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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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 자작가로 수도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졌다는 의상 제작자가 드나든 지 보름째다. 그동안 마르티안이 의상 제작자를 본 것은 옷의 본을 뜨기 위해 치수를 재고 가봉을 하기 위해 마주친 것이 전부였다. 가봉 당시 가져온 옷의 원단이 상당히 고급품이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으나 어차피 정해진 예산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니 집사가 어련히 잘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오늘, 마르티안은 자신 앞에 놓인 옷을 보며 당황했다. 새롭게 맞춘 옷이 예상보다 훨씬 고급품이었기 때문이다.

레이스를 아낌없이 사용한 공단 블라우스 두 벌과, 짙은 색 원단으로 만든 정장이었다. 정장은 검은 레이스를 덧대어 가벼운 자수로 마무리했다. 사용한 단추는 모두 원석들이었다. 새로 주문한 구두에는 섬세하게 주조한 금장식이 달려있었다.

집사는 그것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오래된 옷들도 수선을 맡겼습니다. 수도의 유행에 맞춰 수선을 해준다고 하니 한 달 뒤에는 새로운 옷들을 여러 벌 받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집사, 어디서 돈이 열리는 나무라도 발견했어? 아니면 금광이라도 나왔다던가?”

그녀가 새 옷을 제작하는 데 허락한 예산은 그렇게 대단한 금액이 아니었다. 집사가 너무 낙심하기에 조금 돈을 더 늘리긴 했지만 그래 보았자 거기서 거기인 돈이었다. 이 옷들은 그녀가 허락한 예산 내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

“……자작님, 사실은 엘 도련님이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제국교육원에서 마지막 학기 장학금이 나왔다고요.”

“장학금?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교육비는 이미 냈잖아?”

작위를 물려받지 못하는 귀족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녀의 남동생인 엘 도안도 제국교육원에서 입학했다. 보장된 커리큘럼과 교육원으로 몰려드는 인맥으로 인해 그곳을 졸업하고 나면 어떻게든 먹고살 방도가 열리기 때문이다. 가문에 빌붙지 않고 자립하기 위해선 제국교육원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물론 모든 합리에는 돈이 깔려 있는 법이라 제국교육원 일 년 수업료는 매우 비쌌다. 거기에 수도에서 생활하는 생활비는 따로 필요하니 마르티안은 동생의 교육을 위해 일 년 예산의 오분의 일을 그곳에 할당하고는 했다. 집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장학금을 그대로 보내셨습니다. 필요한 데 쓰였으면 좋겠다고 하셨구요.”

마르티안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엘 도안이 돌려보낸 돈을 집사가 허락도 없이 쓴 셈이었으니까.

“하아, 집사. 지금 내가 내 동생의 뛰어남을 기뻐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집사의 월권에 화를 내야 하는 거야?”

“제 잘못입니다, 자작님.”

집사는 허리를 숙였다. 이것이 월권행위이자 처벌 사안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르티안의 옷에 그 돈을 썼다.

허락을 구했다면 당연히 거절당했으리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는 이런 옷을 가질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는 각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월권행위에 맞는 책임을 지겠습니다. 자작님.”

마르티안은 제 앞에 놓인 옷들을 보았다. 그녀의 외모를 돋보이게 할 색으로 조합한 옷은 하나같이 섬세하고 고급스러웠다. 결혼식 때 입는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이런 옷을 맞출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늙은 집사의 월권행위는 결국 그녀를 위한 것이다. 그녀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지나쳤을 뿐. 그걸 두고 굳이 화를 내거나 처벌하고 싶진 않았다. 그는 그녀의 부모보다 더 오래 그녀를 돌본 사람이었으니까. 마르티안이 입을 열었다.

“오늘 하루 정도는 자숙하도록 해. 월권은 월권이니까.”

집사가 당황한 얼굴로 ‘예?’라고 되물었다. 고작 하루의 자숙이라니 가문의 예산을 함부로 집행한 대가라기엔 지나치게 관대한 처사였다. 마르티안이 피식 웃었다.

“나 몰래 돈을 가져다 쓰느라고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 아냐. 하루는 좀 쉬어. 이후에는 일하는 데 힘쓰고. 솔직히, 집사가 없으면 나 혼자서 가문을 어떻게 운영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새 옷을 턱짓했다.

“이 옷들은 잘 입을게. 고마워, 집사.”

* * *

삼사십 년 전만 해도 제국 동남부의 국경지는 치안이 엉망이었다. 동부 산맥의 끝자락에 이방민족들이 숨어 살면서 시시때때로 내려와 도적질이나 약탈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제국에서는 의도적으로 그런 상황을 방치했는데 그 도적질과 약탈에 가장 취약한 상대가 제국 근처의 약소국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은 주변 국가들이 직접 제국에 도움을 청하길 기다렸다.

문제는 동남부의 국경지도 그런 약탈과 도적질에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었다. 국경지를 관리하는 귀족들은 제국에 여러 번 지원을 요청했지만 그 요청은 늘 기다리라는 말로 묵살당했다.

이 와중에 세반 영지를 맡고 있던 백작이 약탈을 나온 이방민들을 상대하다가 사망했고 그 이후로 땅의 주인은 공석이 되었다.

젊은 백작은 아직 결혼하지 않아 자식이 없었고 선대 백작 부부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니까. 작위를 이어받을 만한 사람도 없었다. 친족들 중 누구도 그 땅을 가지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방민이 들쑤시는 국경지는 제국의 지원 없이는 버티기 어려웠으니까.

그렇게 방치된 땅을 제국이 직접 환수한 게 십오 년 전이었다. 그 주변 소국과 연합국들이 드디어 제국에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조공을 더 올리는 조건으로 제국은 세반 영지를 환수해 제국령으로 만든 뒤 그곳에 제국군을 파견했다. 군대가 동원되자 동부 산맥의 이방민들은 금세 소탕되었다. 세반 영지는 동부에 있는 유일한 제국령이었다.

제국군이 주둔하자 사람들은 안심하며 국경지를 오가기 시작했다. 무역을 하는 상인들은 세반을 중심으로 드나들었고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영지민들이 늘어났다. 이제 세반은 제 몫의 수익을 올리는 영지다운 영지로 탈바꿈했다.

앞으로 더더욱 금싸라기가 될 땅을, 황제는 자신의 충실한 우호세력인 세블로아드 공작가에게 넘겨준 것이다.

‘이유야, 도시의 수도시설을 획기적으로 바꾼 공이라고 하지만…….’

마르티안은 기본적인 정보들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남의 일을 구경하는 마음으로 세반 백작가 만찬장을 둘러보았다.

벽과 천장은 섬세한 그림과 조각들로 꾸며져 있었고 거대한 샹들리에가 스무 개도 넘게 달려있었다. 연주자들은 끊임없이 연주를 하며 부드럽고 경쾌한 분위기를 채웠고 잘 교육받은 하인들은 손님들의 손이 비어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잔과 음식들을 날랐다.

넓은 홀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동부 영지의 귀족들과 세블로아드 공작가의 인맥들이었는데 두 부류의 손님들은 차이도 뚜렷했다. 여유가 넘치는 공작가 인맥들에 비해서 동부의 귀족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새 인맥을 만들고자 정신이 없었으니까.

물론 일 순위로 친해져야 하는 상대는 이 저택의 주인인 휴이 세블로아드였다. 사람들은 대다수 그의 주변에 몰려있었다.

“백작님이 세반 영지를 맡게 되니 마음이 참 든든합니다. 국경을 지키는 일은 여러모로 불안하기 마련이라, 황제 폐하께서 언제쯤 이곳에 적임자를 보내주실까 싶었습니다.”

“몇 년 전에 제국교육원에서 수석 졸업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폐하께서 적임자를 알아보시고 이렇게 백작님을 이곳에 보낸 것 아니겠습니까? 이곳이 발전할 생각을 하니 제가 다 마음이 좋습니다.”

“과찬이야. 동부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하니 조만간 도움받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군.”

“어휴, 얼마든지 돕지요. 백작님을 돕는 것 자체가 영광입니다.”

떠받드느라 정신이 없는 쪽은 모두 이곳의 귀족들이다. 마르티안은 멀찍이 서서 그것들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백작에게 한마디라도 더 붙여보고자 난리인 저 무리에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데려온 론을 툭 치며 말했다.

“적당히 있다가 나가자. 집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영 시간 낭비인 것 같으니까.”

그녀는 대단한 야망을 가진 적이 없다. 바라는 것이란 자신의 영지를 무탈하게 잘 꾸려나가는 정도였고 그건 그녀의 노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평범한 가정을 꾸려 다음 후계를 길러내는 것이 조금 난관이긴 했지만, 어차피 그건 이 백작가 만찬장에서 오래 버틴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여기에 참여한 건 그녀에겐 그저 지루한 의무였다.

그녀는 참석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공작가 인맥이 분명한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돈이 좋고 권력이 좋긴 한 모양이네.”

그녀가 중얼거린다. 이곳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놈들을 골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촌구석은 촌구석이었던 것이다. 수도 출신이 분명한 남자들은 하나같이 키가 크고 몸이 군더더기가 없었다. 피부 역시 매끈하고 머릿결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귀하게 자란 품종견들을 보는 것만 같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남자는, 휴이 세블로아드였다. 타고나길 주목받은 사람으로 타고난 것처럼 그의 외모는 몹시도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금발의 머리카락은 꿀처럼 진했고 피부는 희고 깨끗했으며 이목구비는 섬세하고 선명했다. 게다가 옷의 굴곡을 보았을 때 그 안에 감춰진 몸 역시 무척이나 잘 짜여 있을 게 분명했다.

마르티안은 자신도 모르게 ‘도안 가문을 날려버릴’ 상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여러모로 제 취향인 외모였지만 그와 엮이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 함부로 집어 먹었다가는 크게 탈이 날 음식이다.

‘맛있는 거나 먹자.’

마르티안은 쓸데없는 생각을 그만두고 자신이 즐길 만한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만찬 음식들은 종류도 상당히 많았고, 모두 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써서 만든 티가 났다.

갖은양념이 배어든 고기와 신선하고 상큼한 야채들, 풍미 좋은 버터와 치즈가 듬뿍 들어간 빵. 하나하나 맛을 보며 즐기고 있자 점차 기분이 좋아진다. 오가는 시간을 들여 이곳까지 온 게 조금은 덜 아까울 것 같았다.

“론, 너도 한 잔 마셔.”

그녀가 와인을 건네자 론이 머뭇거리는 태도 없이 바로 받아 마셨다. 한 번 방치를 한 덕분인지, 그는 마르티안이 하는 말이라면 급하게 움직였다. 그건 그녀가 원했던 방향과는 다른 결과이긴 했다. 더 복종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었으니까.

“재미없기는.”

론의 잔을 빼앗으며 그녀가 작게 말했다.

“윗옷 벗어봐.”

그 말에 론의 눈이 불쌍하리만큼 흔들렸다. 그는 공개적인 곳에서 이런 식으로 노출하는 걸 힘겨워했다. 이전 같으면 한번은 그녀를 부르며 애원했을 텐데 지금은 잔뜩 긴장한 채 재킷부터 벗었다.

마르티안은 론에게 뺏은 것을 자신이 마시며 구경하듯 한발 물러섰다.

론이 안에 입은 건 짙푸른 색의 셔츠였다. 어두운 피부에 잘 어울리는 색이었지만 얇은 재질이라 그의 체형이 그대로 드러났다.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자 조금씩 벌어지는 옷 사이로 맨살이 조금씩 드러났다.

유두에 매달아 놓은 고리와 사슬이 언뜻 비친다. 사람들의 시선이 슬쩍 닿았다가 애매하게 멀어졌다.

마르티안은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는 애매하게 벌어진 셔츠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고리가 꿰어진 살덩이가 아직 말랑하다. 그것을 잡아 비틀자 론이 잔뜩 경직된 채 멈춘다.

“뭐 해, 끝까지 벗어야지.”

더없이 즐거워진 마음으로 그녀가 속삭인다. 다시 손이 움직이며 단추를 풀어낸다. 손끝이 벌벌 떨려서 몇 번 미끄러졌다.

마르티안이 순간 론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손은 긴장으로 차갑게 식어있었다. 론은 그녀가 자신의 지지부진한 태도에 화가 나서 멈추게 했다고 여겼는지, 잔뜩 겁을 먹었다.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제가 긴장해서…….”

내뱉는 말이 형편없이 흔들린다. 마르티안이 가볍게 웃었다. 견디기 힘든 것을 견디느라 잔뜩 질린 모습이 그녀를 흥분하게 만들었으니까. 그건 더없이 예쁘고 야한 꼴이었다.

실컷 울리고 두 뺨 가득히 젖게 만들고 싶다. 교육 후의 론은 마르티안의 뜻대로 바뀐 건 아니었으나 자주 겁을 먹어서 그녀를 즐겁게 했다.

마르티안은 론이 먼저 발정이 나서 옷을 벗었다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말을 뱉었다.

“론,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도 아무 데서나 이러면 안 되지. 이만 들어 갈까?”

그녀가 론에게 겉옷을 다시 둘러주자 론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녀를 보았다. 눈치 없기는.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론의 뺨을 가볍게 토닥댔다.

“그만 돌아가서 쉬자.”

공식적인 만찬장에서는 론을 완전히 벗길 순 없는 법이었으니까. 적당한 희롱이면 다들 그냥 넘기겠지만 그녀가 지금 하고 싶은 건 고작 희롱이 아니었다. 그녀가 론을 끌고 홀에서 벗어나려 했을 때였다. 집사 복장을 한 누군가가 급하게 그녀를 붙잡았다.

“도안 자작님 되십니까?”

“맞긴 한데……. 무슨 일이지?”

“백작님께서 자작님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예, 자작님. 중요한 사안이니 반드시 와주시길 바란다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마르티안이 미간을 구긴다. 막 달아오른 참에 방해받아서이기도 했지만, 일면식도 없는 백작이 자신을 찾는다는 것이 영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무슨 용무가 있다면 홀에서도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따로 보자고 하는 것도 미묘하다.

하지만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애초에 만찬이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아무도 관심 없을 때 조용히 빠져나가는 것까지야 상관없지만, 만찬의 주인이 따로 청하는 데 이대로 무시하고 나가는 건 큰 실례였다.

“알겠으니까, 안내해.”

* * *

대부분의 저택은 저층에 접객실과 연회용 홀을 마련한다. 그에 반해 저택의 상층부는 저택 소유주를 위한 사적인 공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보통 저택에 초대받아 3층 이상을 올라간다는 건 저택의 주인과 꽤 돈독한 사이라는 증거였다.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 거지?”

“백작님께서 개인실에 마련된 내부 응접실로 안내하라 하셨습니다.”

마르티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개인실이라고 하면 백작의 개인실을 뜻하는 것이다. 그 안의 응접실에 초대받는다는 건 아주 절친한 사이라는 뜻이거나 저택의 주인이 초대한 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는 표현이다. 마르티안은 백작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으니 이건 분명 후자인 뜻이었다.

“중요하고 긴밀한 이야기이니 불편하시더라도 양해를 구한다고 하셨습니다.”

집사가 거듭 사과하며 고개를 숙인다. 지극히 예의 바른 태도였으나 사실상 작정하고 부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그녀는 다시 집사의 뒤를 따랐다.

대체 뭘까. 마르티안은 제 기억을 빠르게 들춰보았으나 공작가의 장남과 얽힐 만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도안 영지에서 나고 자란 그녀 아닌가. 수도에 방문한 횟수가 태어나 지금까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

‘혹시 엘, 그 녀석과 관련된 걸까.’

휴이 세블로아드도 제국 교육원 출신이다. 공작가의 후계자이면서 제국 교육원을 수료한 드문 경우였다. 도심의 수도시설을 바꾸는 것도 그 안에서 연구하고 발표했던 과제 중 하나였다고 들었다.

이제야 겨우 졸업반에 들어선 엘 도안이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난 휴이 세블로아드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시기상으로 제국 교육원에 함께 있었던 때가 겹치긴 했다. 물론 그의 남동생은 교육원에 다니는 내내 공작가 후계자에 대해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긴 했지만.

집사는 그녀를 최상층의 가장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개인실은 저택 주인의 지위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입구부터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문은, 창조신화를 표현한 예술품이었다. 수백여 동물과 식물이 문의 가장자리를 둘러 빽빽하게 새겨져 있고 중앙에는 신의 음성을 받아드는 열두 명의 사제가 표현되어 있다. 지나가다 보았다면 문이 아니라 그저 벽의 장식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곳을 지나며 마르티안은 자신이 입고 온 옷이 구식 정장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새로 갖춰 입은 옷은, 공작가의 자제에게 불쌍하게 보일 만한 차림새는 아니었으니까.

안으로 들어오자 넓은 응접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놓인 가구들은 하나같이 섬세하고 우아한 선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소품까지 그 자리에 딱 맞춰 어울리는 것들로만 꾸며져 있다.

편집증처럼 설계된 방, 그건 그 자체로 압도적인 부를 상징했다. 마르티안은 잠시 속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주인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휴이 세블로아드, 들어오는 입구가 여럿인지 그는 응접실의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아까 홀에서 보았던 화려한 옷들을 그대로 입은 상태였다.

“반갑군, 도안 자작.”

그가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마주 잡아 악수하면서도, 마르티안은 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안다는 것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대체 무슨 일로 부른 걸까. 궁금한 건 그뿐이었으나 상대는 본론부터 대놓고 말하는 걸 싫어할 만한 고위 귀족이었다. 형식적인 안부를 나누며 그녀는 백작의 손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길고 매끈한 손은 상처 하나 없었다.

“걸친 것들이 불편해서 그런데, 잠시 시간을 주겠나?”

손가락에 있는 장신구들을 하나하나 빼내며 그가 묻는다. 마르티안이 멈칫하고 그 손에서 시선을 떼자 그가 눈을 마주쳐온다. 빙긋 웃는 모습이 마치 유혹 같아서 마르티안은 저도 모르게 떨떠름히 웃었다.

마르티안은 적당하게 살고 싶었다. 적당하고 무탈하게 사는 소소한 삶. 그러기 위해 골머리를 썩여가며 서류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티안은 제 앞에 있는 상대가, 그녀의 꿈을 단번에 박살내고도 남을 만한 사람임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일부러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그녀가 자신을 안내한 집사에게 말했다.

“차를 한 잔 마셨으면 좋겠는데?”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피곤을 깨워줄 만한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준비해오겠습니다.”

집사는 그녀를 소파로 안내하고는 물러났다. 자리는 고개를 들면 휴이 세블로아드가 보이는 자리였다. 아니, 어디에 앉아있든 그렇긴 했을 것이다. 그는 응접실 한복판에서 시중을 받으며 복잡하게 껴입은 옷가지를 벗고 있었으니까.

마르티안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여러모로 기분이 좋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백작이 보내오는 미묘한 관심이 아주 껄끄러웠다.

“론, 이리 와.”

그녀가 부르자 소파 뒤에 서 있던 론이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무릎 꿇고 손 보여. 그가 얌전히 말에 따랐다. 가지런히 내민 손은 매끈하고 예쁜 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손톱 부분에 물어뜯은 자국이 있었다.

물어뜯는 버릇은 초조해지면 재발하는 습관이다. 그녀의 시선에 거기에 닿아있다는 걸 알고 론의 손끝이 주춤 말렸다.

“오늘, 많이 울어야겠다.”

학대를 예고하는 말이 부드러웠다. 론은 잔뜩 긴장한 채 죄송하단 말을 했다. 마르티안은 그를 내려 보며 그 뺨과 머리카락을 가볍게 만졌다. 잔뜩 긴장한 모양이 역시나 예쁘긴 했다. 목석처럼 구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꼴이다. 이래서 개들에겐 너무 신뢰를 주면 안 된다고 하는 걸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부러 과장되게 론의 뺨과 목덜미를 매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이가 그녀의 앞에 마주 앉았다.

“내가 자작을 지루하게 했군.”

“아닙니다, 백작님.”

마르티안은 가볍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까닥 움직여서 론에게 제자리로 돌아가란 신호를 보냈다. 론은 얌전하게 몸을 일으켜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백작은 잠시 그녀와 론을 보더니 이내 말했다.

“……그냥 하인이 아닌 모양이지?”

뻔한 질문에 마르티안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미남이었던 아버지를 닮은 탓에 마르티안 역시 화려한 미인이었고 그녀의 겉모습에 호감을 품고 접근하는 남자들은 흔했다. 수도에 올라가 이런저런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그래서 귀찮았다. 피곤한 일이 매번 벌어져서.

단지 이상한 건 그녀가 휴이와 마주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만찬장에서는 적당히 떨어진 상태에서 얼굴이나 확인한 정도였으니까. 그는 유일한 주인공이었으니 그녀는 그를 확인하기 쉬웠지만, 그녀는 수많은 손님 중 하나일 뿐이었다. 어떻게 알고 자신을 따로 부른 건지 알 수 없었다.

‘귀찮기는…….’

그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거절할 일이었으니까. 침대 위 파트너를 구하는 일에서는 다 각자의 취향이 있기 마련이었고 백작의 취향은 그녀와는 영 다를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말했다.

“주로 침대에서 제 시중을 들어주니 애첩이라고 해야 맞겠죠.”

마르티안의 외모를 보고 다가왔던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고 나면 일차적으로 떨어져 나간다. 이방인을 애첩으로 두는 여자란 것에 기겁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녀 역시 ‘개’가 아닌 남자랑 뭘 할 마음은 없으니 론을 달고 다니는 건 꽤 좋은 방법이었다.

물론 그녀의 성 취향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론을 데리고 다니는 걸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일부는 한층 더 그녀를 우습게 만드는 소문을 냈다. 일반 애첩들이 그녀를 못 견디고 도망가서 성노예로 쓰기 편한 상대를 곁에 두는 거라고.

‘내 곁에서 쫓겨 난 것들이 꼭 그런 소리를 하지.’

지겹게 매달리던 상대들은 그런 식의 소문에 더 집착하고 열광했다. 그중에는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그녀의 옆자리를 다시 차지하려고 수를 쓰는 이들도 많았다. 이중적인 태도는 우습고 한심할 따름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그녀에게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진 못했으니까. 그녀가 고른 이들이 모두 그녀보다 지위가 낮았다.

작위 없이 가문에 빌붙은 귀족들, 상인 가문에서 태어난 돈이 많은 평민, 혹은 남창. 그녀보다 지위가 낮고, 그렇기에 그녀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범주의 남자들을 만날 것. 그게 그녀가 제 성적 취향을 위해 스스로 지키는 유일한 선이었다.

그런 면에서 눈앞의 남자는 최악이다. 마르티안은 그가 제게 가진 관심이 뚝 떨어지길 빌었다. 휴이가 눈썹을 구기며 소파에 등을 기댄다.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마르티안은 내심 반기며 일부러 말을 덧붙였다.

“이래 보여도 침대 위에선 충분히 예쁘거든요.”

순간 그 말에 놀란 론이 기침을 내뱉었다. 하여튼 눈치 없는 개. 마르티안은 오늘 밤 론에게 줄 벌을 더 추가하며 마주 앉은 백작의 표정을 살폈다. 보통은 그녀의 말을 듣고 나면 영 질린 표정이 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 정도에서 떨어져 나가주면 가장 좋았다.

그러나 휴이는 한참을 침묵하며 그녀의 개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늠하고 품평하는 눈길이 이어졌다. 이내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자 역시, 그대의 개인가?”

마르티안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개’라니, 그녀는 백작 앞에서 자신의 성적 취향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단순히 그녀의 애첩을 비하하기 위해 말한 단어라고 하기엔 ‘저자 역시’라고 하지 않았나.

물론 그녀는 자신의 성적 취향을 구태여 숨기려 하진 않아서 그녀의 소문이야 찾으면 쉽게 나오긴 했다. 하지만 이 대단한 지위의 백작님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소문을 굳이 찾아볼 이유가 없다. 마르티안은 느낌이 영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백작을 보았다.

그녀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것처럼 그가 말했다.

“이곳에 온 후에 유명하다던 창관에 갔었어. 이런 곳에 있는 창관치고는 규모가 크고 나쁘지 않더군.”

마르티안은 미간을 구겼다. 그가 말하는 창관은 달밤가였다.

‘관리자가 또 나를 판 모양이지.’

이 정도의 거물을 응대하는 일이니 관리자가 밀착으로 붙었을 것이다. 입이 싼 관리자는 돈만 주면 뭐든지 해주는 인물이었다. 백작에게 뭔가를 흘렸으니 이런 소리를 하는 거겠지.

“백작님,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가 들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문은 원래 의미 없이 과장되거나 곡해되기 마련이죠. 그러니까…….”

“전혀 기억을 못하는 모양이야.”

그가 짧게 대꾸했다. 조금은 실망한 얼굴이었다. 마르티안은 그제야 불현듯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의 몸이 어쩐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얇은 셔츠에 바지만 입고 있는 탓에 탄탄한 몸 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만찬장에서 상상했던 것처럼 그의 몸은 그녀가 좋아할 법한 그런 몸이었다.

마르티안이 가만히 있자 휴이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잠시 긴장했다. 뭐하는 거지. 이내 그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래도, 모르겠나?”

화려한 금발과 꾸준히 관리받은 게 분명한 흰 피부, 잘 짜인 몸. 마르티안은 그제야 자신의 기시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깨달았다. 매질 자국으로 엉망이 되어 울었던 하얀 개. 그 개는 자신의 이름을 ‘휴’라고 했다. 그리고 제 앞에 무릎을 꿇은 백작의 이름은 ‘휴이 세블로아드’였다.

‘제기랄!’

마르티안은 속으로 욕을 뱉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미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은 것이다. 그녀는 급하게 입을 열었다.

“백작님, 그날은…….”

“이제야 기억이 나는 모양이지?”

휴이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뺨 위에 올린다. 의도가 분명한 행동이었다. 그날 그녀가 얼마나 그를 몰아쳤는가. 얼굴선이 뭉개질 만큼 뺨을 후려치고 온갖 굴욕적인 말을 뱉어내게 만들었다. 밤새 정신없이 몰아붙여지면서 개는 울며 발기하고 사정했다.

그녀는 곤란하단 얼굴로 답했다.

“그때에는 백작님인 줄 몰랐으니까요.”

“그게 무슨 상관이지?”

“공작가의 자제분을 함부로 대할 순 없죠.”

“내가 원해. 그렇다면 된 거 아닌가?”

그는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보았다. 자신이 원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태도였다. 마르티안은 울컥 올라오는 화를 애써 눌렀다. 그날 밤에도 그는 자기중심적이고 제 욕망만 우선하는 개였으니까.

“안타깝게도 제가 문제네요. 더는 백작님을 짓밟을 자신이 없으니까요.”

마르티안은 그의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을 빼냈다. 한번은 실수했지만 두 번 실수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녀가 당장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내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라도 있나?”

그가 그녀를 붙잡으며 끈질기게 물었다. 사실, 그는 외적인 것만으로는 어느 하나 부족할 게 없는, 그야말로 마르티안의 취향이었다.

버르장머리 없고 자기중심적인 것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고치게끔 하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물론 그런 것을 따지지 않더라도, 이 대단한 지위의 사람이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것을 두고 대단한 기회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티안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그녀는 성향이 분명한 ‘주인’이었고 제 성향대로 그를 대하며 ‘개’처럼 학대하기에는 여러모로 뒷일이 귀찮아질 것만 같았다. 그의 지위를 무시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지위를 무시하고 원래 하던 대로 굴릴 것이 뻔해서.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제가 소심한 탓이라고 여기세요. 달밤가에서 ‘주인’을 사서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요. 거기엔 능숙한 애들이 많아서…….”

“하지만 나는, 그대가 더 좋았어. 훨씬 더 흥분이 되기도 했고…….”

그가 조금 얼굴을 붉힌 채로 말을 뱉었다. 나름의 칭찬이라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마르티안 입장에서는 창녀 취급이나 다를 바 없는 소리였다. 대체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걸까. 그녀는 가까스로 화를 눌렀다.

“저는,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백작님.”

“……하지만 그대도 즐겼지 않나? 그날 나를 괴롭히면서 즐거워 했던 거로 기억하고 있는데…….”

도돌이표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마르티안은 쥐었던 주먹을 몇 번 더 꾹꾹 눌러 쥐었다. 이미 거절을 했는데도 그는 자꾸 설득하려 들었다. 애초에 상대가 가질 부담감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태도였다.

마르티안은 끙끙대는 개새끼처럼 자신의 앞에 주저앉아 있는 백작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지위나 위치, 모든 것을 무시하고 플레이를 할 수 있긴 했다. 아니 분명 그렇게 하게 될 것이다. 마르티안은 개를 대할 때면 늘 가차 없고 가혹한 주인이었으니까. 차오르는 흥분은 그녀를 더욱 가학적으로 만들었다.

‘분명 나중에 문제가 될 거야. 어영부영 시작했다가는…….’

이것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얽히는 관계였다. 마르티안은 개를 오래 곁에 두는 타입이 아니었고 그래서 관계를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조금씩 문제가 생기곤 했다. 그건 여러모로 지겹고 귀찮은 일이었다. 물론 그게 큰 문제로 발전하는 경우는 없었다.

울며불며 그녀를 찾아오던가 혹은 주위를 뱅뱅 맴돌거나 했지만 무시하거나 쫓아내면 이내 포기했으니까. 어차피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포기 말고는 없었다. 그녀보다 지위가 낮은 상대가 그녀의 삶에 개입하긴 불가능했으니까.

“백작님이 백작님인 걸 몰랐으니까요. 그러니 본인 욕구가 정말 중요하시면 창녀를 사세요.”

고작 침대 위 취향 때문에 인생이 꼬이게 되는 위기는 사양이다. 그녀는 의례적인 미소조차 지워버렸다. 하지만 그는 직구로 내민 거절에도 물러서려 들지 않았다.

“기회라도 줄 수 없나? 그대의 개로, 짧게라도 있고 싶은데.”

마르티안이 짧게 한숨을 뱉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자기주장을 해대는 것 자체가 ‘주인’과 ‘개’ 사이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상대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복종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제 취향에 맞는 행위들을 즐기고 싶은 것뿐이었다.

“정말로, 제 개가 되고 싶으시다는 건가요?”

“그래. 그때 나는 정말로…….”

“론, 이리와.”

그녀는 론에게 손짓했다. 갑작스런 부름에 론이 당황한 얼굴로 머뭇댔다. 마르티안은 그대로 휴이의 앞을 지나쳐 론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론의 입술이 긴장으로 꽉 맞물렸다. 말보다 손이 앞서는 건 그녀의 기분이 몹시 나쁘다는 뜻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는 두 번 실수하지 않은 채 순종적으로 꿇어앉았다.

“눈치 있게 굴어야지. 벗어.”

“자작님, 여기서는…….”

“자작님?”

그녀가 그대로 론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하는 소리가 험악하게 났다.

“눈치 있게 굴라고 했는데? 호칭 똑바로 해.”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벗어.”

론이 제 옷을 벗는 동안 마르티안이 몸을 돌려 휴이를 보았다. 그는 잔뜩 미간을 찡그린 채 둘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가볍게 웃었다. 그가 개가 되고 싶다고 달라붙는 게 짜증스럽다. 자기의 욕망만을 좇아 움직이는 개는 그 자체로 최악이었다. 그녀는 휴이에게 말했다.

“제 개가 되고 싶으시면 얌전하게 기다리는 것부터 배우세요. 주제답게 굴지 못하는 개를 거두는 주인은 없는 법이니까요.”

론은 완전히 벌거벗겨졌다. 마르티안은 그를 뒷짐을 진 채로 일어서게 했다. 보란 듯이 전시된 몸이 수치로 인해 떤다. 론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닥만을 보았다. 앞을 가리고 싶어 손이 움찔 떨린다. 그녀에게 당하는 수치야 익숙했지만 이 공간에 있는 건 마르티안만이 아니었다.

“남들에게 보이는 걸 질색하더니 이건 뭐야. 응?”

그의 유두를 손끝으로 꾹꾹 찌르며 그녀가 웃는다. 그때마다 유두에 걸려있는 고리가 움직이며, 이어진 사슬에서 소리가 났다.

“이렇게 젖꼭지를 바짝 세우고.”

“흐읏, 읏…….”

마르티안이 그의 유두를 비튼다. 가볍게 긁고 비틀자 금세 자극이 일었다. 마르티안은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유두를 손끝으로 짓뭉개다가, 유두를 연결하는 사슬에 손가락을 걸었다.

“무릎 꿇어.”

그녀가 명령한다. 유두를 연결하고 있는 사슬이 아직 그녀에 손에 걸려있는 채였다. 론은 그것을 보며 엉거주춤 몸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내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유두를 잡아당겼다. 몸을 완전히 내리면 살이 찢어지고 말 것이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선을 오가며 론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개가, 말을 안 듣네.”

마르티안은 사슬을 걸고 있는 손을 유지한 채로 품에서 회초리를 꺼냈다. 오십 센티가 조금 넘는 길이의 회초리는 귀족들이 들고 다니며 직속 하인들을 벌할 때 사용하는 종류였다. 보통의 회초리와는 달리 끝으로 가서 둥글고 넓적한 가죽이 달려있는데 그 안에 단단한 심이 박혀 있어 통증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휙, 소리와 함께 론의 허벅지 안쪽으로 매가 떨어졌다.

“론, 꿇어앉아.”

질책하는 목소리가 차갑다. 론이 제 몸을 더 내리려 들었으나 자세가 더욱 엉거주춤해질 뿐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리로 인해 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짜악, 소리와 함께 다시 매질이 떨어진다. 순식간에 석 대가 후려갈겨졌다.

론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맞기만 하자 그녀가 회초리 끝으로 론의 성기를 들어 올렸다. 다음 매질이 어디를 향할지를 예고하는 것이다.

“개답게 굴어야지. 머리 굴리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그녀가 말한다. 론은 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몸을 조금 더 내리자 심한 통증이 올라온다. 마르티안이 원하는 건 그 이상이었다. 그가 이를 악물고 제 몸을 확 내린 순간 그녀가 사슬을 놓았다. 걸려있던 힘이 사라진 탓에 론이 비틀거리며 엎어졌다. 긴장이 풀린 몸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말 들어야지.”

그녀가 엎어진 론의 등을 구둣발로 꾹 눌렀다. 답답하고 짜증스러울 때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론은 예쁜 개였다. 유두가 찢어질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명령에 따랐으니까. 복종심만큼은 진짜 개와 닮았다. 그녀는 론의 날개뼈 사이를 발로 누른 채, 등에 몇 차례 더 매질을 가했다.

“흐윽…….”

이내 그녀의 매가 엉덩이를 내리쳤다. 멍 얼룩이 조금 남아있는 곳으로 다시 자국이 그어졌다.

“론, 왜 맞는지는 알아?”

타악,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등 한복판에 매질이 떨어졌다. 회초리 끝을 맞추어 때리면 가죽 심지 때문에 주먹으로 내리치는 것처럼 아팠다. 통증을 견디느라 론이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마르티안은 누르고 있던 발을 내리고는 그의 머리채를 쥐어 상체를 들게 했다.

“물어보면 답을 해야지.”

“흐으, 흡, 빨리 따르지 못해서…….”

마르티안은 다시 론의 가슴에 달린 사슬에 손을 걸었다. 흐읍, 긴장한 신음이 흘러나온다. 그녀는 사슬을 쥐어 그를 끌었다. 휴이 쪽으로 걸어가자 무릎걸음으로 끌려오던 론이 어느 순간 버티어 섰다. 그를 누구의 앞에 전시하려는지 깨달은 것이다.

그가 멈추고 마르티안이 잡아당기자 벌겋게 부어오른 유두가 한계까지 늘어난다. 제 살이 찢어지는 것을 직감하며 론이 눈을 감았을 때였다. 그녀가 사슬을 놓았다.

“교육이 제법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네.”

그녀가 그렇게 중얼대고는 론의 뺨을 토닥인다. 툭툭 두들기는 손이 금세 강도가 올라간다. 이젠 친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강도를 올려 사람을 긴장시키는 손찌검은, 그녀가 기분이 나쁠 때면 나오는 손버릇이었다. 론이 이를 즈려 물었다. 짜악, 소리와 함께, 몸이 흔들릴 정도로 세게 뺨을 후려 맞았다.

“오늘 얼마나 맞고 싶어서 이래?”

그 말에 론이 눈을 뜨고는 그녀의 눈치를 본다. 동시에 그의 시선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휴이를 힐끔대고 있었다. 이 공간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게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고집을 부리며 버티는 것도 그런 것이 뻔했다. 이미 벌거벗겨져 끌려다니던 주제에 그 앞에서 대놓고 전시하는 건 못 버티겠다는 걸까.

마르티안은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주인의 말에 따르지 않는다니. 그게 개에게 가당키나 한가. 특히 론에게는 더더욱 가당치 않은 소리였다. 그녀가 론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았다.

“주인에게 집중하는 법도 잊고.”

그녀는 론의 머리채를 잡은 상태로 휴이의 앞까지 질질 끌고 갔다. 무릎걸음으로 기어서 끌려오느라 론은 몇 번을 엎어지고 넘어졌다. 휴이의 앞에 떠밀렸을 때는 무릎이 이미 붉었다. 헐떡이는 론을 보며 휴이가 움찔 긴장했다.

마르티안은 여러모로 화가 난다는 생각을 했다. 거절을 해도 못 알아먹는 휴이는 그렇다 쳐도, 이 앞에서 눈치 없이 행동하는 론의 모습은 아주 실망스러웠다. 애초에는 휴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론을 벗긴 것이었지만 이제는 좀 달랐다.

이제 이건 주제를 모르는 개를 교육시키는 시간이 되었으니까 그 상황에 휴이를 이용한다고 한들 나쁠 건 없었다. 애초에 휴이는 그런 꼴이 되고 싶다며 그녀에게 매달리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마르티안이 론을 향해 말을 뱉었다.

“지금부터 조금이라도 반항했다가는 널 버릴 거야.”

그제야 론의 표정이 변한다. 그녀는 지금껏 그에게 대놓고 버리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마르티안은 론을 그저 내버려 두었다. 이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지금의 론은 그녀의 개라기에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론이 그녀에게 다가와 매달리며 말했다.

“주인님. 제가, 제가 잘못…. 흡!”

마르티안은 그의 뺨을 후려쳤다.

“잘못했으면 벌부터 받아야지. 소파에 머리를 박고 자세 잡아. 이쪽으로 엉덩이 벌리고.”

그 말에 론이 반대쪽 소파로 기어갔다. 마르티안은 자세를 잡는 론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휴이를 보았다. 그새 자극을 받은 건인지 사타구니 사이가 불룩하게 솟아있다. 정말이지 자기 욕망에 충실한 개였다. 마르티안은 웃으며 물었다.

“제가 지금 뭘 할 거 같나요?”

“그대의 개를, 매질하려는 것 같은데?”

“개의 어디를요?”

그 물음에 그의 시선이 론에게로 옮겨간다. 론은 소파 안쪽에 머리를 푹 숙이고는 엉덩이만 높이 치켜올린 상태였다. 그 자체로도 수치스러운 자세인데, 그는 스스로 엉덩이를 잡아 양옆으로 벌렸다. 그 안의 구멍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마르티안은 제가 들고 있던 회초리를 가볍게 휘둘렀다.

“구멍을 맞아본 적 있으신가요?”

그 말에 휴이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진다. 당연한 일이었다. 개가 되고 싶다고는 했지만, 엉덩이를 벌리고 그 안쪽까지 맞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통을 즐기는 타입들도 이런 식의 매질은 견디기 어려워했으니까.

기껏해야 창녀를 사서 하는 가벼운 행위가 전부였던 사람이, 이런 식의 심하고 적나라한 체벌에 면역이 있을 리 없었다.

마르티안은 가볍게 웃었다.

“개라면, 주인에게 제 몸 어디든 갖다 바칠 줄 알아야 하는 법이거든요.”

이런 매질을 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관계의 우위를 나타낸다. 그러니 이건 마르티안이 백작에게 보일 수 있는 위협이자 론에게 내리는 가장 높은 강도의 벌이었다. 떨고 있는 론과 당혹해하는 백작을 보자, 그녀는 아주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걸 느꼈다.

“저는 개에게 고통을 주는 걸 좋아해서 이런 매질도 자주 하는 편이에요.”

그녀는 거기까지 말한 뒤에 론에게로 걸어갔다. 자세를 잡고 있던 몸이 그녀가 다가오자 움찔 긴장했다. 매질하기 쉬운 거리까지 다가간 뒤, 마르티안은 회초리 끝으로 론의 엉덩이 골을 문질렀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은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개라면 때리면 때리는 대로 얌전히 맞아야 하는 법이구요.”

백작의 시선이 닿아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마르티안은 보란 듯 회초리를 휘둘렀다. 회초리의 둥근 끝이 정확하게 구멍을 내리쳤다. 강도는 평소보다 훨씬 거칠고 강했다. 이건 벌이었으니까.

“흐으!! 흡! 흐으, 하, 하나…….”

그녀의 손이 다시 움직인다. 짜악, 하는 살이 들러붙는 소리가 났다.

“두, 흐으윽, 두울.”

고통을 참느라 론은 큰 신음도 내지 못했다. 숫자를 세는 것이 고작, 손가락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손끝이 다 희끗하다. 마르티안은 연이어 제 팔을 휘둘렀다. 살을 내리치는 소리가 험악하게 공간을 채운다.

“흑, 흐읍……. 여, 여덟…….”

목소리가 벌벌 떨린다. 매질은 빠르지 않았지만 한 대, 한 대가 지나치게 강도가 셌다. 그건 개가 버틸 수 없게끔 일부러 가혹하게 구는 매질이었다. 열다섯대가 넘어가자 론은 엉덩이를 벌리던 손을 놓쳤다.

매질은 그대로 엉덩이와 허벅지에 그어졌다. 잘못했다고 비는 소리가 우는 소리와 함께 이어졌다.

론이 다시 엉덩이를 벌리자 마르티안이 빠른 속도로 석 대를 후려쳤다. 손속을 두지 않는 강한 매질에, 론은 다시 자세를 무너트렸다. 구멍이 매질로 인해 붉게 부풀어 올랐다.

“흐읏, 흐으, 주인님……. 흐으, 흐윽…….”

그는 울었다. 평소에 맞는 것보다도 강도가 세서 훨씬 고통스러웠다. 더 견딜 수 없는 건 언제까지 버텨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대수를 정하지 않고 하는 매질은 쉬이 끝나지 않는 법이다.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혹해질 수 있었다. 론은 다시 자세를 잡고 버텼지만 매질의 수가 스무대 넘게 이어지자 다시 자세를 무너트렸다.

“흐윽, 잘못, 했습니다. 주인님, 흐으…….”

론은 자세를 다시 잡으며 엉덩이를 들어 올렸지만 스스로 엉덩이를 벌리면서는 몇 번이나 손이 미끄러졌다. 고통을 견디느라 손으로 땀이 젖었다. 마르티안은 론의 구멍이 퉁퉁 부푼 것을 보다가 자세를 풀고 소파에 제대로 앉게 했다.

“흡, 감사, 흐으……. 감사합니다.”

돌아앉은 론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었다. 엉덩이와 허벅지가 소파에 닿자 그가 가는 신음을 흘렸다. 그의 얼굴은 벌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풀려 있었다.

마르티안은 회초리로 그의 가슴을 툭 쳤다. 고리가 흔들리며 가는 사슬이 흔들렸다.

“발까지 소파 위로 올리고 다리 벌려. 네 가랑이 사이가 전부 보이게.”

론은 그제야 벌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물이 다시 뚝뚝 떨어졌지만 그는 마르티안이 말한 대로 자세를 잡았다. 성기와 고환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자세는 여러모로 수치스러웠다.

론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백작과 그의 앞에 서 있는 마르티안을 한 번씩 보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 순간 그의 성기를 회초리가 툭 쳤다.

“고개 똑바로 해.”

론이 긴장한 채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회초리는 그의 고환과 회음부를 가볍게 문지르다가 갑자기 그의 성기를 후려쳤다. 고통은 수치를 압도하는 법이었다. 그는 앞, 뒤가 퉁퉁 부어오르는 느낌을 받으며 헐떡였다.

“아윽!! 흐으! 흡…….”

론은 소파를 긁으며 온몸을 떨었다. 벌어진 허벅지가 흔들린다. 그 와중에도 다리를 오므리지는 않았다. 자세를 견디는 것만큼은 오래 교육받았으니까. 매질이 여러 번 이어졌지만 그는 자세를 버텨냈다. 성기로 붉은 줄이 죽죽 그어졌다.

이내 마르티안은 론의 사타구니 사이를 무릎으로 누르며 소파 위로 올랐다. 맞아서 부푼 성기가 무릎에 짓눌리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그가 신음을 뱉어내며 그녀를 불렀다.

“흐으, 주인님. 흡. 흐윽…….”

“아쉽네. 자작가였다면 널 엉망진창으로 쑤셨을 텐데.”

마르티안은 그렇게 말하며 매질 당한 성기를 더 짓눌렀다. 이곳이 그녀의 방이었다면, 그녀는 도구를 차고 잔뜩 맞아서 부푼 론의 구멍을 엉망으로 들쑤셨을 것이다. 마르티안은 자신의 흥분이 애매하게 멈춰있는 것이 짜증스러웠다. 론이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그건 그가 가진 몇 안 되는 애교였다.

마르티안이 론의 허벅지 안쪽에 새겨진 매질 자국을 짓눌렀다. 흐으, 흐읍. 론은 고통을 견뎌내며 건너편에 앉아있는 백작을 보았다.

론은 마르티안이 그에게 빠져 보냈던 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르티안은 상대를 두고 크게 흥분했고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만약 그가 마르티안이 허용하는 범주 내의 사람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내쳐지는 건 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밀려나 있는 것은 백작이었고 마르티안과 함께 있는 건 론 자신이었다.

론은 더듬거리는 손으로 그녀를 끌어 끌어안고는 헐떡이며 속삭였다.

“할 수 있, 흐으, 흐읍, 할 수 있으니까……. 주인님.”

그가 손을 뻗어 그녀 머리 뒤쪽에 꽂힌 머리 장식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올려서 묶은 머리에 꽂는 장식은 적당한 두께와 길이를 가진 막대 형태였다.

론은 자신의 몸을 조금 뒤로 물렸다. 그녀의 무릎에 짓눌려 있던 성기가 드러났다. 한 손으로 반쯤 발기한 것을 쥐고 그는 모든 용기를 쥐어짜 입을 열었다.

“이걸로 쑤셔서, 흡, 흐으, 쑤셔 주시면 됩니다.”

마르티안은 멈칫 멈췄다. 요도구를 쑤시는 건 론이 늘 버거워하는 것 중 하나였으니까. 무슨 마음 변화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마르티안은 그가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녀는 개가 원하는 걸 쉽게 들어주는 주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벌 받는 주제에 바라는 게 많네?”

그 말에 론의 기세가 금방 꺾였다. 마르티안은 잔뜩 움츠러든 개에게 말했다.

“직접 쑤셔. 구경은 해줄 테니까.”

그녀가 맞은편 소파로 향한다. 백작이 앉아있는 옆자리, 그녀는 자리에 앉으면서 휴이를 힐끔 보았다. 그의 사타구니 사이는 이전보다 더 부풀어 있었다. 성기를 짓밟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녀가 론의 성기를 무릎으로 짓누르는 걸 보고 흥분한 것이다.

“도안, 자작.”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가 그녀를 불렀다. 흥분으로 물든 목소리다. 마르티안이 말했다.

“아직도 개가 되고 싶으신 건가요?”

“나, 나도 충분히…….”

“그래요? 그럼 제 애첩을 선배로 삼아서 배울 생각부터 하세요.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한 개는 질색이거든요.”

그 말에 휴이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다. 자존심이 대단할 수밖에 없는 태생이니 론과 똑같이 대하는 게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역시나 그는 입을 닫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노리고 한 소리라서 마르티안은 편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실 아주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녀의 입맛에 따라 앞과 뒤를 전부 길들여진 상대는 그녀를 몹시도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 분명했으니까. 지위가 비슷하기라도 했더라면.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론이 막대를 쥐고 자세를 잡았다. 휴이가 기분 나쁘다는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이만 일어서지. 이것까지 볼 이유는 없는 거 같으니까.”

* * *

마르티안은 집사에게 겉옷을 넘기며 자작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집사는 당황하고 놀란 얼굴이었다. 세반 백작가에서 진행하는 연회는 사흘 동안 이어지는 일정이었으니까.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을 배려하여 연회 일정에는 연회뿐만 아니라 주변 관광을 비롯한 가벼운 사교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오가는 시간까지 합해 최소 닷새는 걸리리라 생각한 일정이었는데 고작 사흘 만에 돌아온 것이다.

“자작님, 왜 이렇게 일찍 오신 겁니까? 무슨 문제라도…….”

“그럴 일이 있었어. 바로 씻을 준비를 해줘. 쉬고 싶어.”

그녀는 피곤하다는 말로 집사의 질문을 피한 채 침실로 올라갔다. 하인들이 급하게 씻을 물을 챙겼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씻었다. 뜨거운 물로 씻고 나자 노곤함이 이어졌다. 그건 복잡한 피곤함이자 노곤함이었다. 침대에 눕긴 누워도 잠이 오진 않는 노곤함.

그녀는 백작 앞에서 론을 데리고 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렸다. 정신은 점점 더 맑아졌다.

‘나도 미쳤지.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해서는…….’

휴이 세블로아드는 공작가의 후계자였고 황제가 직접 작위와 영지를 하사할 정도로 제 위치가 분명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뒷구멍을 맞아본 적 있냐며 묻고, 론을 데려다가 그 꼴을 기어코 보였다.

연회장에서 마신 와인이 뒤늦게 올라오기라도 한 것처럼 쓸데없이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마르티안은 자신이 한 것들을 후회했다.

‘차라리 그 지위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연기나 할걸…….’

그렇다면 백작의 호기심은 단숨에 빠져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한 일은 상대를 지나치게 도발하는 행동뿐이었다. 그 거대한 자존심을 긁어내는 짓, 물론 공작가의 후계자라고 해서 오랫동안 제국에 충성을 바친 귀족 가문을 당장 없애거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고 짜증스럽게 만드는 그런 정도의 방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권력이란 그래서 치사하고 더러운 법이었으니까.

“어머니 말이 맞았어. 이 성격 때문에 언제 한번 크게 데일 일이 있을 테니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그녀가 중얼댄다. 자괴감에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론이 침실로 들어왔다. 씻고 들어온 것인지 머리카락이 젖어있다. 그는 주춤거리며 서 있다가 이내 엎드렸다. 얇은 침실용 옷을 입고 있어서 움직이는 몸 선이 그대로 보였다. 침대 곁까지 기어온 뒤 그가 말했다.

“주인님, 앞에 빼라고 흐읏……. 허, 허락을 아직 흡, 안 해주셔서…….”

엎드린 론의 몸이 움찔대며 떨린다. 마르티안은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백작가에서 했던 일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있던 상황이라 괜한 심술이 올라왔다. 그녀는 발로 론의 뒷머리를 꾹 밟았다.

“엉망진창으로 쑤셔달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보채?”

“너무 오, 오래 있어서, 흐으…….”

거의 우는 목소리다. 이곳에 돌아오는 내내 요도에 끼워둔 막대를 빼주지 않았으니까.

“아래 벗어.”

그녀가 그의 뒷머리를 밟은 채 명령한다. 론은 손을 뒤로 뻗어 엎드린 상태에서 바지를 벗어 내렸다. 속옷을 입고 오지 않아서 벌거벗은 엉덩이가 드러난다. 제법 야했다.

마르티안이 발가락으로 그의 목덜미와 귀를 지분댄다. 론은 그때마다 헐떡이며 몸을 떨었다. 아픈 걸 즐기지는 못하는 몸이지만 작은 자극에도 흥분할 줄 아는 몸이었다. 그녀는 치켜들고 있는 론의 엉덩이를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너 때문에 안 할 짓까지 했어. 알아?”

“네, 주인님. 잘못…… 잘못했습니다.”

그녀가 론의 뒤에 서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엉덩이만을 치켜올렸다. 다리 사이를 벌린 론은 발기한 것을 손으로 눌러 다리 사이로 보일 수 있게 만들었다. 귀두 끝으로는 작은 꽃이 달려 있다.

그가 백작가에서 원했던 대로, 마르티안은 론의 성기를 완전히 발기시키고는 그녀의 머리 장식으로 요도를 막아버렸다.

“주, 주인님……. 제발, 흐윽…….”

론은 돌아오는 내내 그런 꼴이었다. 마차 내에서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어떻게든 버텼지만 저택에 돌아온 이후에는 더는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아래를 내보이며 덜덜 떠는 론의 모습은 자극적이었다. 마르티안은 흥분의 감각을 느긋하게 만끽했다.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개와 함께하고 있으니 백작가에서 있었던 일들이 흐려진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니 이게 낫지.’

그녀는 침대 근처에 놓인 서랍장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그녀가 자주 쓰는 도구들이 들어있다. 그 안을 뒤지며 고르는 소리에 론이 움찔대며 떨었다. 사실 그는 거의 한계인 상태였으니까, 마르티안이 하는 어떤 행위도 기다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요도 막대만 빼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소리가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론은 일말의 이성으로 그것을 참았다. 그녀의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오랜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무언가가 론의 뺨을 쿡 찔렀다. 그가 고개를 들자 마르티안이 제 손에 쥔 것을 흔들어 보였다. 허리에 찰 수 있는 벨트에 모조 성기가 달려 있는 도구였다.

“원하는 게 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마르티안은 튀어나온 모조 성기로 론의 뺨을 다시 툭툭 쳤다. 그는 가벼운 신음을 내뱉으며 얌전히 그녀를 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가 가져온 도구는 벨트 안쪽과 바깥쪽에 모두 모조 성기가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그 도구는 박히는 쪽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박는 쪽에도 쉽게 흥분하게 만들었다. 마르티안은 개를 오래 괴롭히며 제어하고 싶을 때는 바깥쪽에만 성기가 달린 것을 썼고, 적당히 즐기고 흥분하고 싶을 때는 이렇게 양쪽에 달린 걸 썼다.

“오늘은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벨트를 찼다. 그녀의 아래로 안쪽의 모조 성기가 삼켜지고 벨트를 여미자 그녀의 앞으로 커다란 성기가 끄덕대며 세워진다. 바깥쪽에 튀어나온 모조 성기는 두껍고 돌기가 나 있었다.

뒤를 쓰는 것에 어지간히 익숙해지지 않으면 몹시 고통스러운 크기와 길이였지만 론은 그녀 곁에서 충분히 길이 든 개였다.

그녀는 윤활제 통을 찾아서 모조 성기에 뿌리고 손으로 쓸어내듯 문질렀다. 모조 성기가 흔들리자 그녀의 아래에 들어온 것이 같이 흔들거린다. 뭉근한 자극에 그녀는 숨을 뱉어냈다. 그녀는 느긋하게 말을 뱉어냈다.

“다 벗고 침대로 올라와.”

마르티안은 베개에 등을 기대며 침대 위에 앉았다. 젤에 젖어 번들대는 것을 손으로 다시 슥슥 문지른다. 옅은 자극이 아래까지 전달된다.

“뭐 해. 이리 와야지.”

론이 그 말에 다시 움직인다. 무릎으로 기어서 움직일 때마다 발기한 성기가 끄덕거리면서 통증과 자극을 더했다. 요도 구멍 안쪽으로 딱딱한 이물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가 마르티안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자마자, 마르티안은 그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흐, 주인……흐읏!”

그녀가 귀두 끝에 달린 꽃을 잡고 얕게 들쑤신다. 론은 엎어질 듯한 몸을 막기 위해 급하게 침대 헤드를 움켜쥐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아득하다. 헐떡거리는 신음이 우는 소리처럼 흘렀다. 아니, 실제로 눈물이 떨어졌다.

오래 처박혀있던 곳은 잔뜩 흥분한 상태로 너무 오래 방치되어있어서 심할 만큼 예민해진 상태였다.

발기한 것이 점차 죽으려 들어서 마르티안은 장난처럼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손을 뻗어 론의 등을 쓰다듬자 땀으로 젖은 등이 긴장으로 움찔 경직됐다. 그녀의 손은 잠시 그의 등을 토닥이다가 점차 아래로 내려갔다. 허리 뒤쪽을 지분댔다.

“만족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야 빼줄 거야.”

“흐윽, 흐으, 주인님…….”

론이 그녀의 귓가에 입을 맞추며 애원했다. 마르티안은 그것을 흘려들으며 론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손끝을 세워 꽉 틀어쥐자 그가 신음을 내며 헐떡였다.

등을 굽히고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부비며 어떻게든 애교를 쥐어짰지만 그녀는 물러나 줄 마음이 없었다. 애쓰는 론을 몰아붙이는 건 그녀를 더 흥분되게 만들었다.

짜악, 그녀가 론의 엉덩이를 손으로 내리쳤다.

“빼고 싶으면 나부터 만족시켜야지. 빨리 넣고 흔들어.”

론은 헐떡이며 몸을 움직여 그녀에게 달린 모조 성기 위에 내려앉았다. 뒤를 잘 풀어주지 않은 상황이라 평소보다 뒤로 삼키는 게 버겁다.

움직일 때마다 성기가 흔들리며 요도 구멍에 가득한 이질감이 점점 더 심해진다. 그는 애쓰며 움직였지만 몸이 오래 시달린 상태라 여러모로 쉽지가 않았다. 움직임은 더 느려졌다.

어느새 모조 성기에 발라놓은 윤활제들이 반쯤 말랐다. 끈적대는 윤활제는 내벽을 지나치게 자극해서 론은 반쯤 내려앉은 상태로 더는 내려가지 못하고 멈췄다. 이대로 내려가다가는 벗겨져 피가 날 것만 같았다. 흐으, 흐윽. 오래 시달린 몸은 금세 눈물을 냈다.

마르티안이 그의 성기를 감싸듯 움켜쥔다. 그녀의 손 위로 성기의 윗부분과 장식용 꽃이 툭 튀어나왔다.

“왜 이렇게 굼뜨게 굴어?”

그녀가 다른 손으로 장식용 꽃을 튕겼다. 흐아!! 론은 급하게 침대 맡을 붙잡았다. 요도구 안을 흔드는 충격에 순간적으로 힘이 풀려서 몸이 좀 더 푹 가라앉았다. 뒤에서 오는 감각은 앞의 감각으로 인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꽃을 튕겼다. 론이 차마 그걸 막지는 못한 채 다시 침대헤드를 붙잡고는 울듯이 애원했다.

주인님, 제발, 흐으. 고문 같은 손짓이 다시 이어졌다. 버티고 있는 허벅지가 부들거리며 떨린다. 마르티안은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말을 뱉었다.

“제대로 앉아. 그럼 멈춰줄 테니까.”

이미 엉덩이에 반쯤 꿰고 있는 상태이니, 이대로 허벅지에 힘이 빠지면 저절로 쑤셔 박힐 것이다. 거칠고 고통스러운 삽입이 되겠지만 그건 그녀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론은 신음을 뱉어내다가 잘못했다고 빌기 시작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주인님. 잘못, 흐, 흐윽, 잘못했습니다.”

엉망으로 붉어진 눈가와 뺨이 움찔댄다. 무뚝뚝한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감정이 터져 나와 흠뻑 젖어있는 얼굴. 그 얼굴이 마르티안의 흥분을 일으켰다. 아래가 욱신거릴 정도로 떨린다. 그녀는 더 이상 론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마르티안은 그의 어깨를 손으로 밀어 옆으로 밀쳤다. 흐아, 끅. 론은 그대로 밀쳐지며 신음을 내뱉었다. 구멍에 반쯤 박힌 것이 배려 없이 쑥 빠져나가며 내벽을 그었다. 성기가 크게 끄덕이며 이물감과 고통을 더했다. 론은 헐떡이며 울었다.

“누워서 다리 벌려. 내가 박을 테니까.”

그 말에 론이 울음을 삼키면서도 자세를 잡았다. 그래도 차라리 이게 낫다. 이건 버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론의 표정을 읽고 마르티안이 픽 웃었다. 제 주인이 하라는 걸 못 해낸 주제에 안도라니 겁도 없었다.

론이 베개를 그러모아 허리 아래에 대고는 다리를 옆으로 활짝 벌렸다. 그의 성기와 구멍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마르티안은 그의 손을 잡아 스스로 자신의 성기를 쥐게 했다.

한 손으로 감싸듯이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막대 끝을 잡는 자세였다. 론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예쁘네.”

그녀는 드물게 해주는 칭찬을 하고는 윤활제를 가져와서 자신의 모조 성기 위에 다시 뿌렸다. 듬뿍 뿌린 것들이 론의 사타구니 사이와 침대 시트 위로 뚝뚝 떨어졌다.

마르티안은 모조 성기를 손으로 훑어서 뿌린 윤활제를 골고루 발랐다. 이만하면 말라붙어 아프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여길 쑤셔줄 때마다.”

그녀는 말을 하며 모조 성기를 론의 구멍에 툭 가져다 댔다. 그것만으로도 움찔 구멍이 오므라든다. 잔뜩 긴장한 게 느껴졌다. 마르티안은 가볍게 웃고는 다시 윤활제 통을 가져와 구멍 위에 쏟아부었다. 고환과 그 아래로 젤이 흘러넘쳐 번들댄다. 그녀는 론과 다시 시선을 맞췄다.

론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본다. 이런 다정함이 있을 때마다 그녀의 다음 행위는 더 가혹해지곤 했으니까. 마르티안은 가볍게 웃더니, 요도 막대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을 툭 건드린다.

“너는 이걸 잡고 안을 쑤시는 거야.”

“……주, 주인님.”

“어느 정도로 쑤시냐면…….”

그녀가 론의 손을 감싸듯 잡고는 친절하게 시연했다. 론이 헐떡이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무시하며 막대를 잡은 론의 손을 뒤로 빼냈다. 요도 막대는 삼분의 일정도 빠져나갔다가 이내 그녀의 힘에 따라 다시 안으로 박혔다.

“흐으! 흡…… 흐윽…….”

론이 몸을 덜덜 떨며 신음을 흘렸다. 그의 눈가가 다시 젖으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주인님. 잘못, 흐으, 흐윽. 그것을 보며 마르티안은 당장 처박고 싶은 것을 참았다. 이왕 맛있는 것을 먹을 거라면 완벽하게 완성된 상태로 먹는 게 좋았으니까.

“이 정도까지 뺐다가 다시 쑤시는 거야.”

“주인님. 흐으, 제발, 모, 못할…….”

론이 벌벌 떨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오래 견뎌온 상태였다. 스스로 처박고 쑤시는 것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순간, 마르티안이 그의 고환 아랫부분을 손으로 내리쳤다. 윤활제로 질척하게 젖어있는 곳으로 철썩대는 소리가 이어졌다.

“론 이따위로 굴 거야? 처박아 달라고 네가 졸랐잖아. 제대로 못 해?”

그 말에 론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화가 난 그녀의 모습은 백작가에서 버릴 것이라고 말하던 모습과 비슷했다. 마르티안은 언제든지 그를 내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주인은 그녀 한 사람뿐이지만 그녀에게 개는 차고 넘쳤으니까. 쓸모없는 개는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이대로 버림받을래? 그런 말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론이 헐떡이며 숨을 삼키고는 급하게 요도 막대를 뺐다가 다시 밀어 넣는다. 내벽이 쓸리듯이 움직여지고 안이 억지로 벌어지는 느낌에 온몸이 떨렸다.

“하겠, 하윽, 하겠습니다. 엄살 부려서, 흐읍, 흐으, 주인님. 잘못, 흐으, 제가 잘못했습…….”

론은 벌벌 떨면서도 스스로 제 요도구를 들쑤셨다. 겁먹은 채 애원하는 개의 모습은 여지없이 그녀의 취향이었다. 마르티안은 아래가 욱신대는 기분을 맛보며 론의 구멍에 모조 성기를 쑤셔 넣었다.

아까 내려앉으면서 어느 정도 풀린 모양인지 그렇게까지 빡빡하진 않다. 마르티안은 맞물린 부분에 윤활제를 더 쏟아부었다. 질척이고 미끈거리는 것들이 넘쳐 흐른다. 론의 잇새로 흐느낌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흘렀다.

“흐으! 흐읍, 흑…….”

그녀의 사타구니가 론의 엉덩이에 맞닿았다. 론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게 맞닿은 피부로 느껴져서 마르티안은 좀 더 흥분했다. 개의 긴장과 고통은 그녀에겐 흥분을 일으키는 자극제였다. 완전히 처박은 채 하체를 비비자 그녀의 안으로 이어진 것이 같이 흔들리면서 자극을 더했다.

그녀는 다시 허리를 뒤로 물렸다. 론의 뒷구멍이 빠져나가려는 것을 반사적으로 잡아 물었다. 덕분에 그녀의 안쪽 역시 잡아당겨지는 자극이 흘렀다.

“하아, 론. 손 움직여야지.”

마르티안은 뒤로 물린 것을 다시 푹 처박으며 말했다. 론의 손이 덜덜 떨며 느리게 움직였다. 요도 막대를 뒤로 물렸다가 머뭇거리며 밀어 넣는다.

헐떡이는 숨이 그것만으로도 높아졌다. 그 느린 행위로도 자극이 지나치게 오는지 스스로 막대를 밀어 넣을 때마다 그녀에게 닿아있는 론의 엉덩이가 움찔거리면서 경직된다. 근육이 울렁이듯 움직이는 게 벌벌 떨어대는 것만큼 자극적이었다.

“너무, 후읏, 느려. 빨리 해.”

그녀가 다시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퍼억, 밀어 넣었다. 처박는 자극이 클수록 그녀 안에 들어있는 것도 크게 흔들렸다. 개를 길들일 때는 잘 쓰지 않지만 행위에 푹 빠지고 싶을 때는 나쁘지 않은 도구였다.

단지, 답답한 건 론의 굼뜬 행동들이다. 그녀가 박고 나서야 겨우겨우 움직이는 론의 손길에 맞추려니 영 짜증스러운 것이다.

“느리다고 했지? 빨리 안 움직여?”

마르티안은 한껏 밀어 넣은 것을 밭게 쑤시며 재촉했다.

“흐, 네, 흡, 주인, 흐으…….”

론은 어떻게든 손을 움직였지만 속도가 더 빨라지진 못했다. 그는 이미 한계 이상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한 건 마르티안이다. 그건 그녀 아래에 깔려 있는 개의 탓이 컸다. 질질 울며 요도구를 쑤시는 개는 그녀를 지나치게 흥분시켰으니까. 그녀의 아랫도리는 더 큰 자극을 찾느라 움찔댄다. 결국 그녀는 론의 손을 쳐서 치워내고는 그의 성기를 직접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이 요도구를 직접 쑤시자 그가 울며 신음을 쏟아냈다. 그녀는 제 허리를 물렸다가 거칠게 처박았다. 자극이 직접적으로 안을 치받는 느낌이 생생하다. 그녀는 다시 그렇게 움직였다.

퍽, 퍼억, 하는 소리가 연이어 울린다. 요도구를 쑤시는 자극도 그에 맞춰 푹푹 이어졌다.

“주, 주인 흐윽! 제발, 빼서, 흐읍! 빼주세, 흐읏! 흐으.”

엉덩이 안을 찌르는 자극이 그를 견딜 수 없게 한다. 그녀는 그의 몸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고 어디를 찔러야 흥분하는지도 알았다. 고되고 거친 흥분이 끝없이 억눌린다.

론은 자신이 우는지도 모른 채 울었다. 론이 견디지 못하고 마르티안의 손을 붙잡았다. 주인님, 제발. 흐으, 우는 소리로 그가 애원했지만 마르티안은 자신의 손을 붙잡은 론의 손을 내쳤다.

“어디다가 손을 대? 주제도 모르고.”

허리를 더 거칠게 움직이며 퍽퍽 처박자 론은 더 이상 애원하지 못하고 이불을 마구 움켜쥐었다. 우는 신음을 내면서도 어떻게든 버티려는 모습이 예쁘다. 그녀는 그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론, 이건 다 네 탓이야.”

애초에 쑤셔달라고 빌었던 것도 론 자신이었고, 이런 우는 모습으로 그녀를 흥분시킨 것도 론이었다. 마르티안은 그의 성기를 더 세게 틀어쥐며 허리를 움직였다. 처박고 뺄 때마다 절정으로 이어지는 강렬한 자극이 이어진다. 퍼억, 퍽, 거친 소리가 울릴 때마다 론은 이불을 움켜쥐며 울었다.

마르티안은 이내 절정에 달했다. 강렬한 흥분이 온몸을 휩싸고 지나가자 절로 신음이 터졌고 아랫도리부터 지글거리는 자극이 온몸으로 흘렀다. 강렬한 감각은 집요한 쑤셔댐의 결과였다.

그녀는 느른한 숨을 뱉어내며 하체를 론의 아래에 비볐다. 이어지는 자극이 그때마다 제법 짜릿하게 이어졌다.

이내 그녀가 론의 성기에 꽂힌 것을 쑥 뽑아냈다.

“흐아! 흐으윽!”

론은 더이상 울지도 못한 채 그저 굳었다. 마르티안은 이미 젖어있는 막대를 내던지고는 론의 성기를 쥐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지나치게 학대당한 탓에 막대를 뽑았다고 해도 바로 사정하진 못했다. 그것을 잡아 직접 흔들어주며 그녀가 말했다.

“앞으로 내가 네 뒤를 쑤시면 넌 여기를 직접 쑤셔야 해.”

만족스러운 어투로 그녀가 재차 말한다. 론은 흐느끼며 신음만 뱉을 뿐 전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정신인 것 같지도 않아서 그녀는 굳이 다그치지 않았다. 어차피 제정신일 때 다시 시키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녀가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느긋하고 깊숙한 허리짓이다. 아래를 부딪치듯 쑤시면 그녀의 안쪽까지 퉁퉁 울렸다. 후희로 즐기기에 적당한 자극이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론, 이제 가도 돼.”

그녀가 론의 귀두 끝을 손으로 비비듯 자극한다. 사정시키려고 작정한 손길에 론의 몸이 경련하듯 굳는다. 이내 튀어 오르듯 거한 정액이 쏟아졌다.

* * *

세반 영지에 갔다온 지 보름이 지났다. 자괴감에 빠져있던 마르티안도 내내 아무런 일이 없자 점차 안도했다. 공작가의 장남에게 구멍을 운운하며 희롱하듯 행동한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사실 그 원인은 상대에게도 있긴 있었으니까. 마르티안은 모든 것이 좋게 끝났다고 여기기로 했다.

“대체 그 연회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사정을 모르는 집사는 지치지도 않는지 자꾸 물었다. 마르티안은 그 질문을 슬쩍 넘기며 자신의 앞에 놓인 옷들을 들춰보았다.

특별히 따로 수선을 맡겼다던 옷들이다. 재질은 좋았지만 구식이었던 옷들이 감쪽같이 바뀌어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색으로 새롭게 물들인 것들도 제법 많다.

“어때? 내가 입으니 옷 태가 더 그럴듯한 거 같지 않아?”

그녀가 코트를 걸치며 집사에게 물었다. 화제를 돌리고자 그냥 너스레를 떤 말이었는데 집사는 정색하며 답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요. 솔직히 전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작님이 입으시면 평범한 옷도 고급품처럼 보이니까요.”

“집사, 어디 가선 그런 소린 하지 마. 내가 다 부끄러우니까.”

마르티안이 한숨처럼 말을 뱉었다. 집사는 충성심이 대단했지만 그래서 자주 객관적이질 못했다. 이전 휴이 세블로아드와 엮으려고 한 것도 그렇고. 이내 그녀가 미간을 찌푸린다. 어쨌든 그 휴이와 엮이긴 엮였다. 좋지 못한 방향이어서 그렇지. 다시 일어난 자괴감은 이내 집사의 말에 흩어졌다.

“자작님, 저는 사실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수도에 있는 대단한 귀족분들이 많다고 해도 솔직히 자작님 나이에 작위를 가지고 이만큼 영지를 운영하시는 분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정말이지…….”

“그래, 집사. 다 알겠어. 칭찬은 고마운데 어쨌든 내 남편은 날 내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그러니까 너무 대단한 가문의 사람은 애초에 생각하질 마.”

“일이라는 건 많은 고용인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는 법입니다. 세반 영지처럼 수익이 톡톡히 나는 곳이라면 사람을 쓰기도 편하고…….”

“제발 집사, 휴이 세블로아드는 아니야. 그 사람은 절대 안 돼.”

그 말에 집사가 얼굴을 불퉁하게 굳혔다. 마르티안은 그런 집사를 내버려 두고 새롭게 바뀐 코트를 살폈다.

지나치게 여성스러웠던 실루엣은 사라지고 대신 이염한 레이스를 덧대어 화려한 느낌은 남겼다. 코트의 색과 비슷한 어두운색의 레이스는 여성스럽기보다는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키가 큰 편인 마르티안에겐 지나치게 여성스러운 것보다는 그런 옷들이 더 잘 어울렸다.

“옷이 다 비싼 값을 하긴 하네.”

앞으로 이런 고급스러운 옷을 입을 일이 있긴 있을까 싶긴 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옷이었다. 옆에 있던 집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축복제 때에는 수도에 가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국교육원의 졸업 시기와도 비슷하게 맞물리니 엘 도안 도련님 축하를 하러 올라갈 때 좀 더 머무르시면 될 테니까요.”

속 보이는 제안에 마르티안은 픽 웃었다. 축복제는 황실에서 주관하는 대규모 무도회가 연이어 얼리는 때였다. 결혼적령기의 귀족들이 상대를 찾으러 모여드는 때. 집사는 그녀가 거기에서 결혼 상대를 찾아오길 바라는 것이다. 그녀는 코트를 다시 벗어 집사에게 건넸다.

“안 돼. 그랬다간 큰일 날 거야.”

“큰일이라니요?”

“집사의 말처럼 이 나이에 작위까지 가지고 이런 미모를 가진 여자가 흔해? 너도나도 달려들어서 나를 자빠트리기라도 하려 할 텐데?”

“자, 자빠트리, 자작님 그 무슨 망측한 소리입니까?”

“망측하긴 뭐가 망측해. 무도회가 한번 열리면 그 홀의 테라스들이 다 꽉 차는 거 몰라서 그래? 정원에서 해대는 애들도 있다고.”

적나라한 말에 집사가 말을 잇지 못한다. 마르티안은 재빠르게 말을 더했다.

“그러니까 나는 집에서 얌전히 자숙하도록 할게.”

자숙이라니 스스로 말하면서도 어이없는 소리긴 했다. 이곳에 있는다고 해도 그녀는 달밤가에 드나들며 취향의 개를 찾아 시간을 보낼 게 뻔했으니까.

마르티안은 그저 수도에 올라가는 것이 귀찮을 뿐이었다. 거기서 다른 귀족들을 상대하는 것도 귀찮았고, 그녀의 외모를 보고 구애하는 남자들을 쳐내는 것도 귀찮았다.

집사가 한숨을 삼키듯 말을 뱉어냈다.

“자작님,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결혼 상대를 고르셔야 할 때입니다.”

“알아, 후계를 생각해서라도 결혼을 해야지.”

그 말에 집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마르티안이 그에게 다시 말했다.

“말 잘 듣고 밤에는 또 야하게도 굴면서, 애교도 많은, 그런 남자가 있으면 결혼할게. 진심이야.”

집사가 한숨을 뱉어낸다. 마르티안의 대답은 오 년째 저기에서 늘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말은 그런 남자가 없을 거니 나를 건드리지 말란 소리였다.

작위를 가지고 가문을 이끄는 경우 결혼을 일찍 하고 아이를 일찍 낳는다. 후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스물 후반인 그녀는 결혼적령기를 좀 지난 상태였다. 괜히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그녀의 곁에 영 모자른 상대가 서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

마르티안 역시 그런 걱정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집사의 성에 찰만한 상대가 몹시 드물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집사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아. 후계는 서른 초까지는 어떻게든 해결할 생각이니까 너무 그러진 마.”

“약속, 약속하신 겁니다.”

집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답했다. 마르티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 앞에 놓인 옷들을 다시 뒤적인다. 레이스 활용을 고급스럽게 한 것을 보고 있으려니 론에게 입힐 야한 속옷이나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흰 레이스로 된 속옷을 입히면 제법 새 신부 같지 않을까.

‘이번 생일 선물은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마르티안이 그런 생각을 하며 웃자 집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저렇게 웃을 때면 늘 기겁할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집사는 한숨을 쉬며 옷을 정리했다. 마르티안에게 어울리는 옷이었고 하나같이 고급스러웠다.

늘 이런 옷들을 갖춰 입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사는 그녀가 이 옷들을 입고 말끔하게 꾸몄던 날을 떠올렸다. 축하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세반 영지로 향하던 날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훌륭하고 아름다웠던지 집사는 감격해 울 뻔했다. 아무리 대단한 공작가의 자제라도 그녀 앞에서는 넋을 잃고 말 거라고, 늙은 집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 공작가 자제분은 보는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우리 자작님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다니. 아니, 대체.’

마르티안은 그 연회에 초대받은 이가 수백 명이었고, 백작의 얼굴조차 가까이 보기 어려웠다고는 말했지만 집사는 그래도 이해 못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오백 명이 몰려있다고 한들 마르티안은 그 안에서 독보적으로 빛날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그 귀족은 정말 보는 눈이 없는 것이다. 집사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상대방을 향해 속으로 씩씩 화를 냈다.

돌아오는 축복제 때에는 꼭 이걸 입고 수도로 올라가시게 해야겠어, 주름진 얼굴로 각오가 깃들었다.

* * *

마르티안은 론과 함께 티타임을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개와 함께하는 티타임은 개를 테이블 삼아 과자접시를 등에 올려두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자신의 하반신에 얼굴을 묻고 있는 론을 내려 보았다. 목덜미가 이전보다 조금 말랐다. 휴이 세블로아드의 일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가 론을 괴롭힌 탓이었다.

“힘들어?”

마르티안은 론의 목덜미를 손끝으로 두들기며 묻는다. 그가 웅얼거리는 소리로 뭔가 말한다. 혀를 내밀어 그녀의 성기를 핥고 있으니 뭔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하기 싫다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건 개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소리였으니까.

마르티안은 넓게 핀 혓바닥이 뭉근하게 비벼오는 걸 느끼며 느슨하게 숨을 뱉어냈다. 이미 한번 절정을 맛본 상태라서 이런 뭉근한 자극이 기분 좋았다. 그녀의 아래에서 삼십 분이 넘게 혀를 놀리는 론은 제법 힘든 상황이긴 하겠지만.

“그럼 똑바로 자세 잡아. 접시가 흔들리잖아.”

론이 그녀의 아래를 핥는 동안 접시는 내내 그의 등 위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등을 평평하게 만든 채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엎드린 등이 조금이라도 들리거나 뒤틀리면 접시는 그대로 굴러떨어질 테니까.

“과자 줄까?”

마르티안은 접시 위에 있던 쿠키를 가져와 손으로 툭 부러트렸다. 진득한 잼이 부서진 사이로 툭 떨어져 론의 등에 떨어졌다.

“이런, 흘렸네.”

그녀가 손끝으로 그것을 긁듯이 찍어 올린다. 움찔, 하고 그의 등이 떨린다. 와중에도 자세는 유지했지만 핥던 혀가 잠시 멈추었다. 그건 벌을, 줄까. 트집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순 있었다. 마르티안이 론의 엉덩이를 본다. 붉고 푸른 멍이 줄지어 그어져 있었다.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에 론이 제 실수를 깨달은 듯이 다시 혀를 움직인다. 그녀가 흥분하는 곳을 모두 아는 론은 제 혀를 좀 더 자극적으로 움직였다. 방금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던 것과는 달리 단단하게 모은 혀가 그녀가 흥분하는 곳들을 비벼댔다.

“흐읏, 론.”

음핵을 집요하게 눌러 핥고는 이내 그곳을 빨아올린다. 이미 예민해져 있던 탓에 흥분이 금세 거세졌다. 허리가 움찔 떨리는 것을 느끼며 마르티안은 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더 깊이 바짝 당기자 그의 등에 올려둔 접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러그가 깔려 있어서 요란한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담겨 있던 쿠키들이 엉망으로 흩어졌다.

그녀는 몸을 움직여 그의 입과 코를 뭉개듯 눌렀다. 끅, 흐으, 웁, 론의 뒷머리를 눌러 얼굴을 물리지 못하게 만들자 그가 몸을 비튼다. 버겁게 내쉬는 숨이 할딱댔다. 숨이 점점 더 모자르자 그의 상체가 비틀거렸고 그의 손이 바닥을 급하게 더듬었다.

마르티안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주인보다 앞서 나갔으면, 제대로 해야지.”

“흐웁, 흐…….”

“만족하게 제대로 핥아.”

마르티안이 두 번째로 절정을 맞았을 때 소파 아래는 부서진 쿠키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숨이 좁아져 비틀댈 때마다 그는 손을 엉망으로 더듬으며 아래에 굴러다니던 쿠키를 다 짓뭉갰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져 헐떡거리는 론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올라와.”

론은 그제야 몸을 일으켜 마주 보는 것처럼 그녀의 허벅지에 올라와 앉았다. 마르티안이 두 손으로 론의 양쪽 뺨을 감싸 쥐었다. 그의 몸이 반사적으로 긴장했다. 그녀는 그 꼴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할 말 있지?”

“……멈추라고 하지 않았는데 멈춰서, 흐으, 읏.”

마르티안이 한 손을 내려 그의 성기를 움켜쥔다. 이미 흥분한 것이 더 딱딱하게 굳었다. 축축하게 젖은 귀두 끝을 엄지로 문지르자, 지나친 자극에 론이 말도 잇지 못하고 헐떡였다. 몸이 자꾸 흔들려서 잘못 움직이면 소파에서 떨어질 것 같다. 론이 팔을 뻗어 소파 등받이를 붙잡았다.

“하려던 말 해야지.”

“흣, 흐……주, 주인……흐읏.”

“제대로 말하기 전에 싸버리면 혼날 줄 알아.”

장난 같은 말투였지만 장난은 아닌 말이다. 론은 허리를 움찔대면서 어떻게든 흥분을 죽이려 애썼다. 마음이 힘든 것보다야 몸이 힘든 게 나았지만 그것도 너무 오래 이어지니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함부로, 멈, 춰서, 흐으, 읏.”

론의 허리가 앞뒤로 얕게 움직인다. 한계까지 몰아붙일 때가 아니면 딱딱하게 굴며 참기나 하던 것과는 좀 달랐다. 그녀는 그게 의외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깨달았다. 보름간 론을 지나치게 혹사시켰다는 것을.

그는 덜덜 떨며 주인님이라고 몇 번을 뱉고는, 더는 못 이기겠다는 듯 그녀의 뺨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울음이 나왔다. 마르티안의 손길이 잠시 멈춘다. 론은 함부로 앞서나가서 죄송하다는 소리를 그제야 간신히 뱉어냈다.

“뭘 함부로 했다는 거야?”

마르티안이 다시 물었다. 그녀의 손에 쥔 것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꿈틀댄다. 조금만 더 문지르면 그대로 사정할 게 뻔한 상태였다.

‘조금은 쉬게 만들긴 해야 하는데…….’

그녀가 론의 성기에서 손을 떼고는 밤새 괴롭혔던 유두에 손을 대었다. 걸려있는 고리 주변으로 부드럽게 문지른다. 자극의 강도가 훨씬 약해져서인지 론이 움찔대며 버텼다.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도 조금은 덜해졌다. 론은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멈춘 거 혼나지 않으려고 주인님이 말하기 전에 혀를 더 써서, 흣, 흐읍, 제가 주제넘게 굴었습니다. 주인님.”

“잘 아네.”

“잘못, 흐으, 잘못했습니다.”

“그럼 벌을 받아야지.”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론은 순순히 네, 라고 답했다. 그는 봐달라는 식의 애교는 거의 부리질 못했다. 덫에 꿰여 옴짝달싹 못 하는 동물이 이럴까. 론은 늘 마르티안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는 개였다. 벌을 내리면 아무 변명 없이 벌을 받는 순종적인 개.

“무슨 벌을 줄까?”

그녀가 속삭이듯 묻는다. 부어오른 유두를 손으로 꾸욱 누르며 문지르자 론이 가늘게 신음을 뱉어낸다.

“주인, 님이 원하시는 벌을…….”

“밤새 여길 쑤셔도?”

그녀가 론의 성기를 움켜쥐며 말하자 그의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근래 들어 요도 구멍을 쑤시는 일이 늘었지만 그때마다 론은 여지없이 버거워했다.

고통을 고통으로밖에 못 느끼는 몸이니, 여린 내벽을 들쑤시는 행위 자체가 견디기 힘든 것이다. 뒤는 오래 길들여져서 제법 오래 버티기도 했고 내벽에 흥분하는 곳들을 적절히 쑤셔주면 그래도 덜 힘들어했지만 요도를 쑤실 때는 그런 것들이 없었으니까.

그는 울며 버티는 얼굴로 매번 한계까지 몰렸다. 그럼에도 론은 아무런 말도 달지 않고 네, 라고 답해왔다.

“책상에서 오늘 네 안에 들어갈 걸 골라서 물고 와.”

순종적인 개는 그녀의 말에 따라 소파에서 내려가 책상으로 기어갔다. 책상에는 그녀가 꺼내놓은 요도 막대들이 있었다. 론은 그중에서도 굳이 막대 형태의 머리 장식을 입에 물고 왔다. 세반 영지에서 사용했던, 그 스스로가 쑤셔달라고 말한 그 장식이었다.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고는 피식 웃었다.

“이게 좋아?”

“……좋습니다.”

“왜? 남한테 보여졌던 게 생각보다 흥분되기라도 했어?”

그 말에 론이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답했다. 잔뜩 긴장한 채로 깜짝 놀라는 반응이 좀 우스워서, 마르티안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벌을 줄 때는 최소한의 긴장감과 분위기를 유지해야 하는데 제 앞에 보이는 개가 유난히 귀엽게 보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용서해줄 마음을 먹고는 론에게 물었다.

“내내 고생했으니 소원 하나 정도는 들어줄게.”

“소원이라면, 어떤 걸…….”

“네가 당장 원하는 거 말해봐. 하나 정도는 들어줄 테니까.”

론의 몸에 있는 흔적들은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르티안은 자신의 마음이 더 풀어지는 걸 느꼈다. 잔뜩 지쳐서 쉽게 반응하는 개의 모습이 그녀의 취향과 맞아떨어지긴 했지만 오늘은 더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다. 하루 정도는 좀 쉬게 해줘도 될 테니까.

마르티안이 자신에 손에 든 것을 흔든다. 론이 골라온 머리 장식. 그건 지금 당장이라도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는 도구였다. 론의 눈이 그것을 따라 흔들렸다.

“흔치 않은 기회야, 론. 뭘 바라?”

마르티안은 인내심 있게 물었다. 용서해달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그의 태도는, 사실 그녀가 만든 작품이었으니까.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게 당연한 거라고 가르쳤다. 그러니 우물쭈물하는 거겠지. 하지만 이 상황에 와서 그녀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론은 멍청한 개가 아니었다.

“론.”

그녀가 다시 론을 부른다. 머뭇대던 그의 시선이 점차 아래로 내려간다. 론은 몸을 숙여 마르티안의 발등에 입을 맞췄다. 그건 분명 애원하는 몸짓이다. 론이 하는 드문 애교. 마르티안이 조금 의아하단 생각을 했을 때,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며 나왔다.

“저를, 버리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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