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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 자작가는 근래 들어 매우 분주했다. 삼 개월에 한번, 마르티안이 자작가에서 머무는 시기가 곧 다가오기 때문이다.

집사는 시설 관리와 보수 공사가 잘 끝났는지를 점검하러 다녔고 주방에서는 풍족하게 산 식재료로 이것저것 만들어 보느라 바빴다. 덕분에 저택 내의 사람들은 매일 실험대상이 되어 즐겁다면 즐거운 식사를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졸업한 이후 자작 대리로 일하고 있는 엘 도안은 눈 밑이 거뭇한 상태로 깨어나 마르티안이 처리해야 할 서류들을 다시 검토했다. 그는 영지 관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집사가 많이 도와주고는 있지만 아직도 배워야 할 게 산더미다. 그 탓에 새로운 수목종을 찾아내는 일은 거의 멈춰 있었다.

그래도 백작가에서 흘러들어오는 돈이 있어서 금전적으로 부족한 건 없었다. 덕분에 새로운 나무를 찾는 일은 조금 미뤄도 상관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백작가를 의지하기도 어려웠다. 자작가의 사람들은 이 결혼이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기는 중이었으니까. 백작가에서 흘러들어오는 돈 역시 언제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돈이었다.

엘 도안은 서류를 보다 말고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조만간 마르티안에게 보고해야 할 내용들인데, 그녀가 지시한 것들을 겨우겨우 해내는 수준의 서류가 너무 많았다.

“이래서 인재가 필요한 거구나.”

그는 마르티안이 왜 아서와 결혼하려고 했는지 백 번 이해했다. 자신이 여자였다면 당장 아서를 데려와서 결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지겨운 일들을 다 맡겨버렸을 게 분명했다.

‘아서는 잘살고 있으려나…….’

엘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휴이의 요란한 청혼과 이어진 결혼으로 인해 아서의 입지는 매우 이상해졌다. 조사단원들은 백작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않았지만 아서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했다. 그건 일종의 괘씸죄이기도 했다. 망한 조사에 끼어있으면서 혼자 다른 살 길을 찾으러 다닌 셈이었으니까.

졸업하기 직전까지 따돌림 아닌 따돌림이 있었다. 엘은 상황이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서는 피해자였으니까. 그는 아서 대신 나서서 사람들과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은 아서와의 사이마저 애매해졌다.

들은 소식으로는 졸업한 이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일 년을 지내다가 서부에 있는 영지의 관리 고용인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교수의 소개와 추천으로 그쪽 영지로 가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는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사이가 미묘하게 서먹해진 탓도 있었지만 엘 도안 역시 자작가를 맡게 되면서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한 번 연락을 해볼까.’

아서에게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상황이 엉망이 된 게 자작가의 탓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같이 얽힌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미안함으로 이렇게 멀어지기에는 아서는 너무 아쉬운 친구였다.

한 번쯤은 만나서 같이 술을 한잔하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깊게 고민할 것 없이 공부하고 단순하게 떠들던 기억들이 그립다. 그는 조만간 아서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마르티안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자작가 저택에 짐을 풀었다. 집사는 조금 더 늙었지만 일하는 것에 있어서는 아직도 정정했다. 자작가 저택은 한껏 꾸며진 덕분에 이전보다는 훨씬 더 고급스러워졌지만 아주 크게 달라지진 못했다. 저택의 크기와 공간 구조를 바꿀 수는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마르티안은 그것이 싫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어쨌든 오랫동안 익숙해진 공간이었으니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침실이랑 집무실 공간이 매번 문제네.”

자작가 저택에는 배우자를 위한 방이 너무 작았다. 여태껏 자작의 남편들은 자신의 부인을 도우면서 지내는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애초에 거기에서 잠을 자거나 업무를 보라고 만든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좁은 침대와 책장 그리고 소파 하나가 전부였다.

마르티안의 아버지는 그 방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침실과 서재를 같이 쓰면서 시간을 보냈으니까. 도안가의 남편들은 대대로 그렇게 살아왔고 그건 휴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문제였다. 물론 그는 그런 걸 반겼다.

문제는 마르티안이다. 그녀는 휴이와 그런 식으로 지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이 좁은 공간에 휴이를 밀어 넣을 순 없었다. 별수 없이 침실을 같이 쓰고 서재를 같이 쓰는 수밖에는 없었는데 그게 매번 짜증스러웠다.

“제대로 된 방이 있어야 한다니까. 업무를 볼 수 있도록 공간이 나오는 곳으로.”

집사가 한숨을 쉰다. 저택의 최상층은 다른 용도로 뺄만한 공간이 전혀 없었다.

“2층에 있는 손님방이 적격이긴 합니다만……이제 두 분이 부부시니까요. 방법을 찾을 때까지만 두 분이 함께 지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2층의 손님방은 휴이가 이 저택에 처음 왔을 때 머무르던 곳이었다. 그때야 손님이었으니 저층에서 머무르는 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 그는 마르티안의 배우자였다. 최상층에서 머무르는 게 당연한 위치였다. 매번 나오는 문제는 매번 답이 없다. 마르티안은 쯧 하고 혀를 찼다.

“론은 어딨어?”

“주방에 있습니다. 한나가 요즘 디저트를 새롭게 만드는 중이라서요.”

“아아, 차와 어울리는 조합을 찾는 모양이네.”

론이 차를 끓일 줄 알게 된 이후로 자작가 주방에서 론을 찾는 일이 늘었다. 석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와서 지내지 않긴 했지만 자작가에 머물면서 론의 표정은 제법 밝았다. 자신이 쓸모를 찾아가고 그걸 공유하는 게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게다가 약간 뻔뻔해지기도 했다. 주방에는 론이 수치스러운 몰골로 복도에 서 있던 걸 본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주방을 잘도 들락댔다.

‘쓸데없이 성실해서 그러는 거 같긴 한데…….’

그녀는 픽 웃었다. 론이 고지식한 성실함은 때론 어디로 튈 줄 모르겠는 공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개의 역할에도 지나치게 성실했고 또 일반적인 일에 대해서도 그랬는데, 그가 개 취급을 받는 걸 아는 사람들 앞에서도 여전히 성실했다.

주방에서 옷을 벗기고 뒤를 쑤셔도 그러려니 할까 싶어 궁금하긴 했지만, 그녀는 그 생각을 상상으로 남기기로 했다. 론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기도 했고 애초에 그녀는 자작가에서 론을 크게 건드릴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걸 알아서 론 역시 바쁘게 지내는 것이다. 차를 내어주고 자질구레한 잔심부름을 하는 건 똑같았지만 그는 밤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집사, 밤에 나갈 수 있게 마차를 따로 준비해 줘.”

“어딜 가려고 하십니까?”

“달밤가에 가려고.”

“……백작님께서는 그럼…….”

“내 침실에서 자게 둬야지. 남편을….”

순간 그녀의 시선이 집사 너머로 향한다. 이내 말이 이어졌다.

“함부로 때리고 울릴 순 없잖아.”

집사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마르티안이 노골적으로 말하는 이유가 뻔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고 있는 상대는 백작일 것이다. 집사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문가에 휴이가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백작님.”

“……씻고 싶은데 가능한가?”

“바로 욕실에 물을 채워두겠습니다.”

집사는 냉랭한 기류를 모르는 척하며 답했다. 부부관계에 조언할 입장도 아니었지만 딱히 조언할 마음도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은 사실상 휴이가 시작한 일이었으니까. 또한 마르티안은 공적인 영역에서는 그를 남편으로 우대하긴 했다. 반강제적인 결혼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합리적인 대우다.

‘이 정도야 자업자득이지.’

팔은 여전히 안으로 굽었다. 집사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는 방을 빠져나왔다.

마르티안은 휴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공간을 같이 쓴다고 해서 친밀하게 있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녀는 그를 무시한 채 엘 도안이 가져다 둔 서류를 다시 한번 훑었다. 엘은 정해진 일을 하는 건 성실하게 해냈지만 돌발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몹시 취약했다. 서류에서는 그가 겪는 허덕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새로운 나무 종류를 정하는 건, 영 어렵겠어.’

그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했다. 영지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니 여러모로 진행이 어렵다.

‘최대한 지시를 내리고 간다고 해도……. 워낙, 변수가 많아서.’

그녀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다시 책상에 내려놓았을 때였다. 휴이가 책상 맞은편으로 다가와 그 서류를 손에 들었다. 마르티안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휴이가 말했다.

“적나무 대체재를 찾은 건가?”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에요.”

“결혼을 했으니까 나도 이제는 자작가의 일원이잖아. 당신이 백작가의 일부를 책임지고 있는 것처럼 나도…….”

“책임을 넘겨줄지 말지는 제 권한이죠. 주세요.”

“이 정도는 나도 도울 수 있…….”

“백작님, 태도를 명확하게 하세요. 백작으로 행동하시는 거면 백작님에게는 그걸 볼 권한이 없고, 제 배우자인 자작가 일원으로 행동하시는 거면 제 판단에 따르는 게 맞으니까요.”

휴이가 입술을 꽉 깨물고는 들고 있던 서류를 다시 돌려주었다. 마르티안은 그것을 받아 한쪽으로 놓자 휴이의 시선이 그곳으로 따라온다. 쉽게 포기할 거 같지 않아서, 마르티안은 책상 위에 흩어진 서류들을 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와서 집사에게 이것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하기에는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이미 정리한 상황이었다.

“이곳에 있는 서류는 건드리지 마세요.”

“…….”

“대답하세요. 아니면 집사를 불러서 치우게 할 테니까.”

휴이는 주먹을 꾹 쥐었다. 그가 수목에 대해 많이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 사안을 도와주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문제 해결이란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되니까. 자료를 수집하고 그중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뽑아 올리는 것, 그는 그런 것에 재능이 넘쳤다.

하지만 마르티안은 그의 재능에 조금도 기대려 하지 않는다. 그건 일관된 태도였다. 백작 부인으로 있으면서 해야 하는 많은 일들을 처리하면서도, 그녀는 자작가의 일을 절대 넘기지 않으니까. 그건 그의 일처리를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이곳에 휴이의 자리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막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이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휴이는 작은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마르티안이 욕실 쪽을 턱짓하며 말했다.

“이만 들어가서 씻으시죠. 지금쯤이면 하인들이 욕실에 물을 채웠을 테니까요.”

“……당신은?”

“아까 들었잖아요. 달밤가에 갈 거라고.”

아무렇지 않은 말에 휴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달밤가에 가는 건 단순한 의도가 아니었다. 그를 여기에 홀로 내버려 두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를 홀로 내버려두고 개를 즐기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론이 그저 하인이었고 개의 역할을 하지 않았으니까.

이곳에서 마르티안의 침대를 차지하는 건 휴이다. 그는 마르티안의 남편으로 침대를 함께 썼다. 대대로 도안 자작의 남편들이 살았던 방식 그대로. 그들은 자신의 방이나 집무실 같은 건 필요 없는 삶을 살았고, 자작을 돕고 기쁘게 하면서 일생을 보냈다.

그건 휴이의 지위와는 전혀 맞지 않은 소리였지만 휴이는 그 생활이 좋다고 생각했다. 비록 공간만 같이 쓰는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녀의 침대를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

집무실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서재에서 같이 일하게 되는 것도, 침실에서 아침을 함께 맞이하는 것도 모두 좋았다.

휴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달밤가에 가는 거면 차라리 나를…….”

“백작님, 전 좋은 부부관계를 깰 생각이 없어요.”

마르티안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녀가 늘 말하는 좋은 부부관계, 그 논리는 여지없이 이어졌다. 애초에 휴이가 그거라도 상관없다며 붙잡았던 조건이었다. 울컥하는 감정이 쏟아진다. 이를 악물어서 울음이 흐느낌처럼 흘렀다.

마르티안이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보았다.

“혼자 남는 게 억울한 거면 당신도 가든가요. 나는 별로 상관없으니까.”

그 말은 상처 주기 위해 일부러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진심으로 그를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배우자라는 자리는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하는 자리였다. 그는 그곳에 앉아서 매번 짓이겨지는 마음들을 견뎌야 했다.

차라리 이 마음이 완전히 죽어버렸으면. 그렇다면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텐데. 휴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울었다. 상처는 매일같이 고통스러웠다.

“제발, 마르티안. 내가 어떻게, 하면, 흐으, 흐윽……어떻게 해야…….”

마르티안은 서류를 넘겨보다가 그 말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뺨이 온통 젖어서 턱으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그는 절망을 헤매는 것처럼 울었다.

절망을 헤맨다는 건 그가 아직도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직도 뭔가에 희망을 품고 기대하고 있단 소리다.

한 번도 실패하거나 패배해 본 적 없던 사람이라서 일까. 그는 포기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마르티안은 입을 열었다.

“나를 포기하든, 당신의 욕망을 포기하든 그중 하나를 골라요.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

그녀가 가볍게 턱짓으로 욕실을 가리켰다.

“얼굴이 엉망이니, 이만 들어가 씻으세요.”

* * *

마르티안은 간만에 엘 도안과 단둘이 저녁 식사를 했다. 휴이가 저녁을 먹고 싶지 않다고 자리를 피한 덕분이었다. 마음이 상했다고 항의라도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감정 따위는 큰 의미가 없었으니까. 아픈 것만 아니라면 신경 쓸 이유조차 없는 일이었다.

저녁 식사는 휴이가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분위기가 좋았다. 마르티안은 주방에서 새롭게 만든 디저트와 거기에 어울리는 와인을 맛보며 집에 돌아온 기분을 만끽했고 엘 도안 역시 눈치 볼 사람이 없어서 마음껏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을 오가며 길게 이어졌고 그녀는 생각보다 늦게 달밤가로 향했다.

“아이고, 마르티안 님! 오랜만입니다.”

요란 맞은 말투로 관리자가 그녀를 맞이했다. 결혼 이후에는 처음 들른 상황이었는데 그 모습이 엊그제 왔던 것처럼 친숙했다. 마르티안은 그에게 외투를 건넸다.

“덕분에 결혼까지 했네.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 그래도 얼굴이 좋아지셨습니다.”

“덕분이지.”

관리자가 입을 꼭 다물고 슬금슬금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그녀의 결혼에 어떤 내막이 깔려 있는지 전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르티안은 그 꼴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이 모든 상황이 관리자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과도한 책임 전가였다. 마르티안이 말했다.

“상대할만한 남창들 있지?”

“……남창이요? 파트너가 아니라요?”

“결혼한 상황에서 파트너는 무슨……. 백작가 무서워서 나에게 접근할 사람도 없을 거 같은데? 그런 거로는 엄포 안 놓았나봐?”

“아니, 뭐……. 하하…….”

관리자가 웃으며 애매하게 말을 흐렸다. 돈을 많이 주면 어디든 비비는 성격을 생각하면 분명 먼저 나서서 굽신거렸을 게 뻔했다. 어쨌든 그의 입장에서 가장 바짝 엎드려야 할 권력자는 그쪽이었으니까. 마르티안 관리자의 태도를 모른 척했다.

필요한 건 파트너가 아니라 돈을 받고 하룻밤 울어줄 개였으니까. 이런 쪽 남창들은 지나치게 반응이 정형화되어 있어 재미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학대를 받을 때 능숙하게 굴어서 쓰기 편했다.

마르티안은 이곳에 있는 남창들을 몇 명 떠올렸다.

“그때 관리자가 보여 주었던 애 있잖아, 덩치 있고 좀 곰처럼 생긴…….”

그녀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하인 한 명이 뛰어서 관리자가 뭐라 속닥였다. 이내 그의 얼굴이 안절부절못하는 꼴로 변하더니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며 말했다.

“제가 좀 처리할 일이 급하게 생겨서요. 마르티안 님. 일단 방에 들어가서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방은 그, 늘 쓰시던 그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제가 곧 괜찮은 친구를 데리고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방? 내가 여기 오지 않은 지가 한참인데 거길 남겼어?”

“아니 그 무슨 섭섭한 말을 하십니까요. 그래도 마르티안 님이 또 저희와 맺은 정이 있지요. 그새 야박하게 기다리지 않고 방을 빼고 그러진 않습니다. 얼른 올라가 계시면 제가 바로 일만 처리하고 가겠습니다.”

관리자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고는 하인 한 명을 그녀 옆에 붙였다. 안내 용도인 것 같아 마르티안이 거절했다. 어차피 그 방이면 가는 길을 모르지도 않았으니까.

관리자가 허리를 몇 번 꾸벅꾸벅 굽히고는 자리를 떴다. 마르티안은 그 분위기가 약간 찝찝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발을 옮겼다.

방은 마지막으로 이곳에 온 때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마르티안은 이곳에서 결혼 수락을 했던 걸 떠올렸다. 예상했던 대로 휴이는 그녀와의 결혼 생활을 몹시 힘겨워했다. 그가 원했던 건 그녀의 남편이 되는 게 아니라 그녀의 개가 되는 거였으니까.

그녀는 이 결혼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휴이만 제외하고 백작가나 자작가 모두가 이 결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었다.

지난 2년간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었고 앞으로도 아이가 생길 확률은 극히 드물 테니까. 후계가 없는 결혼은 결국 그 문제로 인해 깨어지기 마련이었다.

마르티안이 가운으로 옷을 갈아입고 가볍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한쪽에 있는 장에는 여러 물품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고, 매질 도구들도 테이블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녀는 정리되어있는 구속구들과 모조 성기, 회초리 등을 살펴보고는 다시 소파로 가서 앉았다. 누가 들어올까. 가학 욕구는 상대에 따라 또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관리자는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얼마 없는 인내심이 거의 바닥에 다다랐을 때, 그는 또다시 혼자 들어왔다.

“자작님, 하하 제가 너무 늦었습니다. 그게 또 일이 터져서…….”

“하, 나를 접대하는 건 일이 아닌가 보네? 오늘 들이는 애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오늘은 그냥 관리자 불알이나 터트리는 거로 하자.”

“예에? 아이고! 왜 또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십니까?”

“협박하는 거 아니고 진심이야. 뭐 하느라 이제 오면서 그냥 혼자 와?”

“아, 그러니까, 그게…….”

“설마 이제 와서 들일 남창이 없다거나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래도 저희가 또 이런 쪽으로는 확실한 곳인데요. 마르티안 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이런 쪽으로 관리를 하느라 얼마나 머리털이 빠지는지 모릅니다.”

준비된 말들이 관리자의 입에서 주르르 흘러나오다가 아내 머뭇 멈췄다. 자꾸 뜸을 들이며 사람을 들이지 않는 게 영 수상했다.

마르티안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관리자가 후다닥 입구 쪽으로 물러섰다. 사타구니 사이를 양손으로 막고 있는 게 아주 볼썽사나웠다.

관리자는 뒤로 한발씩 물러서며 빠르게 말했다.

“마르티안 님,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말로요. 그러니까 제 탓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 말이 의도하는 바가 뻔했다. 마르티안이 어이가 없어 하, 하고 숨을 뱉어내고는 말했다.

“지금 이게 어디서 수작을 부리려고…….”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가 분명히 준비를, 했는데요. 그게 어쩌다 보니까……상황이 좀 달라져서요. 근데, 부, 분명 뭐라고 하실 거 같아서……정말로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거든요? 저는 정말로 마르티안님 뜻대로…….”

그 말에 마르티안이 멈칫했다. 관리자가 저자세로 나오는 거야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안절부절 못하면서 저 자세였다.

준비한 수준이 너무 낮아서 이러는 걸까. 물론 그녀의 취향이 까다롭긴 했지만 여태껏 취향 하나로 행패를 부린 적은 없었다. 이렇게 굴어서 그녀의 짜증을 불러일으킬 바에야 한시라도 빨리 준비한 사람을 들이미는 게 서로 속 편한 일이었다.

그녀가 팔짱을 끼고 관리자를 보자 그가 한 차례 더 우는 소리를 줄줄 뱉고는 마지못한 걸음으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대체 어떤 놈을 데려오려고 저 난리를 쳐?’

산전수전을 겪은 관리자가 이렇게 나올 이유가 대체 뭔가 싶어서, 그녀가 인상을 썼다. 설마 정말로 백작이 달밤가에 따로 와서 엄포를 놓았나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으니가.

관리자는 또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머뭇대며 다시 들어왔다. 한껏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의 뒤로 사람이 하나 더 들어온다. 관리자는 제 뒤에 들어온 사람을 가리키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이, 쪽이 오늘 마르티안 님에게 소개할, 그러니까, 어, 음……사람입니다. 하하하하.”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마르티안은 뒤따라온 상대를 확인하고는 하도 어이가 없어 픽 웃었다. 관리자가 데려온 건 휴이였다. 이곳 남창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진짜 남창일 순 없었다.

그녀는 관리자가 줄줄 늘어놓았던 변명을 떠올렸다. 그 모든 변명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던 모양이었다.

‘……내가 달밤가로 간다고 했더니, 혼자 앉아서 생각해 낸 게 이거였나 보네.’

저녁도 먹지 않고 처박혀 있더니 이걸 생각하고 준비하느라 그런 모양이었다. 그녀는 휴이를 빤히 보았다. 헐겁고 하늘거리는 옷차림은 벗고 있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몰골이었다.

이내 그녀는 그의 성기가 반쯤 발기했음을 확인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왜 이런 우습지도 않은 촌극을 벌인 이유였다.

그녀가 이곳에서 그를 남창처럼 취급하며 괴롭혀도 그에겐 좋은 일이었고, 그녀가 화를 내고 자작가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에겐 좋은 일이었다.

‘약아빠져서는.’

그녀는 관리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상황에 대한 압박감으로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앞머리가 흠뻑 젖어서 누가 보면 세수라도 한 줄 알 지경이었다. 그녀는 관리자에게 다시 물었다.

“이쪽이, 달밤가 남창이라고?”

“아 그게…… 예, 그렇습니다. 마르티안 님.”

“언제부터?”

“그게 하하, 어, 얼마 안 되긴 했는데…….”

“새끼 남창이야?”

“예?”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다며. 그럼 이제 막 몸 팔기 시작한 새끼 남창일 거 아냐?”

“아, 그게, 하하하…….”

“맞아 틀려?”

“마, 맞습니다.”

관리자는 휴이의 눈치를 보며 겨우 대답했다. 그의 원래 신분을 생각하면 남창이니 몸을 파느니하는 소리 모두가 큰일 날 소리였다.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흠뻑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냈다.

마르티안은 관리자 꼴을 보며 일부러 남창이란 단어를 강조해 몇 가지를 더 물었다. 관리자는 자신이 무슨 대답을 하는지 모르는 얼굴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러니까 이쪽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새끼 남창이고, 관리자가 보기에 내 취향인 게 분명해서 특별히 데려왔다 이거네?”

관리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서 한순간이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 촌극이 빨리 끝나거나.

관리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를 향해 마음에 드시냐고 물어왔다. 그건 소속된 남창을 데려올 때마다 손님에게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관리자는 그 짧은 말을 하면서 두 번이나 삑 사리를 냈다.

“마음에 드냐고?”

마르티안은 그렇게 되물으며 휴이를 보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얌전했고 차림새도 이곳의 남창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누가 보아도 남창이라고 하긴 어려운 외모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타고나길 귀족으로 태어난 사람이었고 어디서든 남 위에 서도록 길러진 사람이었으니까.

관리자는 창백해진 얼굴로 그녀에게 살려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그녀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가서 다른 애들 두 명만 더 불러.”

“예에? 왜, 왜 그러십니까. 마르티안 님. 진짜 이, 이 정도면 정말이지 최상, 최상급……인데요.”

“하라면 해. 아니면 다 내보내고 네 불알부터 다 쥐어뜯길래?”

“아니요!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제가 빨리…… 빨리, 갔다 오겠습니다.”

관리자가 필사의 눈치로 마르티안과 휴이를 살피고는 후다닥 방을 빠져나갔다.

마르티안은 그대로 몸을 돌려 휴이를 보았다. 이 멍청한 촌극이 우습다면 우스웠고 황당하다면 황당했지만 확실히 짜증스러웠다. 그의 방식은 늘 이런 식이었으니까. 여기저기 덫을 놓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녀를 움직이려 드는 방식이었다.

그건 그만큼 절박하고 간절하다는 뜻일 수도 있었지만 마르티안은 그것까지 고려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이건 그가 초래한 결과였다.

그녀는 이 결혼이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으니까. 그가 가지게 된 그 절박함은 그녀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였다. 한심하고 멍청한 개는 뒤늦게 떼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달밤가에 너 같은 남창이 있는 줄 몰랐는데?”

휴이의 시선이 그제야 그녀를 보았다. 불안과 기대가 섞인 눈이었다. 마르티안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자 그가 당연한 것처럼 무릎을 꿇었다. 그의 성기는 고작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발기했다. 마르티안은 그의 무릎 위를 구둣발로 꾹 짓눌렀다.

그가 입고 있는 옷들은 지나치게 얇아서 짓밟히는 충격을 조금도 줄여주지 못했다. 그의 신음 소리가 이어졌다. 마르티안은 그에게 말했다.

“정말로, 끝까지 남창처럼 굴면 침대 위에 올려줄게.”

휴이가 놀라서 그녀를 보았다. 여태까지 그녀는 철저히 그를 방치했으니까.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그녀는 결코 그를 개로 대하지 않았다. 겉으로 꾸며진 다정한 관계, 그가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손을 내민 것이다.

휴이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흐읍, 주이, 주인님. 하윽!”

마르티안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지. 아무에게나 다리 벌리는 남창 주제에 무슨 주인님이야?”

“흐, 하지만, 흐읍…….”

“주인님이라고 한 번만 더 내뱉으면, 이건 이대로 끝나는 거야.”

마르티안은 말을 마치며 그의 앞섶을 퍽 밟았다. 충격이나 다름없는 고통에 그의 등이 앞으로 굽어졌다. 그녀는 휴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굽힌 등을 펴게 했다. 짓밟는 것이 이어졌다.

휴이는 고개를 숙이지도 못한 채 몸을 덜덜 떨었다. 그의 표정이 고통과 흥분으로 물들었다.

가학은 여지없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만큼 그를 자극했다. 그는 금세 사정하며 아래를 적셨다. 조루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빠른 사정이었다.

“뭘 얼마나 밟았다고 질질 싸?”

그녀가 어이없단 표정으로 말했다. 휴이의 얼굴이 수치로 붉어졌고 동시에 다시 흥분했다. 그는 그런 몸을 타고났으니까. 마르티안이 그의 머리카락을 놓았을 때였다. 관리자가 남창 둘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왔다.

“원하시는 대로 두 명을 데리고 왔습…….”

관리자가 그녀와 휴이를 보고는 말을 삼켰다. 마르티안은 별것 아니라는 태도로 다시 소파에 앉았다.

관리자가 그녀의 눈치를 힐끔 보고 얼른 휴이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부축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몸을 한껏 굽히고는 일으키는 모습이 지나치게 굽신대는 태도였다.

마르티안은 관리자가 데려온 다른 남창들을 보았다. 하나는 나이가 상당히 많아 보였고 하나는 그나마 어려 보였다. 둘 다 이곳에서 그리 인기 있을 외양은 아니었다. 마르티안은 둘에게 물었다.

“너희는 저 새끼 남창 본 적 있어? 관리자 말로는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던데?”

둘은 약간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자가 후다닥 다가왔다.

“아이고오, 마르티안 님도 참. 그걸 뭘 확인까지 하고 그러십니까?”

“확인하는 게 어때서?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궁금해서 물은 건데.”

“그런 건 저에게 물으셔야지요. 아까 말했다시피,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애들도 별로 없구요.”

관리자가 급조된 게 분명한 내용들을 뱉어냈다. 그새 휴이가 몸을 일으켜 관리자 옆에 섰다. 스스로 남창이라고 소개 했지만 그는 관리자의 눈치도 보지 않았고 딱히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건 남창같은 태도가 아니라 손님으로 왔을 때 하는 태도였다.

휴이는 이곳에 손님으로 왔다. 그것도 대단한 지위와 돈을 가진 주요 손님으로. 그래서 달밤가의 이들이 휴이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남창이니 어쩌니 연극을 하면서도 다들 그에게 굽신거렸다.

그녀는 이 재미없는 촌극의 대본을 새롭게 뜯어고치기로 했다. 그녀는 관리자를 향해 물었다.

“그럼 교육은 했어?”

“교육이요?”

“달밤가에 소속되면 교육받잖아. 자세 잡는 것부터 다리 벌리는 거, 요도 쑤셔지는 거, 구멍 벌리는 거, 관장하는 거.”

줄줄이 나열되는 말에 관리자가 진땀을 흘리며 웃었다. 그녀는 재촉하듯이 다시 물었다.

“교육했어, 안 했어? 둘 다 쟤 교육시킨 적 있어?”

그녀가 다른 남창들에게 묻자 그들 역시 제대로 대답을 못 했다. 이런 것까지는 입을 맞추지 않았을 테니까. 마르티안은 구멍이 난 연극을 보다가 휴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있었다. 달밤가에 소속된 남창들이 어떻게 교육받는지 전혀 모르고 있을 테니까.

관리자가 급하게 말을 뱉어냈다.

“아, 그게요. 이 친구들은 요즘 좀 바빠서……. 새끼 남창들 교육할 때는 참여를 못 했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교육을 했으니까요. 기본적인 건 다 가능합니다.”

그는 머리를 굴려 대답했다. 백작이 마르티안의 밑에서 개로 굴렀다면 기본적인 것들이야 다 해보았을 테니까. 지금 중요한 건 그냥 우기는 것들이었다. 관리자는 이미 휴이에게 큰돈을 받은 상태였으니까. 한 삼일 쯤은 달밤가 문을 닫아도 될 정도의 돈이었다.

관리자는 일단 웃었다. 그래도 마르티안이 어느 정도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으니까. 이 상황을 잘 버텨서 마르티안이 백작을 개로 써주기만 한다면 처음 받은 금액의 두 배를 더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불안한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마르티안은 이런 상황에 휘둘리는 걸 극도로 싫어했으니까. 이렇게 장단을 맞춰주는 이유는 분명 무슨 다른 생각이 있어서 일 게 뻔했다.

관리자는 그게 자신에게 큰 피해가 아니기를 바라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마르티안 님, 이 친구들은 왜 부르셨는지…….”

“달밤가에서 하는 교육방식이 궁금해져서.”

“……예?”

“어느 정도는 교육을 받았다고 하니까 다행이네. 어떻게 굴어야 하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

그녀는 휴이를 힐끔 보고는 다시 관리자를 보았다. 관리자의 표정이 거의 사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가 뭘 하려고 하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마르티안은 가볍게 웃었다.

“교육할 때처럼, 내 앞에서 관장시켜.”

관리자는 당장이라도 펄쩍 뛰어오를 거 같은 표정이었다. 마르티안은 제 앞에 있는 나이든 남자에게 턱짓을 했다. 가서 준비를 해오라는 뜻이었다. 그는 관리자의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 서 있었다.

촌극이 촌극인 건 모든 것이 다 엉망진창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엉망인 연극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마르티안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서 휴이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하는 소리가 몇 번이나 이어지자 다른 연기자들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휴이에게 말했다.

“뭐하는 거야. 남창이면 남창답게 주제파악하고 선배들에게 교육해 달라고 해야지.”

“마, 마르티안 님.”

관리자가 놀라서 저도 모르게 그녀를 불렀다. 마르티안은 그걸 무시하고는 다시 휴이의 뺨을 후려갈겼다. 휴이의 시선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흔들린다. 이쯤 되면 이곳의 모두가 그녀의 의도를 파악했을 것이다. 마르티안이 다시 말했다.

“몰랐나 본데 이곳에도 나름 서열이 있거든.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남창은 당연히 최하위고. 당장 벗고 기어가서 뒷구멍 벌리는 교육부터 해달라고 부탁해. 그래야 네 선배들이 널 교육해줄 거 아냐.”

“…….”

“여기 소속된 남창이라며? 그럼 남창답게 굴어. 그래야 내가 널 침대 위에 올릴 마음이 날 테니까.”

마르티안은 친절하게 마지막 말을 붙였다. 제대로 굴지 않으면 이 기회는 이것으로 끝이라는 소리였다.

휴이가 입술을 짓씹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그가 귀족이고 사실은 남창이 아니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에게 함부로 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휴이가 스스로 밑바닥으로 내려가길 종용했다. 그건 단순한 학대나 가학의 범주를 벗어난 굴욕과 수치였다. 휴이는 차마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르티안이 몸을 돌려 관리자에게 말했다. 그녀의 손이 휴이의 몸을 꾹 눌렀다.

“관리자 얘 데리고 나가. 더는 필요 없…….”

“하, 할게, 요.”

휴이가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 마르티안은 몸을 돌려 그의 뺨을 다시 후려쳤다.

“누가 함부로 손대래? 날 붙잡을 시간 있으면 빨리 움직이기나 해. 오래 기다리고 싶지 않으니까.”

그건 더없이 냉정한 태도였다. 휴이는 일단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다시 무릎을 꿇었다.

기회가 사라질까 봐 무서워서 관리자와 남창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몸을 돌리긴 했지만 차마 바로 기어갈 수는 없었다. 수치와 굴욕으로 그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진다.

기어가서 애원하는 것. 그게 마르티안이 원하는 남창다운 꼴이었다. 그걸 해야만 그녀안의 침대에 올라갈 수 있다. 휴이는 목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결국 기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고정된다.

마르티안은 소파에 다시 앉았다. 벌거벗은 개는 성향답게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물론 표정은 단순한 수치로 흥분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론의 좆을 빨면서 컥컥대던 때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그가 다른 이들 앞까지 기어가자, 그들 모두가 휴이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 시선을 돌렸다. 휴이가 입을 열었다.

“교육을 해주…….”

“무슨 교육인지 정확하게 말해.”

마르티안이 지적하자 휴이가 입술을 짓씹었다. 끔찍한 굴욕감이 목을 죄는 것만 같다. 차라리 두들겨 맞고 질질 끌려와서 이런 소리를 뱉는 거라면 나았을 텐데, 지금 그의 상태는 너무 멀쩡했다.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자신을 이렇게까지 만드는 마르티안에 대한 원망이 속을 어지럽혔다.

그럼에도 그는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했다. 이걸 견디고 나면 마르티안이 개 취급을 해줄 테니까.

아니, 사실 이 상황 자체도 마르티안의 명령 아래에서 이뤄지는 것들이다. 오랜만에 주어진 가학으로 인해 그의 온몸은 이미 잔뜩 흥분했다. 사정한 아래가 다시 터질 것 같았다. 그게 가장 굴욕적이었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는 눈물이 가득 들어찬 상태로 다시 말했다.

“……뒷구멍 벌리는 교육, 해주세요.”

“휴, 무릎 꿇고 앉아서 고개 들어. 얼굴 보이면서 다시 말해.”

마르티안의 요구는 비참함 그 자체였지만 휴이는 그녀가 불러준 ‘휴’라는 호칭에 놀라서 비참함마저 잊어 버렸다.

그건 그녀가 다시는 부르지 않을 거라고 했던 개로서의 이름이었으니까. 다시는 불러주지 않을 거라고 했던 그 호칭을, 남창처럼 굴 때는 불러줄 모양이었다.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서럽고 원망스럽고, 기뻤다. 감정이 엉망으로 뭉그러져 흘러내린다. 휴이는 좀 더 얌전해진 태도로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고개를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눈물이 자꾸 흘러내려서 상대가 잘 보이지 않았다.

“흐으, 흡……. 뒷구멍 벌리도록……교육해 주세요.”

그는 억지로 말을 쥐어짰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당장 마르티안에게 기어가서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울고 싶다. 하지만 그건 허락받지 못한 애원이었다.

마르티안의 조건은 그가 남창으로 있으면, 남창답게 행동하면, 침대 위에서 학대해 주겠다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래도 휴라고 불러준다면 어떻게든 괜찮을 거 같다. 그건 이름이 붙어있는 개였으니까. 그는 울음을 삼키며 헐떡였다. 마르티안이 그것을 보다가 관리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해?! 교육 안 할 거야?”

“아, 아이고오! 그게요, 마르티안 님. 그러니까…….”

관리자가 죽을상을 하며 그녀를 보았지만 그녀는 여기서 물러설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녀는 나이든 남창에게 교육용 관장주사기와 배변통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달밤가에서 이뤄지는 피학 교육은 대부분 공개적이었다. 처음 이곳에 들어온 이들은 관장을 당하는 걸 시작으로 온갖 장난감 취급을 감수해야 했다.

수치에 적응시키고 손님을 잘 받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있긴 했지만, 사실상 그건 집단적이고 가학적인 폭력 행사였다. 남자들은 여자보다 더 튼튼하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행위들이 훨씬 더 가혹했다.

관장은 처음부터 절대 버틸 수 없는 양을 밀어 넣는 게 일반적이었다. 어차피 적응해야 한다는 명분이 붙어있긴 했지만 사실은 그저 더 큰 고통과 수치를 주고 나아가 두들겨 팰 명분을 쉽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마르티안은 달밤가에 오래 드나들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이게 교육용 관장 주사기야? 이것보다 한참 더 큰 걸 쓰는 거로 아는데?”

그녀는 들고 온 관장기를 보며 인상을 썼다. 다들 그녀와 휴이의 눈치를 번갈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가 짜증을 담아 말했다.

“이거로 네 번은 넣어. 원래 교육할 때 쓰는 만큼은 넣어야지.”

상대는 우물대며 눈치를 보고는 두 번째 재촉에야 겨우 알겠다고 대답했다. 옆에 있는 관리자가 반쯤은 포기한 얼굴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마르티안은 휴이를 보았다.

그는 혼자 벌거벗은 상태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쓸데없이 울어댄 탓에 눈가가 이미 붉었다.

“유두 집게 가져와. 강하게 조일 수 있는 거로.”

그녀는 다른 남창에게 턱짓으로 심부름을 시키고는, 휴이의 앞에 섰다. 젖은 눈이 그녀를 올려본다. 주이……. 반사적으로 호칭을 뱉으려던 그가 이내 말을 꿀꺽 삼켰다.

약아빠진 개는 확실히 눈치가 빨랐다. 어디까지가 괜찮은 선인지 금세 파악했고 하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았다.

마르티안은 그의 뺨을 손으로 툭툭 쳤다.

“휴, 다들 네 눈치만 보는 거 같은데? 이래서야 교육도 영 지지부진할 거 같고……. 이대로는 내가 너무 재미없잖아?”

“흐으, 흡, 제가 잘할게요. 잘 벌려서 지루하지 않게…….”

휴이는 그녀에게 매달렸다. 비참할 게 분명한 순간이 코앞이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불러주는 ‘휴’라는 그 부름이 견딜 수 없이 달았고, 어떻게든 그녀 곁에 남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럴 수 있다면 남창처럼 굴러도 좋았다.

마르티안이 유두 집게를 들었다. 휴이가 그것을 보며 가늘게 신음했다. 고통을 기대하며 긴장한 신음이었다.

“뭐해? 네 젖퉁이 대야지.”

휴이는 덜덜 떨며 가슴을 내밀었다. 마르티안이 엄지와 검지로 유두를 짓이기듯 쥐고는 위로 잡아당겼다.

늘 부풀어 있는 살덩이는 금세 찢어지듯 늘어났다. 흐으아! 흐아아! 휴이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는 엉덩이를 들었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허벅지를 세웠는데도 마르티안은 그의 유두를 더 위로 잡아당겼다. 그의 눈가로 눈물이 고였다. 고통으로 인한 눈물이었다.

“흐, 흐으! 찢어, 찢어져요. 끅! 주이…….”

“주인님?”

휴이가 이를 악물었다. 흐으, 흐. 반사적으로 나오는 주인님이라는 말을 멈추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애원하며 부를 호칭이 없다는 건 고통을 더 가중시킨다.

마르티안은 그가 울며 끅끅댈 때까지 유두를 짓이기고 잡아당겨 괴롭혔다. 흰 피부는 금세 벌겋게 부풀었다. 집게를 그의 유두에 달자 휴이는 소리조차 못 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허벅지는 벌려. 네 좆이 이렇게까지 섰는데 선배들도 좀 봐야 할 거 아냐.”

그녀가 휴이의 허벅지 안쪽을 툭툭 쳤다. 무릎을 꿇은 상태로 다리를 벌리자 사타구니 사이로 발기한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휴이의 성기가 당장 사정할 것처럼 빳빳하게 치켜 올라간 것을 보았다. 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관리자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고 하고 소리를 냈다.

휴이는 붉어진 얼굴로 울었다. 마르티안은 그를 툭 쳤다.

“그럼 이제 교육받아. 바닥은 관장액 넣기 불편하니까 테이블로 가서 엎드려.”

“여기 바닥에서 하고 싶어요. 흐윽, 가슴에 있는 거 테이블에 누, 눌리면…….”

아픔에 질린 얼굴로 그가 애원했다. 테이블에 상체를 대고 엎드리면 그 순간 유두 집게가 눌릴 테니까, 건드리지 않는 상태인데도 이토록 아픈데 눌리거나 움직이면 얼마나 아플지 몰랐다. 그가 주인님이라는 말도 뱉지 못한 채로 끅끅 울었다.

마르티안이 확 인상을 쓰고는 그대로 휴이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이게 지금 주제도 모르고…….”

그녀는 그대로 휴이를 끌어 관리자 앞으로 갔다. 무릎걸음으로 끌려다니며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집게가 고통스럽다. 휴이는 비명과 신음을 쏟아내며 관리자 앞에 내팽개쳐졌다.

그 사이에 유두 집게가 튕겨 떨어졌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서 휴이는 엎드린 채로 몸을 말았다. 끄으, 흐으. 흡. 고통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르티안은 주저 없이 그를 발로 걷어찼다. 관리자에게 말했다.

“이거 지금 뭐야? 어디서 이러니 저러니 토를 다는 새끼를 데려와?!”

그녀의 말을 들으며 관리자는 반쯤 넋을 놓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자신의 불알을 걷어차였으면 정신건강에 더 이로웠을 것이다. 마르티안이 휴이의 허벅지를 발로 짓밟았다.

헐떡이는 비명이 시끄럽게 이어져서 관리자는 어쩔 수 없이 휴이를 보았다. 그는 이미 백작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마르티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남창이라며? 어디서 주제도 모르는 걸 데려와서……. 뭐해? 보상을 안 해?”

“마르티안 님, 제발요. 제가 다른, 다른 방식으로…….”

“다른 방식은 무슨 다른 방식이야. 원래 달밤가에서 하는 대응 있잖아?”

마르티안은 달밤가의 체계를 거의 다 알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어떤 보상이 이뤄지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물어보는 건 관리자의 입을 통해 휴이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관리자는 몇 번을 머뭇대다가 결국 대답했다.

“그게……. 원래는 잘못을 저지른 남창은 반항하지 못하게 묶어서 다시 넣어드리고요. 처분은 손님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기분이 상하셨을 테니까 다른 아이를 새롭게 넣어드리는 거로…….”

휴이가 마지막 말을 듣고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반항하지 못하게 결박당한다거나 벌을 받거나 그런 건 상관없었지만 마르티안이 다른 상대를 쓰는 건 싫었다. 고통이 아닌 다른 이유로 눈물이 쏟아졌다.

“잘못했어요. 여기 다시 달아주세요. 다시 흐으, 흐윽……다시 안 그럴게요.”

그는 튕겨 나간 집게를 찾아 마르티안에게 내밀었다. 마르티안은 제 앞에 내밀어진 것을 툭 쳐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래야 이곳에서 지켜야 할 룰이 있다는 것도 배울 테니까. 관리자, 얘는 팔다리 묶어서 발끝으로 서 있게 달아놔. 관장을 시켜서 배 부풀게 한 채로.”

달밤가에서는 창관답게 방마다 많은 장치들이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고리는 끈을 고정해서 사람을 매달 수 있게 만든 장치였다.

완전히 허공에 뜨도록 매달면 매달린 부분이 심하게 눌리고 당겨져서 오래 방치할 수 없었지만, 발끝이 땅에 닿을 정도로 매달면 오래 방치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맞출 수 있는 애로 새로 들여보내. 이따위로 눈치 보는 놈들 말고.”

그녀는 관리자가 데려온 다른 놈들을 턱짓하며 말했다. 휴이가 울며 그녀의 바지자락을 움켜쥐었다. 마르티안은 그것을 보다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남창이니 어쩌니 하며 촌극을 벌였으면 적어도 역할에 맡는 연기는 해야 하는 법이다. 그녀는 휴이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

“남창으로 침대에 올라오고 싶었으면 제대로 했어야지. 아니면 오늘 제대로 배워두던가. 그래야 다음에는 침대에 올라올 거 아냐.”

그녀의 말은 조롱에 가까웠지만 휴이는 ‘다음’이라는 말에 기대를 품었다. 이런 취급은 끔찍했지만 어떻게든 그녀의 침대 위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는 울면서 잘 배우겠다는 소리를 했다.

“잘 배워야지. 아니면 매번 쫓겨날 테니까.”

남창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체계에 따라 관리된다.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 가능한 판매품이었다. 마르티안은 그것을 알려주었다. 휴이는 그걸 들으면서도 잘하겠다는 소리만 했을 뿐 그만두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이 촌극은 휴이가 시작한 것이었으니 그가 끝내면 모두가 이 연극을 그만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을 그만둘 마음이 없었다.

질질 흘러내리는 욕망은 이미 한계까지 닿았다. 그의 이성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녀의 경고에도 청혼을 다시 보내 결국 결혼을 했던 그 순간처럼.

그는 몸을 숙이며 흐느꼈다.

“잘, 흐으……. 잘 배울게요, 제가 잘못, 흐읍, 흑, 잘못했어요.”

마르티안은 몸을 일으켰다. 그가 스스로 이 촌극을 이어가겠다고 결정했으니 남은 건 다른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해주는 것 뿐이었다. 그녀는 관리자에게 턱짓을 했다. 그녀가 시켰던 걸 하라는 뜻이었다.

관리자는 차라리 기절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가 진짜 남창이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상황이었지만 그녀 앞에 있는 남자는 진짜 남창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백작이었고 후에는 공작위를 받을 대 귀족이었다.

그런 상대를 남창으로 취급하며 관장을 하고 방에 묶어서 매달으라니……. 압박감에 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관리자는 엎드려 우는 백작을 보았다.

‘빌어먹을!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데도 이걸 버티고 있는 거냐고!’

초반에야 마르티안의 앞에 서기 위해서 남창처럼 꾸미고 연극을 한 거라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마르티안 정말로 그를 남창으로 취급할 작정이었으니까.

그것도 남창 중에 제일 최하위로 두고 견딜 수 없을 만큼 굴릴 생각이 분명했다. 그녀는 이런 식의 기만을 아주 싫어했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돈에 눈이 멀어서 이 연극에 참여한 스스로가 등신이었다.

‘애초에 미친놈과는 거래를 하는 게 아닌데!’

최악의 상황이 되면 휴이가 알아서 그만 둘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기어다니는 개 중에 제정신이 처박힌 놈이 없다는 걸 간과했다며 관리자는 속으로 한탄했다. 그건 너무 늦은 후회였다.

관리자는 마르티안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마르티안 님, 그러니까 저……친구, 하하, 관장 말입니다. 여기서 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본보기로 하는 거고 그러니까요. 보면서 즐기시면 더 좋을 거 같고 그래서……하하하……”

원래 잘못한 남창을 끌어내 손님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고는 다시 방에 들여놓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관리자는 마르티안이 없는 곳에서 백작을 남창처럼 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큰 일이 날 것만 같았으니까.

“내 눈앞에서 관장을 하겠다는 소리야?”

“예. 아무래도 손님의 즐거움도 중요하니까…….”

“마음대로 해.”

그녀의 대답에 관리자는 반색을 하고는 끌고 들어왔던 다른 남창들에게 일을 맡겼다. 나중에 후환이 생기면 방패 삼을 놈들이 있어야 했으니까. 최대한 그 자신을 이 상황에서 발을 빼는 게 좋았다.

물론 남창들 역시 처음에는 고개를 저으며 관리자의 요구를 거부했지만 이대로 지하실로 내려가고 싶냐는 말에 결국 그의 뜻대로 움직였다.

관리자는 반듯하게 웃고는 새로운 상대를 데려 오겠다는 말로 방을 빠져나갔다.

관장은 방 바깥 복도에서 이뤄졌다. 마르티안이 방안에 더러운 냄새가 나는 게 싫다고 한 탓이었다.

관리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허겁지겁 층을 비우고 오가는 사람들을 막았다. 덕분에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사방이 뚫린 장소에서 관장을 당하는 건 훨씬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웠다.

그 복도에 엎드린 채로 휴이는 배가 부풀 정도로 관장액을 받았다. 마르티안은 그저 서서 구경하듯 그를 내려보았을 뿐이었다. 한껏 담은 양으로 인해 복통은 금세 이어졌다. 그는 바닥을 긁으며 고통가운데 울었지만 그 가운데서 다시 흥분했다.

마르티안의 앞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몸은 그 모든 굴욕과 수치를 흥분으로 받아 들였다. 철제 양동이가 엉덩이 아래에 놓이고 배설하는 과정에서는 결국 사정했을 정도였다.

그건 강렬한 쾌감이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비참한 감각이었다. 이성의 일부가 부서져 내리는 감각. 그는 계속 울었고 마르티안이 원하는 만큼 엉망이 되었을 때에는 거의 목이 쉬었다.

그는 관장을 끝내고 마르티안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녀는 인상을 확 쓰며 씻겨오란 소리를 했다.

휴이는 남창들에게 이끌려 몸이 씻겨 졌다. 그리고 다시 배가 부풀었다. 마르티안은 다시 끌려온 휴이를 확인하고는 방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발 끝으로 서 있도록 매달아. 젖꼭지에 아까 그 집게 달아서.”

휴이는 벌거벗은 상태로 한쪽에 매달렸다. 발목과 팔목을 구속한 뒤에 매다는 방식이었다. 휴이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자신의 유두에 집게가 달리는 것을 보았다.

살결을 짓뭉개는 고통이 하나씩 이어졌다. 흐으. 흐윽. 그는 신음을 뱉으며 몸을 흔들었다. 그의 몸을 구속한 수갑과 족쇄에서 덜컥대는 소리가 났다.

“시끄럽기는.”

마르티안이 그의 앞에 섰다. 옆에는 이미 다른 남창이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남자는 가학적인 손님을 주로 상대했던 모양인지 몸에 흔적이 많았다. 그는 휴이의 정체를 아예 듣지 못했는지 매달린 몸을 구경하듯 살폈다.

“와, 몸이 되게 야하네요. 좆도 되게 크고 여기 젖꼭지만 부풀어서 있는 것도 그렇고.”

남자는 휴이를 툭툭 건드리며 품평했다. 휴이는 상대를 노려보다가 마르티안에게 뺨을 맞았다.

“어디서 그딴 표정을 지어? 쓸모없게 굴어서 여기에 매달린 주제에…….”

그 말에 휴이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너무 울어서 벌겋게 부푼 눈가가 다시 흠뻑 젖었다. 마르티안은 그의 턱을 움켜쥐어 들었다. 엉망으로 망가진 얼굴은 여전히 그녀의 취향대로 예쁜 얼굴이었다.

“휴, 정신 차리고 똑바로 굴어. 남창이 손님의 마음에 들지 못하면 이렇게 내쳐지는 게 당연한 거니까. 이런 꼴도 감수해야지. 그럼 이 짓이 편할 줄 알았어?”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남자가 웃었다.

“그럼요. 이 짓이 얼마나 힘든데.”

그는 고개를 주억대며 맞장구를 치고는 휴이의 젖꼭지에 달린 집게를 툭 건드렸다. 집게는 그것만으로도 큰 통증을 일으켰다. 흡, 흐으……. 휴이가 상체를 비틀며 헐떡인다. 남자는 다시 웃었다.

“처음이라서 잘 모르는 모양인가 봐요. 원래 손님이 이런 거 달아주시면 감사 인사부터 해야 하는데…….”

달밤가에서는 다양한 도구를 갖춰놓고 팔거나 빌려주며 돈을 벌었다. 소개받은 파트너와 밤을 보내며 사용하든 혹은 이곳에 소속된 애들을 통해 밤을 보내든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있는 도구는 전부 이용료가 붙었고 그랬기에 이곳에 소속된 이들은 손님이 자신에게 해주는 모두를 선물로 여기고 감사해야 했다.

그건 단순히 도구에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손님이 주는 건 다 감사하다며 인사하고 애교를 부릴 줄 알아야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었고 또 덜 맞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남자는 휴이가 너무 남창답지 못하게 군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기에 마르티안의 상대로 들어온 거였으니까. 앞서 들어왔다가 벌을 받고 있는 상대의 사정이야 크게 알고 싶은 바가 아니었다.

그는 이곳의 소속된 남자들 중에서도 가장 눈치 없고 생각 없기로 유명했다.

“마르티안 님. 저 여기부터 막아주실래요?”

그는 자신의 성기를 젖혀 요도구를 드러내며 말했다. 허락받기 전에 함부로 싸는 건 손님에게 꼬투리를 잡히기 좋았다. 관대한 손님들은 그냥 가볍게 넘어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런 것으로 난리를 치고 기본금으로 할 수 없는 더 가혹한 행위들을 대가로 받으려 들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처음부터 요도 막대를 꽂아달라며 애교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마르티안이 그의 요도구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하으, 흐읍, 흐아. 그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굳이? 어차피 넌 쌀만큼 흥분하지도 못 할 텐데.”

그녀는 몹시 가혹한 편이었고 그녀를 상대하는 개들은 한참 발기했다가도 쉽게 죽는 경우가 많았다. 함부로 싸게 되는 건 그녀가 그렇게 만들겠다고 의도하지 않고서야 잘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물론 휴이는 그 와중에서 흥분하고 싸지르는 몸이긴 했지만.

마르티안이 남자의 귀두와 요도구를 손가락으로 비비듯 문질렀다. 아직 젖지 않은 예민한 살이 비벼지자 그가 신음을 쏟아냈다. 자극은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흐으, 흐으아, 그래, 흐윽, 그래도요. 흐응. 호, 혹시 몰라서…….”

“선물 받을 주제는 되고?”

“흐, 혀, 혀 잘 써요. 흡, 흐으…….”

그가 혀를 내밀어 보이며 헐떡인다. 마르티안은 그대로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는 침대로 끌고 갔다. 거칠게 침대에 엎어진 상태로도 그는 금세 다시 자세를 잡고 다리를 벌렸다.

흐으, 선물 주세요. 혀 잘 쓸게요. 바보처럼 웃는 얼굴이 이어졌다. 그의 앞은 조금 들린 채로 젖어 있었다. 피학 성향이 어느 정도는 있는 모양이었다.

마르티안은 발기한 남자의 성기를 손으로 후려쳤다. 가볍게 않은 강도라서 그는 다리를 벌린 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서너 대만에 그의 성기는 흥분을 잃고 쪼그라들었다.

흐윽, 흑. 그가 훌쩍대며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는 입을 한 손으로 막아 짓눌렀다.

“혀를 잘 써야 선물을 받는 거지. 어디서 선물을 받으면 혀 잘 쓰겠다고 조건을 달아.”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그녀의 손바닥을 혀로 핥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마르티안은 몸을 앞으로 움직여 남자의 얼굴 위로 하체를 내렸다. 짓뭉개는 것에 헐떡이며 그가 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의 한쪽에선 수갑과 족쇄의 연결고리가 흔들리는 덜컥대는 소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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