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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30화 (31/82)

<030>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칼라일은 여전히 끈적한 입맞춤에 취해 있었다. 아벨라를 놓아 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멋대로 침범해 온 그의 혀는 아벨라의 입 속을 휘저어 대는 것으로도 모자라, 타액을 뒤섞고 숨을 나눠 가졌다. 젖가슴을 움켜쥔 손은 이리저리 조물거리며 은근히 발딱 선 유두 주변을 배회하기도 했다.

“카, 칼라일……!”

기어코 그를 떼어 낸 아벨라가 버럭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네?”

“이게 지금 무슨……!”

아벨라가 몸을 움츠리며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훑었다. 그러자 칼라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책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엔 이런 걸 한다고 했는 걸요.”

“……뭐?”

“엄마도 저를 사랑한다 하셨잖아요.”

순간 멍해진 아벨라가 입술을 달싹였다.

“저도 엄마를 사랑해요.”

“그건…….”

“그래서 그런 것뿐인데…… 혹시 제가 또 무언갈 실수한 건가요?”

새하얀 눈밭처럼 순수해 보이는 얼굴과 축 처진 안쓰러운 귀. 스스로를 자책하며 눈치를 살피기 바쁜 처연한 눈까지.

분명 의심할 여지 없이, 칼라일의 행동엔 추저분한 흑심 따위 묻어 있지 않은 게 틀림없는데…….

묘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아벨라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혼란으로 물들었다. 하나 아벨라가 더 깊은 생각을 이어나가기 전에, 칼라일이 다시금 그녀를 품에 안았다.

“죄송해요.”

“…….”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을게요. 저는 그냥…… 엄마랑 입 맞추고 조물조물하면 기분 좋아서…… 엄마도 좋아하실 줄 알고……. 그래서 그랬는데……. 제가 틀렸나 봐요. 죄송해요.”

묘하게 물기가 묻어 나오는 목소리는 꼭 상처받은 강아지 같았다. 멋대로 입을 맞추고 가슴을 움켜쥔 쪽은 칼라일 쪽인데도 불구하고.

‘그래, 칼라일이 뭘 알겠어.’

평범한 인간 사내도 아니고, 늑대잖아. 사람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자.

결국 오늘도 미안함을 느끼는 건 아벨라 쪽이었다.

아벨라는 묘한 기분을 떨쳐 내며 칼라일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기분…… 많이 나쁘셨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안 된다고, 이런 건 자신과 하는 행동이 아니라고. 단호하고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는 걸 아벨라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어쭙잖게 하나둘 받아 주다 보면 칼라일의 투정은 점점 심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상하게 선뜻 입이 열리지 않았다.

‘……상처받을지도 몰라.’

언제나 내 눈치를 살피기 바쁜 칼라일이니까. 게다가 아직 칼라일의 세상엔 나를 제외하면 별다른 게 없으니까. 그래서 이러는 걸 거야.

아벨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완연한 사내의 몸을 한 칼라일을 어린아이 보듯 바라보려 애썼다.

그가 저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 * *

그날 밤. 아벨라가 잠든 걸 확인한 칼라일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늘 그렇듯, 잠든 그녀의 음부라도 쑤시려는 건가 했는데…… 오늘 그가 보이는 행동은 다소 낯설었다.

칼라일은 어딘지 흉흉한 눈을 하고 잠든 아벨라를 뒤로한 채 집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코를 씰룩이며 에샤라 불렸던 그 친구의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았다.

냄새가 흐렸지만 못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인근에 위치한 작은 집 몇 군데를 기웃거리니, 근방에서 나는 냄새로 어느 집이 에샤의 집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걸 확인한 순간 칼라일은 동족을 살려 둘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어두컴컴한 밤공기에 몸을 숨기며, 그가 송곳니를 번뜩였다. 시선 끝에는 에샤의 작은 오두막집이 담겨 있었다.

에샤는 아직 잠들지 않은 건지, 작은 불빛이 오두막집 창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칼라일은 가만히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불이 꺼질 때까지.

* * *

그렇게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이 자정을 훌쩍 넘겨서야, 에샤의 오두막집 불이 꺼졌다.

불 꺼진 집을 가만히 지켜보던 칼라일은 불시에 몸을 움직였다. 날렵하게 에샤의 집 문 앞으로 향한 그는 어려울 것 없이 단단하게 잠긴 문 손잡이를 부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잠든 에샤의 뒷모습과 그녀의 곁에 몸을 말고 있는 회색 털뭉치 하나였다.

칼라일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 털뭉치의 주인이 누구인지 찾아내기 위해 기억을 되짚었다. 제가 그토록 잊고 싶어 마지않던 과거의 기억을.

끼익. 칼라일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오래된 나무 바닥이 비명을 질렀다.

집주인인 에샤는 깊은 잠에 빠져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으나, 짐승인 늑대는 달랐다.

여태 죽은 듯 쓰러져 있던 회색 짐승이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다 붉은 눈을 번뜩이는 칼라일과 시선이 맞부딪쳤다.

조그마한 털뭉치가 비틀거리며 눈을 떴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맡는 동족 냄새에 검은콩 같은 코를 씰룩이며 미간을 구겼다.

여태 죽은 듯 늘어져 있었는데, 일어나 코를 킁킁거리는 것만으로도 제법 큰 변화다.

칼라일은 아무런 말 없이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회색 털뭉치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이를 드러냈다.

“크르…….”

그래봤자 약해진 지금의 몸으로는 칼라일이 작정하고 앞발 한 번만 휘둘러도 간신이 이어져 있던 생명의 끈이 끊어질 게 훤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칼라일은 여유로이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러고는 한치의 동정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오랜만에 마주한 동족을 바라봤다.

“……바퀴벌레 같은 게 용케도 살아 있었군.”

그 말에 이를 드러내던 동족이 흠칫하며 몸을 굳혔다. 동족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늑대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외형을 바꾸었다.

작은 아이의 모습이 된 늑대는 엉거주춤하게 서서 잠든 에샤의 앞을 가로막고는 칼라일을 노려보았다.

칼라일은 같잖다는 듯 웃으며 입매를 비틀었다.

“이상하단 말이지. 분명 나는 한 놈, 한 놈 모두 목을 물어뜯어 죽였는데…….”

“…….”

“동족이 살아 있을 줄이야.”

올라간 입꼬리가 제법 저열해 보였다. 이래서야 마치 악역은 칼라일 쪽 같았다.

그래, 눈앞의 저 회색 털뭉치는 동족이 맞다. 원래도 확신하고 있었지만 이 작은 오두막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집에서 늑대 냄새가 역할 만큼 풍겼으니까.

자신의 오해가 아닌 걸 알아차린 순간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저 회색 털뭉치의 목을 낚아챈 뒤, 곧장 밖으로 나와 물어뜯으면 될 일이었다.

발소리를 죽인 칼라일이 곧장 동족을 향해 뜀박질했다. 그러자 잿빛 머리칼을 한 작은 사내아이가 에샤의 앞을 막으며 몸을 움츠렸다.

마치 저는 죽여도 에샤는 건들지 말라는 몸짓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일까.

“레오……?”

살벌하던 집 안에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태 죽은 듯 잠들어 있던 에샤였다.

잠결인 건지, 팔을 허우적대던 에샤는 제 앞에 서 있던 칼라일의 동족을 품에 쏙 그러안았다. 그러고는 다시금 수마 속으로 빠져들었다.

덕분에 그의 목덜미를 낚아채려던 칼라일은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제 동족을 품에 안은 인간이 아벨라의 가까운 친우라는 사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금 에샤가 잠에 빠졌을 때쯤, 칼라일이 입매를 비틀며 조소했다.

“레오라…….”

“…….”

“개새끼한테나 어울릴 법한 이름이지.”

그 말에 에샤에게 안겨 있던 동족이 입을 열었다.

“……칼?”

칼. 붉은색.

늑대 무리에서 생활할 적 칼라일의 이름이었다. 뭐 정확하게는 아무도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아 대충 불렸던 별칭이었지만…….

칼라일은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도 아무런 반응을 않았다. 그저 죽일 듯 자신을 부른 동족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칼라일은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한참 동안 그를 바라봤다. 방 안에는 잠든 에샤만 모르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 했더니…….”

칼라일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을 이었다.

“……레든.”

족장이었던 어머니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자신의 형제.

“형님이셨군.”

레든이었다.

그래, 지금은 어려진 모습으로 벌벌 떨고 있었지만 확실했다. 그는 저와 한배에서 나고 자란 형제였다.

하지만 그런 건 칼라일에게 중요치 않았다.

자신의 어미도, 아비도 모두 갈기갈기 찢어 죽였던 그였다. 고작 형제 따위에 머뭇거릴 만큼 정이 넘치지 않았다.

모처럼 떠오르는 옛 기억에 칼라일이 쓰게 웃었다.

레든. 그는 한때 동족 중에서 그나마 가까웠던 이였다.

무리에서 배척당해 구석에서 홀로 벌레만 먹으며 생활하던 자신에게 이따금 토끼나 꿩 따위를 잡아다 주곤 했던 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사이가 멀어진 이유라면…….

제가 경계심을 낮추기 무섭게, 레든은 기다렸다는 듯 가져다주던 먹이에 독극물을 발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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