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당황한 칼라일은 움직임을 멈추고 시선을 고정했다. 놀란 감정을 추스르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니 밀려들어 오는 비릿한 냄새.
열락에 취해 있던 눈동자에 이성이 깃들고, 이성이 깃들기 무섭게 눈빛은 혼란으로 물들었다.
“어, 엄마?”
그는 아벨라가 잠들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그녀를 불렀다.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머리가 멍했다. 칼라일은 한참이나 바보처럼 눈을 끔뻑이기만 했다. 벌어진 흰 허벅지. 제 것을 받느라 발개진 구멍. 그리고 그 틈에서 흐르는 옅은 피.
그제야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칼라일은 헐레벌떡 처박았던 성기를 뽑아냈다. 그러자 혈흔이 더 명확하게 보였다.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는 기분이었다.
“죄, 죄송…… 죄송해요, 죄송해요…….”
칼라일이 두서없이 사과의 말을 뱉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단순히 아벨라와 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짝짓기를 하려던 것뿐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아벨라의 피를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처가 난 게 틀림없어.’
칼라일은 다급히 음순을 잡아 벌리며 질구 주변을 확인했다. 육안으로 무언가를 알아낼 순 없었지만, 그곳에서 피가 나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원인 또한 자신인 게 분명했고.
어떡해야 하지? 약초? 상처에 좋은 약초를 발라야 하나? 그런데…… 이런 중요한 곳에 함부로 약초를 발라도 되는 건가?
칼라일은 고장 난 인형처럼 허둥거리기만 할 뿐, 제가 해야 할 일을 무엇 하나 제대로 갈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확실한 건 한가지였다.
‘내가 엄마를…… 다치게 했다는 거.’
물론 언젠가 있을 아벨라와의 처음을 상상하며, 수월할 거라 기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피까지 볼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칼라일은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입술을 세게 씹었다.
“죄송…… 정말, 정말 죄송해요, 엄마…….”
아벨라에게 닿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과의 말을 반복했다. 그러고는 옷매무시를 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을 가져왔다. 우선 엉망이 된 아벨라의 다리 사이부터 깨끗하게 정리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칼라일은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벨라의 음부를 닦아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나 버린 상처가 아무는 것도 아니었다.
하얀 수건에 핏자국이 찍힐수록 칼라일의 낯은 점점 착잡해져만 갔다.
한심한 새끼, 무능력한 새끼, 짝짓기마저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머저리 같은 새끼.
칼라일은 스스로를 질책하며 입 안 여린 살을 짓씹고 또 짓씹었다.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안일했다. 질 낮은 도발에 넘어가서 어머니께 상처나 남기고…….
‘도대체 난 잘하는 게 뭐야.’
무엇 하나 제대로 돼먹은 게 없어.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비록 추접하게 밤마다 아벨라의 몸을 탐하고 맛보며 음습한 욕정을 채워 나가는 신세였지만, 이런 식으로 상처를 남기고 싶었던 순간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칼라일은 피 묻은 수건까지 모두 빨아 널고 난 후에야 다시금 침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원망감은 여전했다.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편안한 얼굴로 잠든 아벨라를 보니 죄책감이 더욱 밀려왔다. 가슴께가 욱신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죄송해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칼라일은 그렇게 말하며 작은 여체를 품에 안았다. 한참을 그녀에게 사죄해 보아도 도저히 마음의 짐이 덜어지지 않았다.
잔뜩 부풀어 딱딱하던 좆이 죽은 건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잠든 아벨라를 품에 안고 눈꺼풀을 내리니, 또다시 겨우겨우 잊었던 과거가 그를 덮쳐 왔다.
-다리 병신 새끼, 저 꼴로 좆질은 제대로 할 수 있나 몰라.
-좆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누가 절름발이한테 보지 대 준다고.
-그래서 도대체 저 병신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뭔데?
-할 줄 아는 게 있었으면 진즉 족장님께 버림받지 않았겠지.
-없으니까 저렇게 사는 거야. 늑대로 태어나 잡초 뜯어 먹으면서 토끼마냥.
아벨라를 품에 안은 손에 힘이 더욱 바짝 들어갔다. 칼라일은 머릿속에 울려 오는 과거의 잔상들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야.’
난 정말 무엇 하나 제대로 쓸모 있는 구석이 없으니까.
‘그런 나를 치료해 주고 품어 준 엄마는…….’
어쩌면 어머니도 후회하고 계신 건 아닐까? 나 같은 걸 들였다고…….
평소엔 쫑긋 올라서 있던 귀도, 기분 좋게 흔들리던 포슬한 꼬리도. 오늘은 축 처져 버렸다.
침실의 작은 창으로는 푸른 달빛이 두 사람을 감쌌다. 아벨라를 품에 안고 있었음에도 칼라일의 표정은 도저히 풀어질 줄을 몰랐다.
피를 본 게 꽤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한참이나 굳은 얼굴로 속상함 섞인 한숨을 뱉어댔다.
결국 칼라일이 오랜 시간 고대해 오던 아벨라와의 첫 짝짓기는 이렇게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 *
아벨라는 고소한 스튜 냄새와 함께 눈을 떴다. 침대가 허전해서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멀리 요리를 하는 듯한 칼라일의 뒷모습이 눈에 담겼다.
“아가.”
아벨라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늘 그렇듯 칼라일의 곁으로 가 아침 준비를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 평소와 달랐다.
“읏……!”
땅에 발을 딛기 무섭게 다리 사이로 뻐근한 통증이 몰려왔다. 조금 따가운 것 같기도 했다.
당황한 아벨라는 신음하며 비틀거렸다. 그러자 멀찍이서 아침 준비를 하던 칼라일이 놀란 얼굴로 순식간에 달려왔다.
“어, 어머니!”
“으으……. 아가, 좋은 아침이야.”
“괜찮, 괜찮으세요? 어디가 아프신 거예요?”
평소에도 제게 세심하던 칼라일이었는데, 오늘따라 더 과민하게 반응하는 기분이었다. 아벨라는 민망하다는 듯 작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아프긴 무슨. 그런 건 아니고…… 어제 가게 일이 조금 힘들었나? 다리……가 조금 불편하네.”
아벨라는 차마 칼라일에게 음부가 따갑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다리라고 둘러댔다. 그러자 칼라일의 낯이 미묘해졌다.
“죄송…… 죄송해요…….”
“응? 뭐가 또 죄송해. 아가, 네가 죄송할 거 하나 없어.”
“그래도…… 아니에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그늘진 그의 얼굴을 보며 아벨라가 정말 괜찮다는 듯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칼라일의 머리 위로 귀가 쫑긋, 솟아났다.
“잘못하긴 뭘 잘못해. 아침부터 엄마 먹으라고 이렇게 스튜도 끓여주고. 기특하기만 한걸?”
“……아니에요.”
칼라일은 아벨라의 환한 낯을 보며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죄책감에 도저히 그녀와 눈을 맞출 수 없었다.
“그런데 아가. 불 위에 뭐 얹어 놓은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의기소침하던 칼라일이 화들짝 놀라 급하게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아벨라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커다란 덩치로 작은 냄비를 들고 허둥거리는 게 제법 사랑스러웠다.
생긴 건 조금 사납게 생겼지만, 보면 볼수록 칼라일은 속이 여리고 따뜻한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벨라는 테이블 위에 차려진 아침거리를 보며 살포시 미소지었다.
“항상 고마워.”
진심이었다. 아벨라에게 칼라일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아주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칼라일은 마냥 웃으며 화답할 수 없었다. 진심 어린 아벨라의 말에 자신이 더 초라해진 기분이었다.
“……아니에요. 정말 고마워하실 것 없어요.”
지난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도, 아벨라는 제게 고맙다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친우에게 자신이 어떤 협박을 했는지 모두 알아도?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제가 양심 없는 짐승 새끼라지만 그 정도 사리 분별은 할 줄 알았다.
씁쓸한 현실에 칼라일은 고개만 떨굴 뿐이었다.
* * *
“어, 어머니, 정말 괜찮으세요?”
칼라일이 홀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아벨라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나 몰라.”
“하지만…… 하지만 아까 분명히 다리가 불편하시다고…….”
“그건 잠깐 그랬을 뿐이야. 이젠 정말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아벨라는 아직도 조금 허리와 음부가 따끔거렸으나 애써 괜찮은 척했다. 제 걱정을 하느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칼라일을 보니, 더욱더 불편한 걸 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렇게 걱정하는데…….’
사실대로 털어놓으면 지금보다 더 걱정할 거야. 괜히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아벨라가 주먹을 세게 말아쥐며 태연한 척 굴었다. 하지만 괜찮을 리 없다는 걸 아는 칼라일은 그녀가 그럴수록 속만 타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