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54화 (55/82)

<054>

순간 칼라일은 제가 뭘 들은 건가 싶어 바보처럼 눈을 끔뻑였다. 또래 여자아이라니. 갑자기?

“……네?”

머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칼라일이 믿지 못하고 다시 한번 되물었다. 그러자 아벨라는 잔인하게도 친절히 뱉은 말을 풀어 설명해 주었다.

“물론 칼라일 네가 나를 가장 의지하고 있다는 건 알아.”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예요?”

묻는 말은 묘하게 뾰족했다. 평소 온순하기만 하던 그의 말투와 간극이 느껴졌다.

“걱정스러워서…….”

“대체 뭐가 걱정스러우신 건데요?”

“보통 인간들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나고 하거든. 그런데 아가 너는 그럴 기회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칼라일은 말문이 막혔다. 하루 종일 저 작은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싶었는데. 이런 좆같은 생각이나 하는 줄 알았으면, 순한 개새끼처럼 얌전히 기다리지 말 걸 그랬다.

잔잔하던 그의 숨결이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칼라일은 표정 관리도 하지 못한 채, 위협적으로 아벨라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어머니.”

“…….”

“다른 암컷 백 마리를 만나 봐도 전 어머니뿐이에요. 그저 어머니만 제 곁에 있어 주시면 된다고요.”

아벨라가 입술을 달싹였다.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마는 듯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우셨어요?”

물음에 은근한 원망이 섞였다. 그 사실이 아벨라를 더욱 속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안 되는걸.’

아벨라가 주먹을 세게 말아 쥐며 대답을 회피했다. 칼라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제 할 말을 이어 나갔다.

“아시잖아요, 제가 얼마나 어머니께 맹목적인지……. 누구보다 어머니가 제일 잘 알고 계시잖아요.”

“……맞아, 잘 알고 있어.”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신 거예요? 제가 무언가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건가요?”

“잘못이라니! 아가, 전혀…… 네 잘못은 조금도 없어. 그저 나는 네가 걱정돼서…….”

칼라일의 낯에 작은 실금이 갔다. 그의 눈을 마주한 순간, 아벨라는 그제야 제가 또 실언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어.’

이 말이 칼라일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걸, 다 알고 있으면서 나는 굳이 입 밖으로 내뱉었어.

가냘픈 어깨가 힘없이 처졌다. 그녀는 싸늘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이런 식으로 단호하게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는 칼라일을 보며, 기분이 나아지고 있는 자신이 미웠다.

이건 절대로 칼라일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이었다.

‘괜히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 이런 거잖아.’

나는 칼라일에 대한 비정상적인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음에도 칼라일이 받아들이지 않은 거라고.

아벨라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은 지저분한 본심이었다.

‘미쳤어. 정말 미쳤다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짤막한 팔다리로 허우적대던 칼라일이 생생했는데……. 자괴감이 도저히 가시질 않았다. 도대체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답답했다.

“……미안해.”

아벨라는 결국 힘없이 그에게 사과의 말을 뱉었다. 하지만 별다른 설명 없이 뱉어진 사과의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적당했다.

아벨라의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칼라일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뭐가 미안하신 건데요?”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아벨라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열지 못한 쪽에 가까웠다. 그저 애꿎은 제 발끝만 바라볼 뿐이었다.

‘절대 말 못 해.’

나를 보호자로 생각하고, 유일한 가족이라며 천진하게 잘 따르던 칼라일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 요즘 들어 너를 볼 때마다 이상한 마음이 샘솟는다고…….

그런 그녀의 속을 모르는 칼라일은 이번에도 침묵을 안 좋은 쪽으로 받아들였다.

푹 숙인 아벨라의 얼굴은 도통 들릴 줄 몰랐고, 칼라일의 낯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서먹한 공기만이 오두막집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 * *

오늘 칼라일은 아벨라가 먹을 음식 위에 네프라 약초를 뿌리지 않았다. 성체가 된 후로 매일같이 약초를 뿌리다시피 했었는데……. 이게 얼마 만인지 알 수 없었다.

늘 하던 것을 생략하려니 기분이 오묘했다. 하지만 지금의 칼라일은 알았다. 이런 풀 쪼가리 따위 더 이상 제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칼라일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는 잘게 빻아 두었던 약초들을 미련 없이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다.

더는 약초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벨라를 포기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가냘픈 여체의 뒷모습을 보며 옅은 웃음을 그렸다. 그러고는 사냥감을 바라보는 맹수처럼 입맛을 다셨다.

칼라일은 어딘지 흥분한 듯한 눈을 하고는 평소처럼 태연하게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아벨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의 몸 위로 길게 그림자가 졌다.

인기척에 아벨라 또한 시선을 칼라일에게로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짧게 맞부딪쳤다. 그녀는 애써 미소를 그려 보이며 물었다.

“잘 준비 다 했어?”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다. 티 내지 않고 있었지만 긴장한 눈치였다.

“네, 다 했어요.”

“그럼 어서 자자. 내일은 산에 가기로 한 날이잖아.”

그렇게 말하며 아벨라는 칼라일을 등진 채 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불 꺼진 침실엔 그저 푸르스름한 달빛만 내려앉고 있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아벨라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발생하는 이불 소리가 전부였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칼라일이 그녀 곁에 걸터앉으며 흐트러진 분홍빛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아벨라가 무슨 일 있냐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

제법 부드럽고 자상한 목소리에 아벨라는 아무런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아가.”

“아까 저녁에 하셨던 말씀…….”

그는 잠시 뜸을 들이며 말을 멈췄다.

“진심이셨어요?”

그러고는 긴장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딱딱하게 굳은 얼굴 또한 지금 그의 심경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순간 말문이 막힌 아벨라는 애꿎은 이불만 조물거렸다.

그렇게 꽤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아벨라의 입술이 떨어졌다.

“……응.”

작은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로 새어 나왔다. 아벨라는 대답하기 무섭게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강요하거나 그러려는 건 아니었어, 정말로…….”

분홍빛 눈동자가 애절함을 담고 그를 향했다.

“네, 알겠어요.”

의외로 칼라일은 순순히 대답하며 두툼한 이불을 아벨라의 목 끝까지 올려 주었다. 하지만 그런 다정한 칼라일의 행동에도 아벨라는 안심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불안이 담긴 그녀의 시선이 칼라일을 좇았다. 그걸 알아차린 칼라일은 옅은 미소를 그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저도 정리 좀 하고 바로 잘게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

피곤한 아벨라는 하품을 참지 못했다. 자상한 손길과 목소리에 그제야 마음이 놓인 건지, 아벨라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잘 자, 칼라일.”

“어머니도요.”

“항상 사랑해…….”

“저도 많이 사랑해요.”

늘 그렇듯 평범한 저녁 인사가 오가고, 머지않아 아벨라는 잠에 들었다.

부스럭부스럭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던 아벨라의 기척이 사라지고, 침실에는 비로소 완전한 적막이 찾아왔다.

소리라고는 이따금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풀벌레 소리와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얌전히 감긴 눈, 오뚝한 코, 보기 좋은 볼살, 도톰한 입술. 새하얀 이불 위로 흐트러진 분홍빛 머리칼.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 동안 잠든 아벨라를 훑던 칼라일은 입고 있던 상의를 단번에 벗어 던졌다. 그러자 낡은 티셔츠 안에 갇혀 있던 근육들이 순식간에 외부로 드러났다.

“어머니.”

칼라일은 마치 그녀가 정말 잠든 게 맞는지 확인하려는 듯 감긴 아벨라의 눈 위로 제 손을 휘적거렸다. 그녀가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자, 칼라일은 안도 섞인 웃음을 띠었다.

머지않아 큼직한 손이 아벨라의 슬립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여린 허벅지를 더듬으며 올라가더니, 거침없이 그녀의 음부 위를 쓰다듬었다.

칼라일은 아무런 약효 없이 그저 평범하게 잠들어 있을 뿐인 아벨라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매만져 댔다.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아벨라는 미간을 좁히며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 벌레가 날아다니는 것으로 오해라도 한 건지 잠결에 손을 휘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칼라일을 더욱 부추겼다.

칼라일은 붉은 눈을 매섭게 빛내며 아벨라의 젖가슴을 콱 움켜쥐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숨어 있는 유두를 긁어 대기까지 했다.

마치 잠에서 깨어나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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