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63화 (64/82)

<063>

아벨라의 집은 마을에서도 외곽에 위치했다. 약초를 캐러 산에 가기 수월하도록, 마을 중심부보다는 산에 가까이 자리하고 있었다. 즉, 그녀의 집 주변엔 다른 집들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검은 연기라니. 갑자기 왜?

칼라일이 본능적으로 코를 씰룩였다. 그러자 바람을 타고 흐릿한 탄내가 느껴졌다.

순간 칼라일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더 볼 것도 없이 곧장 오두막집으로 내달렸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크게 지장 없던 다리가 달리기를 하려니 한심하게도 자꾸만 삐걱거렸다.

“빌어먹을!”

칼라일이 욕지거리를 토해 내며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제 왼쪽 다리가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칼라일의 손을 낚아채 잡았다.

“칼!!!”

레오였다.

“뛰어!!!”

조그마한 아이의 몸 어디에서 이렇게 힘이 솟구친 건지, 레오는 있는 힘껏 칼라일의 손을 붙잡고 아벨라의 오두막집을 향해 내달렸다.

절뚝이며 바보처럼 뛰던 칼라일이 그에 의해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달려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아벨라에게 가까워질수록 칼라일의 표정은 굳어져만 갔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뭉게뭉게 솟구치는 검은 연기. 그리고 점점 짙어지는 탄 냄새.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멀찍이 오두막집이 시야에 담긴 순간부터 칼라일은 반쯤 이성을 놓다시피 했다.

아벨라의 작지만 따뜻했던 오두막집이 화마에 삼켜지고 있었다.

칼라일이 도착했을 때, 이미 집은 활활 불타고 있었다. 불길을 본 몇몇 마을 사람들도 커다란 물통을 들고 담벼락 곳곳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아벨라는?’

그런데 아벨라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밤의 여파로 인해 어디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을 텐데…….

오두막집을 에워싼 사람들 틈에서 아벨라를 찾아보려 이리저리 눈을 굴려 보았지만, 분홍빛 머리카락 한 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칼라일의 심장이 진창으로 처박혔다. 그는 더 볼 것도 없이 레오의 손을 뿌리치고 불타고 있는 오두막집 안으로 달려들어 갔다.

“칼!!”

레오가 말리려 했지만 작은 아이의 몸으로 칼라일을 말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불길 속으로 뛰어든 칼라일을 보며 불을 끄던 마을 사람 몇몇이 놀라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사, 사람이 집으로 뛰어들어 갔어!!!”

“안 돼, 따라 들어가긴 너무 위험해! 어서 불을 꺼!”

* * *

시커먼 연기와 숨조차 쉬기 버거운 집 속에서, 칼라일은 분주하게 눈을 돌렸다.

‘아벨라, 아벨라…….’

코를 씰룩여 보아도 찌를 듯한 탄내 때문에 아벨라의 체향을 찾아낼 수 없었다. 칼라일은 욕지거리를 읊으며 더욱 집 안 깊은 곳으로 몸을 놀렸다.

사이 좋게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소파는 이미 모두 불타 재가 되어 있었고, 산딸기를 나눠 먹던 나무 식탁 또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칼라일은 불타는 추억들을 뒤로한 채, 으스러지고 있는 침실 문을 걷어찼다.

‘나 때문에…….’

내가 어제 그러지만 않았어도.

지난밤 때문에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하던 그녀였다. 집이 타고 있는 동안에도 제대로 대피하지 못한 채 침실에 갇혀 있을 게 분명했다.

칼라일은 차오르는 눈물을 억누르며 침실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침실 어디에서도 아벨라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칼라일은 벙찐 눈으로 삐걱삐걱 고개만 돌렸다.

“……아벨라?”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벨라! 어디 있어요. 엄마…… 저예요, 칼라일!”

당황한 그는 두서없이 아벨라의 이름과 엄마를 섞어 불렀다. 메케한 연기와 당장이라도 저를 집어삼키려 드는 열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다.

허공에 대고 아무리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아도 묵묵부답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칼라일은 미친 사람처럼 침실을 헤맸다. 그러다 불타고 있는 옷장을 열어 보기까지 했다. 손바닥에 깊은 화상이 남았으나 눈 하나 꿈쩍 않았다.

무너져내리는 집의 자재들이 그를 공격해도, 칼라일은 아벨라를 찾는 데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아벨라!!!”

혹시라도 이 집 안 어딘가에 있는데, 자신이 못 찾은 거라면. 자신이 찾지 못해 데리고 나오지 못한 거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제, 제가 잘못했어요……. 흑, 흐윽…… 엄마, 엄마!!! 어디 계세요!!!”

그렇게 하염없이 떠돌던 칼라일은 점점 정신이 흐려지는 게 느껴졌다. 목구멍으로 따가운 연기가 쉴 새 없이 밀려들어 오고, 더 이상 숨을 쉬기도 버거웠다.

‘엄마가 아직 안에 계실 텐데…….’

칼라일은 뿌예지는 시야 속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며 아벨라를 찾아 곳곳을 뒤졌다. 그러다 큰 기둥 하나가 그의 등을 내려쳤으나, 칼라일은 잠시 휘청이기만 할 뿐 곧바로 다시 아벨라를 찾아 나섰다.

어느새 칼라일의 몸은 알 수 없는 시커먼 가루들과 울긋불긋한 화상 흉터들로 가득해졌다. 뿐만 아니라 연기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현기증도 일었다. 비틀대던 그가 몸을 가누기 위해 옆에 있는 아무것이나 짚었다. 그러자 손바닥을 타고 끔찍한 고통이 일었다.

‘안 돼……. 아벨라를 찾아야…….’

칼라일은 밭은 숨을 겨우 몰아쉬며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몸이 따라 주지 못했다. 이미 이만큼 한 것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의 경지를 한참 넘어서 있었다.

칼라일은 활활 타오르는 집 안을 보며 힘없이 주저앉았다.

여기서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더 이상 다리조차 움직이지 않을 때쯤, 점점 거세진 불길 탓인지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옅어졌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으면, 지난밤 아벨라에게 그렇게 제멋대로 굴지 말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으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 * *

전신을 뒤덮은 열기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느껴지는 폐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 육체가 아픈 건 익숙했지만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벨라는 어떻게 된 걸까. 칼라일은 쓰러진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워 있을 때가 아니야…….’

엄마를 찾아야 해. 칼라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몸은커녕 눈꺼풀조차 들리지 않았다. 불길 속에 너무 오래 있었던 탓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렇게 누워 있을 시간이 없는데. 제 숨이 붙어 있다면 어딘가에 아벨라의 숨도 붙어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찾아야 했다.

칼라일은 움직이지 않는 제 몸을 원망하며 손가락 끝부터 찬찬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라일.”

그런데 환청이라도 들리는 건지,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가.”

이상하다. 엄마 목소린데……. 칼라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의아함을 가졌다. 혹 여기가 천국이라도 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찌를 듯이 속으로 밀려들어 오던 따가운 연기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하던 화마 속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가.”

누군가 그곳에서 저를 꺼내 준 걸까. 아니면 정말 숨이 끊겨 아벨라와 함께 저 세상에라도 와 있는 걸까.

아무래도 듣고 싶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후자 쪽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흐흑, 어쩜 좋아. 칼라일이 눈을 안 떠.”

“너무 걱정 마세요. 괜찮을 거예요. 반려의 각인이 있는 한, 칼의 생명에 문제가 생기면 아벨라 님께도 문제가 생겨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벨라 님은 멀쩡하시니까…… 칼도 분명 눈을 뜰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아벨라……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 마. 응? 의원도 괜찮다고 했으니…….”

“맞습니다. 칼이 다리가 불편하긴 했어도…… 울크 신의 후예라 불리는 종족의 순혈이었습니다. 고작 이 정도로 죽지 않을 거예요.”

칼라일이 미간을 찌푸리며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들을 알아차렸다. 하나는 레오였고 다른 하나는…… 에샤였다.

‘에샤? 그 여자가 왜…….’

설마 단체로 뒤지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생각할 때쯤, 속에서부터 따가운 기침이 터져 나왔다.

“쿨럭, 쿨럭……!”

“아가!!!”

기침과 함께 눈이 번쩍 뜨이고, 그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아벨라였다.

“아가, 아가 괜찮니? 정신이 들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순간 멍해진 칼라일은 바보처럼 흐릿한 눈가만 비비적댔다.

“……어머니?”

“흑, 흐윽…… 칼라일, 칼라일…… 이 얼간아!”

아벨라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목 놓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작은 손은 칼라일의 가슴팍을 퍽퍽 내려치기도 했다.

‘뭐지? 분명 집은 불타 없어졌는데…….’

여기는 어디고 어머니는……. 어머니는 멀쩡하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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