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어머니?”
당황한 칼라일이 곧장 말대답을 해 버리고 말았다. 제 귀가 어떻게 된 게 아니라면, 분명 방금 아벨라가 자신을 불렀었다.
그는 심장이 철렁,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시치미를 떼기엔, 이미 엉망이 될 정도로 젖은 보지와 그런 그녀의 구멍에 꽂힌 제 좆만 봐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칼라일은 온몸의 핏기가 싹 가시는 기분을 느끼며 눈을 크게 떴다.
“어, 어머니…… 깨셨어요?”
방금까지만 해도 흥분에 들떠 있던 목소리가 긴장으로 떨려 왔다. 칼라일은 찔러넣은 제 좆을 빼낼 생각도 못 한 채 고개 숙여 아벨라를 바라봤다.
한데 아벨라의 눈은 여전히 굳게 감겨 있었다.
칼라일은 한참 동안 아벨라의 얼굴을 응시했다. 마치 그녀가 정말 잠든 건지, 아닌지 확인이라도 하는 기색이었다.
아벨라는 몇 번 더 앓는 듯한 신음을 흘렸고, 그 이상 별다른 말은 없었다.
단순히…… 잠꼬대였던 걸까?
뜨거운 숨소리로 가득했던 방 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칼라일은 좆을 쑤셔 넣은 채 한참이나 그 자리 그대로 굳어 있었다.
곱던 아벨라의 미간도 몇 번 찌푸려졌다 풀리길 반복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아벨라가 잠든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가까스로 행위를 멈추고 제 것을 빼낼 수 있었다.
‘내가 너무…… 과격했나?’
아니면 약초에 내성이 생겨서……?
칼라일은 곰곰이 생각하며 초조하게 뒷정리를 시작했다. 다행히 아벨라의 숨소리는 다시금 평온해졌다. 일정하게 들려오는 새근새근한 소리에 그는 안도를 느꼈다.
‘오늘은 단순히 잠꼬대였던 게 맞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그녀가 잠들어 있을지, 이제는 장담하기 어려워진 기분이었다. 전처럼 멋대로 그녀의 몸을 탐하다간, 제가 원치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까 놀란 심장이 아직도 쿵쾅거리는 듯했다. 칼라일은 가까스로 아벨라의 다리 사이를 정돈하고 나서야 다시금 몸을 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은 유독 잠이 오지 않았다.
당장 오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일까.
꽤 오랫동안 뒤척인 칼라일은 깊은 한숨과 함께 아벨라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무력으로야 얼마든지 아벨라를 곁에 둘 수 있었다. 그런 방법으로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못할 것 없었다. 하지만 칼라일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아벨라가 지금처럼 저를 보며 웃어 주길. 걱정 어린 말과 함께 따스한 손길로 저를 보듬어 주길 바랐다.
‘가능할까……?’
칼라일이 씁쓸하게 입술을 씹으며 아벨라의 슬립을 꼭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어리광부리듯 그녀의 허리춤을 감싸 안았다.
“……사랑받고 싶어요.”
들릴 듯 말듯, 아주 작은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나왔다. 그녀를 안은 칼라일의 손에는 더욱 힘이 바짝 들어갔다.
칼라일은 그렇게 한참 더 싱숭생숭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가까스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유독 긴 새벽이었다.
* * *
그날 후로, 칼라일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표현에 딱 맞게 홀로 아벨라의 눈치를 살피며 지내고 있었다.
물론 그날은 다행히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예상대로 아벨라의 잠꼬대였다. 하지만 칼라일은 안도하지 않았다.
‘뭐가 됐든, 그날 엄마가 깊은 잠에 빠져 있지 않았던 건 확실해.’
그 사실이 칼라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금에야 밤마다 아벨라 몰래 음험한 짓을 하며 욕구를 풀 수 있다지만…….
‘만약 엄마에게 네프라 약초의 내성이 생겨 버리면?’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칼라일의 낯이 음울해졌다. 그는 시무룩한 얼굴로 들고 있던 스푼을 내려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가 됐든 제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관계의 개선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이대로 안주할 수 없었다.
“아가, 왜 그래. 입맛이 없니?”
밥을 먹다 말고 깨작거리는 그를 보며, 아벨라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건넸다. 그러자 아벨라를 어떻게 잡아먹어야 잘 잡아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궁리만 하던 칼라일은 화들짝 놀라 급히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냥 좀 체했나 봐요.”
“체했다고? 세상에 손이라도 따 줄까? 속은 좀 괜찮고?”
체했다는 말에 아벨라는 허겁지겁 칼라일 곁으로 다가가 아기 때처럼 배라도 살살 문질러 주려고 했다. 그러자 칼라일이 급하게 그녀를 밀어내며 대답했다.
“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고작 체한 것뿐이고 또…… 저도 이제 다 컸는걸요. 이런 건 안 해 주셔도…….”
제가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칼라일은 더 이상 아벨라에게 아이로 보이기 싫은 마음이었다. 어릴 때처럼 ‘엄마 손은 약손’이라도 해 주려는 그녀를 보며 저를 향해 다가오던 새하얀 손을 밀어냈다.
그러자 아벨라의 눈에 당황이 물들었다. 칼라일이 저를 밀어낼 줄은 몰랐던 듯하다. 하긴, 언제나 아벨라의 관심과 손길에 목말라 있던 그였으니까.
민망함을 숨기지 못한 아벨라는 입술을 달싹이며 뻗었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아…… 그, 그렇구나. 미안…….”
시무룩해진 그녀의 안색을 보며, 칼라일은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이러려는 의도가 아니었는데……. 칼라일이 안일했던 자신의 대처에 눈을 질끈 감고 스스로를 질책했다.
‘멍청이처럼 뭘 한 거야.’
뒤늦게 수습하기 위해 축 처진 아벨라에게 조심스럽게 몸을 붙였다.
“어, 어머니…… 죄송해요. 무안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아, 으응…… 그럼 알지. 죄송할 것 없어. 오히려 내가 미안해.”
그렇게 말한 아벨라는 작게 한숨을 흘렸다. 칼라일이 스스로의 행동에 후회하듯, 아벨라 또한 자책의 시간을 갖는 중이었다.
‘칼라일이 불쑥불쑥 날 안거나 몸을 붙일 땐 그렇게 당황한 티를 팍팍 냈으면서…….’
정작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칼라일의 배를 만지려고 했잖아? 대체 이게 무슨 경우 없는 행동이야. 바보 같아, 생각이 너무 짧았어.
‘만약 칼라일이 대뜸 내 배를 만지려고 했으면, 나도 놀랐을 거면서…….’
아벨라는 이중적이었던 자신을 탓하며 고개 숙였다. 민망해서 차마 칼라일과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어머니, 왜 그렇게 땅만 보세요.”
하지만 그런 아벨라의 모습에 칼라일은 더욱 초조해졌다. 저 때문에 그녀가 무안해한다고 오해한 덕이었다. 그는 제 눈을 피하는 아벨라를 보며 더욱 어쩔 줄 몰라 했다.
“저는…… 그러니까 불편하거나 싫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아이로 보이기 싫어서 그래서 그랬을 뿐이에요.”
칼라일은 변명하듯 허겁지겁 말을 이었다.
“보통 다 큰 아들의 배를 쓰다듬진 않으니까요. 그런 건 아이 때나 하는 거랬어요.”
“그건 그렇지만…….”
“저는 다 컸는걸요.”
칼라일이 조심스럽게 아벨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알아주세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에요.”
확실히 그렇게 말하는 칼라일의 눈은 어릴 때와 달리 꽤 진중하고 무거웠다. 음영이 짙게 드리운 눈가에선 추저분한 욕망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아벨라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말 그래서 그런 거야?”
“네, 정말이에요. 어머니께선 아직도 절 아이처럼 대하시니까…… 그게 조금 내키지 않았어요.”
“……그랬구나.”
하긴, 호칭도 엄마에서 어머니로 바꾼 걸 보면……. 아벨라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미안해.”
“아까부터 왜 그렇게 미안해하세요.”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평소 아가가 내 허리나 배를 조금만 만지려 들어도 화들짝 놀라 안 된다고 잔뜩 말을 늘어놓았으면서……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게 칼라일 네 몸을 만지려 했다는 게…….”
그녀의 말에 칼라일은 눈썹을 씰룩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아벨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끝을 얼버무렸다. 창피한 모양이었다.
“음, 저는 그런 것까진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칼라일이 눈을 가늘게 뜨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듣고 보니 조금 억울한 것 같아요.”
“역시 그렇지? 미안해.”
분홍빛 속눈썹이 바쁘게 위아래로 깜빡였다. 민망함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이었다.
그런 모습마저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칼라일은 아벨라의 손 틈으로 은근슬쩍 제 손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제 걱정은 너무 안 하셔도 돼요. 어머니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던 어린 애가 아니니까요.”
잡은 손을 장난스럽게 좌우로 흔들며 그가 살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벨라를 내려다보고 있는 붉은 눈동자에선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아벨라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귓가로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가 차분히 내려앉았다.
“이제는 제가 효도할 차례예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