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출산은 예정일에 딱 맞춰 이뤄졌다. 열다섯 시간가량 진통이 이어졌고 마르티안은 끔찍한 통증을 견디느라 목이 거의 쉬었다. 도안가의 핏줄이 늘 그래왔듯, 그녀의 첫 아이는 딸이었다.
주치의는 아이가 몹시 건강하다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지만 마르티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온몸이 부서진 것만 같았다.
공작가에서는 출산일에 맞춰 유모를 비롯하여 관련된 모든 인력들을 백작가로 보내왔다. 아이에게는 헤일리아라는 이름이 생겼고 열댓 명의 인원이 아이를 보살피기 위해 달라붙었다. 백작가로는 매일같이 수많은 축하 선물이 도착했다.
자작가에서도 선물과 함께 안부를 묻는 편지가 도착했다. 엘 도안이 쓴 편지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이가 어떤지 기대하고 또 그녀의 건강을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다음 자작가를 방문할 때를 대비해서 집사가 아이 방과 용품을 잔뜩 준비했다는 말도 들어있었다.
마르티안은 그것을 읽고는 그 편지를 모두 태워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이는 잘못된 선택의 결과물이었고 그리고 그걸 되새기는 것처럼 휴이와 지나치게 닮은 얼굴이었다.
공작가의 유모는 아기의 모습을 보고는 휴이의 아기 때와 똑같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작가로 돌아가려고 해요.”
출산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마르티안은 휴이의 집무실을 찾아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이제 한계였다. 아이에게 맞춰서 축제라도 일어난 듯 밝아진 백작가가, 그녀는 너무 지긋지긋했다.
집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론과 함께 있을 때조차 그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모든 게 다 답답했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휴이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백작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마주했다.
“앞으로는 계속 자작가에서 머무를 생각이에요. 서너 달에 한 번 정도, 여기에 오긴 하겠지만 오래 머무를 일은 없을 거구요.”
“마르티안, 갑자기 찾아와서 그게 무슨…….”
휴이는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그의 모습은 평소 그녀 앞에서 보이던 것과는 달리 아주 엉망이었다. 눈에는 핏발이 섰고 잠을 못 잔 것처럼 눈 밑이 거뭇했다. 그녀는 그의 책상에 수북하게 쌓인 서류들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더는, 이곳에서 지내지 못하겠어서요. 어차피 같이 뭘 하는 것도 아니니까 이제 그만 따로 지내요.”
그건 적나라한 통보였다. 휴이는 대꾸할 말을 찾으려 애썼지만 어떤 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르티안이 너무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임신과 출산으로 두 사람의 결혼은 공고해졌지만 실제 관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걸 알면서도 휴이는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곁에 있고 싶었다. 제대로 얼굴조차 보지 않는 사이가 되었음에도, 같은 저택에 머물고 있기라도 했으면 좋겠어서.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이곳에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있는 거면 뭐든, 뭐든 말해. 바로 바꾸도록 할 테니까. 다른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구해올게. 아직은 몸도 좋지 않잖아. 그리고 아이, 아이도 너무 어린 상황이니까…….”
“제 몸은 마차를 탈 만큼은 회복되었으니 상관없어요. 아이는 두고 갈 거구요.”
“……두고 가겠다고?”
휴이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마르티안의 표정은 몹시 차가웠다.
“어차피, 공작가 교육을 받으며 클 아이니까요. 아이를 돌볼 사람들도 이곳에 가득하구요.”
“그, 그래도 당신의 아이잖아. 당신 아이인데 그렇게 두고 가면…….”
“제 아이라구요?”
그녀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어떻게 제 아이일 수 있죠? 내 뜻대로 기를 여지가 조금도 없는데요. 백작님, 저는 그냥 애를 낳아준 것뿐이에요. 공작가를 위해서.”
“마르티안, 그건…….”
“됐어요. 이제 와서 그걸 따지려고 여기 온 건 아니니까…….”
공작가 교육이 필요하다는 건 그녀도 알았다. 아이는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타고났고 그만큼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해야 했다. 그걸 위해 많은 것들에 능통하도록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선순위, 당연한 일. 의무. 그리고 그것을 위해 밀려나야 하는 것들. 삶에는 언제나 그런 것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그 밀려나야 하는 것에 그녀와 그녀의 가문이 들어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보면서도 그 아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아이의 삶에는 그녀의 것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 결혼을 선택하면서 서로 대가를 치르는 거라고 생각했던 마음들은 이제 다 갈려서 사라졌다. 자신이 낳았지만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아이는, 그녀의 마음을 점점 더 메마르게 했다. 우울과 무기력이 반복될 때마다 너무 괴로웠다.
“이틀 후에는 떠날 예정이에요. 배웅은 필요 없어요.”
그녀는 이제 아무런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싫었고, 감정이 격해지거나 지나치게 가라앉는 일도 더는 겪고 싶지 않았다. 그냥 여기를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 마르티안은 통보한 채 몸을 돌렸다. 휴이가 그녀를 붙잡았다.
“도안 자작, 내가 잘못했어. 내가 처음부터, 잘못 생각해서…….”
그건 결혼 이후로는 처음 듣는 공적인 호칭이었다. 결혼한 후로 그는 고집스레 그녀를 이름으로 불렀다. 주인님 아니면 마르티안. 그게 그가 원하는 관계였으니까. 마르티안은 휴이가 백작으로서 사과하려는 걸 알았다. 그건 강압적인 청혼에 대한 사과였다.
마르티안은 그것이 어이없단 생각을 했다. 이제 와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녀가 잡힌 팔을 빼내자 휴이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만이라도 데려가.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애고 아직, 아직 아무런 잘못이 없잖아. 이렇게 버리는 것처럼 하지 마. 마르티안, 제발…….”
마르티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휴이는 순간 울컥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흐, 흐윽, 제발……. 제발, 마르티안. 그 아이는 그래도, 흐으, 당신 아이잖아.”
그는 마르티안을 다시 붙잡았다. 아이는 그녀와 그의 아이였다. 그 애가 그녀에게 아무 사랑도 받지 못한다는 게 괴롭다. 그에게서 나온 것들은 그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재산도, 지위도, 그 자신도, 그리고 아이 마저도.
휴이는 그녀를 붙들며 애원했다.
“제발……자작가 사람들은 당신 딸을 보고 싶어 할 거야. 당신이 낳은 아이를 보려고 기다릴 거고. 그러니까, 마르티안. 아이까지 두고 가는 건…….”
마르티안은 그의 손을 떼어냈다. 그의 말이 전부 귀찮고 짜증스러웠다.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피곤할 일 만들고 싶지 않아요. 공작가 사람들이 자작가에 올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구요.”
그녀는 끔찍하단 투로 말했다. 자작가마저 공작가의 사람들이 드나들게 된다니. 그까짓 아이가 뭐라고 그렇게 한단 말인가. 자작가는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을 둔 곳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장소를 그런 식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여기에서 길러요. 이미 공작가에서 모든 필요한 인력들을 보냈으니까요.”
“아니야, 꼭 그 사람들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어차피 공작가의 교육은 말을 할 수 있을 때부터야. 당신이 귀찮지 않도록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아이도 데려가서…….”
휴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자꾸 흘렀다. 마음이 온통 엉망이다. 이제 마르티안의 마음에 남아있는 그의 자리는 없어졌으니까. 그러니 그 아이라도 사랑받았으면 했다. 그것만이 이 결혼으로 인해 남은 유일한 결과였으니까.
“제발, 마르티안……. 문제가 생기면 내가 전부 처리할게. 흐으……흐읍……. 자작가 집사도, 엘 도안도 당신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마르티안은 애원하는 휴이를 보았다. 지겹고 지친다. 애를 데려가지 않는 거로 이런 실랑이를 벌일 바에야 애를 데려가는 게 나았다. 그로 인해 쓸데없이 귀찮은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럼 하나만 명확하게 하죠. 제가 자작가로 간 이후에 아이를 핑계로 찾아오지 마세요. 귀찮은 일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아이는 다시 돌려보낼 테니까.”
그녀는 휴이의 속내가 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세울 자리는 이제 아이의 부모라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그걸 핑계로 또 그녀를 귀찮게 할 속셈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차단했다. 그녀는 더는 휴이를 반기고 싶지도 않았고 얼굴을 마주하며 지내고 싶지도 않았다.
“이유 없이, 오지 말란 뜻이에요.”
휴이는 그저 울었다. 엉망으로 우는 꼴은 한때 마르티안의 취향에 들어맞았던 모습이었다. 그녀를 몹시 자극했던 것들. 그녀는 그것에 휘둘렸던 스스로를 참을 수가 없었다. 견딜 수 없다. 휴이에 대한 분노는 동시에 자기혐오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럼 백작님, 가능한 볼 일이 없기를 바라겠습니다.”
미련 하나 없는 말투로 그녀가 말했다.
* * *
마르티안은 아이와 함께 도안가로 돌아왔다. 집사와 엘 도안을 비롯한 자작가의 모든 사람이 그녀를 반기며 마중을 나왔다. 그중에는 아이를 돌볼 유모도 끼어 있었다.
아이는 바로 유모에게 맡겨졌다. 다들 복작대며 모여서 아이를 구경했다. 오밀조밀하게 예쁜 아이는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다. 마르티안은 거기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바로 침실로 올라갔다. 그녀는 한동안 침실에 처박혀 쉬기만 했다.
론은 애첩이자 하인의 역할로 돌아왔고 마르티안은 다시 자작으로서 일을 시작했다. 세세하게 살피기 어려워서 밀렸던 일이 그녀가 돌아오자 조금씩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그녀의 삶은 자작가에서 지내던 예전과 몹시 비슷해졌다. 물론 완전히 같은 일상은 아니었다. 아이가 있었으니까.
아이는 성격이 예민하고 고집이 세서 한번 울기 시작하면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토할 때까지 울었다. 달랠 수 있는 사람은 자작가에서 단둘 뿐이었다. 아이의 유모, 그리고 론이었다.
마르티안은 아이에게 무관심했고 울음소리를 몹시 짜증스러워했다. 때때로 몹시 크게 화를 내기도 했다. 아이는 유모나 론이 달래는 게 아니면 죽을 듯이 울었는데 거기에 마르티안의 화까지 더해지면 분위기는 숨도 못 쉴 정도였다.
아이는 그걸 아는 것처럼 더 악을 쓰며 울었다. 그녀는 겉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울음이 지겹고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녀는 자신의 근처에 아예 아이가 없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유모가 꾸준하게 아이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낯을 가릴 때부터는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게 좋아요.”
마르티안이 침실이나 서재에서 일할 때면 유모는 아이를 안아들고 찾아왔다. 마르티안은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서 그걸 내버려 뒀다. 애가 울지만 않으면 그래도 그렇게까지 화가 치밀진 않았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론은 유모만큼이나 우는 아이를 잘 달랬다. 그는 아이가 울지 않도록 품에 안고 있다가 마르티안이 쉴 때면 그녀 앞으로 가서 아이를 보여주곤 했다.
론은 유모에게 아이를 받아 아기 띠를 두른 채 품에 안고 다녔다. 굳이 아기 띠를 쓰는 건 혹시나 놓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는 아이를 안고 주로 구석진 창가를 오갔고 작은 목소리로 바깥 풍경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기껏해야 옹알대는 게 전부인 아이를 두고 론은 제법 긴 대화를 했다.
“네, 네. 참새가 가버렸어요. 파다닥 하고.”
으아응! 아으앙! 아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짜증 어린 칭얼거림이 귀에 거슬려서 마르티안은 서류를 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아이는 뭐가 짜증이 났는지 손으로 창문을 치려고 했다. 론이 창가에서 조금 물러나며 애를 달랬다.
“이러면 아야 해요, 아야.”
마르티안은 순간 짜증을 내려던 것도 잊고 픽 웃었다. 아야 한다니. 론이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게 웃기기면서 황당했다. 그렇게 울며 애원하게 만들 때도 말로 애교를 부리는 건 제대로 못 하더니, 아이를 두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도 혀를 굴렸다.
찬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못 벗겨도 태양은 그 옷을 금세 벗겼던 것이 이런 걸까. 그녀는 론의 품에 안겨서 팔다리를 바둥대는 아이를 보았다.
금발을 가진 아이는 여전히 짜증스러웠지만 론이 아이를 대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론, 이리 와봐.”
론이 화들짝 놀라 그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새 다시 긴장한 얼굴이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시끄럽게 굴어서…….”
그건 딱딱하고 경직된 말투였다. 마르티안은 다시 오라고 손짓했다. 론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와중에 아이는 제 짜증을 풀려는 것처럼 론의 가슴을 손으로 팍팍 때렸다.
론이 그 작은 손을 잡고는 “안 돼요. 아야 해요.” 라고 말했다. 자신의 말투가 왔다 갔다 하는 걸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론이 책상 맞은편에 섰다. 그녀가 다시 손짓했다.
“아니. 이쪽, 내 앞으로 와.”
“아……유모를 부를까요?”
론이 머뭇대며 물었다. 그녀는 손짓을 한 번 더 했다. 론이 의자에 앉아있는 그녀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평소에는 무릎을 꿇는 게 당연했는데 지금은 아이를 안고 있어서 가만히 서 있는 상태였다.
마르티안은 손을 뻗어 론의 엉덩이를 쥐었다. 그는 살짝 긴장한 것 같았지만 크게 움찔하진 않았다. 그녀가 움켜쥔 엉덩이를 쓸어내리며 물었다.
“론, 여기 아야 해?”
그 말에 론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녀는 어제 론의 엉덩이를 멍이 들게 매질한 상태였다. 그녀는 곤란해하는 론의 표정에 웃고는 다시 물었다.
“아야 하냐니까?”
“주, 주인님. 유모를 불러, 오게, 흣…….”
그 순간 론의 품에 안긴 아이가 짜증을 내며 그의 가슴을 손으로 내리쳤다. 자신에게 집중해 주지 않아서 그새 성질이 난 모양이었다. 가슴팍을 작은 손으로 치는 거야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옷 위로 유두 고리를 움켜쥐는 건 제법 아팠다. 물론 지금은 아픈 것보다 수치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론이 아이를 달래려 들자 마르티안이 론의 엉덩이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흐으…….”
론이 아픔을 견디느라 헐떡이기만 하자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건 곧 악을 쓰듯이 울겠다는 뜻이었다. 주인님, 제발. 흐으. 마음이 급해서 튀어 나간 애원에 마르티안이 더 손에 힘을 주었다.
“론, 내가 두 번이나 물었는데?”
그건 경고였다. 론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이를 품에 안고 대답한다는 게 수치스러웠지만 사실 단어 자체는 그냥 단어일 뿐이었다.
“네, 주인님. 읏, 아, 야 합니, 흑…….”
품에 안긴 아이가 그의 유두 고리를 잡아당기고는 칭얼댄다. 론은 급하게 아이와 눈을 맞추며 가볍게 토닥였다. 비틀린 살덩이가 아팠지만 움켜쥔 것을 억지로 뺐으면 당장 떠나가라 울 게 뻔했다. 아이는 자신의 손에 쥔 것을 빼앗기는 것에 몹시 예민했다.
아이가 울지 않도록 하는데 온 신경을 쓰고 있는데, 그의 엉덩이를 쓰다듬던 손이 다시 살덩이를 꽉 움켜쥔다. 윽, 그가 움찔하자 마르티안이 다시 물었다.
“누구 때문에 아야 한 건데?”
론은 차마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와중에 아이가 쥐고 있던 고리를 잡아당기며 탁탁 쳤다. 론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은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힘껏 옹송그린 작은 손에는 고집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는 아픔에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마르티안이 재촉하듯 목소리를 키웠다.
“누구 때문에 아야 했냐니까? 나야, 아니면 애야?”
순간 아이가 성질을 내며 짜증 어린 울음을 내기 시작했다. 눈물은 나지 않는데 소리부터 쥐어짜는 울음, 그건 일종의 경고였다. 제 뜻대로 달래주지 않으면 토할 때까지 울겠다는 경고다.
론이 놀라서 급하게 아이를 달랬다. 몸을 돌려 아이를 토닥이자 아이는 팔다리를 버둥대며 되는대로 성질을 부렸다.
그는 얌전하게 그 짜증을 받으며 작게 말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보지도 않고 말도 안 들어주고. 엄청 나빴다. 그쵸.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능숙하게 어르는 손길이 이어지자 아이는 쥐어짜는 울음을 멈췄다.
론은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야 허락도 없이 몸을 돌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르티안의 질문에도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애첩으로서 엉망진창인 태도였다. 론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와서…….”
“애를 맡기고 오면, 이제 와서 다리라도 벌리게? 박히면서 애원이라도 할 거야?”
천박한 단어에 놀라서 론이 반쯤은 질책하듯 주인님, 하고 말을 뱉었다. 아이가 있는 자리라는 생각 때문에 반사적으로 나온 반응이었다. 마르티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아……그게, 저도 모르게 놀라서……잘못했습니다.”
“뭘 놀라? 애첩으로 여기 있으면서 그보다 더한 소리도 들었잖아?”
그녀의 말투가 몹시 예민해졌다. 론은 아이를 빨리 다른 곳으로 맡겨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마르티안은 아직도 감정기복이 심했고 한번 화를 내면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았으니까. 그걸 감당하는 것 자체는 그의 몫이니 상관없었지만 거기에 아이를 휘말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아이를 안은 채로 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주인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직 말을 못 해도 주변 소리나 상황을 알아듣는다고 들어서, 저도 모르게…….”
그 변명을 들으며 마르티안은 꾹 눌러왔던 감정들이 순식간에 치미는 것을 느꼈다.
론의 품에 안겨있는 공작가의 핏줄은 자작가에 와서 사랑만 받으며 지내는 중이었다. 그녀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몸에 기생해서 자랐던 것처럼 아이는 이제 자작가에서 기생해서 자라고 있었다. 아이는 여전히 휴이를 빼닮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론, 네가 그런 걸 왜 신경 써?”
“흐으, 읍, 주인님…….”
“너는 알잖아. 이 애가 내 딸이 아니라 공작가 후계라는 거. 그런데 그쪽 애를 네가 뭐라고 이렇게 챙겨? 그것도 내 앞에서?”
그녀는 그대로 론의 뺨을 후려쳤다. 감정이 실 손찌검은 몹시 험악했다. 론은 아이가 고개를 들지 않도록 단단히 끌어안고는, 마르티안의 손찌검을 버텼다. 귀찮고 답답한지 품에 있던 아이가 버둥댔지만 크게 칭얼대거나 울지는 않았다.
손찌검은 그의 뺨이 퉁퉁 부풀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제가, 주제답게 굴지 못해서…….”
론은 바로 빌었다. 그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생각을 했다. 마르티안이 이곳으로 돌아온 뒤에 그래도 괜찮아진 것 같아서, 아이에 대한 적대감도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냥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르티안이 론을 툭 발로 쳤다.
“그럼 지금부터라도 주제답게 굴어. 아래 벗고 책상 위에 누워.”
“……주인님.”
“왜 그딴 표정이야. 그렇게 예뻐하는 애는 끌어안고 있게 해줄 테니까 아래만 벗고 올라가서 다리 벌려.”
론은 입술을 짓씹으며 그녀를 보았다. 마르티안의 표정이 점점 더 싸늘하게 굳어진다. 그는 더는 애원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고는 그녀가 시킨 대로 몸을 움직였다. 아기띠를 하고 있어서 바지를 벗는 거나 책상 위에 올라가 눕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심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이를 안은 채로 눕자 아이가 침대에 엎드려진 것 마냥 론에게 푹 댔다. 꼼지락거리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마르티안은 론의 구멍에 윤활제를 쭉 짜냈다. 늘 깨끗하게 관리되는 구멍이 익숙하게 움찔댄다.
“론, 개면 개답게 굴어야지. 쓸데없는데 신경 쓰는 게 아니라.”
“흐으, 흐읍……주인님.”
그녀는 모조 성기를 차고는 그대로 론의 뒤에 밀어 넣었다. 평소보다 훨씬 긴장한 탓에 구멍은 몹시 좁고 빡빡했지만 그녀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론이 손을 가져다 입을 틀어막았다. 흐으, 흑. 흐읍. 애를 안은 채로 어떻게든 몸이 덜 흔들리도록 버텼다. 그녀가 허리짓을 할 때마다 온 몸에 힘을 주는 식이었다. 그로 인해 뒤가 풀리지 않아서 고통은 매번 크게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그녀를 부르며 애원이라도 할 텐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르티안은 들쑤시던 방향을 틀어서 론이 흥분하는 곳을 들쑤셨다. 고통을 참으며 다물려 있던 입이 헐떡이며 신음을 흘렸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여기에 있었으니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 근데 론 너는 알잖아? 이 애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는 다 알 텐데…….”
마음이 엉망으로 치민다. 분노이자 상처인 감정들이 견딜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건 일종의 배신감이기도 했다. 그녀의 고통을 유일하게 목격한 게 론이었으니까.
“흐, 흐읍, 주인, 큭, 주인님.”
그의 몸이 들썩대는 것을 보면서도 마르티안은 더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퍽퍽 소리가 나는 동안 론의 앞은 시들었다가 그녀가 집요하게 한곳을 들쑤시면 다시 흥분했다. 론은 몸을 흔들면서도 혹여나 아이가 크게 흔들릴까 걱정이 되는지 그 몸을 바짝 끌어안고 있었다.
‘내 것도 아닌 이딴 애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아이는 예민했고 휴이와 닮았는데도 누구 하나 싫어하지 않았다. 집사와 엘 도안, 유모, 저택의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딸이라는 이유였다. 마르티안은 그 단어가 의미 없는 단어의 모음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티안은 론의 내벽을 그으며 깊게 처박았다. 흡 하고 숨을 참는 소리가 났다. 론의 얼굴은 이미 눈물이 범벅이었다. 와중에도 울음소리는 어떻게든 삼켜낸다.
마르티안은 그것이 애를 위해서 버틴다고 생각했다. 대체 왜 론마저 이따위로 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치미는 감정은 점점 더 분노로 변했다.
“그 애를 아끼고 싶으면 백작가로 돌아가. 그 애를 안고 백작가로 가면, 얼마든지 옆에서 유모 노릇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흐읍, 주인, 흐읏, 주인님.”
그는 자신이 마르티안의 상처를 건드렸다는 걸 알았다. 자작가로 돌아와서 회복된 거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그저 숨겨졌을 뿐이었다. 아이는 그녀가 겪은 상처의 상징이었다.
론은 아이를 안고 있던 팔을 풀러 마르티안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그 손을 그대로 뿌리쳤다. 그의 손이 허공을 헤매다가 푹 쑤지는 자극에 반사적으로 아이를 안았다. 미묘하게 들린 허리가 움찔대며 떨렸다. 마르티안은 론에게 말했다.
“백작가로 가고 싶으면 말해. 얼마든지 보내줄 테니까. 그러면 내 앞에서 이 짓거리 할 필요도 없잖아? 네가 아끼는 애도 좋은 것만 듣고 볼 거고. 안 그래?”
그녀의 말은 격한 감정으로 인해 끝이 갈라졌다. 론은 더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마르티안은 다시 그의 뒤를 깊게 쑤셨다. 자극에 고통이 더해져서 그의 허리가 들썩였다. 주인님. 흡, 끄윽. 론은 아이를 안은 채 울었지만 마르티안은 멈추지 않았다.
그건 분풀이나 다름없는 감정이었다. 그녀가 가진 고통과 상처는 론 때문에 생긴 게 아니었으니까. 모든 원인은 그녀 자신과 휴이에게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녀는 론을 몰아붙이며 화를 쏟아냈다.
윤활제가 반쯤 마르자 아래를 들쑤실 때마다 찔꺽대는 소리가 났다.
“제가, 흡, 큭,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다신, 흐읍, 다시는……흐으으…….”
마르티안은 윤활제를 다시 쭉 짜냈다. 그리고는 반쯤 발기한 론의 성기를 흔들며 뒤를 들쑤셨다. 울음과 신음이 번갈아 이어졌다.
어느 순간, 아이가 버둥대며 짜증어린 소리를 냈다. 론의 우는 소리에 동화된 것인지 아니면 마르티안의 화에 예민해진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건 분명 울려고 하는 웅얼거림이었다.
그러나 론은 그걸 달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벽을 긋는 감각이 성기 아래를 쑤시는 것처럼 이어졌다.
마르티안이 내벽 안을 집요하게 쑤시자 이내 그의 성기에서 정액이 쏟아졌다. 그의 아랫배와 아기띠로 정액이 엉망으로 튀었다. 흔들림이 멈추자 론은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다. 흐으, 흡, 주인님. 하지만 마르티안은 그걸 그대로 쳐냈다.
“앞으로 한동안은 애 보는 데서 물러나. 침실에서 다리나 벌리고.”
론은 그대로 울었다. 아이가 론의 얼굴에 손을 뻗으려 버둥대더니 이내 따라 우는 것처럼 크게 울기 시작했다.
* * *
마르티안이 자작가에 저택에 머물게 된 지 열 달이 넘었다. 휴이는 그동안 두 번 정도 자작가에 왔을 뿐이었다. 그건 남보다 못한 관계였다. 애초에 아이를 낳고 별거하듯 이렇게 떨어져 지낸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마르티안은 자작가에서 마치 결혼한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지냈고 자작가의 사람들은 이전처럼 그녀를 대했다. 집사와 엘 도안은 마르티안의 상태를 몹시 걱정하면서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누님, 오늘은 숲에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때 말하던 대안 수목들을 골랐는데, 숲 지기들과 한번 이야기를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집사와 예산 관련해서 말을 했는데 수목 구입비에 대해서 말이 나와서 한번 상황을 보고……”
엘 도안은 마르티안에게 아침 보고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일반 업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허우적대더니 이제는 마르티안의 비서 노릇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제 몫을 해내는 동생을 보며 느긋하게 웃었다. 주방에서 올린 가벼운 아침 식사가 입에 달았다. 그녀는 차로 입가심을 하고는 엘 도안에게 물었다.
“수목 가격들은 파악이 됐고?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쓰는 수종이 뭐래?”
“알아본 바로는 적나무를 다시 심는 곳들이 많은 거 같더라구요. 병충해에 한 번 걸리면 피해가 막대하긴 한 데 아무래도 대안 수종이 없으니까…….”
“적당히 섞는 곳도 있을 텐데.”
“가장 흔한 건 백단 나무였고 아, 흑두목도 있었어요.”
백단과 흑두목은 둘 다 장단이 뚜렷한 수종이었다. 대부분은 다 장단점이 뚜렷했다. 기르기가 쉽고 편하면 가격이 낮았고, 기르기가 까다롭고 오래 걸리면 가격이 비쌌다. 그러니 다들 적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적나무는 수익성이 좋으면서도 안전한 나무였으니까.
적나무를 다시 심는 선택지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모든 나무가 다 장단점이 뚜렷하다면 익숙한 것을 기르는 게 더 편한 법이었으니까. 물론 지난번 병해를 생각하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수종을 다양화하는 수밖에는 없긴 해.’
확실치 않을 때는 다양한 수종을 가져다 심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그렇다고 해도 종류당 백 그루를 넘게 심어야 수익이 나긴 할 것이다. 결국은 대량으로 사서 관리하는 게 중점이었으니까. 어떤 것을, 얼마나 심어야 하나. 그 고민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중이었다.
어차피 자료만 보고 판단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마르티안이 엘에게 말했다.
“가보는 게 나쁘진 않을 거 같으니까, 오늘은 쭉 숲을 시찰하는 거로 하자.”
론은 주로 마르티안의 침실에서 지냈다. 마르티안이 있을 때는 잡다한 심부름을 하거나 애첩으로 그녀의 뜻에 따라 움직였지만 마르티안이 외부로 나가있을 때는 침실 안을 정리하거나 목욕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외부에서 오래 일정이 있을 때는, 그녀가 돌아올 때 바로 목욕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준비를 해두었다. 그녀는 피곤한 날에 뜨거운 물로 몸을 푸는 걸 좋아했고 향유를 데워서 마사지를 받는 것도 좋아했으니까.
론은 욕조와 마사지용 테이블을 깨끗하게 닦아내고는 욕실 안을 정리했다. 정리해야 하는 도구 중에는 마르티안이 사용하는 관장기나 매질 도구 같은 것도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다시 한번 깨끗하게 닦아내고는 한쪽에 기울여 세워서 잘 마르도록 두었다. 그다음에 깨끗하게 해야 할 건 론 자신의 몸이었다. 여기에 있는 것들 중에 마르티안이 가장 흔하게, 가장 쉽게 손을 대는 건 그의 몸이었으니까.
론은 몸 안팎을 깨끗하게 씻어내고는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젖은 머리카락이 비죽비죽하게 솟아올랐다. 확실히 백작가에서 관리받던 때에 비해서는 몰골이 좀 초라하긴 했다. 론은 서랍장 맨 아래에서 마르티안에게 받은 향유를 꺼내 목덜미와 머리 끝에 조금 발랐다. 어차피 목욕시중을 들다 보면 다시 씻고 젖는 일이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좋은 향이 나는 상태로 있고 싶었으니까.
그가 가볍고 얇은 침실용 옷으로 갈아입고 침실로 나왔을 때였다. 바깥 응접실에서 소란스러운 기색이 넘어왔다. 그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마르티안과 엘 도안이 나가 있는 상황에서 자작의 응접실까지 올라올 만한 사람은 집사 정도였는데, 집사가 저택 내에서 소란을 피울 이유는 전혀 없었다. 론이 의아하게 여기며 그쪽을 보았을 때 침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연 건 휴이 세블로아드였다. 자작가의 집사가 급하게 따라 들어오며 곤란하단 얼굴을 했다. 마르티안이 없는 상황에서 휴이가 자작가를 찾아왔다는 것도 곤란한 일이었는데, 침실에는 론밖에 없었다.
귀족의 침실에 애첩이 머무르는 건 크게 특이한 일도 아니었지만 휴이는 유난스러운 구석이 있었고 특히나 론을 참기 어려워했다. 집사는 이 상황을 문제없이 정리하기 위해서 휴이를 어떻게든 내보내려 애썼다.
“백작님, 이곳은 빈 침실입니다. 자작님이 오실 동안 응접실이 계시면 저희가 기별을 넣어서…….”
“빈 침실? 집사 눈에는 저자는 없는 거로 보이는 모양이야? 아니면 내 눈에만 보이나?”
그가 예민하게 물었다. 물론 집사가 말한 ‘빈 침실’이라는 소리는 침실의 주인이 없다는 뜻이었다. 주인이 없는 침실에 함부로 들어가는 있는 건 그리 예의 있는 태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휴이는 그런 일반적인 예의보다는 자신의 취급과 애첩의 취급이 다르다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르티안의 곁에서 늘 개의 자리를 보장받으며 살아온 애첩. 그는 빈 침실에 있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는 움켜쥐고 온 종이봉투를 테이블에 던지듯 내려놓고는 론을 노려보았다. 살결이 비치는 얇은 옷은 누가 보아도 벗기기 쉽게 만들어진 침실용 옷이었다.
“자작의 남편인 내가, 자작의 침실에서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지? 이게 틀린 소린가?”
그는 론을 노려보며 집사에게 말했다. 답을 원해서 한 물음이 아니라 론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휴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이었으니까. 마르티안의 법적 배우자. 그 지위만이 그에게 남아있는 자리였다. 그는 말을 이었다.
“마르티안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여기서 기다리겠다. 그렇게 알고, 준비해.”
그가 턱짓으로 론을 가리켰다. 지금 당장 여기에서 내보내라는 뜻이었다. 집사는 곤란한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마르티안이 없는 상황에서 휴이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기 어려웠다.
론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제가 백작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론은 예의를 갖춰 말했다. 어쨌든 둘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지만 론은 이제 그가 부럽지 않았다. 그가 마르티안에게 끊임없이 버림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백작에게는 수많은 위치와 권력과 재력이 있었지만 론에게는 있는 재주라고는 버티고 견디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것이 지금의 이 자리였다. 론은 그가 자신의 자리를 무시하듯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휴이는 론의 사과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마치 말을 섞을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는 집사에게 말했다.
“빨리 치워. 어차피 애첩은 밤에 다리나 벌리는 용도로 데려다 놓는 거니까.”
내뱉는 말들로 악의가 담겼다. 그는 늘 그런 식으로 론의 노력들을 폄하했다.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해서 다리를 벌리는 것처럼. 론은 그것에 울컥해서 입을 열었다.
“백작님께서도, 응접실로 나가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렇게 함부로 들어온 것을 알게 되면 주인님께서 더 싫어하실 테니까요.”
“……뭐?”
“백작님이 함부로 들어온 걸 알면 제 주인님께서 싫어하실 거라고, 욱!”
론은 그대로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주먹으로 맞은 얼굴을 움켜쥐고 신음을 흘리자, 휴이가 그대로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백작님! 진정 하시, 으헉!”
집사가 붙잡으려 들었지만 휴이의 손길에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졌다. 휴이는 죽일 듯한 기세로 론을 짓밟았다. 퍽퍽하고 발로 차는 소리가 험악하게 울렸다.
집사는 몸을 일으켜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론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집사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하인들을 서넛 불러서 다시 침실로 뛰어 올라갔다. 휴이를 뜯어말리기 위해서였다.
침실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모두 눈앞의 상황에 탄식을 삼켰다. 론의 몰골은 이미 엉망이었다. 입은 옷은 찢어지고 말려 올라갔고 드러난 살이 이미 멍이 들어 검붉고 퍼렜다.
휴이가 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억지로 얼굴을 들게 했다. 얼굴 역시 멍으로 부어올라 엉망이다. 휴이는 그대로 론의 뺨을 손으로 내리쳤다.
“누구 앞에서 지껄이는지도 모르고. 주인님? 하…….”
퍼억에 가까운 소리가 몇 번 이어졌다. 입 안에서 피가 흐르고 떨어지자 집사가 버럭 하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 하고 있냐고 말을 듣고 나서야 하인들이 휴이를 붙잡았다.
그는 억지로 뒤로 밀려나면서도 분을 못 이기는 것처럼 끝까지 발로 론을 걷어찼다. 하인 하나가 휘젓는 휴이의 팔꿈치에 맞아 뒤로 나뒹굴었다. 어쨌든 론에게서 그를 떼어낼 수 있어서 다행이긴 했다.
씩씩거리는 휴이의 앞으로 집사가 나섰다.
“백작님, 무례를 저질러 죄송합니다. 이제 그만하시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자작님에게는 연락을 넣어 뒀으니 곧 오실 겁니다. 상황을 정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면…….”
집사가 말하는 바는 한가지였다. 마르티안이 돌아오기 전에 자리를 정리할 수 있게 진정해 달라. 그건 휴이에게도 필요한 제안이었다. 그녀는 휴이가 이렇게 행동한 것을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용서하지 않는다. 그것에 또 마음이 울컥한다. 휴이는 숨을 천천히 몰아쉬었다.
그가 놓으라고 말하자 팔과 어깨를 붙잡고 있는 하인들을 주춤 뒤로 물러섰다. 휴이는 참기로 했다. 머릿속을 터트릴 것처럼 휘몰아치던 분노가 아직 덜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참을 만은 했다. 아니 참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이 들고 온 서류 봉투가 눈에 밟혀서 참았다.
“알겠으니까, 빨리……정리해.”
그는 엉망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집사는 안도의 한숨을 뱉어내고는 하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빨리 론을 부축해서 내보내라는 뜻이었다. 상황이 적당했다면 모를까 이 지경이 되었으니 마르티안이 오기 전에 빨리 정리해야 했다.
하인 둘이 론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두들겨 맞은 뺨이 퉁퉁 부은 데다가 피까지 흘러서 얼굴이 엉망이었다. 쿨럭하는 기침마다 핏물이 터졌다.
이가 나간 거 같진 않으니 아마도 입 안의 살이 터진 모양이었다. 발목 한 쪽은 삐끗한 것인지 아니면 부러진 것인지 잘 쓰질 못했다.
하인은 속으로 귀족 애첩질도 해먹을 짓이 못 된다고 생각하며 론을 업었다. 론은 다리 한쪽이 스치거나 눌릴 때마다 몸을 뒤틀며 신음을 뱉어냈다. 집사가 그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다들 정리되었으니 이만 나가고. 아, 바로 의사 불러서 보이고.”
하인들이 알겠다며 대답한다. 다들 이 상황과 이렇게 만든 백작에게 완전히 질린 얼굴이었다. 배우자의 애첩을 두들겨 패서 이런 상태로 만들다니. 밖으로 알려졌다는 웃음거리가 될 만한 추문이었다.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집사는 한숨 같은 탄식을 속으로 삼켰다.
휴이는 주변의 반응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로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봉투만 보았다. 뭐 대단한 서류라도 되는 건가. 집사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하인들이 전부 물러난 것을 확인했다.
‘자작님이 오기 전까지 다들 빠릿빠릿 움직여 줘야 할 텐데.’
집사는 잠시 걱정을 했다. 당장 문제가 될 건 마르티안의 분노였으니까. 그녀는 한번 화가 치밀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휴이 역시 비슷한 타입이었다. 평소에는 전혀 그럴 거 같지 않게 행동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매우 충동적이었다.
아마도 둘 다 극도의 화를 경험한 일이 드물어서 그런 게 아닐까. 사람이 살면서 극도의 화를 경험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긴 했지만. 집사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휴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집사는 짧게 탄식했다. 휴이는 울고 있었다. 소리는 거의 내지 않았지만 테이블을 적신 눈물 자국이 이미 한가득이다. 두들겨 팬 사람이 이렇게 운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지만, 집사는 그의 울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마르티안이 그를 대하는 걸 보면, 그의 이런 태도들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이제 그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었으니까.
집사는 결혼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마르티안이 론과 시간을 보내느라 그를 내내 기다리게 만들었을 때였다. 그때에도 휴이는 울며 원망을 쏟아냈다.
‘그러게 왜 결혼을 해서는…….’
집사는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함부로 입 밖으로는 내긴 어려운 말이었지만 생각이 그렇게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한숨만 속으로 삼키고는 손수건과 물을 테이블에 올렸다. 자리를 피해 주는 게 맞는 상황이었다. 그는 조용히 침실에서 물러났다.
휴이는 혼자 남은 침실에서 몇 번을 더 울었다. 단순히 서럽고 비참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마르티안과 만들었던 이 관계가 이제는 끝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들고 온 건 이혼서류였으니까. 마르티안의 사인을 받아서 제출을 하면 모든 것이 다 완벽하게 끝나는, 모든 것이 정리되어 적혀있는 종이들이었다.
관계의 끝을 준비하는 건 외롭고 서러웠다. 매일 외면 받고 매일 울며 바닥을 기어도 그래도 그녀의 곁에 있고 싶다.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는 것들이 두렵고 무서웠다. 끝내고 싶지 않았다.
휴이는 이 순간에도 이것들을 마르티안에게 건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아니야. 이대로는…… 안 돼, 놔야 해.’
그는 서류 봉투를 움켜쥐며 눈물을 쏟아냈다. 한때는 결혼이 그녀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와 결혼함으로써 마르티안에게는 많은 것들이 생겼으니까. 수많은 금전적인 이득과 지위 상승이 뒤따랐다.
게다가 그는 그녀가 즐길만한 몸과 성향도 갖추고 있었다. 휴이는 그 모든 장점이 언젠가 마르티안을 만족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고집과도 같아서, 바닥을 기면서 론을 질투하고 그녀의 냉정한 취급에 매일 울면서도 의심하지 않았던 믿음이었다.
“내 뜻대로 기를 여지가 조금도 없잖아요. 근데 어떻게 그 애가 저의 아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애를 낳아준 거라면 모를까.”
마르티안은 그렇게 말했다. 휴이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준 것들이 없었다. 그저 빼앗은 것들이 있었을 뿐.
휴이는 잘못을 돌리기 위해 애썼지만 이제 와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녀의 모든 불행의 원천은 자기 자신에게 있었으니까. 그녀에게서 자신을 잘라내야만 이 모든 상황이 끝날 수 있었다.
그는 이혼 서류를 준비하며 아이에 대한 모든 권한을 포기했다. 그래야 그녀가 그 아이를 자작가에 두고 기를 테니까. 휴이는 그 아이가 사랑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류는 그녀가 자작가로 떠났을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복잡한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후계에 대한 권한을 모두 넘기려다 보니 서류의 양은 비대해졌다.
그러나 그 서류 준비의 과정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이걸 건네주기로 마음먹는 것 그 자체였다. 마르티안의 성격상 다시는 그를 찾지 않을 테니까.
애써 참으려고 했던 눈물이 또다시 쏟아졌다.
* * *
“그러니까, 백작이 침실에 있던 론을 폭행했다고?”
누워 있던 론을 보며 마르티안이 집사에게 말했다. 집사는 한숨을 내뱉듯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마르티안이 예상보다 너무 일찍 나타난 탓에, 그리고 하인들이 한 소리를 다 들은 탓에, 일을 조용히 숨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론을 내려 보다가 짜증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옷은 다 뜯어졌고 온몸에 멍이 들었으며, 특히 얼굴은 한쪽이 형태가 뭉개지도록 부어있었다. 발목 한쪽도 완전히 비틀려서 퉁퉁 부풀었다. 급하게 도착한 의사가 방 안에 마르티안이 있자 조금 긴장한 채 인사했다. 일개 하인의 치료에 자작이 대동하여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그녀는 의사에게 잘 치료하라고 말하고는 그 방에서 나왔다. 집사가 급하게 그녀의 뒤를 따라왔다. 마르티안은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애 낳고 이혼하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고 제멋대로 구는 건지.”
마르티안이 백작가를 떠나 있은 지가 열 달이 넘었다. 그동안 휴이와 얼굴을 맞댄 건 그가 자작가를 방문했던 두 번이 전부였다. 그때도 그는 마르티안의 눈치만 살피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며칠 버티지 못하고 돌아갔다.
“아니면, 또 몸이 달아서 미치기라도 했던가.”
이기적이고 자기 욕망을 좇는 데에 안달 난 몸은 늘 그런 식이었다. 쏟아내듯 보내던 청혼도 그랬고 결혼도 그랬다. 그러니 지금도 그런 것이 뻔했다. 이런 식으로 찾아와 론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그녀의 화가 쏟아지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맞고 학대당하고 괴롭혀지는 것을 겪고 싶어서.
화가 치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녀는 참았다. 그렇게 굴어보았자 상대의 의도대로 휘둘리는 것뿐이었으니까. 휘둘리는 삶. 마르티안은 아이를 낳은 이후에 그런 것들을 뼈저리게 느꼈다.
욕망과 감정에 따라 한 선택은 이제 와 아무리 의미를 부여하려 해도 후회가 될 뿐이었다. 그녀는 집사에게 말했다.
“서재에 있을 테니까 다과 준비해서 올려. 백작님은 그 뒤에 모셔오고.”
마르티안은 휴이가 자작가에 있는 동안에는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휴이와 함께 음식을 먹어야 하는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때 나오는 음식들에도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휴이가 갑작스럽게 닥치는 오늘과 같은 날은 자작가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것이다. 주방장인 한나는 집사의 이야기를 듣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저녁엔 양고기찜을 하려고 했는데, 다음으로 미뤄야겠네요.”
고기를 너무 오래 재워두면 별로라며 그녀가 투덜댄다. 그녀는 휴이를 좋게 보지 않았다. 마르티안이 그와 있으면서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었으니까.
그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선대 자작 부부가 죽고 난 이후 갖은 고생을 하며 버텼던 과거를 생각해서라도, 마르티안은 좀 더 행복해야 했다.
거기에 백작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마저 의미 없어지는 관계라니 그런 관계는 아무 쓸모가 없는 법이었으니까. 좋은 관계는 맛있는 것이 더 맛있어진다. 삶을 살아가는 오감이 풍부해지고 더 즐거워지기 마련이었다.
백작과의 관계는 마르티안에게 그런 걸 조금도 선사하지 못했다. 물질적으로 훨씬 더 풍요롭고 다채로운 것들을 제공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한나는 한쪽 찬장에 보관해둔 쿠키 박스를 꺼냈다. 간식용으로 만든 쿠키는 단순한 모양새였다. 그녀는 버터 쿠키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그녀의 입으로 작게 한숨이 흘러나온다.
“다과는 간단하게 내드릴게요. 어차피 다 남을 테니까.”
휴이가 자작가의 서재에 들어섰을 때, 안에는 이미 다과가 준비된 상태였다. 마르티안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가 의례적으로 일어섰다. 휴이는 그녀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는 잠시 마르티안의 눈치를 보았다. 어쨌든 그는 그녀의 애첩을 얼굴이 뭉개지게 패놓은 상태였다. 생각했던 변명들을 몇 번 속으로 중얼댔을 때였다. 마르티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온 용건이 뭔가요?”
그녀는 그가 한 짓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건 화내지 않는 게 아니라, 화낼 가치도 없다는 태도였다. 처음 휴이가 론의 뺨을 후려치고 밤새 서성대며 그녀를 기다렸을 때도 그녀는 이런 태도로 휴이를 대했다. 아니 그때에는 그래도 조금 더, 감정적이었고 조금 더, 긍정적이었다.
휴이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입술을 꾹 깨물고 참았다. 침묵이 길어졌다. 마르티안은 자신의 차를 비우고는 몸을 일으키려 들었다. 그제야 그는 들고 온 것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혼을, 할 수 있게, 했어.”
예상치 못한 말에 마르티안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혼이라니.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자 휴이가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이는 당신이 기를 수 있게 했어. 아이에게 있는 후계권은 그대로 살아있겠지만 공작가나 내가 아이의 교육에 간섭할 수 없도록 정리했고. 법적으로 좀 복잡해서 서류 양이 많지만……. 그래도 문제 되거나 이상한 부분은 없을 거야. 당신이 받아야 하는 재산들에 대해서도 지불하도록 되어 있고…….”
휴이는 봉투를 열어 서류 제일 위에 있는 종이를 꺼냈다. 이혼합의서였다. 마르티안의 사인과 인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다 완성된 서류였다.
그는 가능한 그 종이를 무심히 전달하려 노력했지만 손이 조금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에, 사인과 인장을 찍어서 당신이 제출하면 돼. 분쟁이 생길 만한 것들은 이미 당신 명의로 돌렸어. 권한 이임서도 전부 들어있고 내 사인과 백작가 인장은 전부 찍혀 있으니까 더 필요한 건 없을 거야.”
“지금 뭐 하자는 거죠? 이혼? 당신의 아버지가 그렇게 해준다고 하던가요?”
“마르티안.”
“그 아이는 대단한 공작가의 후계일 텐데요.”
“할 수 있어. 내가, 내 자식에 대한 권한을 포기하는 거니까. 나라는 연결고리 없어지면 공작가에서는 아이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까다로워져. 내가 공작이 된 건 아니라서 아직 그 아이에겐 공작가 후계권이 생긴 게 아니니까……. 물론 우회적으로라도 접근하려 하시겠지. 그건, 내가 어떻게든 막을게.”
마르티안은 그제야 자신이 들은 소리를 한 번 더 곱씹었다. 이혼을 하는데, 후계에 대한 권한을 온전히 그녀에게 돌려주는 이혼을 하겠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그녀의 딸은 이혼을 한다고 해도 휴이의 첫 자식일 테니까. 그 말은 휴이가 재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된다고 해도 그 아이는 작위에 대한 우선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보통은 후계가 태어난 이후에는 이혼하는 일은 드물었고 혹시 이혼하더라도 아이는 반드시 가문에 귀속시키려 들기 마련이다.
마르티안은 극도로 불평등한 조건을 들고 온 그가 의심스러웠다. 그는 늘 약아빠지게 굴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녀를 휘둘렀으니까.
“아이도 주고 이혼도 해주겠다 이건가요? 앞으로 아이에게 어떤 권한도 행사하지 않을 거고 공작가에서 혹시라도 강제적인 행사가 있다면 그것도 막아주고?”
그래, 맞아. 그가 대답했다. 마르티안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그러지 그랬어요. 애초에 내가 아서 우드랑 결혼한다고 할 때, 그 난리를 치지 말고 얌전히 있던가요. 이제 와서 애를 주겠다니……. 그럼 내가 마냥 좋아하기라도 할 거 같았어요?”
가진 것으로 애정을 사려는 태도는 휴이가 늘 해오던 짓이다. 마르티안은 그의 뻔한 태도를 지적했다. 휴이의 눈가가 붉어진다. 이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그것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혼자 슬프고, 혼자 괴롭고, 혼자 고통스럽다는 것처럼 매번 저런 꼴을 하는 게 지겨웠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을 닮은 애를 내가 여기서 예뻐했을 거 같아요? 이런 거로 마음 돌리려는 거면 그만해요. 그 애는 애초부터 내 애도 아니었고 전혀 정이 안 갔으니까.”
“내가 잘못했다는 거 알아. 그래서 나는 정말 진심으로, 당신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래서 이혼할 수 있게…….”
마르티안은 화를 참지 못하고 그가 가져온 서류봉투를 그에게 밀어버렸다. 그건 지금껏 들은 것 중에 가장 기만적인 소리였다.
“이혼? 깔끔하게? 하,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였으면 애초에 했어야지. 애를 담보 잡아서 다시 상황을 어떻게 돌려보려는 거잖아? 그만하라고! 그딴 건 이제 지겨우니까!”
그녀가 그대로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휴이가 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무릎으로 기어 그녀의 바지를 붙잡았다. 그의 뺨으로 눈물이 가득 떨어졌다.
“알아요, 주인님. 이렇게 이혼, 흐으……. 이혼하고 나면 주인님이 절 다시 보지 않으실 거, 흐으, 흐으읍, 다시는 모, 못 만날 거라는 것도 아는데……주인님 힘들게 만드는 거, 흐어, 흐엉, 이제 그만, 하려고…….”
“오로지 날 위해서 준비해왔다고?”
마르티안이 그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움켜쥐고는 그대로 뺨을 내리쳤다. 철썩하는 소리가 여러 번 나자 뺨이 벌겋게 부풀었다.
흐윽, 흐어, 하고 우는 소리가 크게 났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쥔 채 몇 번을 흔들고는 그대로 다시 뺨을 내리쳤다. 휴이의 뺨이 퉁퉁 붓기 시작했을 때에야 매질이 멈췄다.
마르티안은 움켜쥔 것을 놓고는 헐떡이며 우는 휴이의 가랑이 사이를 발로 눌렀다. 흐으, 흐으윽. 튀는 신음과 함께 그가 몸을 움츠린다. 마르티안은 허벅지를 크게 짓밟고는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얼굴을 들게 했다.
“다리, 똑바로 벌려야지.”
“흐으. 흐으……, 주인님.”
그가 주춤대며 허벅지를 벌리자 빠듯하게 부푼 성기가 바지 아래로 드러났다. 마르티안은 그것을 발로 꾹 짓눌렀다. 끄으, 흐으. 신음이 튀어 오르며 그의 몸이 떨렸다. 마르티안이 물었다.
“날 위해서 이혼하겠다고? 그래? 그럼 내가 널 오늘부터 개처럼 대해준다고 하면?”
그녀는 휴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소파에 다시 앉았다. 우는 얼굴이 혼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마르티안은 거짓말을 일삼는 개에게 말했다. 폭력과 가학으로 인해 그의 아래는 이미 젖고 있었다.
“앞으로 너를 개로 학대하고 짓밟아준다고 해도, 그래도 이혼할 거야? 그래도 저 서류를 넘길래?”
“흐으, 주인님…….”
성기를 짓밟던 그녀의 발이 그의 회음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내 그녀의 발등이 휴이의 고환과 회음부를 퍽 올려 찼다. 흐으! 흐으, 흐으…… 움찔 튀어 오른 몸이 고통에 덜덜 떨었다.
마르티안은 그의 윗옷 목덜미에 손을 걸어 그대로 잡아당겼다. 부드럽고 연약한 고급스러운 천은 찢어지듯 늘어졌다.
흐늘거리는 옷 사이로 잔뜩 부푼 유두가 드러났다. 이전과 다름없이 천박한 자국과 크기를 가진 유두였다.
“아직도 매일 이 짓거리 하나 보네.”
그녀는 휴이의 유두를 움켜쥐고는 거칠게 잡아당겼다. 빳빳하게 선 것은 잡기 좋게 도톰했다. 휴이가 입술을 깨물고는 자세를 버티려 했다. 늘어난 살덩이는 금세 붉어졌다.
마르티안은 개의 눈이 기대와 두려움으로 잔뜩 떨리는 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학대받지 못한 개는 잔뜩 굶주려 있었다.
마르티안의 발이 회음부와 고환을 아무렇게다 툭툭 올려 차는 것을 얼마 견디지 못하고 그는 금세 사정했다. 허리가 바들거리며 떨리며 앞섶이 얼룩처럼 젖었다. 그녀는 학대하던 것을 멈추고는 웃었다.
“매일 이렇게 굴어줄게. 개새끼처럼 끌고 다니는 거, 그게 네가 원하는 거잖아. 물론 네가 날 위해서 저걸 넘기면 다시 너에게 이렇게 구는 일은 없을 거야. 이혼을 하면 너랑 다시는 보지 않을 거니까. 이제 지긋지긋하거든.”
“흐으, 주인님……. 흐어, 흐으…….”
휴이는 그녀의 바지를 움켜쥐고는 서럽게 울었다. 그녀가 내민 것은 그가 여태껏 기다려오고 바라왔던 것이었다. 마르티안은 그에게, 네가 바라는 것을 주어도 이 결혼을 버릴 수 있냐고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위해 이혼하려고 한다는 말이 정말 그런 거냐고. 천박한 몸은 가학을 즐기며 또다시 흥분하고 젖고 있었다.
휴이는 울며 쏟아내듯 주인님이라는 말을 했다. 몸을 숙여 그녀의 발에 입을 맞췄다.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견딜 수 없다. 자신을 비웃으며 주는 이 부스러기 같은 감각이라도 좋으니, 그녀의 곁에서 개로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애초부터 없었던 자리였다. 그에게 주어진 자리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
없는 자리를 놓고 내 자리라며 외치고는 자신의 옆에 그녀를 묶어둔 셈이었다. 주인이 개를 소유할 수는 있어도 개가 주인을 소유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태껏 개가 될 수 없었고, 모든 기회를 다 놓친 것이다.
“흐으, 흐윽……. 이혼 서류, 가져가셔서 확인하시면, 흐으……흐윽, 하시고 처리하시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쏟아진다. 휴이는 말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다시 엉엉 울었다. 몇 번이고 다각도로 검토한 서류에는 하자가 없었다. 완벽하게, 깔끔하게, 이혼하기 할 수 있도록 공을 들여 준비했으니까.
그 모든 서류의 목표는 한 가지였다. 마르티안이 그와 관련된 모든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는 것.
그건 분명 자기 기만적인 서류였다. 휴이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불행해지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충돌하는 욕망은 이중적이었고 그래서 더욱 고통스러웠다. 휴이는 무릎으로 기어서 바닥으로 떨어져 있던 서류 봉투를 다시 가져왔다.
눈물이 자꾸 나서 앞이 자꾸 흐릿했다. 그것을 붙잡고 오랫동안 울고 싶었지만 마르티안은 그런 것을 지루하게 여길 게 분명했다. 그의 눈물은 그녀에겐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서류 봉투를 그녀의 허벅지 위에 놓았다. 봉투는 눈물로 젖어서 여기저기 얼룩져 있었지만 워낙 두툼한 재질이라 그 안에 담겨있는 서류가 못쓰게 되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것에서 손을 떼어내고는 처벌을 기다리는 것처럼 마르티안을 올려보았다. 마음이 견딜 수 없어서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르티안이 서류봉투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휴이가 움찔 긴장한 채로 그녀를 따라 시선을 더 들었다. 지나치게 긴장한 얼굴에는 예쁨받을 거란 기대는 조금도 없었다. 당장 쫓겨날 것을 예상하고는 그저 떨면서 기다리는 표정. 그건 마르티안이 그에게 가르친 창관에서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툭, 그의 무릎을 발로 차고는 말했다.
“이만 돌아가세요, 백작님.”
* * *
마르티안은 집사를 불러 서류를 검토하게 했다. 집사 역시 제국법에 통달한 사람은 아닌지라 그것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집사는 그런 사람을 섭외하고는 두 사람의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서류를 다시 베꼈다. 신변이 노출되는 내용은 빈 칸으로 처리한 서류가 작성되고, 그걸 받은 전문가가 검토를 끝내기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휴이는 서류봉투를 건네고 바로 돌아갔고 론은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마르티안은 실로 오랜만에 혼자 보내는 시간을 오래 가졌다.
유모는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아이를 데려놓고 머무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르티안은 유모의 대동 하에 한 시간 안팎으로 아이를 보았고 한 번씩은 직접 안아보았다. 그건 이전에 했던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감흥 없이 보내던 때와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아이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이의 모습은 예전과는 달랐다. 어느 날에는 휴이와 똑같아 보였지만 어느 날에는 그녀를 더 닮은 거 같기도 했고, 또 어느 날에는 그녀의 어머니 선대 자작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그건 그녀의 핏줄이 아이에게 흐른다는 뜻이었다. 아이에서 그런 흔적들을 찾을 때마다 그녀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유모는 웃으며 말했다.
“아이는 원래 계속 얼굴이 바뀐답니다. 어릴 때에는 이렇게 얼굴만 봐도 신기하고 즐겁죠.”
“얼굴이 계속 바뀌는 건지는 몰랐어. 그냥 태어날 때와 비슷하게 크는 줄 알았는데…….”
“자라면서 얼마나 많이 달라지는데요. 그런 걸 보는 게 아이를 돌보는 즐거움이기도 하구요.”
유모가 아이를 안고 있는 마르티안의 자세를 조금 더 고쳐주었다. 토실토실하고 매끄러운 뺨이 그녀의 몸에 기대듯이 살짝 눌렸다. 칭얼거리려던 아이는 그녀에게 기댄 채로 다시 얌전해졌다.
마르티안은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휴이를 그대로 닮은 부드러운 금발이었지만 이전만큼 보기 싫진 않았다.
유모는 마르티안과 아이를 뿌듯하게 보았다. 아직은 어색한 사이였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무엇보다 마르티안이 아이에게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얼굴이 달라진다는 걸 알아챈 것도 아주 긍정적이었다.
‘조금은 마음이 나아지셨나 보네. 아이를 살피시는 걸 보면.’
유모는 마르티안이 자작가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다. 지치고 피곤한 표정으로 마차에서 내린 뒤, 그냥 쉬고 싶다는 이야기만 하고 올라갔다. 같이 데려온 아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였다.
유모는 그녀가 우울증세를 겪고 있다는 걸 금세 알았다. 아이를 낳은 후 우울해지는 산모들은 상당히 많았으니까.
그리고 마르티안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더 지쳐 있었다. 자작가에 온 뒤 삼 개월동안 그녀는 아이를 보려 하지 않았으니까. 유모는 부모가 아이를 자주 보아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게 했다고 믿는 사람이었지만, 부모가 불행한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르티안은 스스로를 먼저 치유해야 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유모는 그동안 모녀의 간격이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이리저리 애를 썼다.
‘여러모로 다행이야.’
마르티안은 이제 자신의 아이에게 마음을 열고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유모는 두 사람을 보며 살짝 웃었다.
그녀는 자신의 품에 안긴 아이를 한참 보았다. 따듯하고 작은 몸이 한 번씩 꾸물대며 움직였다.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아이의 뺨을 만졌다. 매끈하고 통통한 뺨은 아주 부드러웠다.
순간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한다. 그녀는 머릿속에 있는 론의 모습을 흉내를 내며 아이를 토닥였다. 아이는 잠깐 얌전해졌다가 이내 다시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불편해하는 거 같은데?”
“아, 그럴 거에요. 이제 졸릴 때가 되었거든요.”
“졸린다고 이래? 그냥 잠들면 될 텐데…….”
“졸릴 땐 자면 된다는 걸 모르니까요. 그래서 졸린 감각이 마냥 답답하고 짜증 나는 거예요.”
아이가 점점 더 짜증을 내며 버둥대기 시작했다. 유모가 아이를 받아 안았다. 찡얼대는 아이는 짜증어린 울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건 마르티안이 늘 질색하며 싫어하던 그 소리였다. 유모가 아이를 토닥이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너무 시끄러우시죠.”
그 말에 마르티안이 고개를 저었다. 전에는 화가 치밀던 울음소리가 지금은 완전히 다르게 들렸다. 졸리면 자면 된다는 것도 모른다니. 그 무지함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했다. 작은 몸은 하나하나 배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유모. 그럼 이런 어린 아이들은 다 모르는 거야? 배고픈 줄도 모르고?”
“네, 그래서 애들이 그렇게 자주 우는 거랍니다. 불편한 감각만 있으니까요. 배가 고프고, 졸리고 그런 것들이 전부 불편하게만 느껴지니까요.”
“그럼 그런 걸 어떻게 배우는데?”
“자라면서 배우죠. 매일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이 다 남으니까요. 자작님께서 아이를 자주 곁에 두시면 곧 자작님을 따라서 행동하게 될 거에요. 그때는 더 귀엽답니다.”
유모는 웃으며 대답했다. 질문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었다. 알면 알수록 더 빨리, 더 깊게 사랑에 빠지게 되니까. 유모는 잠투정을 하는 아이를 달래며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칭얼대며 짜증을 내던 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마르티안은 잠든 아이를 보았다. 그건 이제 짐이 아니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백짓장 같은 아이는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배우며 자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찐빵 같은 눌린 얼굴이 놀랍도록, 사랑스러웠다. 그건 기이한 감각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은 막이 걷히는 것처럼 눈앞의 아이가 다르게 느껴졌으니까. 이것도 강제된 걸까, 마르티안은 그런 생각을 했다. 출산한 몸이 젖을 내는 것처럼 이 감정도 어떤 법칙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이제 내 아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그녀는 휴이가 준 이혼 서류를 떠올렸다. 그 서류를 검토한 이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리며 지나치게 한쪽에게 부당한 서류라고 말했다. 이 서류로 이혼을 했다가는 사기를 당하는 거나 다름없다는 투였다.
재산, 후계. 핵심적인 두 사안에 대해 모두 한 쪽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한쪽에 불리하게 작성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말한 불리한 쪽이 바로 휴이였다.
“아이가 잠들면 여기에 두고 갈까요?”
마르티안이 계속 아이를 보자 유모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가 깨었을 때 능숙하게 달랠 자신이 없었으니까. 이만 돌아가서 쉬라고 말하는 소리에 유모가 아이가 깨면 다시 오겠다는 소리를 했다. 마르티안은 잠시 머뭇댔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론은 한 달 넘도록 부목을 댄 채 목발을 집고 다녀야 했다. 발목을 접지른 것도 있었지만 발등에 금이 가서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론은 4주 가까이를 마냥 쉬었다.
마르티안의 시중을 들려면 저택의 꼭대기 층에서 주방이 있는 1층을 제법 자주 오가야 했는데 그의 발 상태로는 그걸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주방에서 차를 끓이거나 유모의 부탁으로 잠시 아이를 보는 정도였다.
그동안 마르티안은 론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골절은 최대한 무리하지 않고 쉬는 게 답이었으니까. 애첩으로 그녀의 상대를 하다 보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게 다반사였다. 론은 최대한 열심히 제 몸을 챙겼다.
하지만 부목을 떼어내고 나서도 그녀가 좀 더 쉬라고 하며 한참을 부르지 않자 론은 이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유모는 아이를 챙기는 그를 보면서 지나가는 것처럼 말했다. 자작님이 드디어 아이를 예뻐하기 시작한다는 소리였다.
론은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잘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일전에 그녀가 화를 내며 했던 이야기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여기에 있었으니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 근데 너는 알잖아. 이 애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론, 너는 다 알 텐데.”
그때나 지금이나 론은 그녀가 아이에게 애정을 가지길 바랐다. 어쨌든 아이는 마르티안의 아이였으니까. 그녀의 아이여서 론은 그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론은 마르티안의 변화에 불안을 느꼈다. 그녀는 아이에게서 휴이를 떠올리며 싫어했으니까. 아이에게 관심을 두고 예뻐하게 된 이유가 혹시라도…….
“그만 생각하자. 주제넘어.”
론은 소리 내 중얼댔다. 이건 주인의 영역이지 그의 영역이 아니다. 더는 주제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생각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만약 휴이에 대한 마르티안의 마음이 달라진 거라면.
그건 분명 나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결혼 생활을 지속할 거라면 이런 식으로 감정을 갉아내며 지내는 것보다 좋게 지내는 게 나았다. 론은 마르티안이 행복한 방향이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한번 일렁인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곁에, 곁에 있을 수 있기만 하면…….’
그는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제 그에게는 개의 자리가 아니라도 제법 유용한 자리들이 생겼으니까. 차를 훌륭하게 끓여낼 수 있게 되었고, 손님들을 두고 가볍게 응대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다리나 벌리고 잡심부름이나 하던 때와는 달랐다.
론은 마르티안이 부를 때를 기다리며 매일 아침이면 온몸을 씻었다.
마르티안이 론을 부른 건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였다. 그는 올라가자마자 휴이가 왔던 날의 태도에 대해 추궁당하고, 엉덩이와 허벅지가 피멍이 들도록 맞았다. 함부로 나서서 몸을 다치게 했다는 이유였다. 매질은 이전과 똑같이 몹시 고통스럽고 아팠다.
마르티안은 엉망이 된 그의 엉덩이를 회초리로 가볍게 툭툭 쳤다.
“전에 말했지. 앞으로 얻어맞을 일 만들지 말라고.”
“으, 흐읏, 네, 흡, 주인님. 흐읍.”
피멍이 든 자국 위로 매가 다시 떨어졌다. 론은 테이블을 꽉 움켜쥐고는 어떻게든 자세를 버티려고 노력했다. 매는 그의 엉덩이와 허벅지로 이어졌다. 결국 몸이 반쯤 주저앉으며 무릎이 굽었다. 그는 급하게 다시 자세를 잡았다. 거친 매는 똑같은 곳에 떨어졌다.
론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흐으, 흐읍.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애써 뱉어낸 말이 고통으로 인해 덜덜 떨렸다.
“론, 그냥 자작가에 처박혀 있을래? 이따위로 굴면 내가 널 어떻게 데리고 다녀?”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다시는 이런 일 없게……흐읍!”
무게감이 있는 회초리는 살 아래까지 충격을 전달했다. 론은 자세를 무너트리지 않으려 허겁지겁 테이블을 고쳐 잡았다. 그는 마르티안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백작가는 이곳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위계에 민감한 곳이었다.
“론, 문제가 생길 거 같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어?”
“……어떻게든 그 상황을 피하고, 주인님께 말하라고…….”
론은 그 자리에서 백작을 도발하는 게 아니라 자리를 피했어야 옳았고, 맞으면서 버티는 게 아니라 도망쳤어야 옳았다. 그리고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면 나중에 따로 마르티안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으니까.
마르티안은 괜한 문제에 휘둘리지 않도록 론에게 이런 것들을 철저하게 가르쳤다. 그녀는 회초리로 론의 허벅지를 크게 내리쳤다.
“잘 아네.”
끄으, 론이 신음을 뱉으며 테이블 아래에 주저앉았다. 그의 엉덩이와 뒷 허벅지는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그는 울며 헐떡이다가 비틀대며 몸을 일으켰다. 마르티안은 그의 발목과 발에 시선을 두었다. 의사가 완전히 나았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마르티안은 매를 한쪽으로 던지고는 소파에 앉았다.
“론, 이리 와.”
론이 떨어진 회초리를 주워서 그녀의 앞으로 기어왔다. 매를 다시 내미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건 자신이 잘못했으니 더 혼내도 된다는 뜻이었다.
“더 혼내셔도 됩니다. 제가 주제넘어서…….”
마르티안은 그가 내미는 매를 툭 쳐서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내 옆에 있고 싶으면 멋대로 굴지 말아야지.”
“앞으로는 다시는, 흐읍, 흐윽, 이렇게 굴지 않겠습니다. 주인님.”
론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 마르티안은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론, 다리 벌리는 거 그만할래?”
그 말에 놀란 론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너무 화가 나서 자신을 내치려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마르티안은 전혀 화가 난 표정이 아니었다. 더없이 진지하고 침착한 얼굴로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 옆에서 내친다는 건 아니니까 그건 걱정 말고. 그냥 더는 침대에서, 다리 벌리는 걸 안 해도 된다는 소리야. 너는 원래 그런 걸 바랐잖아. 내 옆에 있을 방법이 애첩밖에 없어서 애첩이 된 거였고. 이젠 차 끓이는 것도 잘하니까 아예 그쪽으로 자리 잡아. 지원해줄게.”
“……갑자기 왜…….”
“앞으로는, 휴이를 개로 쓸 생각이거든.”
그녀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정확하게 말했다. 론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어졌다. 그녀는 론을 가만히 쓰담었다.
“론, 널 버린다는 게 아니야. 너는 다른 역할로 내 옆에 있을 거니까. 지금과 달라질 건 없어. 거기에서 애첩으로 행동하던 것만 빠지는 거지.”
그녀가 론을 개로 대하지 않는다면 휴이는 더 이상 론에 대한 관심을 끊을 것이다. 그리고 론 역시 휴이와의 경쟁 구도를 의식해서 애쓸 필요가 없었다.
마르티안은 아직 이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매일같이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이혼을 하면 휴이와의 관계도 끊어지고 아이에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커지겠지만, 마르티안은 그게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자신의 딸에게도 그러한가를 고민했다.
자작가에서 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경험과 인맥과 재력, 모든 부분에서 자작가는 협소한 무대였다. 백작가나 공작가에 비한다면 이곳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고 좁았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그대로 유지시켜 주고 싶었다.
‘원하는 것들을 전부 경험하고 배우고 가질 수 있도록…….’
그건 세블로아드 공작이 내밀었던 선택지와 다르지 않은 결과였지만 그녀는 이것이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겐 휴이 세블로아드의 사인과 직인이 전부 담긴 서류가 있었으니까. 언제든 관계를 끊어낼 자유가 주어지고 나서야 그녀 앞에 주어진 삶은 드디어 온전한 그녀의 것이 되었다.
온전한 그녀의 것. 마르티안은 자신의 아이가 매일 더 사랑스러웠다. 그 아이를 위해서 이혼 따위는 미뤄도 상관없어졌을 만큼.
“론.”
“주인님. 저는, 전…….”
론의 뺨이 온통 젖었다. 우느라 말조차 하기 어려워하는 그를 보며 마르티안은 가만히 뺨을 쓸어주었다. 너를 버리는 게 아니야. 그녀는 천천히 그 말을 다시 반복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그녀는 론을 버리려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그가 조금 덜 고통 받길 원했다.
“그렇게 하면 백작이 이렇게 구는 일도 없을 거고, 너도 백작에게 덜 예민해질 수 있을 거야. 이런 식으로 맞거나 괴로울 일도 없을 거고.”
“다시, 다시는, 흐읍, 주인님. 주제넘게 굴지 않겠습니다. 백작님이 어떻게 하셔도 얌전히, 있을 테니까, 제가…….”
론은 울음을 간신히 삼켜냈다. 그는 늘 마르티안에게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랐다. 의미 있고 도움이 되는 자리에서 오래 함께 있을 수 있기를 꿈꿨으니까.
하지만 막상 그런 자리를 주겠다는 말을 듣자, 그리고 애첩의 자리를 거둬가겠다는 말을 듣자, 론은 자신이 꿈꾸던 그 꿈이 그저 막연한 꿈이었음을 알았다.
더 사랑받고 싶어서, 그런데 그건 주제넘는다고 해서, 스스로 도피하듯 꿈꿨던 자리였을 뿐이었다. 현실로 일어날 리 없어서 더 막연하게 도피했던 꿈의 자리. 하지만 론은 자신이 더 이상 그 꿈의 자리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주인님, 저는……. 애첩으로만 남아있어도 좋으니까, 제발, 곁에서 닿을 수 있게…….”
그는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마르티안의 손에 입을 맞췄다. 이 손이 다시는 자신에게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마르티안의 손을 핥고 삼키고 빨았다. 그 손이 입 안과 목구멍을 마구 들쑤셔 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마르티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론이 핥던 손을 빼내 그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고통스러운 체벌을 감내하느라 그의 이마는 아직도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 다정한 손길을 받으면서도 론은 울었다. 그 다정한 손이 꼭 관계의 끝을 예고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녀가 끝을 고한다면 그 역시 끝내야 했다. 론에게는 그녀를 설득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마르티안이 가만히 물었다.
“애첩으로 있으면 앞으론 더 힘들 거야. 백작님하고 더 갈등하며 지내야 할 거고. 이전처럼 도발하는 식으로 굴었다가는…….”
“흐윽, 다시는 그렇게 굴지 않겠습니다. 주인님. 두 분이 하실 때 저를 사용해도 얌전히, 흐읍, 흐윽……. 얌전히 따르겠습니다. 뭐든 교육하시는 대로…….제발, 주인님…….”
울음이 섞은 채로 대답하는 말이 절박했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녀가 그어놓은 선을 넘은 적이 없었던 개였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애원하고 있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안 된다고 말하면 더는 나서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얌전하게 다시 그녀가 정해준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할 것이다. 론은 그런 개였다.
“론, 이리와.”
그녀가 론을 이끌어 소파에 올라오게 했다. 그녀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아 마주 보는 자세였다. 그녀는 론에게 기대어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론의 흐느낌이 커졌다. 다정함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마르티안이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정 애첩으로 남고 싶다면 그렇게 해.”
“흐으, 흐윽……감사, 흐읍,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 말을 겨우 하고 론은 아이처럼 소리내어 울었다. 마르티안은 한참 그를 내버려 두었다가 이내 그의 엉덩이를 가볍게 쥐었다. 온통 우둘투둘하고 딱딱하게 굳어진 살결 위로 아직 열감이 느껴졌다.
일주일은 어디 앉을 때마다 아프겠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말했다.
“대신 너무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두는 거야. 그렇다고 버리지 않을 테니까. 정 견딜 수 없으면 그만두겠다고 말해. 알겠어?”
론이 몸이 다시 긴장했다. 그만둔다는 말 자체가 두려운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 불안을 토닥이며 다시 말했다.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하란 소리야. 너무 힘들다고 느끼면 말하라고. 이해했어?”
“흡, 흐으……네, 주인님.”
“백작가로 돌아가면, 내가 널 챙기는 데 한계가 생길 거야. 거기선 최대한 조심히 굴어. 쓸데없이 맞서지 말고.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정말로 화를 낼 거니까.”
론이 울음을 삼키고는 네, 주인님하고 말했다. 이내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가 이어졌다. 그녀가 뭐가 감사하냐고 되묻자 론이 작게 “오늘 봐주셔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덜 때렸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르티안이 겹쳐있던 몸을 뒤로 물려 소파에 등을 기댔다. 론의 얼굴이 온통 눈물 얼룩으로 가득했다. 새삼스럽게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멍든 엉덩이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흐으, 론이 새된 신음을 뱉어냈다.
마르티안은 그의 엉덩이를 손으로 후려쳤다. 눈물로 얼룩졌던 얼굴이 이내 고통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그의 엉덩이를 다시 후려쳤다.
멍들어 굳은 곳에 충격이 더해지자 엉덩이 살이 푸들대듯이 흔들렸다. 론, 어차피 실컷 울었으니까 그 김에 조금 더 울자. 마르티안이 웃으며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