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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44화 (45/82)

<044>

아벨라가 잠든 밤, 입맞춤보다 더한 짓들을 서슴없이 할 땐 언제고. 칼라일은 여인 손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사내처럼 굴었다.

한참의 뜸 들임 끝에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얼른 해 볼게요.”

그 말과 동시에 칼라일의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아벨라의 뒷목을 받쳐 안았다. 말캉한 입술이 서로 포개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따뜻하게 맞닿은 입술이 벌어지고 끈적한 혀가 기다렸다는 듯 아벨라의 입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수줍게 뺨 붉히며 쭈뼛거릴 땐 언제고, 입맞춤이 시작되기 무섭게 칼라일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버렸다.

그는 다소 거칠게 아벨라의 입 안 곳곳을 헤집으며 숨을 나눴다. 신이 나서 꼬리를 바삐 흔드는 칼라일과 달리, 난생처음 겪는 행위에 놀란 아벨라의 몸은 나무토막처럼 굳어 버렸다.

“흐으…….”

가냘픈 여체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칼라일은 발발 떠는 아벨라를 더욱 제 품에 가두며 잡아먹듯 그녀의 입 안을 휘저어 댔다.

살짝 고개를 틀어 보이기까지 하며, 꽤 본격적으로 잇몸과 치열을 훑기도 했다.

집요하게 저를 옭아매는 칼라일의 행동 탓에 아벨라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간질간질 아랫배가 아찔하게 조여드는 것 같았다. 예민한 점막에 칼라일의 혀가 느껴질 때마다 몸이 움찔 떨렸다.

입술뿐만 아니라 온몸에 맞닿은 칼라일의 몸마저 단단한 근육으로 꽉 차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처음 만났던 어린 시절의 칼라일이 떠올라 죄책감에 가슴이 지끈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작고 귀엽던 아이가 이렇게 될 줄은…….’

분명 처음 만날 땐 이렇지 않았는데……. 아벨라가 과거를 회상하며 꿈틀대는 그의 등 근육을 의도치 않게 더듬거렸다.

타액이 섞이고 뜨거운 혀가 서로 뒤엉켰다. 살짝 벌어진 잇새로는 묘한 숨소리가 흘러나왔고 방 안의 공기는 어딘지 후덥지근해졌다.

아벨라는 이 행위가 마치 정말 연인 사이에나 할 법한 입맞춤이라고 생각했다.

각인을 새기는 데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해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이로써 그의 불안을 덜어 줄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머지않아 두 사람 사이로 짧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묘한 감각과 함께 아벨라는 제 몸에 무언가가 새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해…….’

누군가 깃펜으로 제 몸에 낙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나 생생한지, 몸이 간지러운 기분도 들었다. 그 낯선 감각으로부터 도망치듯 그녀는 칼라일의 품속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그러자 칼라일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더욱 꽉 감싸 안았다.

머지않아 뿜어져 나오던 빛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몸에 무언가가 새겨지는 듯하던 생소한 촉감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알려 주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칼라일이 말한 각인 행위가 끝이 났다는 걸.

하지만 왜인지 그는 몸을 떼어 낼 생각을 않고 있었다. 각인이 끝난 게 분명함에도,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허겁지겁 아벨라의 입술을 탐했다.

‘어, 언제까지 하려는 거야.’

당황한 아벨라가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산처럼 크고 단단한 몸은 꿈쩍도 않았다.

아벨라는 한참이나 물 밖에 내진 물고기처럼 버둥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칼라일은 은근하게 그녀의 등허리를 쓰다듬기만 할 뿐이었다.

“그, 그만……!”

헐떡이는 숨소리와 함께 아벨라가 겨우겨우 그를 거부하는 말을 뱉었다. 그러자 잠시 멈칫한 칼라일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여린 살점을 훑고는 느리게 입술을 떼어 냈다.

“각인은 진즉 끝난 거 아니야……?”

아벨라가 은근한 질책을 담고 물었다. 칼라일은 저도 잘 모르겠다는 듯 어색하게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게걸스럽게 아벨라를 탐할 땐 언제고, 입술이 떨어지고 마주한 칼라일은 동정을 바친 숫총각처럼 수줍어 보였다. 그는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엉망이 된 제 입가를 정돈했다.

“많이…… 기분 나쁘셨어요?”

칼라일이 슬그머니 아벨라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저는 좋았어요.”

한 치의 거짓 없는 순수한 말이었다. 그는 때 묻지 않은 아이처럼 천진하게 제 감상을 늘어놓았다.

“만약 다른 암컷이랑 이런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면 불쾌한데…… 엄마랑 하는 건 이상하게 좋아요. 전부 다요.”

그 말에 아벨라가 멈칫했다. 과연 지금 칼라일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올바른 걸까? 혼란스러웠다.

어려서부터 제 품에서 자란 아이가, 그렇게 작고 사랑스럽던 칼라일이 자신과 입을 맞추며 뺨을 붉히고 좋다고 말하다니. 아벨라는 절로 눈이 질끈 감겼다.

‘이러면 안 돼, 잘못됐어.’

하지만 아벨라는 상황의 기이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명확하게 마주 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도 칼라일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만약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춘다고 생각하면…….’

아벨라는 그나마 저와 가깝던 또래 이성인 과일가게의 한스를 떠올렸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방금 칼라일과 한 것처럼 한스와도 입을 맞추고 혀를 섞는다고 상상해 보자…….’

하지만 상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상상만으로도 행위가 역겹게 느껴진 탓이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끔찍해.’

벌레가 제 입술을 기어 다니는 것처럼 불쾌했다. 그녀는 곧장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한스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방금 같은 행위를 그와 한다고 생각하니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한스의 외모가 심하게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대체 왜…….’

칼라일은 싫지 않은데, 한스는 싫어.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아벨라는 애써 부정했다. 그래, 칼라일과 나는 가족이니까. 어려서부터 내가 기른 아이니까. 그러니까 싫지 않은 건 당연한 거야.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

이것도 모성애의 한 종류일 뿐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불편함이 덜어졌다. 누구의 타액인지 모를 것으로 축축한 입술을 괜스레 한번 훑으며 아벨라가 옅게 웃었다.

유일한 내 가족. 아들처럼 소중히 기른 아이. 이 세상 그 어떤 금은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

“이제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지?”

다정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칼라일 또한 미소로 화답했다.

“네, 이제 안심할 수 있어요. 엄마와 평생 함께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칼라일은 그녀의 목덜미에 살갑게 뺨을 비볐다.

“감사해요, 정말로요.”

아벨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제게 몸을 기댄 칼라일을 토닥였다. 언제 불안해했냐는 듯, 편안해진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벨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보냈다.

‘괜찮아, 잘한 거야.’

기분 좋게 흔들리는 그의 꼬리를 보며 아벨라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칼라일이 제 품에 안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 * *

일과를 마치고 아벨라와 함께 침대에 몸을 누인 칼라일은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근래 그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지.

제가 그토록 원하던 반려의 각인을 이렇게 쉽게 받아냈는데, 어떻게 신나지 않을 수 있을까.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아이를 낳고 싶던 마음도 이제는 꽤 사그라들었다.

뭐가 됐든 아벨라와 자신이 헤어질 일은 없어졌다. 각인을 새긴 이상, 자신은 아벨라와 함께 생을 마감해야 했고, 그녀가 저를 피해 어디론가 도망친다 해도 반려의 결속 덕에 위치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제 불안해할 이유도, 걱정거리도 사라진 셈이었다.

“아가, 요즘 기분이 좋아 보여.”

이불 속에 몸을 파묻고 하품을 한 번 크게 한 아벨라가 작게 말했다. 칼라일은 미소 띤 얼굴로 이불을 끌어당겨 그녀에게 덮어 줄 뿐이었다.

“네, 이제 어머니와 헤어질 일이 없어졌으니까요.”

“바보, 그게 그렇게 좋아?”

“당연하죠.”

턱을 괴고 저를 바라보며 나직이 웃는 모습은 퍽 자상했다. 얄궂게 접힌 붉은 눈이 순진해 보이기도 했다.

칼라일은 아벨라의 잠자리를 정돈해 주며, 벽난로에 장작을 두어 개 더 던져 넣었다. 그러자 따뜻한 공기가 침대까지 훅 끼쳐 왔다.

아벨라는 세심한 칼라일의 행동을 보며 무거워진 눈꺼풀을 찬찬히 내렸다.

사실 아벨라 또한 각인을 나눈 후 꽤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평소 칼라일과 제가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점이 내심 거슬렸던 그녀였다. 최근 에샤가 했던 말이 꽤 아프게 가슴에 남아 있기도 했고.

‘하지만 이젠 우리 사이에 무언가 끈끈한 유대가 생긴 것 같아.’

비록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진짜 가족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라일은 늘 그렇듯 늑대의 모습으로 침대 모퉁이에 몸을 말았다.

여느 때처럼 포근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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