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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25화 (26/82)

<025>

다른 수컷이라니? 갑자기 무슨 난데없는 소리를…… 아벨라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드러낸 송곳니도 오늘따라 위협적으로만 느껴졌다. 붙잡힌 손목은 어찌나 아픈지 뼈까지 욱신거릴 지경이었다.

“아, 아파……. 이것부터 놔!”

아벨라가 울먹이며 그의 손을 쳐냈다. 그러자 뒤늦게 칼라일이 짧은 탄식을 흘리며 급하게 손을 뗐다.

“죄, 죄송…… 죄송해요. 그러니까 그게…… 엄마한테 다른 늑대 냄새가 나서…….”

다른 늑대?

아벨라는 전혀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늑대 같은 거 만난 적 없어. 친구를 만났을 뿐이야. 곁에 있던 건 친구가 기르는 젖소 한 마리밖에 없었고…….”

겁에 질린 아벨라가 팔뚝을 매만지며 벌벌 떨었다. 그제야 칼라일은 제가 실수했음을 깨닫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죄송…… 죄송해요…….”

“…….”

“죄송해요, 정말…….”

가느다란 팔목에는 붉은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칼라일은 입술을 짓씹으며 그녀에게 조아렸다.

“죄송해요……. 순간 동족의 냄새가 나서……. 그래서 실수했어요…….”

“동족?”

“…….”

“동족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묘함을 감지한 아벨라가 놓치지 않고 캐물었다. 칼라일은 곤란하다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칼라일. 너 방금…… 엄청 무서웠던 거 알아?”

“……죄송해요.”

이까지 드러내며 눈을 번뜩이던 칼라일의 모습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생소하고 두려웠다. 칼라일이 그대로 제게 이를 박아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알몸으로 맹수 앞에 내던져진 그런 기분이었다.

“네가 왜 그런 건지 납득 가게 설명해. 안 그러면 엄마 정말 화낼 거야.”

단호하게 말하는 아벨라의 목소리는 아직도 살짝 떨렸다. 그만큼 놀랐다는 뜻이었다.

하나 그럼에도 칼라일은 입술을 달싹이기만 할 뿐,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에게 동족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아벨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에게 대답을 종용하듯 말했다.

“어서 말해.”

“…….”

“안 그러면 당분간 같이 목욕하는 거 없어. 목욕이 뭐야, 같이 자지도 않을 거야. 집에도 못 들어오게 앞마당에 묶어 놔 버릴 거야.”

“어, 엄마…….”

“농담하는 거 아니야.”

아벨라가 주먹을 세게 움켜쥐고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방금…… 방금 나한테 이빨 드러냈잖아.”

그녀는 안 그래도 작은 몸을 더욱 움츠리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칼라일을 응시했다.

“아니에요……! 이, 이빨은…… 이빨은 본능적으로 드러난 거고…… 절대 물려고 한 게 아니에요……!”

“…….”

“엄마, 저는 정말…….”

늘 동글동글 유순하던 눈매가 오늘따라 매섭게 그를 응시했다. 칼라일이 제게 공격성을 보인 건 아벨라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싸늘하게 식은 아벨라의 눈을 보며 칼라일은 자신이 여기서 더 감정적으로 빌고 애원해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의 아벨라는 무척 날을 세우고 있었다.

결국 그는 체념하듯 고개를 떨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예요.”

“…….”

“그러니까…… 저처럼 늑대와 인간을 오갈 수 있는 동족들이 있었어요. 개체 수는 많지 않았지만…….”

칼라일이 주섬주섬 제 옷을 벗으며 상체에 가득한 상처들을 내보였다.

“……저는 동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원래 다 그렇잖아요. 저 같은 다리 병신은 무리에서 도태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야생에서는.”

“…….”

“그래서…… 여하튼 그래서 전 동족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했어요. 이 상처들도…… 다…… 동족들이 낸 거고……. 또…… 그때…… 죽을 뻔했던 것도 동족들이…… 그런 거라서…….”

칼라일이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으며 울먹였다. 하지만 지금 아벨라에게 제 눈물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악착같이 울음을 집어삼켰다.

“여튼 그래서…… 그래서 저는…… 동족들이…….”

동족들이 싫어요, 혐오스러워요, 그래서 전부 제가 죽여 버렸어요.

하나하나 정성껏 목을 물어뜯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씹어 죽였어요. 그랬으니 분명 단 한 놈도 살아 있어선 안 되는데. 살아 있는 건 저밖에 없어야 하는데…….

엄마한테서 다른 동족의 냄새가 났어요.

칼라일은 차마 그녀에게 사실대로 토로할 수 없었다. 지금 저를 보고 겁먹은 아벨라에게 이런 것까지 전부 말해 줬다가는 정말 충격받고 자신을 멀리할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동족들이…… 무서워요.”

칼라일이 선택한 쪽은 이번에도 역시나, 동정표를 사는 쪽이었다.

아벨라는 마음이 약하니까. 안쓰러운 생명에게 곧잘 동정심을 갖곤 했으니까.

지금은 사실대로 털어놓기보다, 불쌍한 척 동정심을 사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순간 엄마한테 동족의 냄새가 나서…… 두려웠어요.”

칼라일은 물기로 습해진 눈가를 닦아 내며 훌쩍였다. 아벨라는 가만히 그의 말을 듣다 작게 한숨을 토했다.

“……그랬구나.”

더 듣지 않아도 알 거 같다는 듯, 아벨라가 조심스럽게 칼라일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칼라일이 끅끅 울음을 참으며 힘겹게 말을 뱉었다.

“죄, 흑, 죄송…… 죄송해요…….”

“…….”

“절대 엄마를…… 흑, 위협, 하려던 거 아니었는데…… 흑, 제가, 정말…….”

아벨라는 칼라일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그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는 아주 작은 새끼 늑대치고 수많은 상처로 가득했었다. 그리고 조금 자란 후에는 곧잘 스스로를 다리 병신이라 폄하하며 이리저리 제 눈치를 살피기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랬기에 아벨라 또한 바보가 아닌 이상 칼라일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는 걸 눈치챌 수는 있었다.

하나 그가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서 여태 외면하고 있었는데…….

‘역시 그랬어.’

다리가 안 좋아서 동족들에게 괴롭힘을…….

아벨라는 씁쓸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두 팔을 벌렸다.

“이리 와.”

그러자 칼라일이 축축하게 젖은 눈으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어서.”

아벨라가 얼른 오라는 듯 고개를 까딱이자, 칼라일은 그제야 늑대의 모습으로 바꾸며 달려가 아벨라의 품에 안겼다.

순간 묵직한 칼라일의 몸뚱이에 아벨라가 몸을 휘청거렸다. 그러다 이내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다행히 크게 아프지 않아서 아벨라는 제게 안긴 칼라일을 가만히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아벨라에게 안겨 복슬한 뺨을 이리저리 문대던 그는 미안하다는 듯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그녀의 얼굴을 핥았다. 까슬한 늑대의 혀가 아벨라의 눈, 뺨, 코, 입 가리지 않고 온 곳곳을 핥아 댔다.

“푸흐…… 흐, 가, 간지러워!”

“끼잉…… 낑…….”

그럼에도 칼라일은 낑낑 약한 소리를 흘리며 미안하다는 듯 연신 그녀를 할짝였다.

마치 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안달 난 강아지처럼 몸을 이리저리 잔뜩 씰룩이기도 했다. 그는 이따금 깽깽거리며 짖기도 하다가, 아벨라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그녀 앞에 배를 까고 발랑 드러눕기까지 했다.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에 아벨라가 쪼그리고 앉아 킬킬 웃으며 칼라일의 배를 쓰다듬었다.

칼라일은 헥헥거리며 얌전히 그녀의 손길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 배를 내보이는 건 개과 동물들이 복종할 때 하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벨라는 복슬한 칼라일의 털을 만지며 웃어 보였다.

“그래도 다음부터 그러면 안 돼.”

아벨라의 말에 대답하듯 칼라일이 컹! 하고 한 번 짖었다.

“정말 무서웠단 말이야.”

“끼잉…….”

칼라일은 시무룩하게 아벨라를 응시했다. 눈가에는 죄책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아벨라를 바라볼 무렵일까. 칼라일이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난 건지 대뜸 사람으로 모습을 바꿨다.

눈 깜짝할 사이 커다란 털뭉치가 성인 남성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아벨라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제 송곳니를 뽑아 버릴까요?”

“……뭐?”

“엄마가 무서워하지 않게, 제가 날카로운 이를 모두 뽑아 버릴게요!”

아벨라는 제가 무얼 들은 건지 몰라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 다시금 칼라일의 말을 곱씹고는 놀라 숨을 헉 들이마셨다.

‘이를 뽑겠다니. 멀쩡한 생니를……!’

천진하게 웃으며 생니를 뽑겠다는 말에 아벨라가 경악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절대 안 돼!”

“네? 하지만…….”

“너 생니 뽑는 게 얼마나 아픈지 아니? 피가 철철 나고 아파서 눈물도 잔뜩 날걸? 아가가 좋아하는 고기도 편히 못 씹어!”

놀라 주절거리는 아벨라의 말에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칼라일은 가만히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엄마가 무서웠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상관없어요. 저는 엄마가 원한다면 산딸기만 먹으면서 살 수도 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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