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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71화 (72/82)

<071>

에샤의 말에 아벨라가 눈을 끔뻑였다. 다친다니, 칼라일이? 왜? 그런 그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에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애도 참 대책 없었네. 발정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각인부터 맺고…….”

“카, 칼은 워낙 무리에서 동떨어졌던 아이다 보니…… 아마 발정기나 각인에 대해서도 누가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아 몰랐을 거예요.”

머리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는 에샤를 보며 칼라일을 옹호하는 건 레온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벨라만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런 아벨라를 보며 레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각인이라는 힘에서 나오는 발정기 자체가 일반 짐승들의 발정기하고는 많이 다르거든요……. 아마 칼라일도 그걸 몰랐던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다른 건데?”

“음…… 아무래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오는 것이다 보니 안에서 들끓는 욕정을 배출하지 못하면 힘을 버티지 못한 몸이 손상될 확률이 아주 높아요. 아니, 일단 몸이 손상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운데…….”

레온이 난감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했다.

“버티지 못하면?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미안, 나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아, 아니에요. 죄송하실 게 뭐가 있어요. 음…… 일반적으로는 발정기가 찾아오면 반려끼리 서로 만날 수밖에 없어요. 본능밖에 남지 않다 보니……. 양쪽 다 동족일 경우 서로를 찾게 돼서 만나는 게 수월하지만, 아벨라 님의 상황을 보다시피 인간의 경우는 저희 종족의 각인을 맺어도 발정기가 찾아오지 않더라고요. 그럼 아마 칼라일이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까지 잠잠한 걸 보니 조금 신기하네요.”

레온은 괜히 창문 밖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이만큼 버틴 걸로도 꽤 대단한데요? 하하, 저는 발정기가 오면 5분도 버티기 힘들어서…….”

“자랑이다, 자랑이야.”

곁에서 듣던 에샤가 이제는 훌쩍 커 버린 레온의 뺨을 꼬집으며 쏘아보았다. 레온은 그러거나 말거나 천진한 얼굴로 에샤에게 기꺼이 제 뺨을 내어 줄 뿐이었다.

“그렇게 꼬집으면 아파요, 누나.”

레온이 배시시 웃으며 어리광을 부렸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은빛 머리칼은 창 너머로 쏟아지는 달빛과 꽤 잘 어울렸다.

“누, 누나는 무슨……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이럴 때만……!”

레온의 요망한 잔웃음을 보며 에샤가 허둥지둥 붉어진 얼굴을 휙 돌려 버렸다. 레온은 그런 그녀를 보며 즐거워 보이는 미소만 그릴 뿐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던 아벨라는 자신도 모르게 칼라일이 떠올랐다. 사나운 눈매를 죽이고 순진한 토끼인 척 구는 그의 모습이 묘하게 레온과 비슷해 보여서였다.

“둘이 형제가 맞긴 맞나 보네.”

아벨라가 작게 소리 내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칼라일이 하는 행동이랑 똑같아.”

그 말에 레오는 멋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작게 웃었다.

“방금 그 말 칼이 들으면 화낼 거 같은데요.”

“그나저나 아벨라, 안 가 봐도 되겠어? 혼자 두기는 영 불안한데…….”

에샤의 말에 아벨라 또한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말마따나 발정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벨라도 영 마음이 불편했다.

결국 그녀는 에샤의 집에 신세 지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역시 가 봐야겠어.”

에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아벨라를 배웅했다.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고마워, 에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벨라는 급하게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에샤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제 오두막집을 보며 아벨라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자신의 보금자리는 언제나처럼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몽글몽글한 연기와 창문으로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옅은 빛이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 있을 칼라일은 과연 어떤 상태일지……. 아벨라는 긴장으로 마른 침을 삼키며 기척을 죽이고 제집 근처로 향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집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쿵, 쿵, 이상한 소리가 집 안에서 꽤 크게 들려왔다.

아벨라는 의아함을 느끼고 창문 틈 사이로 슬그머니 집 안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카, 칼라일!”

커다란 늑대 꼴을 한 칼라일이 벽에 대고 스스로의 머리를 들이받고 있는 게 아니던가!

놀란 아벨라가 비명을 지르다시피 하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안에서 마주한 칼라일의 꼴은 더 가관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벽에 머리를 박아 댄 건지, 이마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굵직한 쇠줄로 스스로의 목을 묶어 두기까지 했다.

“칼라일!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목이 졸리는 건지 칼라일이 캑캑대며 침을 질질 흘렸다. 완전히 엉망이 된 그를 보며 아벨라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벨라를 발견한 칼라일은 더욱 흥분한 듯 큰 짖음 소리를 내며 그녀를 향해 달려오려 했다. 하지만 목을 조르고 있는 쇠줄 탓에 달려오지는 못했다.

달려오다가 조여 오는 사슬에 깨갱, 소리를 지르고 다시 또 달려오다가 조여드는 사슬에 깽, 앓는 소리를 흘리길 반복했다. 그러다 캑캑 기침하며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만신창이나 다름없는 그의 꼴에 아벨라가 울먹이며 급하게 목줄부터 풀었다. 하지만 칼라일이 버둥거려 그마저 수월하지 않았다.

“야, 얌전히 좀, 흑, 얌전히 좀 있어 봐!”

아벨라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주르륵 흘려보냈다. 하지만 서럽게 우는 것과 달리 속은 화로 가득했다.

“멍청아! 누가 이렇게까지 하랬냐고, 흑, 진짜 이게 뭐야, 이 꼴로 어떻게 아침까지 있으려 한 건데? 흑, 지금 자기랑 짝짓기 안 해 줬다고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아벨라가 울먹이며 겨우겨우 목에 둘려 있던 사슬을 풀어냈다. 그러자 칼라일은 기다렸다는 듯 아벨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의 몸이 기우뚱, 바닥으로 자빠졌다. 아벨라의 위로는 북슬북슬한 털뭉치의 짐승이 거친 숨을 내쉬며 올라타 있었다.

“아야야…… 기껏 도와주러 왔더니 밀기나 하고 이게 뭐야!”

아벨라가 큰소리를 치며 칼라일에게 화를 냈다. 그런데 그와 눈을 마주한 순간 아벨라는 알 수 있었다.

칼라일에게 정신이 남아 있지 않는다는 걸.

반쯤 이성이 나간 듯한 눈을 본 순간 아벨라는 덜컥 겁에 질렸다. 잊고 있던 그 날 밤의 기억이 엄습한 탓이었다. 본능적으로 몸이 빳빳이 굳었다. 긴장감에 등골이 서늘한 기분도 들었다.

“……아가.”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칼라일을 불렀다. 언제나처럼 천진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은데, 눈앞의 칼라일은 침을 줄줄 흘리며 알 수 없는 울음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한참 그녀 위에서 끙끙대던 칼라일은 이내 다시 한번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더니 벽을 향해 자신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쿵! 큰 소음과 함께 집 안 전체가 울리는 듯한 진동이 일었다.

“아가!”

놀란 아벨라가 그를 말리기 위해, 다급히 손을 뻗었다. 막무가내로 잡고 봤더니 칼라일의 꼬리였다.

아벨라는 그의 꼬리를 움켜쥐고 이리 오라는 듯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한데 이상하게도 칼라일은 아벨라에게 위협적으로 이를 드러냈다. 당장 저를 덮치려 하면 어쩌나 걱정한 게 무색하게도 말이다.

“그러지 마, 이리 온. 응? 다쳐, 피나잖아…….”

아벨라가 속상함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걱정을 가득 담은 그녀의 손길이 다시금 칼라일을 향하려 했다.

그런데 그는 무슨 생각인 건지, 아벨라의 손을 피해 집 안 다른 곳으로 우당탕 달려갔다.

“아가! 어디 가!”

황급히 그를 쫓아 움직였으나, 날쌘 늑대의 움직임을 아벨라가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칼라일은 아벨라를 피해 요리조리 집 안을 뛰어다녔다. 덕분에 그녀는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숨이 찼다.

“하아, 하, 이리 와, 칼라일. 약 바르고 엄마랑 있자. 응?”

그녀가 땀을 닦아 내며 힘들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칼라일은 여전히 아벨라의 품으로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칼라일은 당장이라도 뜀박질할 수 있도록, 몸을 낮추고 꼬리로 바닥을 탁탁 내리치고 있었다.

아벨라가 힐긋 시선을 내리자 복슬복슬한 검은 털 사이로 튀어나온 붉은 살덩이가 눈에 담겼다. 기둥에는 뾰족한 돌기가 잔뜩 돋아난 살덩이.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아벨라는 제 팔뚝보다 굵은 것 같은 크기에 움찔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쉬이, 아가. 착하지, 이리 온.”

아벨라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기려 하며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 끝이 파리하게 떨렸다.

이 상황이 긴장되는 건, 아벨라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아벨라의 애달픈 부름에도 칼라일은 이만 드러낼 뿐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지 않았다.

이마의 털은 어느새 딱딱하게 뭉친 굳은 피들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아벨라가 용기를 내어 한 발자국 칼라일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일은 아주 순식간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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