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혼자 축제 구경 온 거야?”
“누, 누구세요?”
마을 사람이라면 아벨라가 얼굴을 모를 리 없었다. 외부인이 틀림없었다. 축제를 보기 위해 놀러 온 이웃 마을의 주민이라든가…… 아니면 대륙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상인과 용병들.
모양새로 보아 용병에 가까운 듯했다.
시골에서 보기 드문 우락부락한 사내들의 모습은 꽤 위협적이었다.
아벨라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쏘아봤다. 그러자 남자들은 우습다는 듯 웃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 나쁜 사람 아니야.”
“맞아, 그냥 혼자 있는 것 같아서. 같이 놀자고 하려 했지.”
그렇게 말하며 한 남자는 은근슬쩍 아벨라의 어깨에 손을 올려 두었다. 놀란 그녀가 소스라치게 몸을 떨며 쳐내자, 그들은 큰 소리로 아벨라를 비웃었다.
“왜, 남자 손 처음 닿아 봐?”
“하하하! 이거 완전 남자 경험 없는 처녀인가 본데?”
당황한 아벨라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눈동자를 바삐 굴렸다. 그녀가 걱정하는 건 제 안위가 아니었다.
‘분명 칼라일이 봤을 텐데…….’
큰일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칼라일이 이성을 잃고 이들에게 주먹질이라도 한다면 곧장 경비대가 달려올 것이었다.
‘안 돼, 그럼 골치 아파져.’
생각을 마친 아벨라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그들 중 한 명과 눈을 맞췄다.
“그, 그럼…… 여기 말고 사람 좀 없는 곳으로 자리 옮기는 건 어때요?”
티 내지 않기 위해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럼에도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아벨라의 제안에 신이 나서 어두운 골목으로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어두컴컴한 골목에 들어서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칼라일이 달려들었다. 칼라일은 아벨라의 허리에 손을 감고 있던 남자를 붙잡아 내동댕이치더니, 뼈를 으스러트리겠다는 듯 손을 꺾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골목에는 남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다른 이들이 칼라일에게 달려들었으나, 당연히 상대도 되지 못했다.
칼라일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을 모두 땅바닥에 나뒹굴게 만들었다.
“휴…….”
그 모습을 보며 아벨라는 자리를 옮겨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판단이었어.’
게다가 흥분한 건지 칼라일의 머리 위로는 뾰족한 늑대 귀가 솟아나 있었다. 이런 모습을 누군가 보기라도 했다면…….
‘끔찍해.’
끙끙 앓는 신음을 흘리던 사내들은 이내 칼라일의 손짓 몇 번에 기절한 건지 잠잠해졌다. 죽은 건 아닌가 걱정스럽게 기웃거리자 그제야 칼라일이 입을 열었다.
“안 죽었어요.”
“휴, 다행이다.”
안도하는 아벨라 앞에 선 칼라일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그는 어딘지 퉁명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벨라.”
“응?”
“왜 이런 곳으로 자리를 옮긴 거예요. 위험하면 어쩌려고요.”
답지 않게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아벨라는 그런 그의 귀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머지않아 손끝에 보드라운 뾰족 귀가 닿았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걸.”
“그건 그렇지만…… 조절할 수 있어요. 지금은 아무도 없어서…… 그래서 긴장을 풀었을 뿐이에요.”
칼라일은 여전히 툴툴대듯 말했다.
“만약 흉기라도 갖고 위협했으면 어쩌려고 이런 곳으로…….”
가만히 그를 보던 아벨라가 발갛게 물든 칼라일의 양 뺨을 쥐고 발을 쫑긋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두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졌다.
짧은 입맞춤과 함께 쪽 소리가 어두운 골목에 울려 퍼졌다. 그러고는 아벨라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잔소리쟁이.”
“네, 네?”
“조그맣던 게 다 컸다고 잔소리도 하네.”
“그, 그건……!”
아벨라가 쿡쿡 소리 내어 웃으며 다시 한번 칼라일의 입을 막았다. 입술이 맞닿기 무섭게 칼라일은 앓는 신음을 흘리더니 못 이기겠다는 듯 그녀의 허리를 다정히 감싸 안았다. 덕분에 아벨라는 칼라일에게 쏙 안긴 꼴이 되었다.
“잔소리가 아니라…… 걱정돼서 하는 말인 거 아시잖아요.”
잠시 입술이 떨어지기 무섭게 칼라일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아벨라가 반박하기도 전에 제 입술로 그녀의 입을 막아 버렸다.
“……집에 갈래요.”
“응? 벌써? 하지만 불 들어온 모습 보고 싶다고 했잖아.”
아벨라는 혹시 삐졌니? 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칼라일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어두운 탓에 여의치 않았다.
칼라일은 그럼에도 괜히 한 팔로 스스로의 얼굴을 가리려 했다.
“……내일 보면 돼요.”
“갑자기? 곧 불 들어올 시간일 텐데…….”
“그, 그건 그렇지만…….”
붉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아벨라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무언가 이상해진 모습에 아벨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렇다고 길바닥에서 아벨라한테 씹질할 순 없잖아요.”
칼라일은 꼭 어린 소년이 사랑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순수한 낯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아벨라가 싫어할 거니까…… 그러니까 얼른 집에 가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끝내고는 칼라일이 아벨라의 소매 끝자락을 살짝 붙잡았다. 멍하니 그 말을 듣던 아벨라는 말뜻을 이해하고는 당황하여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그, 그, 그…….”
그녀는 말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입만 벙긋거렸다. 그러자 칼라일이 은근슬쩍 그녀의 손을 맞잡고는 찬찬히 골목 밖으로 이끌었다.
“가요, 아벨라. 집에 갈 거죠? 응?”
“가, 가…… 가야지. 응, 으응…… 가, 가야 하긴 하는데…….”
그렇게 골목에서 빠져나오기 무섭게 누군가가 아벨라의 이름을 꽤 다정하게 외쳤다.
“어, 아벨라!”
아벨라보다 칼라일의 반응 속도가 더 빨랐다. 타인의 입에서 아벨라의 이름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칼라일은 흉흉한 낯으로 주변을 살폈다.
아벨라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고 있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는 웬 사내놈이었다.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로 어버버거리던 아벨라는 저를 부른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제크?”
“제크……?”
아벨라가 남자의 이름을 부르자, 곁에 서 있던 칼라일이 못마땅하다는 듯 따라 이름을 곱씹었다. 제크는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와 아벨라에게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와, 아벨라 엄청 오랜만이다! 네가 겨울 축제에 왔을 줄은 몰랐어. 그동안 잘 지냈고?”
제크는 아벨라가 반가운 건지 쉴 새 없이 안부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아벨라가 대답하기도 전에 칼라일이 먼저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누구예요? 친구?”
칼라일은 보란 듯이 아벨라의 허리를 꽉 감싸 안고는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러자 아벨라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옆 마을에 사는 친구야. 요즘 통 못 보고 지냈거든.”
그 말에 칼라일은 시큰둥하게 대답하고는 어서 가기나 하자는 듯 티 나지 않게 아벨라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그럼에도 아벨라는 제크라는 친구와 몇 마디 더 주고받고는 헤어졌다.
덕분에 칼라일의 표정엔 미묘한 실금이 갔다.
* * *
“카, 칼라일!”
집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칼라일이 난폭하게 입술부터 들이밀었다. 당황한 아벨라가 그를 밀어내려 했으나 밀리지 않았다. 바위처럼 단단한 몸뚱이는 오히려 더욱 아벨라에게 가까이 맞붙었다.
“친해요?”
“뭐?”
“제크인지 지크인지 하는 놈이랑…… 친하냐고요.”
“흣, 아, 아냐…… 친한 건 아니고 그냥 가끔 옆 마을 시장에 갈 일 있을 때…… 몇 번 도와준 적 있어서…….”
“뭔가 억울해요.”
커다란 손이 아벨라의 외투를 물 흐르듯 가볍게 벗겨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아벨라가 춥다는 듯 오들오들 떨자 그는 벽난로에 장작을 두어 개 더 던져 넣었다.
“저는 이성 친구 같은 거 하나도 없는데…… 엄마는 너무 많은 거 같아요.”
“아냐, 나도 별로 없…… 읏.”
“많잖아요. 게다가 형님이랑도 친하게 지내시고…….”
레오까지 끄집어내 오는 칼라일을 보며 아벨라가 못 말리겠다는 듯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그게. 바보.”
칼라일의 입에선 투덜투덜 불만 어린 소리가 줄어들 줄 몰랐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아벨라는 좋은 생각이 났는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칼라일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단단히 잠겨 있는 그의 바지 앞섶을 불시에 풀어 버렸다.
“아, 아벨라?”
속옷까지 단번에 끌어 내리자, 잔뜩 흥분한 살덩어리가 기다렸다는 듯 퉁겨져 나왔다. 아벨라는 망설임 없이 곧장 울퉁불퉁한 기둥을 움켜잡고 불투명한 애액이 맺힌 선단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놀란 칼라일이 뒤늦게 그녀를 말리려 소리쳤으나 아벨라가 더 빨랐다. 그가 소리쳤을 땐 이미 좆의 선단이 아벨라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