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01 (1/2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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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03

04

01

제국의 경계를 타고 내려오는 동부산맥은 험하고 깊은 산들로 이어져 있었다. 때문에 그곳의 영지는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그리 풍요롭지 못했고, 제국의 끝이라는 인식 때문에 산골 촌구석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건 동부 산자락을 영지로 가진 도안 가문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백 년이 넘게 이어져 온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동부 가문들이 그러하듯 유명하진 않았다.

“진짜 골치 아프네.”

마르티안은 피곤한 얼굴로 중얼댔다. 마르티안 도안 자작. 그녀는 이번 대 도안 가문의 주인으로, 가문을 무리 없이 꾸려나가기 위해 매번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영지 내에 농지가 드문 탓에 가문의 주 수입원은 나무였다. 덥고 추운 날씨가 반복되는 덕분에 이곳의 나무들은 테가 견고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자랑했고, 고급가구를 만드는 용도로 비싸게 팔렸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동부 가문들이 적당히 먹고사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나무는 매해 수확할 수 있는 농산물과는 달리 까다로운 상품이었다. 한번 베어낸 뒤에는 새로 나무를 베기까지 최소한 7년의 시간이 걸렸다. 단기적인 수요만을 생각해서 나무를 심었다가는 판매할 때쯤에는 상황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았고 당장 들어오는 돈만 생각하고 나무를 베어냈다가 돈의 회전이 막히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그녀는 서류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영지 하나 운영하는데 뭐가 이렇게 고민할 게 많은지…….”

당장 사용해야 하는 돈을 버는 것과 미래를 위해 자산을 남겨두는 것, 두 가지를 조율하는 일은 늘 어려웠다. 그녀는 손을 뻗어 책상 위에 놓여있던 찻잔을 들었다. 차는 식은 지 오래되어 맛이 나빴다.

“론, 차를 다시 가져와.”

마르티안은 찻잔을 탁 내려놓으며 뒤에서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그는 키가 크고 보기 좋게 늘씬한 몸이었지만 제국인이 아님을 드러내는 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한때 해적질로 유명했던 이방민의 특징이었다.

론은 익숙하게 책상 위에 있는 다과용 식기들을 정리했다. 그녀가 새로운 서류를 끌어오며 말했다.

“차는 잠 깨기 좋은 것으로 해달라고 해. 천천히 마실 거니까 뜨거운 상태로 가져오고.”

“알겠습니다. 자작님.”

대답은 고분고분했지만 어조는 딱딱하다. 마르티안은 그가 평범한 하인처럼 구는 것을 보다가 픽 웃었다.

론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작가로 들어왔다. 피부색으로 인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쓰러져 있던 어린 론을 마르티안이 발견해서 자작가로 데려왔다. 물론 그 당시 마르티안이 뭔가 대단한 이유로 론을 데려온 건 아니었다. 그때는 그녀도 어렸으니까. 충동적인 동정심으로 론을 구한 것 뿐이었다.

하지만 마르티안의 어머니였던 선대 도안 자작은 론을 저택 내에서 거두기로 결정했고, 그때부터 그는 마르티안의 옆에서 자잘한 시중이나 심부름을 하며 컸다. 지금도 그는 마르티안의 전속 하인이었다.

물론 단순한 하인인 것만은 아니다. 론이 식기와 찻잔을 챙겨 나가려는 것을 보며 마르티안이 말했다.

“내가 말한 거는 제대로 하고 있어?”

“……하고 있습니다.”

“그럼 검사받고 가.”

그녀가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대며 턱짓을 했다. 어차피 다시 일할 거니까 잠깐은 쉬어도 되겠지. 원래 일이라는 건 중간중간 쉬어야 능률이 올라가는 법이었다. 론이 잠시 머뭇대자 그녀가 재촉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론은 들었던 것을 다시 내려놓고는 자신의 바지를 풀었다. 속옷이 있어야 할 곳으로 외설적인 가죽 구속구가 드러났다. 성기를 옥죄는 구속구는 겉이 끈으로 칭칭 감겨있어서 아주 갑갑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구속구째 손으로 움켜쥐었다. 갇힌 것이 조금 흥분한 모양인지 구속구 안은 빠듯하게 들어차 있었다.

“네 걸 세울 만한 일은 조금도 없었던 거 같은데……. 내 뒤에서 뭘 했어?”

“흐으, 아무것도, 안 했습, 흣…….”

그녀는 가죽 구속구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론의 몸이 움찔대며 그의 입에서 신음이 샜다. 마르티안은 이내 손에서 힘을 풀고 천천히 주물렀다. 부드러운 자극이 주어지자 론의 아래는 순식간에 반응했다.

론은 그녀의 개인 하인이었지만 동시에 그녀의 애첩이었다. 십 년을 이어진 관계로 인해 그는 이런 자극에 쉽게 반응하도록 길들여졌다. 론이 신음을 뱉었다. 흥분한 만큼 구속구로 인해 성기가 점점 더 죄어졌다. 흥분과 고통이 번갈아 오갔다.

순간, 마르티안은 그에게서 손을 뗐다.

“확인 다 했으니까 이제 그만 주방에 갔다 와. 네가 여기 온 게 이십 년째인데 차 심부름도 못하진 않겠지?”

그녀가 일하는 서재는 저택의 최상층이었고 차를 끓이는 주방은 일 층이다. 애매하게 발기한 상태로 오가기에는 여러모로 곤욕인 거리였지만 론은 고개를 숙이며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마르티안이 가볍게 웃었다.

“그래, 론. 적어도 서류 다섯 장을 처리하기 전까지는 돌아와.”

* * *

성별을 가리지 않고 첫째에게 우선적으로 작위 계승권이 주어지게 된 이후로, 도안 가문에서는 여자가 자작 자리를 이어받기 시작했다. 도안 자작가의 여자들은 늘 딸을 먼저 낳았기 때문에 작위는 언제나 첫째 딸에게 돌아갔다.

지금은 여자가 작위를 잇는 게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삼사 대만 위로 거슬러 올라가도 여자가 가문을 잇는다는 건 아주 드문 경우였다. 대부분의 귀족 가문들은 남자 후계가 있는 경우에는 위의 여자 형제들에게 강제로 작위 계승권을 포기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여자가 작위를 잇는다는 건 가문을 이을 남자가 없다는 상징이었고 부계 중심의 귀족가에서는 그런 가문들을 쉽게 우습게 여겼다.

도안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외부의 동정과 조롱을 오래 겪은 사람들이었다. 외부의 적이 너무 많아서 가문 내의 사람들은 아주 똘똘 뭉쳤다. 일하는 사람들은 대를 이어가며 가문에서 일했고 그만큼 자작가에 대한 자긍심과 충성도가 높았다.

주방장인 한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는 차를 받으러 온 론에게 들으라는 듯이 타박했다.

“차 끓이는 법이라도 배우면 좀 좋아. 나이는 한껏 먹어서 무엇 하나 괜찮은 재주가 없으니…….”

저택 내의 사람들은 론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고아 출신인 이방인은 자작과 어울리기엔 너무 신분이 비천했고 가문의 명예를 떨어트리기 딱 좋은 대상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마르티안의 애첩이라는 이유로 힘든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간단한 심부름을 제외하고는 그가 하는 일은 그저 마르티안의 곁에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한나는 찻주전자에 가득 차도록 차를 담았다. 조금만 흔들려도 출렁이며 넘칠 양이었지만 론은 아무 말 없이 그걸 받았다. 이 정도 심술은 이미 익숙했으니까.

그러나 주방에서 나서서 열 발자국도 채 가기 전에 그는 이것이 꽤 큰 문제임을 깨달았다. 발기한 것이 구속구에 억눌려서 걸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차는 그때마다 넘실댔다. 조금만 빨리 걸어도 몸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거나 혹은 힘이 훅 빠지거나 하는 탓이었다.

마르티안이 말한 것을 지키려면 빨리 걸어야 했지만 그걸 지키자고 찻물을 다 쏟을 순 없었다. 론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걸었다.

“늦었어, 론.”

마르티안이 들어오는 론에게 말했다. 그녀가 말한 기준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난 상태였다. 론은 그녀의 책상 한쪽에 찻잔과 찻주전자를 올려두고 빈 찻잔에 차를 채운 후 책상 근처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자작님.”

변명 하나 하지 않는 자세였다. 마르티안은 픽 웃고는 그가 가져온 차를 마셨다. 김이 올라오는 차는 맛이 진했다. 성실히 일한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보상.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론이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그녀가 줄 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보상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마르티안은 상대를 굴복시키고 학대하면서 흥분하는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말끔하게 꾸민 얼굴보다는 울고 일그러지고 엉망이 된 얼굴을 더 좋아했고, 상대가 예의 바르고 우아한 태도를 보이는 것보다는 그녀 앞에서 천박하게 다리를 벌리길 원했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자신이 작위를 가졌다는 걸 여러모로 다행스럽게 여겼다. 작위를 가진 귀족은 굳이 배우자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성향을 채우는 데 솔직한 편이었고, 또 그런 것들을 통해 기분을 푸는 경우가 많았다.

마르티안은 몸을 일으켜 의자를 뒤로 빼냈다.

“쓸모없게 굴었으니 오늘은 이 아래에 처박혀 있어. 옷 벗고 들어가.”

그녀는 론을 책상 아래에 두고 방치할 생각이었다. 그의 다리 사이를 발로 더듬고 성기를 짓밟으며 일을 하는 건 제법 즐거운 유희였다. 론은 옷을 모두 벗었지만 구속구를 푸는 건 허락받지 못했다. 그의 성기는 옥죄는 고통으로 인해 완전히 발기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흥분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론은 옷을 모두 벗으며 책상 위에 쌓인 서류를 힐끔 살폈다. 왼쪽에 쌓여있던 서류의 반이 오른쪽으로 넘어간 상태였지만 어찌 되었든 아직 반이나 남은 상황이었다. 적어도 반나절은 더 그녀가 이 서재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녀의 손짓에 따라 책상 아래에 처박혔다.

아침부터 시작된 서류작업은 저녁노을이 퍼질 때까지 이어졌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났는데도 론이 주방으로 내려오지 않아서 다른 하인이 식사를 챙기기 위해 올라왔다. 으깬 감자, 구운 고기와 야채 등이 차려졌다. 하인은 필요한 식기를 모두 내려놓고는 말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치우실 때 불러 주시면…….”

“아, 치우는 건 되었어. 그건 론을 시킬 테니까.”

그 말에 하인이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론이 그녀의 곁에서 없는 경우도 드물었지만 식사 시간에만 자리를 비우는 경우는 더 드물었으니까. 어쨌든 그건 아랫사람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하인은 별말 없이 물러났다. 방 안은 금세 고요해졌다.

마르티안은 함께 올라온 술을 맛보고는 구워진 고기에 손을 댔다. 고기는 몹시 부드러웠고 육즙이 풍부하게 흘러나와 혀에 감겼다. 그녀는 느긋하게 음식을 먹으면서 책상 아래 구겨져 있는 몸을 발로 눌렀다. 필사적으로 침묵하던 론에게서 신음이 가늘게 흘러나왔다.

“흐, 읍, 흐으……주인님.”

애원하는 소리를 들으며 마르티안은 픽 웃었다. 방금 들어왔던 하인은, 음식을 차리는 동안 이어진 고요가 얼마나 절박하게 유지된 고요였는지 모를 것이다. 그동안 마르티안이 집요하게 론의 구속구 부분을 발로 밟고 문질렀으니까. 그는 내내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마르티안은 고기를 씹으며 입을 열었다.

“왜 불러, 아까 전엔 잘 참더니 이젠 못 참겠어?”

“흐…… 읏, 읍, 주이, 흐윽, 주인님.”

‘주인님’이라는 소리를 곧잘 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정말 참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론은 답답하고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아주 절박한 때가 아니고서는 그녀를 늘 ‘자작님’이라고 불렀다. 헐떡이는 소리와 애원하는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즐겁게 했다.

“못, 흐으, 못 버틸 것, 흐읍, 흐윽, 주인님, 제발, 흐으…… 흡…….”

론은 애원했다. 책상 아래 처박혀서 다리를 벌린 채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밟히고 문질러지는 감각은 그를 흥분하게 만들었지만 아래를 터트릴 듯이 조이는 구속구로 인해 완전히 흥분할 수는 없었다. 흥분, 고통, 흥분. 오가는 감각이 너무 오래 이어져서 론은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졌다. 신음을 내지 않기 위해서는 숨을 참으며 버텨야 했다.

론은 노출당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타입이었다. 그렇기에 하인이 들어와 있는 내내 어떻게든 제 존재를 숨기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마르티안은 그가 가리는 것이 많고 수치에 약한 개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봐주거나 하진 않았다.

“늦은 벌이라고 했잖아. 애원한다고 봐주면 그게 어떻게 벌이야?”

론이 정말 필사적으로 버틴 이후에야 겨우 애원하는 성격임을 알면서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론의 애원을 거절했다. 그녀는 기쁠수록 가혹해지는 주인이었으니까. 마르티안은 발을 움직여 움찔거리는 구속구를 다시 꾹 눌렀다. 흐읍, 흐으. 론의 신음이 터지듯 이어졌다.

“일도 아직 안 끝났어. 버릇없게 굴기는…….”

그녀가 혀를 차고는 발로 론의 몸을 더듬었다. 흥분으로 딱딱해진 유두가 그녀의 발에 걸렸다. 그걸 짓누르듯 문질러대다가 발끝으로 툭툭 긁었다. 작게 바르작대는 소리가 난다. 신음은 거의 흐느낌이나 다름없었다. 구속구를 차지 않고 있었다면, 책상 아래는 론의 정액으로 흥건했을 게 뻔했다.

“주인, 님. 흐으, 흡, 제발…….”

그 순간, 서재의 문이 벌컥 열렸다. 놀란 론이 급하게 숨을 삼켰다.

마르티안은 갑자기 들이닥친 상대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구겼다. 상대는 그녀가 한때 개 취급을 하며 지냈던 파트너였다. 여러 번 저택에 데리고 와서 즐긴 탓에 아래에서 막지 않은 모양이었다. 남자는 여기까지 뛰어 올라왔는지 몇 번이나 숨을 몰아쉬었다.

“흐으, 허읍, 흐으…. 마르티안. 왜, 나를, 왜 피하는 겁니까? 갑자기 이렇게 버리는 게…….”

남자는 작위를 받을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귀족가 차남이었다. 인물은 나쁘지 않았지만 곧 결혼적령기를 넘을 나이였기 때문에 빨리 작위 있는 귀족 여자를 구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마르티안은 그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할 때에도 그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그에게 관계를 끝내자고 말한 이후로는 한 번도 그를 찾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미간을 구기며 몸을 일으켰다.

“너랑은 끝났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나는 납득할 수 없는…….”

“납득?”

그녀가 픽 웃는다. 어이없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누군가를 지배하고 학대하며 흥분하는 성벽은 제 짝이 있어야만 욕망을 채울 수 있었다. 학대받고 지배받으면서 흥분하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수도에서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꽤 큰 모임을 꾸리기도 한다지만 이런 외진 지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은 이곳의 가장 큰 창관인 달밤가에서 하룻밤 상대를 소개받았다. 남자는 마르티안이 그곳에서 소개받은 파트너 중 하나였다.

“무슨 납득을 못 해. 미행에, 뒷조사에, 그 정도로 날 따라다녔으면 알았을 텐데? 내가 그런 거 질색하는 걸.”

“그, 그건 자주 만나주질 않아서, 그래서 그런 겁니다. 그냥 그저……주인님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마르티안은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침대 위 파트너로 만나던 사이에서 상대를 보겠다고 뒷조사를 하고 미행하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변명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가볍게 혀를 찼다.

“주인님은 무슨 주인님이야. 네 취향대로 괴롭혀줄 상대가 필요한 것뿐이잖아? 더는 할 이야기 없으니까 그만 나가. 너와는 애초에 끝난 관계니까.”

“……하, 하지만 당신도! 당신도 좋아했잖아! 사람 괴롭히면서 좋아하고 즐겼으면서 왜, 이제 와서 내 탓만 있는 것처럼!”

남자의 얼굴이 감정을 참지 못하고 붉어졌다. 씩씩대는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보며 마르티안은 지겹다는 티를 냈다. 그녀가 책상에 기대 짜증어린 한숨을 내뱉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순간 그가 마르티안에게 달려들었다. 뻔하기는. 그녀는 몸을 슬쩍 돌려 피하고 그대로 남자의 뒷머리를 붙잡아 책상에 내리찍었다. 쾅 소리와 함께 비명이 아악 울려 퍼졌다. 그녀는 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로 몇 번 더 상대의 머리를 책상에 처박았다.

“아악!”

“시끄러워.”

마르티안은 쾅쾅 소리를 이어갔다. 조교나 훈육이 아닌 이런 손맛은 전혀 취향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친개는 패야 말을 듣는 법이었으니까.

곱고 흰 피부에 남는 매질 자국이 예뻐서 받아주었더니, 고운 피부만큼 지나치게 곱게 자란 모양이었다. 움직임이 둔한 주제에 달려들고 보는 그 멍청함도 멍청함이었지만 현실감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머리를 몇 번이나 부딪쳐 비틀대면서도 악을 쓰며 욕을 내뱉었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깟 년이 뭐라고! 기껏해야 시골구석에서 결혼도 못한 채 늙어가는, 아악!”

마르티안은 그대로 그의 다리 사이를 걷어찼다. 엎어진 남자는 비루한 꼴로 헐떡였다. 원래 별것도 아닌 것들이 입부터 나불대기 마련이다. 남자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로 되지 않을 허세를 부렸다.

“내,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

“네 주제에? 가만 안 있으면 뭘 어쩌려고?”

그녀는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작위 하나 없이 가문에 빌붙어 사는 주제면 현실을 알아야지. 내 지위가 네 아비와 동등한데 누가 누굴 가만 안 둬?”

그녀는 바로 상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문 앞까지 질질 끌고 갔다. 머리카락이 온통 뽑히는 고통 때문에 남자는 그녀의 손을 따라 허겁지겁 기어야 했다. 그녀가 손을 놓자마자 남자는 그대로 엎어져 머리를 더듬었다.

“당장 나가라고. 안 나가?”

그녀는 바로 상대의 옆구리와 허벅지를 걷어찼다. 돼지를 몰아내듯 발길질을 하자 상대가 악을 질렀다.

“악!! 하지, 억! 아파! 아프다고!”

“말로 했을 때 얌전히 나갔어야지. 빨리 나가.”

“아악! 그만, 흐악! 그만하라고!”

“몸 달아서 여기까지 온 주제에 뭘 그만해? 네 주제를 알아야지. 손맛도 떨어지는 개새끼가!”

“이, 이!! 창년이! 너는 달밤가의 창년이잖아! 다들 그렇게 뒤에서 부르는 걸…….”

마르티안이 그대로 상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들어 올리고는 그대로 뺨을 후려갈겼다. 남자가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잡은 머리채를 더럽다는 것처럼 털어냈다.

“내 앞에서, 창년? 정말 멍청한 놈이네. 내 명예를 훼손시키는 건 내 가문의 명예를 훼손한 것과 같아. 내 작위는 황제 폐하의 승인 하에 이루어진 거고. 넌 그런 것들이 우스운가 보지?”

“나, 나만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다들, 다들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말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 앞에서, 네가 말했다는 게 문제지. 타인의 가문을 폄하했으니 네 아비가 나서서 사과를 해야 할 거야.”

가문에 빌붙는 귀족들이 그러하듯 상대는 자신의 아비에게 잘 보이는 걸 몹시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아버지도 이곳 동부의 자작이고 그녀도 동부의 자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황당한 태도였다.

남자는 그렇게까지 해야겠냐고 소리를 질렀다가 이내 기가 죽어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비에게 이르지 말아달라는 애원이었다. 마르티안은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그를 발로 찼다.

“그런 눈치는 이런 일을 벌이기 전에 봤어야지.”

성별의 구분 없이 작위 계승이 이루어진 지 백 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상대가 여자라면 우습게 보는 이들이 아직도 많았다. 그건 그의 부모와 조부모에서부터 내려온 문화일 것이다.

그런 문화에서 자란 주제에 여자에게 지배받고 싶어 하는 게 모순적이었다. 아니 모순은 아니다. 이런 놈들은 ‘지배받는 것’이 결국 ‘자기가 원하는 대로 지배받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 바닥에는 그런 부류가 너무 많았다.

악악대는 몸뚱이를 다시 발로 밟으며 그녀가 말했다.

“이만 나가. 쓸데없는 변명은 네 아비에게 가서 하고.”

* * *

불청객의 가문에 정식으로 항의를 넣은 뒤 마르티안은 한동안 자숙했다. 일주일에 1번 이상 방문했던 달밤가에 3주째 발길을 끊은 것이다. 달밤가는 기본적으로는 창관이었지만 단순히 창녀와 남창을 팔며 장사하진 않았다.

달밤가의 관리자는 성적인 것에 관해서는, 법에 심각하게 저촉되지 않는 이상에야, 무엇이든 알선해주었다. 마르티안처럼 독특한 취향의 고객들을 서로 소개해주기도 했고, 곤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거나 혹은 그런 취향을 가진 이들을 위해 공간을 대여해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돈이 되면 뭐든지 하는 곳이었다.

“관리자를 족쳐놓든가 해야지.”

그녀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달밤가 관리자는 사람의 취향을 지나치게 잘 파악하는 남자였다. 그 능력을 바탕으로 달밤가는 동부의 도심에 커다란 건물 두 채를 사들였을 만큼 성장했다. 물론 그래 보았자 동부 촌구석의 창관에 불과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쪽에서 이 정도의 규모로 창관을 운영하는 곳은 오직 달밤가뿐이었다.

관리자는 마르티안의 취향에 대해서도 꿰고 있었다. 그래서 그 개차반인 놈을 소개한 것이다. 그는 적당히 잘 울고 겁먹을 줄 아는 개였으며 특히 피부가 희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그런 개들을 괴롭히며 몰아붙이는 것을 몹시 좋아했고, 흰 눈밭에 자국을 찍듯 그런 몸에 매질을 하는 걸 매우 즐겼다.

미행하거나 뒷조사하며 집착적으로 굴지 않았더라도 좀 더 오래 보았을 것이다. 물론 그와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르티안은 자신의 성향을 숨기거나 참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성향 때문에 배우자를 고르고 싶진 않았다. 침대에서 취향이었다고 그를 결혼상대로 고르는 건 너무 멍청한 일이었다.

“결혼은 제대로 내조해줄 사람으로 만나야지. 안 그래?”

마르티안은 론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말했다. 그는 입이 재갈로 막힌 채였고 이미 한참을 시달려 눈가가 퉁퉁 부어 있었다. 달밤가에 발을 끊은 동안 마르티안이 자신의 성향을 론에게만 퍼부은 탓이었다. 그의 유두에는 둥근 고리가 꿰어졌고 고리 사이로는 은사슬이 달렸다.

그녀가 은사슬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유두에 꿰여진 고리가 바로 당겨져서 론이 끅 하고 신음을 삼켰다.

“어디에 정신을 팔고 있는 거야? 대답도 안 하고.”

그제야 그가 재갈에 막힌 입으로 무언가 웅얼댄다. 전혀 들리지 않는 답에 마르티안이 몇 번 다시 사슬을 잡아당겼다. 흐으, 흐웁, 읍. 고리에 꿰인 살덩이가 늘어나며 당겨졌다. 그의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그녀는 그 눈가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사슬을 놓아주었다.

“결혼 상대는 내조도 할 줄 알고 지참금도 좀 들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도 순종적이면 더 좋을 거고…….”

그녀는 잠시 론을 보았다. 그는 수치나 가학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쏟아내는 가학을 잘 버티고 참았다. 때때로 목석같이 굴며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녀의 손에서 오랫동안 길든 개는 여러모로 편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주지 않아도 알았고, 그녀가 하는 행위에도 대부분 능숙하게 반응하곤 했으니까.

흐으, 흐아으. 론이 신음을 뱉으며 그녀의 허벅지에 뺨을 비빈다. 그가 물고 있는 재갈 안으로 끅끅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의 성기 한껏 발기한 상태였지만 아래로 두꺼운 고무밴드가 감겨있었다. 꽉 조여진 것들 때문에 사정이 어렵다. 론은 어제부터 계속 흥분했다 멈추기를 반복한 상황이었다.

가학이라도 주어지지 않으면 정신을 놓을 것만 같다. 그는 마르티안의 허벅지에 자신의 뺨과 이마를 몇 번이나 문질렀다. 온몸으로 하는 애원이자 애교였다. 그녀의 허벅지로 닿는 뺨이 뜨거웠다.

“너 정도로 길이 들어 있다면 더 좋고.”

마르티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바람이 철없다는 생각을 했다. 론 정도로 길이 든 적당한 귀족 남자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가 느긋하게 굴며 론의 머리카락만 쓰다듬자 그가 끙끙대며 재갈이 물린 입으로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자극하려 애쓴다. 그게 귀여워서 그녀는 론을 침대 위에 눕게 하고는 그의 성기를 손에 쥐었다.

“싸고 싶지?”

론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절박한 표정을 보면서 그녀는 손으로 그의 성기를 가볍게 후려쳤다. 흐으으, 신음과 함께 그의 몸이 대번 경직된다. 더는 견딜 수 없었어 그의 눈가로 물기가 한껏 들어찼다. 그 모습은 그 자체로 그녀의 흥분을 일으켰다.

“얌전히 있어. 내가 만족해야 너에게 기회가 있을 테니까.”

그녀가 론의 위로 올라타며 웃었다.

* * *

도안 영지를 비롯한 동부의 영지들은 지도상으로 제국의 동쪽 끝, 국경을 따라 존재했지만 일반적인 국경 지역처럼 관리를 받진 못했다. 동부 산맥이 천연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덕분이었다. 그쪽으로 지나다니는 건 오직 동물들뿐이니 중앙에서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국경지로 취급받는 건 산맥이 끝난 아래에 존재하는 영지들, 즉 동남부 영지들뿐이었다. 거기야말로 타국과 인접한 실질적인 국경의 시작이었으며 국경지가 가진 모든 장단점이 집약된 땅이었다. 중앙에서는 국경지를 관리하기 위해 해당 영지에 더 많은 사병들이 허락했고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동시에 중앙의 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자작님, 세반 영지에서 서안이 왔습니다.”

집사의 말에 마르티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세반은 동남부 국경지 중 제국이 직접 관리하는 제국령이었으니까.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해 영지를 관리하는 상황이니 굳이 주변 영지에 따로 서안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세반? 제국령인 곳에서 무슨 서안이 와?”

“황제 폐하께서 세반 영지를 세블로아드 공작가의 후계자에게 하사하신 모양입니다. 백작위와 함께요. 새롭게 백작이 되었고 또 이쪽 영지를 관리하게 되었으니, 동부 귀족들을 초대하는 만찬 자리를 마련하려는 모양입니다. 이건 따로 온 초대장입니다.”

초대장은 금박 무늬가 둘러져 있는 고급스러운 재질이었다. 마르티안이 그것을 받고는 휴이 세블로아드, 세반 백작. 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공작가의 후계자이면서 벌써 백작이라니. 그녀는 먼 세상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가볍게 감탄하고는 이내 한쪽으로 치우듯 내려놓았다. 귀족들 간의 교류는 여러모로 귀찮고 번거로웠다.

집사가 대번 잔소리를 했다.

“자작님. 이런 자리에 참여하시는 것도 자작님의 의무입니다. 동부 귀족으로서 교류하는 자리니까요. 그에 맞는 옷을 준비하셔서 자랑스러운 도안 자작가의 면모를…….”

“집사.”

마르티안이 한숨을 쉬었다. 집사의 태도를 보니 초대를 무시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참석해야 한다는 건 알겠으니까, 그에 맞는 옷은 전에 입었던 바지 정장으로 해.”

“안됩니다! 그 정장은 만든 지 벌써 십 년이 다 돼가는 옷이지 않습니까. 분명 그 자리에는 이쪽 귀족부터 공작가의 인맥들도 참여할 텐데요. 도안 자작가의 위신을 생각하시고 새로운 옷을…….”

“옷차림이야 좀 떨어지면 어때? 집사 말처럼 이쪽저쪽에서 다 참여하는 자리고, 나는 그냥 스쳐 가는 사람일 뿐이야. 영지에 쓸 예산도 빡빡한 상황이야. 왜 쓸데없는 데 돈을 써?”

그 말에 집사가 결의에 찬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확실한 재단사를 부르면 됩니다. 실력이 뛰어난 재단사를 불러서 옷을 맞추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영지에 쓸 예산도 빡빡하다니까?”

“아무리 빡빡해도 자작님의 위신과 관련된 거라면 써야지요. 그 만찬장에서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제가 책임지고 확실한 재단사를 섭외해 오겠습니다.”

그 말에 마르티안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 만찬장에서 돋보여야 할 이유가 뭐가 있다고.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일순 멈칫했다.

“집사, 내가 진짜 혹시나 싶어서 하는 말인데……. 설마 공작가 후계라는 그 백작하고 날 엮으려는 건 아니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제대로 차려입으시고 가시기만 한다면 분명 그 안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자작님일 겁니다.”

“……치매가 와도 이런 식으로 오면 곤란한데.”

“제 치매 덕에 자작님 결혼 상대를 찾을 수 있다면야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아시겠지만 도안 가문을 위해서라도 결혼은 꼭 하셔야 합니다. 그것도 자작님의 의무니까요.”

“잔소리를 해도 현실감각은 있어야지. 상대는 공작가의 장남이야. 애초에 약혼자가 있을 가능성이 크고 만약 없다고 해도 동부에서 결혼 상대를 찾을 리가 없다고.”

동부는 상대적으로 척박한 땅이었다. 이곳의 귀족들은 영지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사는 경우가 많았고 화려한 사교계의 삶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에 반해 세블로아드 공작가는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가문이다. 지금이야 황제 자리와 완전히 멀어진 방계가 되었지만 초대 공작은 당시 황제의 동생이었던 사람이었으니까. 황실의 핏줄이 흐르는 공작가는 제국과 역사를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흐름이 이어져 내려와서 세블로아드 공작가는 늘 황제의 충실한 보호자였다.

‘제국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가문이라니…….’

마르티안은 거기에 대단함을 느끼기보단 피곤함을 먼저 느꼈다. 이 작은 영지를 운영하는 것도 골머리를 썩어가며 일하는데 그 정도 규모의 가문을 운영하는 건 그보다 몇십 배는 더 신경 쓸 것들이 많을 테니까. 그녀는 집사에게 말했다.

“집사도 허황된 꿈은 그만 좀 꿔.”

“허황된 꿈이라니요. 여기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자 만찬까지 연다고 하잖습니까? 가능성이 있는 꿈입니다.”

“그거야 황제 폐하께서 작위를 내리고 영지를 주었으니 체면치레를 하는 거지. 두고 봐. 곧 관리인만 두고 수도로 올라갈 테니까.”

작위를 가진 귀족들은 가문에 이득이 될 만한 상대를 고르는 게 당연했으니까. 그가 동부의 가문에 크게 관심을 둘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마르티안은 칼같이 여지를 잘라내자 집사의 얼굴이 뚱하게 바뀐다. 마르티안은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녀의 부모님 때부터 도안 자작에 충성을 바친 늙은 집사는 가끔씩 이렇게 허무맹랑한 소리를 했다. 무엇보다도 집사는 그녀의 성 취향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저런 소리를 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내 취향 알잖아? 공작가의 장남이랑 잘못 엮었다가 무슨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녀와 함께 즐기는 파트너들은 그녀를 주인님이라고 부른다. 주인님. 그건 명확한 상하 관계가 있는 호칭이었다. 그녀는 그들의 주인이었고, 그랬기에 그들의 몸을 함부로 사용했으며, 가학을 일삼고, 폭군처럼 굴었다. 상대는 겁먹은 개처럼 벌벌 떨면서도 그녀가 하는 말을 따르기 위해 어떻게든 애썼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정말 그들의 주인인 것은 아니었다. 그건 침대 위의 역할놀이에 불과할 뿐이었으니까. 산자락 영지를 가지고 있는 게 전부인 일개 자작.

그녀는 실제의 자신이 가진 힘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평민이나 작위 없는 귀족들보다는 훨씬 우위에 있었지만 그녀가 가진 권력 자체는 그리 대단치 않았다.

그에 반해 세블로아드 공작가는 제국의 흐름을 이끄는 가문 중 하나였다. 신데렐라를 꿈꾸면서 얽히기에도 부담스러운 마당에, 짓밟고 때리면서 쾌감을 느끼는 자신의 성 취향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큰일 날 소리였다. 그녀가 책상을 손가락을 딱딱 치고 집사에게 말했다.

“설마하니 도안 가문을 먼지처럼 날리고 싶은 건 아니지?”

“제가 선대부터 모셔온 이 가문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알지. 아니까 하는 말이야. 다시는 그런 식겁할 소리 꺼내지 마. 입고갈 옷은 그 정장 바지로 하고.”

“그 옷은! 그 옷만은 안 됩니다. 십년이 다 되가는 정장 바지라니요. 이번만큼은 옷을 맞추시는 것으로…….”

“옷이야 구색만 갖추면 그만이잖아?”

“제 말이 그 뜻입니다. 구색을 맞추셔야 하니 새로 옷을 맞추시라는 겁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집요해? 내가 나 좋자고 돈을 아끼는 것도 아닌데? 집사가 자꾸 이러면 나도 내 멋대로 살 거야. 이대로 론의 애라도 낳아 줘?”

“자작님!

사색이 된 집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때마침 론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의 손에 들린 쟁반에는 다과가 곱게 담겨 있었다.

“아아, 드디어 휴식 시간이네.”

그녀는 다과를 노골적으로 반기며 분위기를 끊어버렸다. 집사가 탐탁지 않단 눈으로 론을 노려보았다. 가문 내 사람들 대부분이 론을 싫어했지만, 그중 가장 그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이 바로 집사였다.

눈빛에 가시가 달려있다면 론의 피부는 일찌감치 해어졌을 것이다. 그는 한참이나 론을 노려보다가 이내 획 고개를 돌려 마르티안에게 말했다.

“론을 언제까지 이렇게 쓰실 겁니까? 지금이야 자작님의 호의로 이렇게 산다지만 나중에 나이를 먹고 가문에서 나가야 할 때가 올 겁니다. 사지 멀쩡한 남자라면 응당 제 밥벌이할 정도는 해야지요.”

그의 말은 마르티안을 닦달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사실 론에게 하는 타박이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깔린 구박이 적나라했지만 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집사가 이런 식으로 구는 것도 십 년째였으니까. 그쯤 듣다 보면 뭐든 익숙해지는 법이었다.

집사는 론을 싫어했고, 론은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해졌다. 결국에는 버림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소리에도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을 정도로. 예민하게 다그치는 집사의 말에 결국 마르티안이 나섰다.

“론이 밥벌이를 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 내 앞에서 다리만 잘 벌리면 되는데.”

“다리, 다리를 벌리다니요. 자작님, 그런 식의 언행은 그만두시라고 제가 몇 번을…….”

“다리 벌린다는 게 어때서?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인데.”

그녀가 픽 웃고는 론의 팔을 잡아끌었다. 얼결에 소파에 주저앉은 론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마르티안이 나서서 그의 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집사가 경기라도 일으킬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제발, 자작님.”

마르티안은 론의 단추를 계속 풀러 내렸다. 그의 윗옷이 점점 벌어지며 유두를 꿰뚫은 고리와 그걸 잇는 가는 사슬이 드러났다. 집사는 더는 못 버티겠다는 얼굴로 몸을 일으키더니 문을 닫고 물러났다. 그녀는 픽 웃고는 론을 소파에 눕게 했다.

론은 얌전히 소파에 누운 채 마르티안을 올려보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충동적으로 론을 살렸지만 그렇다고 그를 행복하게 해주진 못했다. 길에서 떠도는 고아의 삶보다야 여기가 나았겠지만 이 집에는 그가 정붙일 곳이 없었다.

그녀는 론의 눈가를 살짝 매만지며 말했다.

“집사는 나를 미워하고 타박할 순 없어서 널 미워하는 거야. 네가 뭘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저는 괜찮습니다. 자작님.”

표정은 평소처럼 무뚝뚝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으니 상처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위로를 받은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건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좀 더 감정 표현에 능했다면 좀 더 그럴듯한 기분을 낼 수 있었을 텐데.

론은 달아올라 울 때조차도 숨을 죽이며 참는 게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것이 어떤 흥분 요소긴 했지만.

“재미없기는.”

살갑게 위로하는 때마저도 이런 반응이면 흥이 떨어지는 법이었다. 그는 귀엽게 구는 방법을 몰랐다. 원래 딱딱하고 메마른 사람은 눈치도 없는 법이다. 마르티안은 이리저리 치이는 론이 불쌍하다가도 그가 이런 식으로 굴면 그런 마음이 사라지곤 했다.

마르티안은 론의 뺨을 툭툭 두들겼다. 약간 힘이 들어간 손짓에 살 맞닿는 소리가 커진다. 영문을 모르고 몇 대를 맞던 그가 이내 이를 즈려 물었다. 더 세게 맞더라도 가만히 견디기 위해서였다.

론이 울면서 빌 정도가 되려면, 뺨이 퉁퉁 붓다 못 해서 입 안이 찢어질 정도가 되어야 했다. 아니 뺨을 맞는 수준에서는 애초에 울며 빌게 하는 게 불가능할 지도 몰랐다.

“조금, 귀찮네.”

그녀가 몸을 일으킨다. 제멋대로 자기 욕구를 들이대는 이들을 질색하긴 했지만 눈치 없이 목석같이 구는 것도 영 별로다. 분위기가 끊어지자 론이 머뭇대며 시선을 들었다. 마르티안이 바닥에 떨어진 론의 옷에 시선을 두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론, 일어나. 달밤가에 가야겠어.”

* * *

마르티안의 마차에서 내리자 달밤가의 관리자가 직접 반긴다. 반질반질한 얼굴에 고급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였다. 창관의 건물 층수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관리자의 얼굴은 더욱 맨들맨들해졌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마르티안 님.”

“누구 덕분이지.”

“아이구, 저희도 그분 때문에 요즘 얼마나 번잡한지……. 그런 성격인 줄 알았으면 감히 소개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저희가 얼마나 고심하여 마르티안 님에게 맞는 분을…….”

앓는 시늉을 하며 하는 소리엔 끊김이 없었다. 그는 사람의 성적 취향을 감별하는 눈과 매끄러운 혓바닥으로 먹고사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내용은 마르티안의 입장에선 영 못마땅한 내용뿐이다. 그녀가 손을 내저어 그만하라는 뜻을 내비쳤다.

“변명은 그만하고 할 일이나 해.”

“아, 그럼 방에서 기다리시지요. 제가 바로 괜찮은 분을 연결해서 들여보내겠습니다. 근데 음……. 저기 저자는 누굽니까?”

관리자가 힐끔 그녀의 뒤로 시선을 보낸다. 그녀 뒤에 서 있을 사람은 론뿐이다. 마르티안은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까닥거렸다.

“이리와.”

론이 애매한 간격을 두고 그녀 앞에 섰다. 이제까지 그녀는 마차에 론을 두고 내렸다. 달밤가에선 애첩이 필요없었으니까. 론이 이곳 안까지 동행할 이유가 없었다. 관리자가 위아래로 눈을 굴리며 론을 살피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오, 이 자가 그 애첩인가 보죠?”

그녀의 애첩이 이방인이라는 건 이쪽 사람들 사이에서 꽤 알려져 있었으니까. 관리자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의외로군요. 자작님의 취향과는 상당히 다른 거 같은데…….”

마르티안의 취향은 자국이 예쁘게 남는 흰 피부, 감정표현이 풍부하여 괴롭힐 맛이 좋은 남자였다. 적당한 애교까지 있어서 귀엽게 굴 줄 안다면 더욱 좋았고. 관리자는 그 취향을 감안하여 상대를 선별해 소개하곤 했다. 상대가 달라진다고 해도 그녀의 취향은 늘 한결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애첩이라고 딸려온 이방인은 그 취향과는 정반대다. 피부도 어두운색이었고 표정도 무뚝뚝했다. 마르티안은 관리자의 의문을 무시하고는 본론만 말했다.

“오늘은 얘도 같이 방에 들어갈 거야. 뭘 할 건 아니고 그냥 보는 용도로.”

“오, 세상에 정말입니까? 매번 일대일 관계만 고집하시더니 이렇게 애첩을 다 데려오시고……. 원래 보는 사람이 있으면 더 자극적인 법이지요.”

이곳에서 마르티안은 정말 잘나가는 ‘주인님’이었다. 달밤가 손님 중 많은 이들이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들르는 경우가 많았고 한번이라도 그녀의 방에 들어가고자 여러모로 애썼다. 소개를 해달라면서 관리자에 뒷돈을 찔러주는 이들도 상당했다.

그녀가 여러 명의 개를 한 번에 쓰게 된다면 그만큼 관리자도 뒷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된다. 관리자는 한껏 웃으며 말했다.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일단 웃는 게 버릇이었다.

“오늘 마르티안 님 상대는 아주 운이 좋겠군요. 이런 적은 처음이시잖아요? 오늘 좀 해보시고 괜찮다 싶으면 제게도 언질 주시죠. 그런 쪽으로 제대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마르티안 님의 요구라면 뭐든 가능하니까요. 세 명이든 네 명이든…….”

손바닥까지 비비며 능글대는 꼴에 마르티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관리자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지만 경박했고 돈을 너무 밝혔다. 기껏해야 관전하는 애첩 하나를 두겠다는데,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는 속셈이 뻔했다.

“관계는 둘이서 하는 거야. 셋이서 하는 거 아니고. 괜한 소문 돌게 해서 난교 벌이는 개새끼들 들러붙게 하지 마. 그랬다가는 관리자 불알부터 뜯어버릴 거니까.”

“무슨 그런 무서운 말씀을……. 아윽! 마, 마르티,안, 악! 아악!”

마르티안이 그의 불알을 터트릴 것처럼 움켜쥐자 그가 새우처럼 등을 굽히고는 비명을 질렀다.

“악! 으아, 아! 제발, 놓, 놓아주…….”

“빈말하는 거 같아? 창관이 좀 커졌다고 건방 떨지 말아야지. 괜히 쓸데없이 욕심내다가 불알 없이 다니지 말고 일이나 제대로 해.”

그녀가 손을 놓자 관리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바닥에 엎어졌다. 잡아 뜯을 것처럼 당겼으니 당장 제대로 걷긴 힘들 것이다. 마르티안은 엎어져서 끙끙대는 관리자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수도 없이 오가던 곳이니 자작가 저택만큼이나 익숙했다.

그녀 몫으로 내준 방에 들어가서 씻고 기다리고 있으면 정신 차린 관리자가 그녀의 취향에 맞는 상대를 보낼 것이다. 익숙한 길을 걷다가 그녀가 슬쩍 뒤를 돌아본다. 론이 그녀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오늘 제대로 봐. 나중에 물어볼 테니까.”

“……알겠, 습니다.”

머뭇대는 답이 뒤늦게 울린다. 감정 표현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은 평소와 비슷한 무표정이었지만. 그의 태도는 미묘하게 달랐다. 긴장하고 당황한 게 분명했다. 여태까지는 이렇게 적나라하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보게 한 적이 없었으니까.

마르티안은 내키는 대로 상대를 고르는 편이었고 저택에도 파트너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껏 둘 이상의 상대를 한꺼번에 침대에 올리지는 않았다.

‘본인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할 텐데…….’

마르티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걸었다. 아무리 자신의 취향대로 길렀다고 한들, 살갑지 않고 애교 하나 제대로 떨 줄 모르는 애첩은 사랑받기 어려운 법이었으니까.

달밤가의 방은 자작가의 침실만큼이나 익숙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오던 곳이었으니까. 자숙 아닌 자숙을 하겠다며 한참 오지 않았더니 뭔가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묘하게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며 침대로 걸어갔다.

벗은 옷들이 툭툭 떨어졌다. 침대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벌거벗은 상태였다. 잘 개어진 가운이 침대 위에 놓여있다. 그녀는 그 가운을 몸 위로 둘러 입었다.

“론.”

고개를 돌리자 그녀를 뒤따르던 론이 멈칫 멈췄다. 손에는 마르티안이 허물처럼 벗어놓은 옷들이 하나하나 들려있다. 여기에까지 와서도 하인 역할이나 하고 있는 론을 보며 그녀가 혀를 짧게 찼다.

“오늘 너는 여기 없는 사람이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벽에 붙어 있어.”

침대에 누워 있던 마르티안이 지루함을 느낄 찰나, 누군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보이는 건 흰 피부와 탄력 있는 몸매였다. 그다음에는 화려하고 짙은 금발과 비슷한 색의 음모였다. 마지막은 얼굴의 반을 가린 안대. 안대 아래로는 붕대가 꼼꼼히 둘러있어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보지 못하는 남자는 방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움직이질 못했다. 마르티안은 남자를 보다가 짧게 중얼댔다.

“관리자 이 새끼가 일부러 이러나.”

달밤가에 오는 귀족들 중에는 자신의 성향을 숨긴 채 즐기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이곳에서는 그 성향을 충족시킬 창녀나 남창을 따로 준비했다. 그건 성향에 맞는 사람을 소개받으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안대와 붕대로 얼굴의 반을 가린 남자는 분명 귀족이었다. 잘 관리된 몸부터 가만히 서 있는데도 바르게 잡힌 자세가 그걸 증명한다.

‘달밤가의 창녀에게 적당히 짓밟히려고 온 거겠지.’

그런 상대가 왜 마르티안의 방으로 안내된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마르티안은 몸을 일으켜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개목걸이에 ‘휴’라는 단어가 적힌 메달이 달랑인다. 그녀는 매끄럽게 관리된 남자의 몸을 훑어보다가 옅은 음모 아래에 늘어져 있는 것을 툭 건드렸다. 남자는 그것을 어떤 신호라고 생각했는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휴예요, 주인님.”

마르티안은 잠시 고민했다. 방을 잘못 찾은 거 같다며 내보내면 끝날 일이었지만 남자의 외양이 지나치게 취향이었다. 이대로 내보내기에는 아깝다. 달밤가의 관리자가 침이나 흘리라며 일부러 들여보냈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녀의 고민을 끊어낸 건 남자의 애원이었다.

“아래 흐읏, 섰어요. 주인님.”

방을 잘못 들어왔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인지, 남자는 마르티안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바닥에 주저앉아 다리를 벌렸다. 벌어진 다리로 성기와 고환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여기요. 흐으, 흡, 짓밟아주세요.”

그가 반쯤 발기한 성기를 더듬으며 말한다. 그의 아래는 천박한 말을 지껄이면서 점점 더 힘을 받았다.

‘밟히면서 흥분하나 보네?’

그건 마르티안의 입장에서는 제법 깜찍한 유혹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성기를 손에 받쳐 들고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애원하는 모양은 천박하고 야하면서도 무지하고 멍청해 보였다.

마르티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뱉었다.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음식을 두고 배고픔을 인내하는 기분이다. 그녀는 애써 이성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냥 내보내야 하는 게 맞긴 맞는데.’

성향이 피학에 반응할 뿐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었다. 그건 주인님이라고 하면서 그녀 앞에서 애교를 피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자신의 욕망을 풀어주길 당연하게 바라는 것. 마르티안은 그런 개의 습성을 몹시 싫어했고 그래서 좀 더 가혹한 면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창녀를 사서 욕망을 해소하려는 이들은 당연히 그런 습성에 가득 차 있기 마련이었다. 마르티안은 이 상대가 자신과 영 맞지 않을 것을 알았다.

“주인님, 빨리요.”

남자는 다시 재촉했다. 귀족이라 여길 수 없을 만큼 천박한 꼴을 하고도,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뤄지지 않자 당연하게 채근하는 것이다. 참을성 없고 제 욕구를 우선하는 개들은 다 그런 식이었다.

문제는 그 태도마저도 그녀를 흥분시킨다는 점이었다. 눈을 완전히 가리고 들어온 남자는 폭력과 가학에 몹시 취약한 상태였다. 그녀가 몰아붙이기 시작하면, 그는 여지없이 끌려올 것이다. 예상치 못한 행위에 겁을 먹고 울며 매달리는 꼴을 상상하자 아래가 움찔 떨렸다.

마르티안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남자의 뺨을 매만졌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살결이었다.

“주인님.”

그는 그렇게 말하며 흥분으로 살짝 떨었다. 그 태도에는 두려움이나 긴장 따위는 조금도 없다. 그저 기대감뿐이었다. 창녀를 사서 하는 플레이란 원하는 것을 당연히 얻는 그런 행위였을 테니까.

피학 성향의 귀족을 상대하는 창녀들은 몹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대부분은 귀족들이 스스로 천박한 소리를 지껄이며 흥분하고, 그 천박한 애원을 조금 늦게 응해주며 말로 더 수치를 주는 정도였다. 이 개는 진짜로 학대해본 상대는 아무도 없다. 눈밭처럼 흰 살결에 멍이 들 정도로 후려친 이가 아직 아무도 없는 것이다.

마르티안은 가학 욕구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밟아주지도 않았는데 왜 좆부터 세워? 뭘 했다고. 그냥 상상만으로도 알아서 싸는 거 아냐?”

그 말에 남자는 움찔 떨었다. 매만지는 뺨이 점차 뜨거워진다. 수치에 반응해서 흥분한 것이다. 마르티안은 그것을 보며 입술을 핥았다. 남자가 그녀 쪽으로 더 바짝 다가왔다.

“아니, 흐읍, 아니에요. 주인님. 빨리 흐으, 흐응, 밟아주세요. 밟혀서 싸고 싶어요.”

성기와 고환을 짓밟는 정도야 수도 없이 해본 일이었지만, 마르티안은 상대의 요구대로 들어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 공간에서 주인은 자신이었으니까. 주인님이라 부르면서도 제멋대로 재촉하는 개는 영 버릇이 없었다.

마르티안은 그대로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갑작스러운 손찌검에 놀라서 남자는 신음조차 뱉지 못했다.

“개 주제에 요구나 하려 들고……. 어디서 이따위 버릇을 들였어?”

마르티안은 가차 없이 다시 뺨을 후려쳤다. 철썩 하는 소리가 다시 크게 났다.

뺨을 치는 건 가장 모욕적인 손찌검이었다. 창관에서는 손님이 직접 원한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이런 매질은 절대로 하지 않는 법이다. 귀족을 잘못 모욕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죽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니 아마도, 이건 남자가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상황일 것이다.

당황으로 굳은 남자를 보며 마르티안은 희열 같은 만족을 느꼈다. 그녀가 남자의 허벅지 안쪽을 툭 차며 말을 뱉었다.

“감사 인사 해야지, 멍청하기까지 한 건 아니겠지?”

“흐으, 이, 이런 건…….”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마르티안이 남자의 머리채를 움켜쥐어 흔들었다. 처음 겪는 가학에 당황해서 몰입이 깨지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녀의 개가 되겠다고 다가오는 이들 중에도 그런 경우는 넘쳐났다. 덕분에 마르티안은 그런 부류를 다루는 법도 알고 있었다.

초반에만 강압적으로 이끌면 금세 흥분해서 따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러니 충격은 더 큰 충격으로, 반항은 강압으로 삼키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지금 상대는 안대와 붕대로 시야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몸이었다.

마르티안은 남자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흔들었다. ‘개새끼가 발정이 나서 주인도 못 알아본다’며 퍼붓자 놀란 신음이 남자의 잇새에서 흘렀다.

“지, 지금, 흐으, 흐읍, 무슨…….”

남자가 뭔가 말하려 들었을 때, 마르티안이 남자의 성기를 구둣발로 짓눌렀다. 천박하게 요구했던 내용 그대로.

“으, 흐으……흐아!”

이런 식으로 자신을 숨기며 즐기는 이들이 그렇듯 남자는 쾌감에 약했다. 방금 당한 모욕과 충격은 흥분으로 인해 순식간에 흐려졌다. 얼굴 가득 남아있는 건 흥분으로 인한 홍조뿐이었다.

“개 주제에 왜 사람 노릇을 하려 들어. 개답게 굴면 얼마든지 예뻐해 줄 텐데.”

“흐윽, 으, 아아…… 아프, 흑, 부드, 럽, 흐아아!”

마르티안이 구둣발로 그의 성기를 짓밟자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그의 애원을 무시하며 발을 놀렸다. 아프니 어쩌니 하지만 그의 성기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퍼억, 하고 거칠게 내려찍자 남자가 힉 하고 신음을 뱉었다.

흥분과 고통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신음 또한 그녀의 취향이다. 촉각, 시각, 청각이 모두 즐거웠다.

“아프기는 뭐가 아파? 네 좆은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녀가 구두코로 남자의 고환 한쪽을 꾹 눌렀다. 잔뜩 긴장한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한껏 짓밟히고 비벼진 성기 거죽은 해어진 것처럼 붉었다.

흐아, 하아, 하으앙, 흐으, 흐읍. 남자가 허리까지 떨며 헐떡댈 즈음에서야 마르티안은 남자의 머리카락을 쥐고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두드러진 목젖이 야하다. 헐떡이며 숨을 삼킬 때마다 예쁘게도 움직였다. 짓눌러서 숨을 조이고 싶을 만큼.

‘지금 그런 걸 할 때가 아니지.’

마르티안이 욕망을 참으며 남자의 뺨에 손을 댔다. 살짝 대는 감각에도 그의 몸은 흠칫하며 굳었다. 그건 본능적인 거부감이다. 흥분해서 벌벌 떨어대는 주제에 모욕감을 느낄 자존심만은 아직 남은 모양이었다. 마르티안은 가볍게 두드리는 것으로 그 자존심을 확인하고는 망설임 없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면서도 사타구니를 짓밟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고통을 쾌감으로 인식하는 몸이었다. 뺨을 맞는 것만 쾌감에서 벗어날 리가 없다. 그저 거부감이 있는 것뿐. 마르티안은 그 거부감을 통째로 부숴버릴 작정이다. 자극당해 발기한 채로 맞다 보면 결국 맞는 행동 자체를 자극과 흥분으로 느낄 테니까.

“감사하다고 해야지.”

“하으, 흐으응, 하읍.”

마르티안이 구두 앞부분으로 고환을 누르며 회음부를 긁어내렸다. 남자의 허리가 벌벌 떨렸다. 그녀는 다시 한번 뺨을 내리쳤다. 남자는 더 이상 뺨을 맞는다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지 못했다. 그는 짓밟히는 감각으로 인해 정신없이 헐떡였다.

마르티안은 공을 들여 남자의 사타구니를 짓밟았다. 어디를 어떻게 밟아야 다양한 고통과 쾌감을 선사하는지 아는 능숙한 발놀림이다. 그녀의 파트너들은 쾌감과 고통을 능숙하게 엮어내는 그녀의 지배를,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기껍게 받아들이곤 했다.

남자가 흐느끼며 몸을 흔들었을 때였다. 그녀는 멈췄다. 짓밟던 발도, 뺨을 내리치던 손도 더 이상 그에게 닿지 않았다.

“흐으……읏…….”

사정 직전, 고통스럽게 차오른 흥분에 못 이겨 남자는 신음하며 제 손을 아래로 뻗었다. 십여 차례 맞은 뺨이 얼얼하며 뜨거웠지만 이제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당장 쥐고 흔들어서 가고 싶다. 남자가 제 것을 쥐려는 순간 마르티안은 구두 뒷굽으로 남자의 허벅지를 크게 내리찍었다.

“아악!

고통에 놀란 몸이 뒤틀린다. 잔뜩 달아올랐던 흥분도 일순 멈추었다.

“어딜 만져. 대가리에 막대라도 박아줘? 아니면 끈으로 아래 묶을까?”

“흐으, 흐으아, 흐윽…….”

“이게 네 거 같아? 그따위로 굴 거면 주인님이라는 소리는 왜 했어?”

그녀의 손이 남자의 것을 움켜쥔다. 상대는 대답을 찾지 못하고 머뭇댔다. 침묵이 길어지자, 마르티안은 당연하다는 듯 그의 뺨을 내리쳤다.

“묻잖아, 네 거냐고.”

“흡, 흐으……. 아니요. 흐읍, 아니에요.”

“근데 발정하면 멋대로 싸려고 들어?”

성기 거죽을 쭉 뒤로 밀며 그녀가 묻는다. 남자가 대답을 머뭇대자 마르티안은 그의 귀두를 손끝으로 짓이겼다. 하으, 아윽, 흐윽, 아아! 비명 같은 신음을 뱉어내면서도 발기한 건 죽질 않는다. 스스로 다리를 벌린 채 허벅지를 떨고 있는 꼴이, 마치 그것이 요도구든 뭐든 쑤셔도 괜찮다는 것처럼 보여서 자극적이었다.

“여기 쑤시면서 자위하면 예쁘겠다.”

그녀가 귀두 끝을 매만지며 말하자 남자의 것이 더욱 딱딱해졌다. 그녀의 말을 따라 상상하며 흥분한 것이다. 수치심을 같이 느낀 것인지 남자는 귀까지 붉어졌다. 마르티안은 소리 내어 웃었다.

“달밤가의 남창도 너보다는 더 귀족 같겠는데? 이대로 몸이나 팔며 사는 건 어때?”

지나친 모욕에 남자가 고개를 치켜든다. 반사적인 행동은 본능적인 것에 가까운 태도였을 뿐 그렇다고 거기에 대단한 반항의 기색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귀족으로 나고 자란 자라면 그런 모욕에 반발감이 드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마르티안은 그걸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왜? 내 말이 거슬려? 지금은 개처럼 굴고 싶지 않은가 보지?”

“아……. 그게 아니라.”

마르티안은 그에게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남자가 놀라 그녀 쪽으로 더 다가왔다.

“주, 주인님?”

“누가 네 주인이야? 나는 이따위로 구는 개는 필요 없으니까 다른 사람 불러 줄게. 네가 하는 말을 잘 들어줄 주인으로.”

그녀가 말하는 다른 주인이란 곧 달밤가의 창녀였다. 눈앞의 남자가 원래 만나려 했던 누군가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런 식의 행위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예상 가능한 학대란 사실상 자위행위에 불과했으니까. 피학을 즐기는 이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닌 법이었다.

역시나, 남자는 그녀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급하게 대답했다.

“시, 싫어요. 다른 사람 말고 주인님이 좋아요.”

싫다는 소리를 바로 내뱉는 것을 보며 마르티안은 가만히 웃었다. 창관에 드나들며 제 만족만 추구하던 이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상대의 말을 거부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니 이제는, 스스로 굴종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였다.

남자는 자신의 애원에 대한 답이 없자 급한 목소리로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눈이 가려 보이질 않으니 손으로 앞을 더듬거리며 기어 다니는 게 전부다. 마르티안은 그 꼴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휴.”

“네, 흐읍, 네. 주인님.”

그가 기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마르티안은 그에게 다가갔다. 터질 듯 발기한 것이 붉고 흉흉했다. 곧 싸게 생겼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아윽! 폭력적인 손길에 그가 헐떡댄다. 마르티안은 그대로 상대를 질질 끌어 소파로 움직였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당연하다는 것처럼 다리를 벌렸다. 남자의 얼굴이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에 뭉개졌다.

“주인보다 먼저 싸는 개는 필요 없어. 쓸모가 있어야 예뻐해 주지, 안 그래?”

남자가 혀로 마르티안의 성기를 더듬어 핥기 시작했다. 질척이는 소리가 제법 울렸지만 그는 이런 류의 봉사는 전혀 해보지 못한 모양인지 전혀 재주가 없었다. 시각적 자극이 전부인 행위에 마르티안이 발을 들어 남자의 어깨에 놓고는 그대로 뒤로 밀어버렸다.

“발정이나 날 줄 알지 혀도 쓸 줄 모르는 무능한 개새끼였네. 이따위로 해선 넌 밤새 못 싸.”

남자가 무너진 자세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처음 당하는 취급일 것이다. 애초에 사정을 이렇게나 제어당한 적이 있긴 할까.

“흐윽, 흐으……. 모, 못 참겠어요. 제발, 주이, 흐읏, 주인님.”

남자가 흐느끼듯이 애원한다. 마르티안은 만족스레 웃었다.

“싸고 싶으면, 아까 잊은 감사 인사부터 제대로 해.”

감사 인사가 무엇인지 상기시키려는 듯 그녀가 남자의 뺨에 손을 댄다. 벌겋게 변한 뺨은 이미 열로 뜨거웠다. 내일이면 멍이 내려앉을 것이다. 가학의 흔적은 언제나처럼 그녀를 흥분시켰다. 더욱 가혹하게 몰아붙이게끔 만든다. 그녀가 다시 재촉했다.

“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해. 건방진 개새끼를 때려주어서 감사하다고.”

남자의 입술이 머뭇댄다. 마르티안은 개의 고집을 보며 픽 웃었다. 지금의 행위에 더없이 흥분하고 있다는 건 누가 보아도 확실했으니까. 단지 귀족가의 자존심이 그를 막고 있을 뿐이다. 마르티안은 그를 위해 조금 더 가혹해지기로 했다. 그녀의 손이 그의 목을 움켜쥔다. 목젖 부근을 꾹 짓누르는 손이 능숙하다. 남자의 숨이 가파르게 밭아졌다.

“주인을 화나게 하면 너만 괴로운 법이야.”

“흐윽……읏…….”

“자, 말해야지.”

강요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주지시킨다. 정신적으로나마 도망칠 구석을 만들어 준 것이다. 강요당해서 숨이 막혀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했다고. 숨이 몰린 남자의 얼굴이 붉어진다. 벌거벗은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남자는 숨을 몇 번이나 끅끅대며 삼키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건방, 진 끅, 개새끼를 흐으, 끄, 읍, 때려 주셔서 감사, 끅, 감사합니다.”

그녀가 피식 웃으며 손을 풀어낸다. 그 순간 남자의 성기로 정액이 튀어 올랐다. 거한 사정이었다.

* * *

마르티안은 휴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밤이었지만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질색이었으니까. 그녀는 원래 자신의 취향을 숨기려 드는 상대와는 만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보통 자신의 밑바닥을 보인 경험이 드물었고 그래서 처음 경험하게 해준 상대를 놓고 흔한 착각을 하기 마련이었다.

마르티안이 운명적으로 만난 주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 착각은 곧 집착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그녀가 작위를 가지고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도안 자작가가 나름대로 오랜 전통을 가진 가문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누군가와 반강제로 결혼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상대를 위한 ‘주인님’ 역할을 하면서.

마르티안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지만 그렇다고 욕망으로 인해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질색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하룻밤을 즐기는 것에 만족했다. 흰 피부를 내리치며 상대를 울게 만드는 건 그 순간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고, 그보다 덜 취향이긴 했지만 그녀의 아래에서 울 개들은 많았으니까.

달밤가에서 늦게 돌아온 탓에 마르티안은 아침 식사 시간을 미뤘다. 그래도 마냥 쉴 수는 없는 법이라 두 번째 깨었을 때는 론을 불렀다. 오늘 일정을 되새기며 침대 맡에 등을 기대고 앉자 론이 젖은 천을 가져와 마르티안의 얼굴을 닦아내기 시작한다.

익숙하고 능숙한 손길은 더없이 편했다. 목덜미와 귀 뒤까지, 가벼운 마사지와 함께 이어지는 시중을 받으며 그녀가 나른한 신음을 뱉어낸다. 그가 그녀의 쇄골 아래를 가볍게 마사지하며 닦아내었을 때였다. 그녀가 물었다.

“어제는 어땠어? 보고 느낀 바가 있었어?”

닦아내던 손이 멈췄다. 마르티안은 이어 물었다.

“내가 왜 거길 데려간 건지는 이해했고?”

“……네.”

대답은 그게 끝이었다. 개의 표정이 평소처럼 무뚝뚝하고 태도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마르티안 미간을 구겼다. 건방진 개를 순종적이게 만드는 건 쉬운데 무뚝뚝한 개를 애교 있고 살갑게 만드는 건 영 어렵다.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번거로웠다.

전자는 원래 있던 성향을 자극하면 그만인 일이지만 후자는 원래 성격을 바꾸려 드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마르티안은 그것이 짜증스러웠다.

“아니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 같은데?”

그 말에 론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것처럼 머뭇댔지만 이내 얌전히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자작님.”

“뭘?”

“제가 자작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내가 너에게 무슨 기대를 했는데?”

마르티안은 침대 가에 걸터앉아 그녀의 발을 론의 사타구니 사이에 올렸다. 발에 무게를 실어 누르자 론의 몸이 굳는다. 그녀가 몸을 숙여 론의 턱을 움켜쥐었다.

“론, 네 역할이 뭔지 몰라?”

“자작님의…… 애첩입니다.”

“그럼 주제답게 굴어야지.”

주제를 알았다면 적어도 꼬리를 흔드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게 맞았다, 아니면 ‘주인님’이라고 부르던가. 어제 그녀가 보여준 것들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면서도 또 똑같이 군다는 건 고집이자 반항이었다.

“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구는 게 네 주제잖아.”

마르티안이 그런 것들을 얼마나 질색하는지 알면서도 하는 반항, 마르티안은 자신의 개를 내려 보다가 손을 움직여 론의 입을 벌렸다. 저항 없이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고 혓바닥을 쥐고 비튼다. 그녀의 발이 론의 사타구니 사이를 짓밟았다.

“즈인, 흐으…….”

신음하는 몸은 가혹한 발길질에도 헐떡대며 버텼다. 가학을 즐기지 못하는 몸이니 그건 그냥 고통을 참는 것에 불과했다. 길든 몸은 그녀가 원하는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이나 애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견디는 것뿐이었다.

마르티안은 그게 몹시 짜증스러웠다, 어제 본 상대는 건방지고 자기중심적이었으나 그래도 감정을 숨기려 들지는 않았다. 주인이라고 부르며 예쁨 받으려고 애썼으니까. 초보나 다름없던 개도 개답게 굴 줄 알았는데 그녀가 오래 가르친 개는 전혀 기대에 미치질 못하고 있었다.

마르티안은 손가락을 론의 목 안쪽까지 밀어 넣었다. 구역질하듯이 목울대가 울렁인다. 자꾸 뒤로 빠지려는 론의 머리를 그녀가 다른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막았다.

“내가 너를 하인으로 쓰긴 하지.”

쑤시듯 움직이는 손가락에 목구멍이 반사적으로 조여든다. 괴로움에 컥컥하는 소리가 울렸다. 마르티안은 제 손가락을 뒤로 물렸다가 목 안쪽까지 쑤셔 넣는 걸 반복했다.

“그렇다고 네가 진짜 하인은 아니잖아. 네 역할은 다리를 벌리는 애첩이니까.”

“흐, 컥…….”

괴로운 숨소리가 번들거리는 침과 함께 떨어진다. 동시에 뭉개진 말 역시 새어 나왔다. 거의 이해하기 힘든 발음이었으나 할 말이라고는 뻔하다. 잘못했다는 소리였다.

“론, 다리를 벌리는 주제면 주제답게 굴어.”

붉어졌던 눈가에서 기어코 눈물이 흐른다. 목 안을 들쑤시고 있으니 나오는 생리적인 눈물인지, 마르티안의 말에 상처를 받아 나온 눈물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그 꼴이 불쌍하고 처연하긴 했다.

평소 같았다면 그 모습이 그녀를 흥분시켰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목구멍을 괴롭히던 손을 물렸다. 론이 몸을 구부리며 잔기침을 토한다. 헛구역질을 삼키느라 헐떡이는 숨이 이어졌다.

툭, 마르티안의 발이 론의 무릎을 치자 그가 비틀거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부드러운 수건에 물에 적시고 마르티안의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제 침으로 더러워진 손을 닦아내기 위해서였다. 자꾸 뱉어지는 기침 때문에 론은 그것을 삼키느라 애써야 했다.

마르티안이 그의 손에서 수건을 뺏고는 직접 손을 닦아냈다. 그녀가 말을 뱉었다.

“치우는 것은 다른 하인을 부르고 너는 그만 나가.”

마르티안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론을 부르지 않았다. 애첩이라는 지위 하에 주어졌던 자리들이 사라지자 론은 그저 하인일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인도 아니었다. 그는 담당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마르티안의 수족 역할에서 밀려나자 그저 남아도는 잉여 인력에 불과했다.

결국 그에게 오는 건 하인들의 시중이었다. 식료품 포대들을 들어 옮기고 하인들이 쓰는 더러운 작업복들을 빨았다. 점심시간을 맞추지 못해 음식을 챙겨 먹지도 못한 것이 벌써 사흘째였다.

저녁은 빈약한 크기의 찐 감자 하나와 딱딱한 빵 반쪽이다. 마르티안의 곁에서 시중을 들으며 먹었던 음식과는 천지 차이였다. 잘 씹히지도 않는 것들을 침으로 적셔 간신히 씹고 넘겨도 배고픔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온몸이 녹초가 된 상태로 고파지는 배는 괴롭기 그지없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자작님을 믿고 방만하게 살더니, 이대로 쫓겨나면 몸 파는 것밖에 더하겠어.”

마르티안이 론을 방치한 채 나흘이 지나자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그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론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 일했다. 갖은소리를 듣는다고 한들 길거리로 내쫓기는 것보다야 이게 훨씬 나았으니까. 말로 하는 타박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건 마음이었다. 눈을 감으면 마르티안이 달밤가에 데리고 갔던 그날밤의 일이 떠올랐고 그러고 나면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그 밤은 그를 교육시키기 위해 만든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마르티안이 론을 의식하며 그 자리를 교육의 자리로 만들었다면, 론은 수치스러워할망정 배우고 따라 하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는 마르티안이 새로운 상대에게 빠져든 시간에 불과했다. 그녀는 적나라하게 상대를 마음에 들어 했고,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남자에게 몰입했다.

흐느낄 때까지 몰아붙이며 흰 엉덩이를 매질하고는,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그의 등에 입을 맞췄다. 그 자리는 새로운 남자를 길들이는 자리이자, 그녀에게 론은 별것 아닌 존재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자리였다.

그건 어떤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론은 그녀의 곁에 오래 있었다. 수많은 ‘개’들이 그녀의 곁을 오갔으나 결국 이렇게 오래 함께하는 건 그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론은 그녀의 애정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자신인 줄 착각했다. 그는 마르티안이 그날 다른 상대를 길들이는 것을 보며 그게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마르티안은 론에게 하는 것만큼, 아니 그것과 상관없이 남자를 예뻐했으니까. 그 공간 안에 론을 두고도 그녀는 온전하게 남자에게 집중하고 몰입했다.

그건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반발심이 들었고, 흉내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집을 부린 것이다. 반항과 고집에는 조금의 용서도 없는 마르티안이 자신에게는 조금 다르게 굴어주길 내심 바란 것일지도 몰랐다.

“다리를 벌리는 주제면 주제답게 굴어.”

마르티안이 바라는 론이란 그런 것이다. 주인의 손길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워하고 다리를 벌릴 줄 아는 개. 주인이 예뻐할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을 개. 제 앞에서 다른 존재에게 빠져든다고 해도 마냥 꼬리칠 수 있는 그런 개. 그게 그녀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들이었다.

제 가치를 잃은 물건은 버려지기 마련이니, 론은 제 주제를 배워야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이 상황에 놓인 것이다. 마르티안은 론에게 ‘다리를 벌리지 않는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너를 쉽게 버리진 않을 거야. 그러니 너무 불안해할 건 없어. 하지만 노력하긴 해야지. 나는 대체할 만한 것들이 많은, 그런 가치 없는 개를 곁에 두고 싶진 않거든.”

언젠가 그녀가 했던 말이다. 가치 없는 개. 그 말을 곱씹어 보다가 론은 눈을 감았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피곤했지만 역시나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가치 있는 개가 되기 위해서는 제가 품었던 서럽고 섭섭한 마음을 참을 줄 알아야 했다. 숨길 줄 알아야 한다. 때가 되면 마르티안은 그를 불러 제대로 교육되었는지 확인하려 할 것이다. 그녀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때 합당한 태도를 보이도록 노력해야 했다.

론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눈가로 줄줄 새어 나온 것들이 손바닥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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