을 입고 목욕하면 안 되나요? ”
어떻게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아리스텔라가 내린 결론은 옷을 입은 채로 목욕하는 것이었다.
“ 옷을 입고, 말입니까. ”
“ 안 되나요……? ”
미사 전에 치르는 목욕재계는 일반적인 목욕이 아니라 세속의 더러움을 떨어내고 신성한 기운을 받기 위해 성수로 온몸을 적시는 것이니, 옷을 벗지 않더라도 성수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대체가 가능할 터였다.
“ 확실히 성녀님이 입고 계신 성의는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어, 그 옷을 입고 물에 들어가더라도 물에서 나오면 금방 마르기는 합니다만……. 알겠습니다. ”
아론이 수긍하자 아리스텔라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으로 편하게 목욕을 할 수 있다.
“ 옷은 입은 채로 계십시오. 제가 씻겨드리겠습니다. ”
“ ……네? ”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되묻는 아리스텔라를 가뿐히 안아든 아론은 그녀의 방에 딸려 있는 욕실로 들어갔다.
아론은 아리스텔라를 성수가 흐르는 욕조에 들어가게 한 뒤, 자신도 따라 들어왔다.
“ 말씀드렸다시피 성녀님이 입고 계신 성의는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성수에 몸을 담그면 다소 젖어들기는 하겠지만, 방수 작용도 겸하고 있기에 온몸을 적시는 것은 어렵습니다. ”
“ 저기, 그럼……. ”
“ 제가 도와드리지요. ”
아론의 커다란 손이 다가오더니, 피부가 보이지 않도록 목까지 덮고 있던 옷자락을 벌리고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 꺄아! ”
옷깃이 벌어진 틈으로 성수가 스며들자, 아론은 그것이 아리스텔라의 몸 구석구석을 감싸도록 문지르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목에서 쇄골을 지나 내려간 커다란 손이 봉긋한 가슴을 움켜쥐자, 아리스텔라는 파드득 몸을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흐앗! 이러지 마세요! ”
“ 얌전히 계십시오. 성수로 온몸을 적셔야 합니다. ”
남녀의 완력 차이가 분명한데다 아론은 아리스텔라보다도 덩치가 배는 크다. 성수가 흐르는 욕조에서 아론은 아리스텔라를 품에 가두고 그녀의 옷 속에 손을 집어넣어 구석구석을 쓰다듬었다.
“ 시, 싫어……! ”
간밤 여신 위그멘타르에 의해 히페리온과 초야를 치르기는 했지만, 여신이 깨어있는 동안 아리스텔라의 의식은 잠들어 있었기에 그녀는 지금 자신이 남자와 관계한 몸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니 자신의 맨몸을 더듬는 남자의 손에 경악하여 공포심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앗, 아응……. ”
그러나 어째서일까. 처음 두렵고 어색하고 낯부끄러웠던 것과는 달리, 아리스텔라는 아론이 제 몸을 만져줄수록 야릇한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에 당황했다.
“ 위쪽은 끝난 것 같군요. 그럼 이제 아래쪽을 씻겨드리겠습니다. ”
“ 아흣, 잠깐만요……, 꺄아아! ”
아론의 손이 옷자락을 걷어 올려, 아리스텔라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녀가 몸을 요동칠 때마다 참방거리는 물소리가 울렸다.
분명 아론은 성의 때문에 안으로 잘 스며들지 못하는 성수를 그녀의 온몸에 문질러 바르고 있을 뿐인데, 아리스텔라는 아랫배가 저릿해지면서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 하아, 하읏……! 안……돼……. ”
넓은 욕조의 한중간에서 붙잡을 것도 없어, 아리스텔라는 아론의 소맷자락만 붙들고 몸을 달달 떨었다. 낯선 남자가 자신의 몸을 만져주는 일이 너무도 두렵고 떨리는데, 한편으로는 초조하고 안타까운 기분이 들면서 흥분이 되었다.
처음의 당혹스러움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아리스텔라의 작고 붉은 입술에서 달콤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 아앙! 거기……, 하으응……. ”
“ 아래쪽도 거의 끝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쪽을 씻겠습니다. ”
“ 안쪽, 이라니……, 으응! 아! ”
길고 굵은 손가락 하나가 그녀의 여린 꽃잎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 아! 아앗! ”
바닥에 손을 짚자 철벅거리는 성수가 콧속으로 밀려들어와 기침이 나왔으나 아리스텔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무언가가 들어오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곳으로 남자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몸 안의 여린 속살을 자극하는 손가락이 주는 생소한 감각에 비명을 지르며 뿌리치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 앗, 안 돼, 안……! ”
아리스텔라는 몰라도 그녀의 몸은 간밤의 성교를 기억하기 때문인지, 아론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며 질 안을 자극하자 속에서 뜨거운 애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이런. 음액이 성수를 밀어내서 안쪽까지 적시는 것이 어렵군요. ”
“ 하응, 앗, 아아앙……. ”
아론은 손가락을 빼내 자신의 소맷자락으로 흘러나온 애액을 훔친 뒤, 이번에는 손가락 두개를 그녀의 안에 찔러 넣었다.
“ 아! 아응, 아앙……! ”
자각은 없어도, 남자가 젖은 몸을 만져준 일로 흥분한 상태였던 아리스텔라는 굵은 손가락 두개가 들어와 질 안을 휘젓자 눈앞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저절로 허리가 들썩거렸다. 누군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아리스텔라는 아론의 손가락이 제 기분 좋은 부위를 비비도록 스스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 아앗! 거기, 안……아아아아앙! ”
아론의 손끝이 어느 한 점을 스치자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높은 교성을 내지르는 것과 함께, 아리스텔라는 온몸을 경련하며 절정에 달했다.
성수가 흐르는 욕조 안에서, 낯선 남자의 앞이라는 것도 잊고 아리스텔라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지도 않은 채 그의 가슴에 기대어 숨을 헐떡거렸다.
“ 하아, 하으, 하으으……. ”
방금 그건 뭐였을까. 처음엔 따끔하게 아리던 통증이 이윽고 찌릿찌릿한 쾌감으로 바뀌어 온몸을 뒤덮었다. 눈앞이 흐려지며 의식이 날아가는 순간을, 아리스텔라는 ‘ 기분 좋다 ’고 생각해 버렸다.
“ 흐윽, 아론……. ”
“ 이것으로 목욕이 끝났습니다만, 성녀님은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태인 것 같군요. ”
처음 느낀 절정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리스텔라를 살며시 안아들고, 아론은 욕조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흠뻑 젖은 몸으로 밖으로 나오자 신성한 힘을 머금은 성수가 흘러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그 맑은 액체 가운데 성수가 아닌 것이 섞여있음을 아론은 알고 있었으나 아리스텔라는 전혀 몰랐다.
간밤에 히페리온과 성관계를 가졌어도 기억만은 여전히 처녀인 아리스텔라는 여성이 성적으로 흥분할 때 음부에서 애액이 나온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고, 아론의 손가락이 제 성감대를 자극해 오르가즘을 느꼈다는 것 또한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기분 좋고 이상한, 그리고 성행위와 유사한 부끄러운 일을 해버렸다는 자각만이 남아 있었다.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힘이 있다는 말대로, 두 사람의 성의는 욕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는 와중에 완전히 말라버렸다. 그렇게나 흠뻑 젖었는데도 금방 뽀송뽀송해지는 것이 신기하다고 아리스텔라는 생각했다. 그런 느긋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지만.
“ 미사 중에는 내내 서 계셔야 합니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
“ 네, 네에……,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
성녀인 자신을 위해 열리는 대미사다. 떨리고 두렵다고 해서 망칠 수는 없었다. 성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잘 해내진 못하더라도 폐를 끼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던 아리스텔라는 아론의 손을 밀어내고 제 다리로 바닥에 섰다.
‘ 실수하지 말아야지. 힘내자! ’
아직도 다리 사이가 시큰거리며 아랫배가 간질간질하긴 했지만, 아리스텔라는 작은 주먹을 꼭 쥐며 결심을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