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20화 (21/82)

<020>

칼라일은 언젠가 제 본 모습으로 아벨라와 교접할 날을 상상했다.

2 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짐승의 몸으로, 아벨라를 품에 가둔 채, 검은 털뭉치 틈으로 비죽 솟아 나온 붉은 살덩이를 아벨라에게 쑤셔 박고 싶었다.

인간의 것과 완전히 다르게 생긴, 뾰족하고 돌기 가득한 늑대의 좆을 저 뽀얀 둔부 사이로 무자비하게 찔러 넣고 싶었다.

이건 아직은 결코 꺼낼 수 없는 칼라일의 본심이었다.

* * *

잠에서 깬 아벨라는 기지개를 켜며 끄으응, 앓는 소리를 흘렸다.

“하아암…….”

“일어나셨어요?”

그러자 먼저 일어나 있던 칼라일이 미지근한 물을 건네며 살갑게 말을 붙였다.

“아가, 일어나 있었어?”

“네, 어머니가 무척 깊게 잠드신 거 같아서…… 그래서 못 깨웠어요.”

“맞아, 이상하게 엄청 푹 잔 기분이야. 글쎄 몸도 완전 날아갈 거 같은 거 있지?”

아벨라가 홀가분한 몸에 대해 조잘거리며 쪼르르 부엌으로 향했다.

“아침은 제가 모두 준비해 놨어요.”

“아, 고마워.”

식탁 위에는 칼라일이 준비해 둔 소박한 아침거리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반숙 달걀과 식빵 그리고 산딸기 잼이었다.

“아가는? 배 안 고파?”

아벨라가 식빵에 산딸기 잼을 듬뿍 바르며 물었다. 어느새 그녀 맞은 편에 앉은 칼라일은 그저 방긋 웃기만 할 뿐이다.

“저는 먹었어요.”

“정말? 오늘 엄청 일찍 일어났나 보네?”

“그보다 어머니, 오늘도 같이 가게에 가는 거 맞죠?”

“그럼! 물론이지.”

아벨라가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칼라일 또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기뻐요. 더 이상 혼자 집에서 어머니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게…….”

칼라일이 은근히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살짝 음울하게 가라앉은 눈매는 늑대라기보다 버림받을 위기에 놓인 강아지 같아서, 아벨라로 하여금 동정심이 일게 했다.

“미안해…… 그동안 혼자 집에 있느라 많이 심심했지?”

“아니에요, 저는 어머니랑 함께할 수만 있다면 낮 시간에 혼자 있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걸요.”

“정말?”

“네, 정말요.”

아벨라가 그를 칭찬하듯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 그러자 칼라일이 천진하게 웃어 보였다.

지난밤에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아벨라는 그저 환히 웃는 칼라일이 어여뻐서 함께 싱글벙글 미소지을 뿐이었다.

* * *

가게에 나가기 전, 빠르게 샤워라도 하기 위해 홀로 욕실에 들어온 아벨라는 옷을 벗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응……?’

이게 뭐지?

방금 벗은 아래 속옷에 백탁색의 뿌연 액이 조금 묻어 있는 게 아니던가! 게다가 시간도 꽤 된 건지, 말라비틀어지기까지 했다.

아벨라는 제 몸에서 이런 불순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인의 음부에서 나오는 액은 늘 투명했으니까.

난생처음 있는 일에 당황한 그녀는 한참 동안 속옷을 들고 눈을 끔뻑였다.

‘꼭 그것 같아…….’

사내들이 사정할 때 나온다는 그것.

아벨라 또한 실제로 본 적은 없었으나, 책에서 읽어 이론상으로는 어떤 색을 띠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왜 내 속옷에……?’

이상했다. 액이 묻어 있는 곳은 바깥쪽도 아닌, 제 음부가 맞닿은 부분이었다. 마치 자신의 구멍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내 몸에서 나온 건가?’

아벨라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벗은 옷들을 빨래통에 집어넣었다.

‘에이, 별일 아니겠지.’

고작 색이 조금 짙어진 것뿐인데 뭐.

아벨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쁘게 출근 준비를 시작할 뿐이었다.

* * *

“어라……?”

가게 창고를 정리하던 중, 아벨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근처에서 약초를 다듬던 칼라일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어머니, 무슨 일 있어요?”

“음…… 아가, 혹시 어제 네프라 약초 팔렸니?”

“네프라 약초요?”

“아, 불면증 치료용 약초 이름이야. 분명 얼마 전에 산에서 잔뜩 캐다 말려 뒀던 거 같은데…… 지금 보니 재고가 많이 비네.”

아벨라가 다른 곳도 뒤적이며 말했다.

“그게 수면 효과가 꽤 강한 약초라서…… 혹시라도 누가 주워 갔다가 통째로 먹기라도 하면 큰일 나.”

“큰일이요?”

“아, 아주 큰일까지는 아닌데…… 하루 내리 잠만 자게 할 수도 있어. 그래서 꼭 차로 우려 마셔야 하는 건데…….”

“아…… 정말요? 그럼 어쩌죠? 아무래도 제가 어제 뭔가 실수한 거 같은데…….”

칼라일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가게 일을 돕기 시작한 첫날부터 실수를 하다니. 그는 정말 미안하다는 듯 입술을 달싹이며 아벨라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실수한 게 틀림없어요. 정말…… 죄송해요. 무능하게 첫날부터 실수나 하고…….”

칼라일이 주먹을 세게 움켜쥐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어머니…….”

풀 죽은 강아지처럼 힘없이 울먹이는 그를 보며 아벨라가 조심스럽게 달랬다.

“아니야, 그렇게 비싼 약초도 아니었으니까. 정말 괜찮아.”

하지만 막연히 넘어가자니, 어딘지 기분이 떨떠름했다. 마치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찝찝함이 유독 짙게 들었다.

‘에이, 얼마 하지도 않는 약초 가지고…….’

아벨라는 애써 기분을 떨쳐 내며 칼라일을 다독였다.

‘괜히 소란 떨면 아가만 더 눈치 보고 미안해할 텐데……. 얼른 넘어가자.’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칼라일은 제가 실수를 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건지 잔뜩 어깨를 말고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도와주기는커녕 괜히 따라오겠다고 졸라서 민폐만 끼치고……. 정말 죄송해요…….”

“민폐라니, 엄마는 아가랑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을 수 있어서 좋은걸?”

아벨라가 티 나지 않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정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독성이 있는 약초도 아니니까.”

“정말요……?”

“응, 정말.”

괜찮다는 말에도 칼라일은 선뜻 표정을 밝히지 못했다. 여전히 그는 우울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시선을 땅에 고정했다.

그런 그를 보며 아벨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가.”

“……네, 엄마.”

칼라일은 어느새 예전처럼 어리광부리듯 그녀에게 엄마라 불렀다.

“알지? 고작 이런 일로 엄마가 아가 미워하고 할 일 없다는 거.”

아벨라가 조심스럽게 칼라일의 뺨을 맞잡고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정말 괜찮아, 우울해하지 마. 응?”

“……죄송해요.”

“죄송하다는 말도 그만.”

“하지만…….”

“하지만도 그만.”

“……그럼 할 말이 없어요.”

그는 입을 삐죽 내밀고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말 죄송한걸요…….”

“엄마도 정말 괜찮은걸?”

말문이 막힌 칼라일은 그저 뾰로통한 얼굴로 애꿎은 아벨라의 옷자락만 살며시 붙잡을 뿐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도 처음 가게 시작할 때 실수 많이 했어.”

도통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이는 칼라일을 보며, 그녀가 조심스럽게 두 팔을 벌렸다.

“이리 와, 아가 기운 내라고 엄마가 토닥토닥 안아 줄게.”

일부러 어린아이 대하듯 말했으나, 칼라일은 조금도 개의치 않아 하며 곧장 아벨라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물론 그가 한참 더 큰 탓에 아벨라가 칼라일은 안은 게 아닌, 칼라일이 아벨라를 안은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아벨라는 널찍한 그의 등을 토닥여 주며 어릴 적처럼 다정히 달래 주었다. 덩치는 산만 해졌는데, 역시 그녀에게 칼라일은 아직도 한없이 작은 아이처럼 느껴졌다.

“으구, 우리 애기. 아직도 애기지, 애기야.”

“……아니에요, 저 다 컸는걸요.”

“오구구, 그랬어요?”

저를 놀리는 게 명백해서 칼라일은 더욱 풀 죽어 어깨만 축 내릴 뿐 아무런 대답도 않았다.

“진짜 어른이면 이런 일도 금방 털어 낼 줄 알아야 하는 거야.”

칼라일이 그녀의 목더미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예뻐, 말도 잘 듣고. 우리 아들이 제일 예뻐.”

그래, 이렇게 예쁘고 착한 칼라일인데. 괜히 찝찝해하지 말자.

아벨라는 칼라일을 다독이며 스스로도 함께 다독였다. 떨쳐지지 않는 찝찝함을 억지로 지워 내며 그의 귓가에 예쁘다는 말을 한가득 속삭여 주었다.

칼라일은 그저 옅은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 * *

오늘도 아벨라는 밤이 깊어지기 전에 일찍 잠에 들었다. 칼라일은 어제처럼 이불 속에 몸을 파묻은 채 세상모르고 잠든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창 너머로 쏟아지는 달빛이 아벨라의 몸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어머니.”

그런데 오늘의 칼라일은 어딘지 평소와 달랐다.

그러니까 마치 방금 막 외출하고 온 사람처럼 옷과 머리가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멋대로 약초를 가져가서 죄송해요.”

칼라일은 눈 하나 꿈쩍 않고 아벨라의 속옷을 벗기며 계속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는 제가 직접 산에서 캐 와 사용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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