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휴이가 마르티안의 앞에 무릎을 꿇고 본인이 핥아낸 정조대를 내밀었다. 남김없이 깨끗하게 하느라고 하도 핥아댔더니 혀가 다 아프다. 정액에 젖은 가죽 내가 아직도 코앞에서 나는 것만 같았다. 마르티안이 성의 없게 그가 내민 것을 훑어보았다. 그의 심장이 긴장으로 조여들었다.
“가서 씻어 가지고 와.”
그건 지금껏 한 번도 없던 명령이었다. 정조대를 차고도 질질 흘리는 걸 방치했던 것처럼, 그녀는 정액으로 젖은 정조대를 계속 쓰게 했으니까. 축축하고 질척한 느낌은 불유쾌하고 더러웠지만 동시에 수치심을 일으켰다. 아래를 적시면서 조사단과 숲을 돌아다닐 때와 비슷한 감촉이었으니까.
오늘 이렇게 혼나지 않았다면, 핥고 삼키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큰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휴이는 머뭇댔다.
“왜 가만히 있어. 이 상태로 다시 쓸래? 그게 좋겠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손에 있는 정조대를 한번 보고는, 머뭇대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새것을 사서…… 다시, 드리면 안 될까요.”
질척하게 정액으로 젖은 걸 다시 입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그걸 다시 또 핥게 된다고 생각하니 비위가 너무 상한다.
그녀는 분명 매일같이 정조대를 깨끗하게 핥으라고 할 게 분명했으니까. 나흘을 얼룩진 곳에 다시 질질 흘리고 그걸 또 핥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괜히 또 신물이 올라오는 것만 같아서 그가 숨을 참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르티안이 그에게 물었다.
“네가, 산다고?”
“네, 제가 쓰는 거니까 제가 사서 드리면…….”
“왜?”
되묻는 말에 휴이가 주춤 말을 멈췄다. 마르티안의 얼굴로 표정이 전혀 없다. 그제야 뭔가 잘못했구나 싶은 마음에 그의 시선이 이리저리 방황한다. 침으로 범벅이 된 것을 보며 역겨워하느라 제 주인의 눈치를 보는 걸 잊은 것이다.
“내가 묻잖아, 왜냐고. 더러워서 못 쓰겠어?”
“아, 아니요. 그게 아니고…… 그냥 제가 쓰는 거라서…….”
그녀가 그의 손을 툭 쳐서 정조대를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휴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떨어진 것과 마르티안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가 가볍게 웃으며 바닥으로 떨어진 정조대를 툭 찼다.
“이거, 입에 물어.”
“그냥, 그렇게 하면 주인님도 펴, 편할 거 같아서, 그래서 말한 거였는데…….”
“휴, 개가 되고 싶으면 주제를 알아야 한다고 했잖아.”
그녀가 휴이의 턱을 움켜잡았다. 그의 눈이 엉망으로 흔들렸다. 시선이 따라붙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보란 듯이 정조대를 손에 쥐었다.
“입, 벌려.”
“주인, 흐욱, 웁…….”
강압적으로 밀려드는 것에 숨이 막힌다. 목울대가 울컥거렸다. 마르티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손에 쥔 것을 그의 입안에 가득 밀어 넣었다.
성기를 감싸는 부분만이 아니라 고환과 엉덩이를 지나 허리를 매는 부분까지 전부. 우겨 들어간 것 때문에 입이 다물리지도 않는다. 마르티안은 손가락으로 그것을 꾹꾹 짓눌렀다.
“즈이, 웁. 컥.”
휴이의 눈가가 금세 벌겋게 물든다. 입안에 들이찬 것은 목 안은 건드리며 고통스럽게 움직였다. 문제는 울컥대는 침이었다. 스스로 핥아냈지만 그가 물고 있는 건 전혀 깨끗하지 않았다. 더럽고, 역겨운 가죽이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토할 것 같은 맛이 났다.
그녀의 손이 떨어지자 휴이가 급하게 상체를 앞으로 숙인다. 제 침이 목 뒤로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입안에 고인 것들이 뚝, 바닥으로 떨어진다. 웁, 흐읍, 흐…… 숨이 필사적으로 가늘어졌다.
마르티안은 쓸모없는 노력을 하는 개를 보다가, 이내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질질 끌며 걷자 그가 무릎으로 따라오다 몇 번을 엎어지고 굴렀다.
그건 고의적인 결과였다. 휴이가 몸을 일으켜 균형을 잡으려 하면, 마르티안이 그보다 먼저 다시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앞으로 걸었으니까. 그녀가 거울 앞에 멈췄을 때는 그의 무릎이 완전히 붉게 변한 뒤였다.
마르티안이 그를 내던지듯 놓았다. “바닥에 누워.” 그녀가 말하자 잔뜩 긴장한 휴이가 주춤대며 눕는다. 가득 막힌 입 안으로 웅얼대는 소리가 이어졌다.
“네 몸이 어떤 수준인지를 알려줬어야 했는데.”
마르티안은 발로 툭툭 그의 몸을 건드려서 다리 사이를 벌리게 했다. 잔뜩 발기한 것이 적나라하게 흔들린다. 그녀의 눈이 웃는 것처럼 둥글게 굽었다.
그녀의 발이 그의 성기를 꾹 눌렀다. 흐으, 하는 신음과 함께 몸이 떨렸다. 귀두 부분을 발로 짓밟아 비비자 신음이 더 커졌다. 입에 들어가 있는 역겨운 것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도, 흥분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침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참으려 해봤자 누워 있는 상태에서는 침이 쉽게 목 뒤로 넘어갔다. 역겨워하는 와중에도 그의 성기는 당장이라도 쌀 것처럼 움찔댔다.
“어제부터 참았지?”
그건 중의적인 물음이었다. 마르티안은 자신의 의도를 알려주기 위해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그의 아랫배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휴이의 얼굴이 희게 굳어졌다. 그의 손이 급하게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마르티안은 그대로 그의 아랫배를 꾹 눌렀다. 움켜쥔 손은 그것만으로도 힘을 잃었다. 흐으, 읍, 욱. 신음이 필사적으로 변한다. 마르티안은 발로 부푼 방광을 집요하게 짓눌렀다.
“흐으……시……힛, 흐읏, 흐…….”
휴이는 신음하며 몸을 비틀었다. 잊었던 배뇨감이 거칠게 치민다. 오래 참은 몸은 그것을 인지하자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순간 거울에 비친 모습이 눈에 보였다. 밟힌 상태로 뻣뻣하게 선 것이 움찔 떨렸다. 그 순간 오줌이 사타구니 사이로 쏟아졌다.
오래 참아서 쏟아지는 것도 거세다. 짙은 액체가 온몸에 튀며 흘렀다. 바닥에 오줌을 싸면서도 하체가 부들거리며 떨린다. 믿을 수 없게도 그건 쾌감에 가까웠다. 흐으, 흐, 이상한 신음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스스로도 보기에도 천박한 꼴이었다. 천박하고 더러웠다. 그의 얼굴이 본능적인 수치와 거부감으로 일그러졌다.
“방바닥에서 질질 잘도 싸네.”
마르티안이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뒤로 끌었다. 균형을 잡지 못한 몸이 비틀거리며 뒤로 주저앉았다. 거울 앞에서 그의 앞이 활짝 벌어졌다.
“뭘 그렇게 충격 받은 얼굴을 해? 개처럼 질질 싸서 그런 거야 아니면…….”
필사적으로 오무리려는 그의 다리를 마르티안이 발로 밀어서 막았다. 그의 성기가 반쯤 발기해 있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오줌을 싸면서도 네 좆이 서서 그래?”
“흐으…… 으읍…… 흐.”
“네 꼴 제대로 봐야지. 휴.”
그녀가 그의 얼굴을 움켜쥐고 억지로 거울을 보게 한다. 방뇨한 것이 그의 엉덩이와 허벅지는 물론이고 가슴까지 튀어 있다. 역겹고 더러운 꼴이다. 그 와중에도 그는 점점 더 발기했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데도 움찔거리면서 모양을 갖춰가는 성기가 거울에 비친다.
그의 온 얼굴로, 아니 온몸으로 수치가 얼룩졌다. 그의 시선이 벌벌 떨린다.
“네 주제에 뭘 더럽다고 깔끔을 떨어. 오줌을 뒤집어쓰고도 이렇게나 발기하면서.”
마르티안은 웃었다. 툭, 툭 그녀가 발로 휴이의 성기를 건드린다. 움찔거리는 몸은 더더욱 흥분한다.
“질질 싸기만 하면 다 좋은 거 아냐? 정액이든 오줌이든.”
욱, 윽, 웁. 신음이 울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늘어진 다리 사이로 단단하게 올라붙은 성기가 꿈틀댔다. 휴이가 헐떡이며 숨을 삼켰다. 삼키지 않으려 했던 것들도 목 뒤로 넘어가며 삼켜졌다. 더럽다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몰골에 비하면, 그런 건,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마르티안은 엉망이 되어 몸을 떠는 휴이를 내려 보았다. 잔뜩 일그러진 채로 떨고 있는 꼴이 만족스럽다. 처음에 뺨을 맞았을 때와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에는 제법 반항이라도 하려 들었던 거 같았는데, 지금의 그는 비참한 꼴로 울며 벌벌 떨기나 하고 있었다. 천박한 개에게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꼴이었다.
그가 몸을 가리려는 것처럼 비틀었다. 흥건하게 고인 것들이 철퍽이며 더 튀었다.
“네가 싼 거 자랑이라도 하고 싶나 보네.”
조롱하는 말이 이어진다. 휴이의 얼굴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금껏 흥분으로 인해 울던 개였다. 수치로 인해 우는 꼴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숨이 넘어가게 헐떡이는 꼴이 흥분을 일으켰다.
마르티안이 발로 그의 성기를 다시 누른다. 짓눌러 비볐다. 그녀는 이 위에서, 기어코 그를 사정시킬 생각이었다.
“흐으, 욱……. 시, 시러, 흐읍……. ”
그의 고개가 급하게 저어졌다. 손이 필사적으로 그녀의 다리를 더듬었다. 하지 말아 달라는 애원이었다. 입이 막혀 있으니 그렇게라도 애원하는 것이다. 그녀의 발아래에 있는 것이 꿈틀댈수록 울며 흐느끼는 소리와 억눌린 애원이 커졌다.
마르티안은 그의 입에 밀어 넣은 것을 빼냈다. 침이 가득 묻은 것은 질척하게 젖어서 완전히 구겨진 상태였다. 휴이는 숨을 몇 번 끅끅 들이키고는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주이, 흐으, 흐윽, 주인님, 흐읍, 자, 잘못했, 흐어, 흐으으…….”
그녀가 정조대를 바닥으로 던졌다. 철퍽하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아직도 저게 더러워?”
휴이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평소 흥분을 견디지 못해 우는 것과는 다른 꼴이다. 정액을 억지로 먹게 했을 때와 비슷했지만 그때보다 훨씬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입으로 대답해야지.”
마르티안이 뺨을 후려쳤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라 그녀가 때릴 때마다 눈물이 튀었다. 뺨이 부어오르는데도 제대로 대답을 못 한다. 마르티안은 혀를 차고는 그의 성기를 발로 거칠게 문질렀다.
“싸지른 정액은 다 치워야 하는 거 알지.”
이 엉망인 방에서 떨어진 정액을 핥으라는 건 결국 오줌도 핥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파리하게 질린 얼굴이 다급하게 변한다. 그제야 휴이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 안돼요……. 주인, 흐으, 안돼, 흡.”
그가 꿈틀댄다. 하지만 이미 한계까지 자극당한 상태다. 거울을 보면서 터질 듯 부풀었던 아래가 오래 버틸 리 없었다. 금세 하체가 부들거리며 정액이 쏟아져 흘렀다.
마르티안은 발을 떼자마자 휴이가 허겁지겁 자신의 성기를 손으로 덮었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필사적이다. 쓸모없는 노력이었다.
처음에 튀어 오른 것들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고 손을 적시고도 남은 것들은 아래로 줄줄 흘렀다. 제 정액이 떨어진 것들을 본 휴이가 완전히 절망한 얼굴로 끅끅 울기 시작한다. 주인님, 애원하려는 소리를 마르티안이 먼저 막았다.
“뭐 해, 치워야지.”
그가 눈치를 보며 먼저 제 손에 젖은 것을 핥기 시작했다. 마르티안이 마음을 돌리고 싶다는 걸 드러내는 듯, 감사히 먹겠다는 소리를 하며 맛있게 먹는 척을 하는데 열심이었다. 삼키는 소리가 적나라하다.
제 손에 묻은 것을 전부 삼켜낸 뒤, 휴이가 다시 더듬거리면서 그녀를 부른다. 그것이 뭘 뜻하는 애원인지는 뻔했다.
마르티안은 그저 바닥으로 시선을 까닥 두었다가 다시 그를 보았다. 그곳에는 떨어진 정액이 고여있었다. 희멀건 것과 누런 것이 섞여 있는 역겨운 꼴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가 사정한 것이었다.
하라는 턱짓이 다시 이어지자, 그가 몸을 움직여서 겨우 그 앞에 몸을 숙였다. 역겨움을 참는 것처럼 목울대가 울렁였지만 엎드려진 등은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얼굴도 못 든 상태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흐윽, 흐으……. 주인, 님, 잘못, 잘못했어요……. 다시는, 주제넘게, 흐윽…….”
마르티안이 그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상체를 들게 만든다. 휴이의 시선이 절망 가운데 구원자를 만난 것처럼 간절하게 변한다. 짜악 소리가 나게 젖은 뺨을 내리치자 눈물이 흩어졌다. 흐느끼며 울었지만 그는 얌전하게 버텼다.
마르티안은 그의 뺨이 완전히 부풀어 오를 때까지 손찌검을 반복했다.
“뭐가 더 더러워?”
그녀가 턱 짓으로 바닥에 떨어진 정조대를 가리키며 묻는다. 휴이의 얼굴로 눈물이 또 뚝뚝 떨어졌다. 퉁퉁 부어오른 뺨 때문에 입술의 움직임이 둔하다. 그는 울면서 겨우 답했다.
“제가, 더, 흐으, 흡, 더러워요. 흐으…… 주인님, 으흐, 흐윽…….”
그가 한참 서럽게 우는 걸 마르티안은 기다렸다. 모든 교육에는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우는 소리가 좀 잦아들고 나서야 그녀가 다시 말했다.
“가서 씻어 가지고 와.”
처음에 시켰던 그대로의 말이다. 휴이는 다시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겨우 참았다. 그녀가 똑같은 명령을 다시 내린 이유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가 주제넘게 굴지 않았다면 이 모든 상황이 없었을 거라는 걸 알려주는 말이었다. 그가 바닥에 떨어져 흥건하게 젖은 것을 손에 쥐었을 때였다.
“입으로 물어. 물고 기어서 갔다 와.”
바닥에 떨어졌던 정조대는 그의 타액과 오줌으로 가득 젖어있는 상태였다. 역겨운 모양새에 그가 애원하는 눈으로 마르타인을 돌아본다. 그녀는 더 이상은 봐줄 마음이 없다는 것처럼 얼굴을 굳혔다.
“그것보다 네가 더 더럽다며. 너보다 깨끗한 거 입에 좀 물으라는데 뭐가 문제야?”
그가 머뭇거리며 있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또 익숙하지가 않아?”
마르티안이 바닥에 떨어진 정액들에 시선을 둔다. 아까 차마 핥지 못한 것들이었다. 이것을 못하면 그다음에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흐으, 아니요. 흡, 할게요.”
휴이는 제 손에 든 걸 입으로 물었다. 역한 냄새가 타고 올라왔지만 참으려 애썼다. 이걸 못하면 바닥에 있는 정액을 다 핥아야 할 게 뻔했다. 삼키고 검사까지 맡아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이걸 그저 물고 가는 게 나았다.
그가 애써 숨을 가늘게 쉰다. 입에 들어찬 가죽은 질척했지만,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욕실로 기어갔다.
* * *
엘 도안은 거뭇한 눈가를 꾹꾹 눌렀다. 혹여 졸다가 말에서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그는 여러 번 고개를 흔들었다. 훈련받은 말은 자작가로 알아서 찾아가겠지만 숲의 경사에서 잘못 구르면 목이 부러진다. 죽어도 그런 죽음은 볼썽사나웠다. 그가 등을 피며 몸을 움직였다.
숲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먹기 시작한 지 3주가 넘었는데도 조사는 더 이상 진척을 보이지 않는 중이었다. 엘 도안은 지치는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자신의 가문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어떻게든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가장 책임감을 지고 있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지금껏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적나무 병은 흙에서 기인한 것이다. 토양성 질환이었다. 땅이 오염되어 나무가 고사하는 경우는 흔하디흔하다. 문제는 확산속도였다.
흙에 발이 달려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토양성 병이 이런 식으로 전염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숲지기들도 토양성 병이라는 소리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차마 상대가 귀족이니 황당하단 말은 못 하겠다는 얼굴이었다.
“토양성 질환인데 전염성이 있는 새로운 경우인 것 같다고?”
그 말을 들은 교수는 당장 얼굴이 터져나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서 원인이 뭐라는 거야? 토양성 질환의 원인이?”
“그게, 아직 저희도 잘…….”
교수가 접시를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몫으로 늘 두세 배 준비해오는 디저트가 그 접시에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비어있었다면 당장 던졌을 테니까. 대신 교수는 화산이 터져나가듯 소리를 질렀다.
“니들이 이러고도 졸업반이야! 토양성이면 대충 어떤 문제인지 범주를 좁힐 생각을 해야지. 땅에서 생긴 문제라고만 말하면? 흙을 만드는 수백 가지 환경 중에 뭘 조사할 건데!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서 조사할래? 어?!”
보고하던 이들이 도망치듯 튀어나왔다. 그 뒤로는 다들 앉아서 오 년치의 관리일지를 뒤졌다. 숲지기들은 자신들이 해온 방식이 십 년째 똑같다고 말했지만 뭐라도 하긴 해야 했으니까. 수천 장의 종이를 읽고 뒤진 결과 조사단은 자작가 숲지기들의 성실함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이들은 늘 같은 재료를 사용해 비료를 만들어 토질을 개선했고, 늘 해오던 대로 땅의 습도를 관리하고, 가지를 쳐서 나무를 관리해왔다. 올해 들어서 갑자기 문제가 생길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조사단은 이제 비가 내렸던 날과 물의 사용처를 조사 중이다. 방향을 잃은 배처럼 마구잡이로 노를 젓는 꼴이었다. 이대로라면 두 달 후에도 성과가 없을 게 분명하다. 실패가 보이는 노력이란 배는 더 피곤했다.
황제의 특별 지시로 이루어진 조사였다. 뭐 하나 보고할 결과물이 없다면 교육원의 입장에서도 망신이었다. 이번 조사에 함께한 조사원들은 특히 더 문제다. 자신들의 무능을 드러낸 꼴이니 일자리 소개가 일 년은 더 미뤄질 것이다.
다들 그것을 짐작한 듯 조사단 분위기는 날로 더 우중충해졌다. 예민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간식과 차를 더 늘려달라고 해야 할 거 같은데…….’
당장의 짜증을 막을 수 있는 건 그런 것뿐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의 옆구리를 가볍게 찼다.
엘 도안은 마르티안의 서재 앞에서 문을 두들겼다. 보고를 위해 나흘에 한 번은 오는 곳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찾아오는 것이 민망해지고 있었다. 이렇다 할 조사결과도 없이 그저 간식을 늘려달라는 소리만 반복하고 돌아가는 상황이었으니까.
마르티안은 싫은 소리 없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그럼에도 맘이 불편했다. 중간 전달자는 정말 마음이 힘들구나,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기다렸다.
그를 맞이한 건 집사였다. 그는 비어있는 서재 안으로 엘을 안내했다.
“자작님께서 일이 조금 늦어지시는 모양입니다.”
“일? 뭔가 일이 있었어?”
“아시다시피 백작님이 몸 상태가 아직 나아지지 않아서요. 병문안 겸 살피러 오가시는데 오늘은 조금, 늦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의외의 말에 엘 도안은 놀랐다. 그가 두 사람의 자리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분위기가 심각했으니까. 그 뒤로 그는 마르티안에게 백작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섣부르게 나선 것을 후회했다.
“그래? 두 분 사이가 나아진 모양이야.”
그가 안심한 말투로 중얼댄다. 하긴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조사단이 모두 나간 저택에서 둘이 남아 있었고, 한쪽은 아프기까지 하니 냉전이 이어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점심과 저녁 사이에 병문안을 할 정도면 꽤 친밀해진 사이로 발전한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의 얼굴이 풀렸다.
“백작님이 몸이 많이 지치신 모양이지? 삼사일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아프시다니…….”
“딱히 외상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니까요. 좀 더 쉬시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이 바빠서 백작님께 병문안도 못 갔어. 어차피 누님이 가서 계신 거라면 이 기회에 겸사겸사 가보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아직 계시려나?”
“아니!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여기서 기다리시지요. 도련님.”
집사가 놀라 대답한다. 그는 마르티안의 병문안이 왜 길어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니 반사적으로 나온 반응이었지만, 지나치게 과한 반응이었다. 엘 도안이 이내 짓궂게 웃었다.
“그냥 병문안은 아닌 모양이지?”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
“모르는 척할 거 없어. 두 분이 깊은 사이라는 건 나도 아니까.”
“솔직히 집사보다 먼저 알았을걸?” 그 말을 덧붙이며 엘 도안이 아는 척을 했다.
그는 백작의 방에서 나오던 마르티안을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훈수 아닌 훈수를 두었던 날이었다. 엘 도안은 자신의 누이가 가문과 상관없이 행복했으면 했고 그걸 위해서는 뭐든 지지할 마음이 있었다.
물론 제 누이가 백작을 선택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백작은 너무 지위가 높았고 마르티안이 원하는 바와는 여러모로 맞지 않은 구석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엘 도안은 백작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여러모로 뛰어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이 마르티안에게 빠져있다는 것 자체가 친동생의 입장에선 아주 반갑고 뿌듯했다.
“나는 두 분이 잘되었으면 좋겠어. 백작님은 이미 누님에게 빠져 있으니까 누님이 좀 마음을 열면 좋을 거 같은데…….”
그 말에 집사가 미간을 찌푸린다. 백작을 무슨 순수한 귀족 청년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는 마르티안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3개월쯤 가볍게 만나자는 제안이나 하는 자였다. 하고 싶은 말이 거세게 올라왔으나, 집사는 참았다. 여기서 나서는 건 본분을 넘어서는 행동이었다.
다행히 엘 도안은 집사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는 그저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는 것에 신이 난 상태였다.
“나중에 백작님을 만나서 누님에 대해 좀 알려드려야겠어. 집사도 알다시피 누님이 꽤 까다롭잖아? 선물하면 좋을 만한 거라든지 호감을 살 만한……. 그런 게 뭐가 있을까?”
“자작님은 취향이 거의 변하지 않는 분이시라서요. 좋아하시는 것도 늘 같으십니다.”
“그럼 차나 입욕제, 마사지용 오일 정도인데 그건 너무 평범하잖아. 누님이 관심을 두는 새로운 거 없어?”
집사가 말을 머뭇댄다. 요즘 그녀의 새로운 관심사는 바로 백작 자체였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괴롭히는 데 관심이 넘쳤다. 그에 비례하여 백작은 하루하루 시드는 것처럼 피곤해했고, 사나흘 전엔 다시 뺨이 퉁퉁 붓다 못해 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멍이 든 수준이야 처음 집사가 보았던 상태와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명확하게 알고 있으니 보는 게 훨씬 부담스러웠다.
어쨌든 그는 자작가의 손님이고, 공작가 장남이자, 영지를 하사받은 백작인 것이다. 사적과 공적의 경계는 애매할 때가 많아서 끙끙거리면서 이불을 덮고 있는 백작을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때마다 집사는 이것이 ‘쌍방합의’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려 애썼다. 그럼에도 백작의 뺨에 든 멍이 빠지자 집사는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물론 엘 도안은 이런 상황은 전혀 몰랐다. 마르티안은 자신의 성향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드러내려 하지도 않았으니까. 타지생활을 오래 한 탓에, 엘 도안은 마르티안의 성향에 대해 의식하는 바가 거의 없었다.
집사는 제 앞에 앉아있는 도련님을 복잡한 심정으로 보다가 한숨처럼 말을 뱉었다.
“옷을 새로 맞춰드렸더니 좋아하시긴 했습니다.”
“아, 맞아. 요즘에 누님을 보면 내가 더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마르티안은 외부 손님들로 인해 차림새에 신경을 쓰는 중이었다. 덕분에 집사가 맞춰둔 옷들이 빛을 발했다. 그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지의 주인이었다. 아마도 누군가는 반했을 것이다.
엘 도안은 그것을 확신했지만 대놓고 드러낼 사람은 없을 거라고 또 확신했다.
‘백작님이 그렇게 굴고 있으니 누가 감히 나서겠어.’
백작은 대놓고 드러내지 않을 뿐 그녀의 반경 안에 있으려고 애를 썼다. 물론 아주 감추려 하지도 않아서, 마르티안을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백작을 발견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는 외모와 배경 그리고 능력까지 갖춘 사람이다. 사람은 경쟁자와 자신을 비교하기 마련이었다. 백작의 존재감을 무시하고 나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마르티안과 백작은 외적인 부분까지 지나치게 잘 어울렸다. 우연하게라도 같이 서 있으면 그림같이 어울려서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일 정도로.
이런 상황에서 마르티안에게 다가서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둔하고 눈치가 없는 사람이거나 혹은 지나칠 정도로 자존감이 튼튼한 사람일 것이다. 엘 도안은 조사단 중 몇몇 떠올려 보다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교육원 사람들은 귀족가의 차남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제 몸 건사할 밥벌이를 찾느라 필사적인 사람들이었다. 백작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당장 자신부터도, 경쟁상대가 백작이라고 하면 멈칫하게 될 것 같았으니까.
누구와 경쟁해도 당연히 승자의 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 백작은 필사적이라는 말이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르티안은 그런 사람을 필사적으로 만들었다.
“내 쪽에서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는 게 처음이라서……. 자작은 내가 서투른 게 좋진 않겠지.”
백작은 엘 도안에게 그런 소리까지 했다.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단 소리보다 그게 훨씬 더 진실되게 느껴졌다. 물론 마르티안이 조금도 백작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대와 친해지게 되어 다행이야. 말할 곳이 없어서 조금, 답답했거든.”
그때 엘 도안은 백작이 조금 불쌍하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성급한 티타임을 만든 것이다. 그 자리는 마르티안이 화를 내는 것으로 끝났고 그 뒤에는 백작이 앓아누웠다.
화가 난 마르티안이 백작을 완전히 거절해버렸고, 그로 인해 백작이 상심해서 드러누운 게 아닐까. 그는 혼자 그런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 정도로 상황이 풀렸다니 다행이었다.
“백작님에게 한번 들르겠다고 전해줘. 괜찮은 시간 알려달라고. 나도 얼굴을 한번 비춰야지.”
“그렇게까지는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자작님이 신경 쓰고 계시니까요.”
“아, 그런 핑계라도 대야 백작님이랑 만나지. 그래야 누님 이야기를 하고 뭐라도 알려 드릴 거 아냐.”
그는 집사에게 눈치도 없다는 소리를 덧붙였다. 집사는 이 상황을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설득을 하기 위해서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전부 사적인 이야기다.
‘자작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그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 *
휴이는 더는 숲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조사단 중 누구도 그가 빠진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진 않았다. 실무자가 아닌 그가 숲을 매일 가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초반에 얼굴을 내비치다가 자연스럽게 실무에서 빠지는게 일반적이었다. 보통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도안 자작가에 남았다. 자신의 방에서 자발적으로 감금된 것처럼 생활하면서, 그는 마르티안을 기다렸다. 이제 마르티안은 그의 뺨을 때리는 데 아무 주저함이 없어졌다. 정액을 삼키는 일은 여전히 역겨웠지만 버릇처럼 익숙해졌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감사 인사를 하고 맛있게 핥아먹었다. 그 정도에서 멈춰 주는 게 감사하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그는 아침마다, 마르티안이 또 바닥에 오줌을 싸게 만들까 봐 눈치를 잔뜩 보았다.
매질의 강도도 점점 세졌다. 희롱하듯이 맞을 때도 자국이 남았고 벌을 받게 되면 온통 피멍이 들었다. 그쯤 되면 어디든 앉아있기가 어려웠다. 세반 영지에서 처리해야 할 서류라도 보내오면 여러모로 곤욕이었다. 그답지 않게 뭉그러진 사인이 서류에 적혔다.
고통은 일상을 침범했다. 그건 기이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뭉근하게 이어지는 고통들은 매질 당시의 고통을 미화시켰다. 마르티안과의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는 매일, 매 순간을 의식하며 마르티안을 기다렸다. 진짜 개도 그렇게 제 주인에게 목매달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주인도 그런 식의 쾌락을 주진 못할 테니까.
“너는 엄살이 너무 심해. 벌 받으면서도 좆은 빳빳하게 세우는 주제에.”
그녀가 만드는 고통은 중독과도 같은 흥분을 일으켰지만, 그와 별개로 그는 지나치게 아픈 것에는 잘 익숙해지지 못했다. 희롱하며 맞을 건 견딜 만했지만 벌을 받을 때면 우느라고 얼굴이 엉망이 되곤 했다.
그녀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반복되었지만 기억에 깊게 남아 그를 흥분시키는 건 늘 후자다.
가혹하게 그를 다루는 주인. 그건 그가 꿈꿔오던 이상형과도 일치했다.
그럼에도 그는 끙끙대는 법을 배웠다. 마르티안은 벌을 줄 때엔 용서가 없었지만 벌을 받고 나면 관대해지는 편이었다. 휴이는 눈치로 그런 것들을 파악하고는, 엉엉 울면서도 그녀에게 기어와 그녀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치댔다.
“주인님, 흐, 읍, 너무, 아팠어요. 흐으, 아파서…….”
“그 정도는 아파야지. 혼나는 건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길은 부드럽다. 진짜 개를 쓰다듬듯 그를 쓰다듬었다. 그때마다 휴이는 이상하게 일렁이는 감정들을 느꼈다. 흥분과는 다른 술에 취하는 것과도 비슷한 감각. 가학적인 학대에 흥분하는 몸인데도 그 다정함과 부드러움이 반가웠다. 그는 그 감정에 붙일 단어를 찾지 못했다.
사실 중요하지도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가 매일 그녀의 개로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이른 새벽, 휴이는 습관처럼 깨어났다. 아래를 옥죄는 감각도 제법 익숙해졌지만 피곤한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마르티안을 보며 드는 울렁이는 감정은 수면 부족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가 한숨을 내쉬고는 억지로 몸을 반쯤 일으킨다. 푹신한 베개에 등을 대고 잠시 앉았다. 곧 마르티안이 올 시간이었다.
그는 기어서 거울 앞에 섰다. 구겨진 윗옷은 반쯤 단추가 풀려 있었고 벌거벗은 아래로는 정조대뿐이다. 벌어진 윗옷 사이로 부어오른 유두와 주변의 둥근 멍이 보였다. 머뭇대며 내린 시선으로 얼룩진 카펫이 보였다. 오줌을 싸고 그 위에서 발기하며 엉망이 되었던 자리였다.
마르티안은 집사를 시켜 방을 치우게 했지만 얼룩진 것들을 바꿔주진 않았다. 그 의도가 명백해서, 휴이는 그것을 볼 때마다 수치심을 느꼈다. 아래가 달아올랐다.
붉어진 얼굴로 그가 거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허벅지 사이를 벌리고 앉자 벌어진 사타구니 사이로 정조대가 툭 불거져서 흔들렸다. 익숙해진 꼴이었지만 천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울로 정조대 틈새로 비집고 나온 허연 것들이 눈에 띈다. 그가 손을 내려 정조대를 더듬었다. 이미 반쯤 발기한 상태라 작은 자극에도 신음이 샜다.
“으, 후우…….”
달아오른 몸은 예민한 상태다. 조금만 더 흥분해도 심하게 괴로워질 것이다. 그가 조심스레 가죽을 더듬어 바깥으로 새어 나온 정액을 손으로 닦아냈다. 이내 손이 질척해졌다. 숨을 참으며 그가 손을 핥았다.
“윽, 웁…….”
자신이 흘린 것을 삼키는 기분은 늘 최악이었다. 때론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르티안은 이제 정조대 밖까지 질질 흘리면서 있는 걸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안을 적신 건 그녀가 정조대를 풀어준 이후에 혀로 닦아내야 했고, 밖으로 샌 것은 마르티안이 보기 전에 깨끗하게 해야 했다.
허연 것들을 전부 삼키고 나서 그가 방 안에 딸린 욕실로 들어간다. 손과 얼굴을 씻었다. 거울로 비치는 얼굴은 열이 올라 붉었고 아주 피곤해 보였다. 자느라 엉망으로 눌린 머리도 별로다. 그는 물에 적신 손으로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넘겼다. 표정을 몇 번 풀어서 웃는 낯을 만들었다.
마르티안은 그의 외모를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그의 배경은, 그녀에겐 단점밖에 되질 않는다. 능숙한 개도 아니었다. 마르티안에게는 그가 아니더라도 굴릴 개가 넘쳤다. 그러니 가능하면 그녀가 예뻐할 만한 모습으로 있는 게 중요했다.
잠기운이 사라지자 아래의 감각도 점차 묵직하고 선명해진다. 내뱉는 숨에 조금씩 신음이 섞였다. 그가 겨우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을 때였다. 침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평소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바닥으로 내려가려던 휴이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멈춘다. 마르티안은 지금껏 문을 두드린 적이 없었다. 그의 공간조차 그녀의 것이라는 것처럼 바로 문을 열곤 했으니까. 그가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을 때였다.
“잠시 들렀습니다, 백작님.”
로아 교수가 들어왔다. 휴이가 반사적으로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배를 타고 흘러내린다. 정조대를 차고 벌거벗은 아래, 그가 급하게 이불을 붙잡았다. 얼굴로 확연하게 열이 몰렸다.
교수가 아픈데 일어날 필요 없다며 다시 누우라는 소리를 한다. 의례적인 소리겠지만 휴이는 모른 척 다시 누웠다. 이불을 배 위까지 끌어 덮었다.
“열이 오르는 거 같은데, 의사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냥…… 미열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로아 교수는 교육원 시절 휴이를 지도했던 교수였고, 수도개선사업에 그를 추천해 그로 인해 백작 작위를 받게끔 만들어 준 조력자이기도 하다. 지위의 차이가 있음에도 그가 하대하지 않는 이유였다. 그런 상대 앞에서, 고작 이불 한 장으로 가린 채 개의 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티안과의 관계는 고립된 관계다. 삶과는 동떨어진 개 취급은 휴이 세블로아드의 지위나 일상과는 확연히 멀었다. 지금, 그 경계가 엉망으로 흐려졌다. 앞섶을 적신 채 숲을 돌아다닐 때 비슷하다. 신음을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휴이가 로아 교수를 보았다. 교수는 생각보다 초췌한 그의 모습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몸이 많이 안 좋으셨군요. 이럴 줄 알았다면 빨리 와볼 것을 그랬습니다.”
“좀 몸이 무거운 정도입니다. 대단한 건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 읏, 습니다. 조금 쉬면…….”
그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뱉었다. 앓는 소리와 닮아서 교수의 얼굴이 탄식으로 물들었다.
“이런 세상에. 저는 지금껏 백작님이 도안 자작 때문에 빠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숲 조사야 백작님이 올 필요도 없으니까요. 저택에서 도안 자작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줄 알았지요.”
휴이는 제 신음을 앓는 소리처럼 감췄다. 그의 추측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지만 몸이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경계가 무너진 사이로 수치가 밀고 들어왔다. 흥분으로 아래가 더욱 조였다. 그는 입술 안쪽을 짓씹고는 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여기까지 온 거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 그게,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잠시 들렀습니다. 지금 조사가 좀 난항입니다. 토양성 병인 거 같은데 전염성이 있는 양상이라서요.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온 건데 결과 없이 돌아갈까 난처합니다.”
결국 일 이야기다. 생각을 겨우 움켜쥐며 그가 묻는다. 이건 그가 책임져야 하는 공적인 일이었다. 제 아래가 벌거벗은 채 조여지고 있다고 한들 제대로 대응을 해야 했다.
애초에 이 일의 시작은 휴이 세블로아드에게 있었으니까. 그의 부탁을 로아 교수가 들어주면서 조사단이 빨리 꾸려졌고, 조사지도 이곳 도안 영지로 맞출 수 있었다. 한 배를 탄 운명인 것이다.
“정확한 원인은 못 밝혀도, 흙의 요인이나, 양상을, 한정하는 것도 힘든 겁니까?”
“찾아보고는 있습니다만 기록상으로는 특이점이 발견되질 않아서요. 이런 상황이면 두 달 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하필이면 황명으로 이루어진 조사다. 실패로 결론 내면 이번에 졸업하는 연구생들은 당장 취직이 힘들 판이었다. 교수의 얼굴이 답답하게 가라앉는다.
“이래서는 도안 영지에게 주어지는 지원금도 줄어들 겁니다. 결과가 없는 조사를 두고 큰돈을 내어줄 이유가 없으니까요.”
교수는 말을 뱉고는 슬쩍 백작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일부러 자신을 찾아와 도안 가문의 영지를 조사지로 언급했다. 모종의 청탁. 어려울 건 없는 부탁이었지만 이런 시도에는 늘 다른 의도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의도는 바로 도안 자작이었다. 조사 초반에만 해도 교수는 휴이의 모습이 새삼 낯설고 제법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가 누군가를 졸졸 쫓아다니다니 두 번은 보기 힘들 구경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그런 구경을 할 여유도 없다. 로아 교수는 이번 조사가 너무 큰 망신으로 이어지지만 않길 바랐다.
그가 말을 잇는 중에, 침실 문이 예고도 없이 열렸다. 무례한 침입에 교수의 시선이 먼저 돌아간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며 휴이는 그저 가늘게 한숨을 뱉었다. 들어온 사람은 당연하게도 마르티안이었다.
그녀의 뒤로 집사가 함께 들어온다. 그가 부드러운 음식을 테이블에 놓았다.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내가 퍼졌다. 그녀는 교수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은 채 가볍게 웃었다.
“교수님께서 계셨군요.”
“아, 백작님이 계속 아프시다길래 잠시 병문안을 왔습니다. 식사를 직접 챙기느라 고생하시는군요.”
그가 접시를 힐끗 살핀다. 으깬 감자와 크림을 넣어서 만든 수프는 보기만 해도 맛이 느껴졌다. 새벽에 바로 이쪽으로 오느라 먹은 것이 없다. 로아 교수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것을 보며 마르티안이 웃었다.
“손님이 아프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오늘은 교수님도 오셨고 하니.”
그녀가 잠시 휴이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그의 얼굴이 이미 붉었다. 천박한 개답게 흥분한 것이다. 동시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엎드려서 개처럼 굴어야 하는데, 그녀 앞에서 백작으로 있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한 모양이었다. 로아 교수가 있는데도 그런 얼굴을 한다는 게 그녀를 즐겁게 했다.
마르티안은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말을 이었다.
“교수님 식사도 이쪽으로 가져오라 시키지요. 집사, 테이블에 음식을 차리도록 해.”
그 말에 휴이가 입을 연다.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 그럴 필요는 없어. 도안, 자작.”
하대가 어색하다. 휴이는 백작으로서의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동시에 수치스러운 상상을 떠올린다. 이 상황에서 그를 개처럼 다루는 마르티안을.
당장 그에게 다가와 이불을 확 걷어낼 수도 있다. 마르티안은 그가 무슨 꼴로 이불을 덮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녀는 그가 비참한 꼴로 허둥대는 걸 그저 볼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아래가 터져갈 것 같다. 그는 신음을 참기 위해 입술 안을 깨물었다.
마르티안은 휴이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그가 무슨 상상을 하고 왜 흥분했는지 뻔히 보였다. 그녀가 모르는 척 말을 했다.
“그런가요? 몸이 좀 나아지셔서 식사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 흣, 밤새, 잠을 잘 못 자서 피곤하니까……. 식사는 나중에, 나중에 하도록……하지.”
그의 표정이 급격하게 나빠지자 로아 교수가 먼저 나섰다.
“아침 식사는 조사단과 같이 먹어야지요. 백작님도 쉬시지요. 그럼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휴이의 표정이 풀어진다. 긴장과 수치로 경직되었던 어깨가 살짝 내려갔다. 마르티안은 그것을 보다가 교수를 따라 몸을 돌렸다. 그녀에겐 아픈 백작을 돌볼 의무도 있었지만, 자신의 영지를 위해 조사단을 살필 의무도 있었다. 그녀가 교수에게 물었다.
“숲에 나가는 시간이 조금 늦춰진 건가요?”
“그냥 아침이나 여기서 먹고 나가는 정도로 좀 늦췄습니다. 근래 강행군하듯 일했으니까요.”
“그럼 오늘은 저도 같이 식사를 하도록 하지요.”
“아, 저야 뭐……. 상관은 없지만.”
교수가 살짝 휴이를 살핀다. 그가 마르티안에게 빠져있는 걸 아는 탓이었다. 그녀가 돌봐주는 이 시간을 제법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마르티안을 거절하기엔 그럴 핑계가 없었다. 그가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티안은 몸을 돌려 휴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곤란함과 당황으로 잔뜩 물들었다. 뭔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입술이 달싹인다. 물론 로아 교수가 있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잠시 그의 아래에 시선을 두었다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어제저녁에 화장실을 못 가게 했지만 당장 소변이 급하진 않을 터였다.
잔머리를 잘 굴리는 개답게 그는 아예 물을 적게 마시기 시작했다. 오후부터는 마시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백작의 방에서 빠져나오며 그녀가 살짝 걸음을 늦춘다. 교수와의 거리가 벌어지자 그녀가 집사에게 말했다.
“백작님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라고, 그렇게 전해줘.”
* * *
달밤가의 의사가 자작가를 찾아오는 시간은 이른 저녁이거나 새벽이다. 애첩의 치료를 위해 오기 시작한 지 벌써 세 번째였다. 오늘 방문은 새벽이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저택이 더없이 분주해서 의사는 조금 당황했다. 입구에서 서성대던 그를 하인 하나가 알아보고는 자작의 침실로 안내했다.
방에 도착하니 자작의 애첩이 막 씻은 얼굴로 나와 있었다. 의사는 침대 맡 테이블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마르티안 님은 안 계시는 모양입니다.”
그 말에 론이 머뭇대며 대답했다.
“요즘에는 아침까지는 바쁘실 때가 많아서……. 약과 청구서는 제게 주시면 됩니다. 자작님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일단 치료부터 하지요.”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론이 몸을 움직여서 침대 가에 걸터앉아 바지끈을 풀었다. 그의 손에서 민망함이 묻어났다.
그건 좀 특이한 모습이었다. 애첩으로 십 년을 살았으면 수치를 느끼는 부분이 거의 사라져야 정상이었다. 사람다운 자존과 수치를 없애고 한없이 속없이 굴며 귀족의 비위를 맞추어야 오래 버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애첩은 타인에게 맨몸을 내보이는 게 전혀 익숙해 보이질 않았다.
‘어지간히 예쁨을 받은 모양이지.’
의사는 가볍게 생각했다. 도망치지 않고, 죽지 않고, 십 년이나 버티고 있는 것도, 주인이 유하게 굴린 덕분일 것이다. 아프면 꼬박 치료를 해주는 것만 보아도 그랬다. 근래 방문했던 다른 귀족 가를 생각하면 이 애첩은 행운을 타고 난 편이었다.
의사는 론의 성기를 쥐고 거죽을 뒤로 쭉 밀어 요도 안을 살폈다. 이전보다 아주 양호해졌다. 그가 면봉을 꺼내며 물었다.
“치료는 계속 마르티안 님께서 하시는 겁니까?”
“요즘에는 혼자서 할 때도 있습니다. 아침에 바쁘실 때가 많아서, 그때는 그냥 제가 하고, 읏.”
의사가 면봉을 요도구에 가볍게 밀어 넣었다. 붓기가 거의 가라앉아서 그리 빡빡하지 않다. 의사는 면봉에 소독약을 바르고 다시 밀어 넣었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내려가는 면봉이 내부를 가볍게 건드린다. 의사의 손짓은 속도가 빠르면서도 아픔은 덜했다. 의사는 소독을 끝내고 연고까지 마저 발랐다.
“확실히 많이 나아졌네요. 앞으로 조금만 고생하면 될 거 같습니다.”
론은 신음을 삼키며 감사하단 소리를 했다. 아무리 나아졌다고 한들 새로 돋아난 살들은 약하고 예민한 법이었다. 스치며 내려가는 감각이 선뜩하면서도 이상했다.
그래도 의사가 해주는 치료는 확실히 덜 아팠다. 딱 적합하게 면봉을 둘러 돌리는 덕분이다. 여린 내벽을 지나치게 긁지 않으니 통증을 견디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의사에게만 해당되는 기술이었다. 마르티안이나 자신이 약을 바를 때는 아직도 아팠다. 참으려고 노력해도 한 번씩은 울었고 그래서 자꾸 멈추게 된다. 사실 이 정도 아픔이면 울지 않고도 참을 수 있어야 하는데 때로는 눈물부터 나는 경우도 많았다. 겪어온 고통이 있으니 조금만 더 아파져도 몸이 겁을 먹는 것이다.
마르티안이 쓸데없이 참지 말라고 혼을 냈기 때문에 그는 근래 들어 자신의 몸 상태를 신경 쓰고 있었다. 울기 전에 애원을 해야 했으니까. 늦지 않게 말하려면 스스로의 고통에 관심을 두어야 했다.
마르티안을 두고 제 몸에 신경 쓰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론은 제 상태를 말하고, 애원하고, 매달리는 걸 매일 배웠다.
치료가 마무리되자 론은 벗었던 바지를 다시 입었다. 속옷이 없이 입는 바지는 얇고 헐렁하다. 론은 바지 끈을 허리에 맞춰 꽉 매었다.
마르티안은 요즘 바지를 헐겁게 매어주고 조금만 움직여도 골반 아래로 흘러내리게끔 만들곤 했다. 그렇다고 의사 앞에서 그러고 있기란 여러모로 민망한 일이다. 그건 그녀가 돌아올 쯤 해도 될 일이었다.
그가 꾸물대듯이 침대 위로 올라가 베개에 등을 대고 앉았다.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몸의 긴장이 풀린다. 금세 피곤해졌다. 의사가 두고 갈 여분의 약들을 확인하며 물었다.
“요즘도 치료할 때 많이 아픕니까? 매번 운다는 소릴 자작님이 하시던데요.”
“아, 그건. 그, 안에 돌릴 때가 조금 아, 파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지금도 아프긴 했지만 처음만큼은 아니었다. 마르티안의 애첩으로 있으면서 버텼던 아픔을 생각하면, 지금 아픈 정도는 사실 못 참을 수준도 아니다. 마르티안이 멈춰주지 않아도 그 정도 아픔이라면 끝까지 버틸 만했다. 그럼에도 론은, 저도 모르게 울었다.
그러면 그녀는 그가 운다는 이유로 멈췄다. 그런 자신이 꼭 엄살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론은 스스로가 때론 민망했다. 그는 얼굴을 붉힌 채로 말을 더했다.
“이젠 한 번 정도만 멈추면 치료도 어렵지 않으니까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의사는 고민했다. 치료에 있어 통증을 느낀다는 건 중요한 지점이었다. 고통이란 몸이 스스로 하는 방어기제였다. 아파야 조심했으니까. 아파서 울면 치료는 더 조심스러워지고 조금 더 상대를 안정시키게 된다. 의사가 지금껏 마취 연고를 주지 않은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법 많이 나아진 상태였고 면봉으로 작정하고 쑤시지 않는 이상 상처가 더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더 아픈 길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
“마취 연고를 같이 넣어 놓죠. 소독하기 전에 바르면 통증이 없을 겁니다.”
그가 가방에서 연고를 찾았다. 이 일을 하다 보면 가장 흔하게 쓰는 약이다. 가방 안에 들고 다니는 것만 서넛은 되었는데 어째 다 쓰던 것뿐이었다. 그는 그나마 많이 남아 있는 연고 통을 꺼냈다.
“새것이 없어서 일단 이거라도 놓고 가겠습니다. 양이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아, 아니요. 심하게 아프, 아픈 건 아닙니다. 굳이 그런 약이 없어도…….”
론이 당황한 얼굴로 거절했다. 의사는 그가 거절하는 이유를 쉽게 짐작했다. 보아온 바로는 그는 꽤 소심한 애첩이었으니까. 도안 자작이 상당히 예뻐하는 게 보이는데도 자기주장이 거의 없었고 도리어 자신의 치료가 부담이 될까 봐 눈치를 보는 게 더 많았다.
“부담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새것도 아니고, 이건 청구하지 않을 거라서.”
의사는 부담을 덜어주려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쓰던 연고 정도야 비싼 것도 아니었으니까.
“사용하는 법은 따로 적어두지요. 소독하기 전에 먼저 바르면 됩니다. 방법은 다른 거와 똑같아요.”
“…….”
“아 처음에 연고를 바르고 한 오 분 정도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약효가 도니까요. 안 아프다고 해서 다른 식으로 쑤셔대면 금방 찢어지니까 주의하구요. 그리고…….”
“그 연고는, 그냥, 다시 가져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확실한, 그것도 꽤 단호한 거절이다. 의사는 잠시 당황했다.
“아니, 왜요? 마취 연고를 바르면 무슨 문제라도 됩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냥, 그러니까…….”
그가 한참을 머뭇거린다. 이어진 대답이 기어 들어가는 것처럼 작았다.
“자작님이…… 치료하는 걸 좋아하셔서…….”
의사가 미간을 찌푸린다. 대답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치료하는 걸 좋아한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
“치료가 무슨 재미가 있다고요. 아파서 끙끙대는 사람 구경하는 것도 아니, 고…….”
그 말에 론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진다. 목덜미와 귀가 붉어졌다. 의사는 그냥 뱉었던 말이 정답이었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그러니까, 지금, 치료할 때 좋아하신다는 게, 그쪽이 아파하는 걸…….”
‘좋아한다는 말입니까?’라는 뒷말은 그냥 삼켜졌다. 도안 자작의 성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달밤가에서도 가학적이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오가면서 본 거라고는 애첩을 아끼는 모습뿐이라 그 사실에 대해 잊고 있긴 했지만.
의사는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래도, 아플 땐 봐주시는 거 아닙니까? 마취 연고 정도야 충분히 써서 치료해주실 것 같은데요.”
처음부터 자작은 먼저 나서서 필요한 것들은 얼마든지 청구하라고 했었다. 말만 한다면 그쯤이야 얼마든지 수긍해 줄 터였다. 애첩이 너무 과하게 눈치를 보는 모양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침대에서 다리를 벌리고 먹고사는 쪽이, 제 주인이 원하는 걸 뻔히 알면서 반대로 행동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제가 조언을 했다고 하면 좀 낫겠습니까?” 의사가 그런 소리를 하며 상황을 정리하려 했을 때였다. 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제 쪽에서 그렇게 하고 싶은 거라서…….”
“…….”
“좋아하시는 거 막고 싶지 않고 저도 그, 싫지는 않아서요. 마취 연고는 아예 없던 거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요도 쑤셔지는 거 좋아하지도 않잖아요.”
론의 얼굴이 타는 숯처럼 검붉어졌다. 의사는 자신이 뱉어낸 단어가 지나치게 적나라했음을 깨달았다. 어이없는 상황을 마주하자, 달밤가에서 보고 들었던 말들이 거르는 것 없이 툭 튀어나온 것이다. 의사는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을 골랐다.
“아파서 울 정도면 힘들다는 뜻 아닙니까? 사람이 요령도 피우고 그래요. 그래야 몸이라도 멀쩡한 법입니다. 아픈 걸 좋아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면서 원…….”
애첩들이 주인의 비위를 맞추는 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다. 제때 치료를 받고, 좀 더 풍족하게 살고, 덜 고통스럽고 싶어서. 그래서 의사는 눈앞의 애첩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잔소리처럼 말을 이어가자 론이 붉어진 얼굴로 변명을 했다.
“억지로가 아니고 정말로, 괜찮습니다. 치료도 꾸준히 받고 있고 또 무리할 일도 없으니까…….”
“아니, 나 참. 보통은 눈치를 봐서라도 이런 약들 받아내려 애를 써요. 주인들이 돈 쓰기 아까워서 안 사주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론이 의사의 시선을 피한다. 그는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버텼다. 의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주장이 없는 줄 알았더니 상당히 고집이 셌다.
“본인이 싫다니까 강요는 안 합니다만, 아니, 대체 마르티안 님이 치료하시면서 얼마나 좋아하시기에 그럽니까? 어디 뭐 녹아내릴 듯이 예뻐해 주기라도 해요?”
그 말에 론의 얼굴과 귀가 모두 붉어진다. 곤란해하는 거 같은데 싫어하는 기색은 없어서, 그러니까 제법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서, 의사는 어이가 없었다. 귀족들의 많은 애첩들을 보아왔지만 뭘 어떻게 하면 사람을 이렇게 길들일 수 있을까 싶었다.
그가 고개를 절레 흔들며 마취 연고를 다시 가방에 넣었을 때였다. 침실 문이 열리며 마르티안이 들어왔다. 그녀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었던 탓에 분위기가 미묘하게 끊어진다. 의사는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늦는다고 들었는데 오셨군요. 치료는 방금 끝났고 약을 좀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보니까 어때, 좀 더 나아졌나?”
마르티안이 침대로 다가와 론을 살핀다. 그녀의 손에 닿는 론의 뺨이 뜨끈했다.
“열이 있는데?”
“아, 그 정도 미열은 괜찮습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치료를 받다 보면 몸이 피곤해져서요. 약하게 열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사가 재빠르게 수습했다. 마르티안은 별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상처는? 제법 괜찮아진 것 같던데.”
“한 일주일 정도면 나을 거 같습니다. 상처가 아물었긴 해도 새 살이 아직 약하니까 너무 세게 긁지만 말아 주시구요.”
대화가 이어진다. 둘은 론의 몸을 꼼꼼하게 되짚었다. 헐어있던 요도의 상태부터 맞아서 피멍이 들어있던 항문 주위와 잔뜩 부어있던 뒷구멍 안쪽까지.
론은 어디에도 시선을 두지 못하고 이불만 보았다. 수치로 잔뜩 긴장한 모양새였다. 이불을 쥔 손이 계속 꾸물댄다. 조금이라도 빨리 상황이 끝나길 바라는 것처럼.
마르티안은 픽 웃고 의사에게 물었다.
“치료할 때 덜 울게 할 방법은 없어? 꼼꼼히 약을 바르려고 하다 보니 아픈 모양이던데.”
의사가 잠시 눈치를 살핀다. 덜 울게 할 방법이야 있었지만 그녀의 애첩이 거절해버렸다. 이유는 제 주인이 좋아하는 걸 막고 싶지 않아서. 의사 본인은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제 주인이 듣기에는 제법 예쁜 소리일 거 같았다.
그가 애첩의 기특한 의도를 알리기 위해 입을 열려 했을 때였다. 론이 먼저 말을 뱉었다.
“전, 저는 괜찮습니다. 전보다는 덜 아프고 또, 곧 나을 테니까요. 신경 쓰시지 않아도…….”
“그러기엔 매번 울잖아.”
“그건…….”
론은 잠시 의사의 눈치를 보았다. 명백하게, 이전의 대화를 숨기고 싶어 하는 모양새다. 의사는 또 의아했다.
주인을 위해 하는 노력은 그게 뭐든 티를 내야 하는 법이었다. 그래야 주인의 예쁨을 더 받을 테니까. 이런 식으로 숨길 거라면 아픔을 참는 이유가 없지 않나. 대체 뭘 바라고 이러는지, 도통 이해 가는 게 전혀 없었다.
의사는 고개를 설레 젓는 것으로 깊게 생각하는 걸 포기했다. 어차피 치료나 하면 그만인 입장이다. 그제야 론이 안도한 것처럼 답을 했다.
“울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치료해주셔도 됩니다.”
마르티안이 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손길이 부드러워서 그의 표정이 풀어졌다. 가만히, 주인의 손길을 받고 있는 더없이 순하다. 다정한 걸 좋아하는 개, 하지만 그의 주인은 마르티안이었다. 그녀는 론에게 말했다.
“어차피 낫고 나면 많이 울어야 할 텐데, 치료받는다고 버릇없었던 거 다 혼나려면.”
그녀는 상당히 참고 있는 중이었다. 휴이로 기분을 풀고 있긴 했지만 능숙한 개를 통해 얻는 만족과는 또 달랐다. 론을 예뻐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만으로는 슬슬 재미가 없었다. 낫고 나면 한동안은 많이 혼낼 생각이다. 그녀는 그것을 일부러 드러냈다.
“네 몫은 해야지.”
말투는 마냥 부드럽다. 지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르티안은 개의 뺨을 좋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지루함을 론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해진 개는 가끔 그녀에게 달라붙어 흥분을 유도하려 들었다. 그때마다 말로 내치고 말았지만 다 낫고 나면 하나하나 혼낼 생각이었다.
그녀가 허리를 숙여 론의 뺨과 눈가에 입을 맞췄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어린애들 장난만도 못 한 이런 것들이, 이 개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녀는 개가 원하는 것들을 이유 없이 베풀었다.
그건 한정된 친절이다. 기한이 정해진 행복은 불안을 야기했고 사람을 더 간절하게 만들었다.
“교육부터 다시 받자.”
그녀의 손이 론의 뺨을 툭툭 건드리고 곧 떨어진다. 어린 시절, 그녀는 성향을 자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론을 개로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교육에는 어떤 다정함도 없었다. 스스로의 바닥을 내려놓아야만 끝나는 시간, 론은 그녀가 자신에게 예고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교육은, 고통스럽게 자신의 주제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네, 주인님.”
론은 수긍했다. 자신은 점점 더 버릇이 없어지고 있었으니까. 그가 아파서, 마르티안은 그걸 잠시 용인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묵인이 특별하게 느껴져서 때론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불안해지면, 그때에도 또 그랬다. 그녀의 묵인으로 위로받으려는 것처럼.
마르티안은 그의 잘못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교육보다도 먼저 혼나야 할 일이 많다는 소리였다. 론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벌을 받으면, 다시 교육을 받고 나면, 버릇없이 군 것도 용서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마르티안이 의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에 방문할 일정과 달밤가에 대한 가벼운 말들이 이어졌다. 론은 침대 맡에 기대앉아 마르티안의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잡아도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요즘에 그런 생각을 자주 했으니까.
맞더라도 좋으니 닿았으면 좋겠다. 아파도 되니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물렀으면 했다. 욕망은 모두 극단적이었지만 낯설진 않았다. 자각하려 하지 않았을 뿐 그는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이내 그가 손을 뻗는다. 이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었다.
마르티안의 시선이 그에게 닿는다. 무슨 일이냐며 묻는 시선이다. 제 욕망을 말할 수 없어서 그는 할 수 있는 말을 입에 올렸다.
“치료받게 해주신 거, 감사합니다. 빨리 낫도록 해서 원하시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머뭇대며 하는 소리에 마르티안이 픽 웃었다. 먼저 나서서 치대는 게 많이 늘었다. 다정하게 구는 게 이젠 지겨웠지만 다정한 덕분에 가능해진 이런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 그래야 울고 혼나고 하지.”
그녀는 선을 그었지만 론은 네, 하고 순순히 답한다. 거기에 더해 교육을 잘 받겠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마르티안은 웃었다. 그녀의 개는 제법 예쁘게 변했다. 제 주제를 알면서도 귀엽게도 구는 꼴로.
“그때도 예쁘게 굴어.”
그녀가 말하자 론이 바로 그러겠다고 답한다. 그가 마르티안의 손을 살짝 당겼다. 조심스러운 손짓에는 숨겨진 말이 많다. 아니, 올려다보는 눈에서 이미 감정이 가득하다. 불안, 갈망, 애원, 애정을 바라는 구체적인 욕망들. 그녀가 그 손을 들어 론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보고 있던 의사가 고개를 설레 저으며 몸을 돌린다. 청구할 약들은 이미 확인했고 청구서에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정도의 금액이 적혔다. 그가 가방을 챙겼을 때였다. 마르티안이 의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멍 빼는 연고를 하나 받았으면 하는데?”
“아, 새것은 없고 좀 쓴 거는 있습니다. 치료할 때 쓰던 거라서.”
“그럼 그것도 두고 같이 청구해. 다음에 올 때는 좀 큰 거로 가져오고.”
의사가 챙겼던 가방을 다시 내려놓았다. 누구에게 쓰시려는 거냐는 물음이 저도 모르게 올라왔다가 겨우 내려간다.
멍 연고는 흔히 쓰는 약이었지만 지금 애첩에게는 필요한 약이 아니다. 그녀에게 애첩이 아닌 다른 상대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이 저택 안에.
의사는 저도 모르게 애첩을 힐끔 보았다. 조금 굳어 있었지만 그뿐이다. 하긴 뭐, 귀족이 애첩 외에 상대를 두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곱게 놓고 치료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분명 운이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의사의 마음은 미묘하게 불편했다. 제 주인이 좋아하니 마취 연고를 거절하던 게 떠올라서다.
‘그러게 쓸데없이…….’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고 가방에 들어있던 멍 연고 중 가장 적게 남은 통을 봉투에 넣었다.
의사가 돌아간 후 마르티안은 연고를 품에 챙겼다. 백작의 피부는 몹시 희어서 매질 자국이 예쁘게 남아 보기 좋았지만 멍이 퍼지면 너무 과하게 보인다는 단점이 있었다. 저택 안에 구비해 둔 연고는 며칠 만에 다 떨어졌다.
사실 그녀는 이제 그런 게 별로 필요하단 생각을 안 하던 참이었다. 어차피 백작이 방에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를 볼 수 있는 건 그의 하인들을 제외하고는 마르티안이나 집사가 전부였다. 별문제 없을 거라 여겼는데, 집사가 문제였다. 늙은 집사는 백작의 몰골이 나빠질 때마다 크게 근심했다. 그녀가 데려오던 많은 개들과 똑같이 보면 될 거 같은데 그게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뱉었다. 집사가 불편해하지만 않았더라면 연고를 굳이 챙길 이유도 없었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배어나는 정도로는 때리지도 않았으니까.
단지 뺨을 자주 때려서 자국이 과하게 보일 뿐이었다. 연고를 바르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어쨌든 집사가 좀 덜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 앞에 있는 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론, 쉬고 있어. 졸리면 자고. 난 조금 있다가 나가봐야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얌전한 대답을 듣고 나서 마르티안은 책상으로 발을 옮겼다. 수북한 자료들과 처리할 서류가 그녀를 반겼다.
아까 전 조사단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서 그녀는 조사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가득 들었다. 조사 결과가 영 나쁘다는 소리와 이대로 가면 자작가가 받을 지원금도 줄어들 거란 소리였다.
교수는 한탄하듯 그런 이야기를 반복했고 조사단 모두가 식사 내내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이 조사의 의뢰자는 황제 폐하와 제국이었지만 이번 조사에 대해 가장 가까이에서 평가할 귀족은 바로 그녀였으니까.
조사의 성과가 없다는 건 결국 그들이 일을 못 했다는 소리였다. 많이 일하고 열심히 한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무능함을 부각시킬 뿐이었다.
“이러다가 이번 졸업 연구생들의 취직 길도 막히게 생겼습니다.”
교수는 노골적으로 한숨을 뱉었다. 분위기가 지나치게 가라앉아서 마르티안은 후식을 빨리 내오게 했다. 후식은 과일 조림을 얹은 크림 파이였다. 교수가 흥분해서 칭찬을 시작하자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그녀는 분위기를 다독이고는 상황을 정리했다.
사실 지원금이 줄어들 거라는 건 그녀도 예상하고 있었다. 엘 도안을 통해 조사 상황이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었고, 결과물이 없는 조사에 대단한 돈이 지급되기란 어려운 법이었으니까. 그래도 마르티안은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아예 없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받는 게 나았으니까.
애초에 못 받았을 돈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사실 나쁠 건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번 조사지에 뽑히기 위해 금전적으로 노력한 것이 없었다. 투자한 게 없는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어온 셈이다.
‘아, 내 몸을 썼지.’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휴이를 끌고 다니는 게 나쁜 건 아니었지만 그 시작이 반강제적이긴 했으니까. 그때가 떠올라 기분이 영 찝찝해진다. 휴이와 방에서 만날 때는 떠오르지 않은 것들이 조금만 관계의 범위가 넓어지면 쉽게 보였다.
그녀가 휴이의 아랫도리를 가죽으로 묶고 소변조차 보지 못하게 한 채 방치한다고 해도, 그가 그녀만 기다리며 개처럼 기다린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사실이었다.
‘뭐 그래도, 달밤가에서 새로운 사람을 안 찾아도 되고 그럴듯하게 가문에 도움도 되었다고 생각하면…….’
마르티안은 그쯤에서 생각을 멈췄다. 더 생각해봐야 좋을 게 없는 일이었다. 감자만 먹어야 할 줄 알았는데 계란이라도 하나 얹을 수 있으면 된 것이다. 천박하고 하얀 개를 굴리는 즐거움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그녀가 시간을 확인한다. 백작이 안달복달을 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하다. 제법 아랫도리가 급해졌을 시간이었으니까. 마르티안은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론은 침대에 누워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옆으로 책상에 앉아있는 마르티안이 보였다. 많은 종이들이 그녀의 책상 위에 널려있었다. 한쪽에는 책이 쌓여있고 책상 아래로는 종이를 철해놓은 것들이 묵직하게 쌓였다.
그 가운데 그녀는 완전히 서류에 집중한 상태였다. 론은 그걸 알고 마음껏 그녀를 보았다. 종이에 펜촉이 스치는 소리가 가끔 울렸다.
조용한 소리는 듣기 좋다. 이곳에서 치료받기 시작한 이후로 그는 이 서걱대는 소리를 듣다가 잠든 적이 많았다. 이번에는 잠이 오지 않아 다행이다. 이곳에 누워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제게 허락된 이 공간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며 론의 미간이 굳는다. 마르티안이 또 시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벌써 세 번째였다. 그녀는 일할 때 시간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제야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난 조금 이따가 나가봐야 하니까.”
아침 시간은 원래 백작에게 가 있는 시간이다. 마르티안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론은 눈치로 그걸 알았다. 그녀가 점심에 돌아올 때면 새로 씻은 티가 났으니까.
그녀는 점심을 먹고 나면 론을 끼고 낮잠을 잤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너무 이른 새벽부터 돌아다닌 탓인지 그녀는 매번 깊게 잠들었고, 그에 반해 론은 대부분 깨어 있었다.
깊게 패인 침실용 옷 사이로, 그녀의 몸에는 붉은 자국이 자주 늘었다가 사라졌다. 론은 한 번도 그런 것들을 그녀에게 남겨본 적이 없었다. 아니, 시도할 생각조차 못 했다. 백작의 자리는 자신과 얼마나 다른 걸까. 론은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그때마다 마음은 불같이 일어났지만 그녀가 깨어나면 이내 꺼졌다. 비겁한 마음은 상대를 보고 덤볐다. 론 자신에게는 보란 듯이 일어나서 들쑤셨지만 정작 마르티안의 앞에서는 얌전하다. 잠에 취한 그녀의 손이 뺨을 쓸어주는 것으로도 금세 만족했다.
‘아, 또 보시네.’
마르티안이 다시 시간을 확인한다. 언제 나갈 건지를 가늠하는 시선이었다. 그녀는 백작을 방치 중인 게 분명했다. 그건 개를 애끓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론은 그런 것을 생각하다가 어쩐지 서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몸을 반대로 돌렸다.
침대 맡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위에 두는 유리컵이 눈에 들어왔다. 물이 가득 담겨 있는 컵은 원래 마르티안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그 물이 모두 론의 몫이 되었다. 아프던 내내 물을 안 마시려 하던 것이 저도 모르는 새에 버릇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마르티안은 새 습관을 들이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물을 마시게 했다. 이제 문제가 될 건 없었으니까. 요도 안에 상처는 거의 다 아물어서 소변을 보는 게 더 이상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약이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약 바른 뒤 두 시간만 조심하면 되었다.
론이 마르티안을 살짝 돌아본다. 서류를 보느라 집중한 얼굴이었다. 이전이라면 상상조차 못 할 일을 생각해서 심장이 먼저 떨렸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르티안의 묵인에 익숙해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몸을 일으켜 컵을 손에 쥔다. 한 번에 마시기에는 곤욕스러울 만큼 물이 많이 담기는 컵이었다. 그는 가득 담긴 물을 모두 삼켰다.
마르티안은 마지막 서류에 사인을 했다. 시간이 꽤 많이 지났다. 휴이는 인내심이 많지 않으니 분명 안달이 날 만큼 났을 것이다. 안 그래도 천박하던 몸을 정조대로 억누르자 그 몸은 더없이 민감해졌다.
뭘 해도 좆을 세우는 몸, 슬슬 뒤를 길들여도 좋을 거 같단 생각을 하며 그가 날짜를 가늠한다. 관장이나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그 방에서 하기가 좀 번거로웠다.
침실로 부르긴 해야지. 이곳에 딸린 욕실만큼 그런 것을 하기 편한 데가 없었으니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품에 챙겨두었던 연고를 다시 확인했을 때였다.
“자작님.”
부르는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론이 그녀의 앞에 다가와 섰다. 바지 끈을 쥔 손이 씻기라도 한 것처럼 물기에 젖어있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부딪쳤다가 황급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가 아까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마셨더니, 참지를, 못해서.”
그의 얼굴이 목까지 붉었다. 치료를 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확실히 낫긴 나았나 보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픈 감각이 사라질수록 조심할 일도 잊게 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녀가 가볍게 시간을 확인한다. 백작에게 가기 적당한 시간이긴 했지만 조금 지체한다고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다시 약 발라 줄 테니까 가서 자세 잡고 있어.”
마르티안이 그렇게 답한다. 치료는 그녀의 몫이었으니까. 그녀가 침실을 아예 비우는 아침을 제외하고, 론은 아직도 스스로 치료하는 걸 허락받지 못했다. 허락받은 일은 오로지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점심과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면 론은 얌전하게 아래를 씻고 나와 마르티안에게 약을 발라 달라고 부탁했다. 치료의 주도권은 언제나 그녀에게 있었다. 어떤 예외도 없다. 마르티안은 침대에 올라가는 론을 보다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론이 바지를 벗고 다리를 벌린다. 헐벗은 아래에 찬 물기가 남아 있었다. 더러운 걸 보이기 싫어하니 오줌을 싼 흔적을 없애느라 열심이었을 것이다. 결벽 같은 뒤처리가 나쁘진 않았다.
침대 위로 치료에 필요한 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몸이 나아지고 나서부터는 론은 알아서 그런 것들을 챙겼다. 그가 면봉을 그녀에게 내민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앞구멍까지, 빨리, 쑤셔 주세요.”
그녀는 픽 웃었다. 기분 전환 삼아서 바꾸게 한 말이 제법 나쁘지 않다. 마르티안은 만족한 얼굴로 면봉을 받아 들었다. 론이 자신의 성기를 쥐고 그녀가 쑤시기 편하도록 자세를 잡았다.
이전보다는 덜 긴장하는 모양새다. 확실히 아픈 게 많이 나은 모양인 거 같긴 했다. 그녀가 면봉에 소독약을 적셔 밀어 넣었다. 빙글거리며 돌려 내려가면 그때마다 론의 몸이 움찔댔다.
반쯤 밀어 넣었을 때였다. 그가 가늘게 그녀를 부른다. 멈춰달라는 소리였다. 울면서도 참던 체질이 고작 이 정도에도 애원한다. 치료할 때도 참는 게 위험할 것 같아 가르친 것이었지만, 이렇게 제어하고 나니 드러나는 것이 있었다.
그녀의 개는 눈물이 너무 많아졌다.
“왜, 또 울 거 같아?”
“흐으, 읍, 네.”
눈가가 확실히 발갛다. 마르티안은 밀어 넣은 면봉을 둥그렇게 돌렸다. 필요한 것보다 커다란 원이 느릿하게 돌아갔다. 그건 명백한 가학의 감각이었다. 그녀는 제 개의 얼굴을 감상하며 손을 움직인다. 흐, 힉, 흡. 삼키는 신음이 터져 흘렀다. 허벅지 근육이 경직되어 떨렸다.
결국 론의 눈가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녀는 기어코 원을 다 그리고 나서야 멈췄다. 멈춰주었다는 걸 겨우 눈치채고 그의 눈가로 눈물이 우수수 떨어진다. 마르티안은 그것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또 울었네. 울기 전에 말하라니까.”
“흡, 흐으……자, 잘못……했, 습니다.”
그는 잘못을 빌었다. 일부러 그녀가 이렇게 굴었다고 해도 결국 그녀의 말을 따르지 못한 건 그의 잘못이다. 잘 참고 실수가 없던 개는 그녀의 변덕 몇 번에 금세 보잘것없어졌다.
그녀가 직접 만들어낸 그 보잘것없음은 제법 예쁜 모양이다. 이대로 놀아주면 좋겠지만.
그녀가 시간을 확인했다. 휴이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내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조금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면봉을 고쳐 쥐었을 때였다.
론이 그녀의 다른 쪽 손을 잡았다. 그의 눈물을 닦아준 손이다.
“……벌주셔도, 됩니다.”
“론, 혼내는 건 나중에 한다고 했잖아.”
“그, 빨리 용서받고 싶어서…….”
그가 머뭇거리며 답한다. 이내 그가 그녀의 손을 핥기 시작했다. 정성스러운 모양새는 동시에 지나치게 그녀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마르티안은 그저 가만히 그를 보았다. 론이 그녀의 손가락을 입 안으로 삼켰다.
“용서해 달라고?”
마르티안의 손이, 갑자기 그의 혀를 꾹 눌렀다. 손가락은 그의 목 안까지 쑥 파고들었다. 으우, 컥. 론이 헛구역질을 하며 컥컥 댄다. 눈가가 다시 젖었다. 마르티안은 그의 목 안을 더 깊숙하게 쑤셨다.
“용서해 달라니, 평소에는 안 하던 소리잖아.”
론은 제 숨을 조절하며 목을 열려고 했지만, 마르티안은 그 노력을 전부 무산시켰다. 목 위쪽을 집요하게 들쑤시는 손길로 인해 목과 식도가 요동친다. 무언가 먹은 게 있었다면 전부 토했을 것이다. 신물이 울컥하며 올라왔다. 컥컥대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안 하던 짓을 할 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안 그래?”
그녀의 목소리가 여상하다. 목을 들쑤시는 걸 견디느라 그 말들이 너무 멀게 들린다. 론의 입가로 타액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몸이 반사적으로 버둥댔다. 컥, 큭, 웁, 우욱. 양 뺨이 눈물로 다 젖고 나서야 그녀의 손이 입 안에서 빠져나갔다.
헐떡거리는 숨이 터졌다. 요동치던 식도가 겨우 가라앉자 눈물이 더 흘러내렸다. 자작님, 흐으, 그의 손이 다시 그녀를 더듬어 찾을 때였다. 마르티안이 물었다.
“내가 가는 게 그렇게 싫었어?”
론의 몸이 경직된다. 그의 얼굴이 완전히 놀라 굳었다. 마르티안이 툭, 그의 뺨을 건드렸다. 눈물로 젖은 뺨은 질척거렸다.
“물까지 마셔서 약도 다 씻어나가게 만들고. 혼내 달라고 치료 중에 붙잡고. 빨리 용서받고 싶어서? 하긴, 거짓말은 아니었겠네. 벌도 받고, 용서도 받고, 내가 못 나가도록 붙잡고. 너한테는 다 좋은 일뿐이니까.”
개의 의도대로 침대 위까지 올라와 치료도 해주면서도,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른 개가 이랬다면 처음부터 눈치챘을 텐데, 론이라서. 이렇게 집어보니 대놓고 노골적이었는데도 그저 아픈 게 많이 나았다는 생각만 했다.
어린 시절 같이 자랐고 십 년을 애첩 삼아 두고 썼다. 익숙해서 편했지만 새로울 건 없는 상대였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이전 같았다면, 그는 자신의 몸과 상황을 이용해서 그녀를 붙잡는다는 걸 시도조차 못 했을 것이다. 마음이 상해하면서도 그저 참았다가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면 우는 게 전부였을 텐데. 그녀가 다정하게 대해주어 긴장이 풀린 것인지 아니면 백작을 견제하느라 바뀐 것인지 모르겠지만 론은 분명 이전과는 달라졌다.
‘주제넘긴 한데 아주 주제넘었다고 하긴 애매하고.’
마르티안은 이게 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을 속이려 드는 건 크게 혼날 일이었지만, 예쁨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경쟁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건 개가 주제를 아는 일이었다. 다리를 벌리고, 몸을 걸고, 제 요도가 쑤셔지는 걸 참아서라도 적극적으로 주인의 시선을 제게 두려고 노력하는 건.
고민하는 새에 흐느끼는 소리가 울렸다. 겁먹은 론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얼굴로 울고 있었다. 확실히 그는 치대는 게 능숙한 개는 아니었다. 그런 개들은 들켰을 때도 영악한 법이라서 이런 상황에 처해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예쁨받고 싶어 그랬다며 변명하고 실컷 혼나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론은 그런 생각을 전혀 못 했다.
“자, 잘못 했, 흐윽, 흐……흐으.”
마르티안이 그의 성기를 쥐고 면봉을 다시 밀어 넣었다. 이미 엉엉 울고 있으니 굳이 멈출 이유가 없다. 그녀는 둘레둘레 원을 그리듯 돌리고는, 연고를 바른 면봉을 바로 밀어 넣었다.
멈추지 않고 손길이 이어진다. 론의 가슴이 가파르게 들썩였다. 울음을 참느라 노력하는 거 같은데도 흐느끼는 소리가 멈추지는 않았다. 죽을 걸 앞둔 것처럼 눈물을 쏟아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 울어.”
“욱, 네, 흐으, 머, 멈출……흡.”
그녀의 손이 뺨을 문지르자 그의 몸이 흠칫 굳는다. 울음을 참지 못해 맞았던 것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탈수라도 오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녀가 한숨을 뱉었다. 그걸 오해한 모양인지 그의 손이 그녀의 옷을 움켜쥔다. 얼굴이 엉망이었다.
“흐으, 잘못, 흡, 했습니다. 쫓아내지 말아, 흐윽, 흐으, 제발, 여기에…….”
울음을 참으려다 보니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론은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매달렸다. 그건 이전과는 다른 태도였다. 전에는 그녀가 어떤 벌을 내릴지를 기다리며 벌벌 떠는 게 전부였을 텐데, 이제는 울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며 애원하고 있었다. 마르티안은 헐떡거리는 개를 두고 답했다.
“쫓아내진 않을 거야.”
그 말에 론의 얼굴이 확연하게 바뀐다. 안도한 탓인지 흐느낌이 커졌다. 우느라 정신이 없다. 마르티안이 가볍게 그의 뺨을 때렸다. 서너 대 정도 반복되자 눈물로 흐려졌던 초점이 돌아온다.
“다리 벌려서 예쁨받는 게 원래 네 주제니까.”
“흐으, 흡, 네.”
“열심히 한 노력으로 봐줄게. 속내를 감춘 건 혼나야겠지만.”
예쁨받기 위해서 라고는 해도 잘못은 잘못이다. 들킨 것을 벌하지 않고 넘어가면 버릇이 나빠지기 마련이다.
“네, 자작님. 무슨 벌이든, 받겠습니다.”
론은 겨우 울음을 그치고는 그렇게 답한다. 순간 침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울렸다. 자작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밖 목소리는 늙은 집사의 것이다. 들어오라고 대답하자 집사가 급하게 들어와 재빠르게 침실 문을 닫았다. 이 안의 상황을 숨기기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그가 침대 위의 론을 한 번 보고, 곤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작님, 백작님이 찾아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