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17화 (18/82)

<017>

“미안해…… 내가 돈이 더 많았더라면 큰 욕조를 살 수 있었을 텐데…….”

아벨라가 멍하니 자책하며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욕조를 손으로 휘휘 저었다. 기껏해야 사람 두 명이 빠듯하게 들어갈 욕조는 확실히 거대한 늑대가 들어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칼라일은 자책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마구 가로저으며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아벨라를 한 번 힐끔거리고는 재빠르게 모습을 바꾸었다.

갑작스럽게 사람이 된 그를 보며 아벨라가 흠칫했으나, 애써 티 내지 않기 위해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아, 아가……?”

“그…… 사람 모습으로는 둘이 같이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아…….”

“혹시…… 불편하세요?”

아무리 새끼 때부터 그녀 손에 길러졌다지만, 칼라일은 알몸으로 아벨라 앞에 서 있는 게 민망하지도 않은지 당당하게 눈을 마주 보고 물었다.

“괜찮아요, 불편하시면 굳이 같이 씻지 않을게요.”

괜찮다고 말하는 것 치고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 묻어 나왔다. 아벨라는 몸을 가린 수건을 꼭 움켜쥐고 눈만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렸다.

‘어쩌지……?’

그녀가 머뭇거리자 칼라일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불편하시죠?”

그렇게 말한 그는 근처에 있는 수건 하나를 집어 제 아래를 가리고는 자리를 비키려 했다.

“죄송해요. 제가 또 불편하게 만든 거 같아요.”

“칼라일…….”

“그럼…… 먼저 씻으세요. 저는 엄마 씻고 나오시면 씻을게요.”

여전히 그의 목소리에는 미련이 가득했다. 그 사실을 아벨라가 모를 리 없었다. 시무룩하게 욕실을 벗어나려는 그를 보며 아벨라가 다급히 외쳤다.

“아니야, 괜찮아! 아가, 아가만 괜찮으면 같이 씻을래……?”

그러자 칼라일이 걸음을 멈추고 슬쩍 뒤를 돌아본다.

“정말 그래도 돼요?”

“응, 물론이지. 우린 가족이잖아.”

아벨라가 해사하게 웃어 보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먼저 욕조에 몸을 담갔다. 그러자 칼라일이 기쁘다는 듯 환히 웃으며 쪼르르 다가왔다.

“정말…… 정말 같이 들어가도 돼요?”

“으응, 정말이래도.”

한 번 더 아벨라에게 확답을 듣고 나서야, 칼라일이 방긋방긋 웃으며 욕조로 향했다.

아벨라는 욕조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최대한 그와 맞닿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칼라일은 욕조에 들어오기 무섭게 뒤에서 아벨라의 허리를 감싸 안고 제 가슴팍에 몸을 기대게 만들었다.

“불편하지 않으세요?”

“아? 아, 어, 으응…… 응, 안 불편해…….”

실은 어색하다 못해 불편했다. 하지만 차마 칼라일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등 뒤로 맞닿은 근육의 감촉들이 낯설고 생소했다. 칼라일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기뻐요, 다시 예전처럼 엄마랑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비록 수건으로 몸을 가렸다고 하지만 그래도 둘은 알몸이나 다름없었다.

온통 신경이 칼라일의 몸에 쏠린 아벨라와 달리 정작 칼라일은 제 품 안에 아벨라의 알몸이 안겨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칼라일은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난 왜 변태처럼 몸이나 의식하고 있는 거야!’

스스로를 자책하며 아벨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의 귓가에 나긋한 저음이 속살거렸다.

“엄마 몸은 신기해요.”

“으응? 내 몸? 왜, 왜?”

안 그래도 칼라일의 몸에 집중하고 있던 아벨라는, 그의 입에서 몸이 언급되자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자지러지듯 놀랐다. 그러자 칼라일이 키득거리며 은근히 그녀의 몸 곳곳을 조물거렸다.

“엄청 말랑말랑해요.”

“아…….”

“팔도 말랑말랑하고 다리도 말랑말랑해요. 배도 그렇고…….”

“푸흐, 흣, 아, 가, 간지러! 아가, 하지 마…….”

그가 장난스럽게 아벨라의 몸 곳곳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도…….”

그러던 중, 칼라일의 손이 조심스럽게 아벨라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놀란 아벨라가 눈을 크게 뜨며 당장 그의 손을 쳐냈다.

“카, 칼라일! 무슨 짓이야!”

큰 외침이 욕실 안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칼라일 또한 갑작스러운 그녀의 외침에 놀란 건지 얼빠진 얼굴로 입을 벙긋거렸다.

“아, 그…… 죄송해요. 만지면 안 되는 거죠……?”

“뭐?”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릴……. 황당한 나머지 아벨라의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칼라일이 갈 곳 잃은 손을 쥐락펴락했다.

“죄송해요……. 모르고 실수했어요…….”

칼라일이 말을 흘리며 눈을 잘게 떨었다. 아벨라는 혼란스러웠다.

그가 정말 모르고 그런 걸까?

하지만 알았다기에 지금 칼라일의 반응은 정말 미안해 보였고, 또 모른다고 하기엔 정말 칼라일이 이런 기초적인 것조차 몰랐을까 의심스러웠다.

“여, 여긴 함부로 만지면 안 돼…….”

“네…… 정말…… 정말 죄송해요, 고의가 아니었어요.”

“다음부턴 조심해 줘.”

칼라일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순종적으로 대답했다.

“어릴 땐 자주 만졌던 거 같아서……. 그래서 그만 실수한 거 같아요…….”

사실 만진다기보다 늑대일 적 앞발로 꾹꾹이처럼 몇 번 그녀의 가슴을 누른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아벨라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랑은 달라…….”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응…….”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욕실에는 습하고 더운 공기가 흘렀고, 둘 사이에 감도는 기운 또한 어딘지 평소와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칼라일이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아벨라를 불렀다.

“엄마.”

“…….”

“엄마, 엄마…….”

“……응, 아가.”

“혹시 제가 실수해서…… 저 미워지신 건 아니죠……?”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다행이다…….”

칼라일이 물기로 촉촉해진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은근히 입술을 지분거렸다.

“걱정했어요, 제가 또 바보처럼 미움받을 짓 했을까 봐…….”

“고작 이런 일로 미워하지 않아.”

“그래도 저는 늘 불안해요.”

도대체 무엇이 칼라일을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아벨라는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언젠가 때가 되면 알 수 있겠거니.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엄마.”

“응.”

“어릴 때처럼 머리 감겨 주시면 안 돼요?”

묘하게 흘러가던 분위기와 달리, 칼라일은 천진하게 입을 열었다.

“엄마가 머리 감겨 주는 거 좋아요.”

아이 때처럼 환히 웃는 그 표정에 아벨라 또한 불편했던 기분이 사라지는 걸 느끼며 살포시 미소를 그렸다.

“그럴까?”

아벨라는 근처에 놓인 비누를 들고 칼라일의 머리에 거품을 잔뜩 내어 주기 시작했다.

“비누 들어가면 안 되니까 눈 감아.”

사소한 걱정 어린 목소리가 칼라일을 향했다. 칼라일은 그런 그녀의 걱정마저 기껍다는 듯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비누 거품을 낸 아벨라는 그의 머리를 조물거리다 호기심이 동했는지, 장난스럽게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삐죽빼죽 일으켜 세웠다. 평소라면 어려울 머리도 지금은 비누 덕분에 곧잘 그녀의 손짓을 따라 만들어지곤 했다.

“풉…… 아가 머리 완전 웃겨……!”

“이, 이게 뭐예요!”

“왜, 웃긴데! 이번엔 이 머리 해 보자.”

“싫어요, 이상하단 말이에요.”

“뭐야, 어릴 땐 말 잘 듣더니…… 이젠 다 컸다고 엄마 말 안 듣는 거야?”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어느새 분위기는 칼라일이 어릴 적처럼 한결 편해져 있었다. 아벨라 또한 모처럼 속 편히 웃으며 그와 목욕을 즐겼다.

결국 마지못해 아벨라에게 머리카락을 넘겨 준 칼라일은 입을 삐죽 내밀고 중얼거렸다.

“다음엔 제가 엄마 머리 감겨 드릴게요.”

“정말? 그거 좋다. 그런데 아가, 그거 알아?”

“어떤 거요?”

“엄마 머리는 길어서 아가처럼 이런 장난 못 쳐.”

“…….”

“푸흡…… 바보.”

“……미워요.”

“괜찮아…… 푸흐흐, 아가는 어떤 머리를 해도 예쁘니까…… 풉…….”

“그런 말은 웃음이나 어떻게 하고 말하시지…….”

아벨라는 한참 그의 머리칼을 가지고 놀았고, 칼라일은 툴툴거리면서도 그녀가 하는 대로 얌전히 따라 주었다.

그가 이렇게 커진 후로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와 여유였다.

그날 저녁, 아벨라의 작은 오두막집에서는 웃음소리가 꽤 늦게까지 새어 나왔다.

* * *

“엄마.”

“응?”

“주무세요?”

“아니, 아직.”

목욕 덕분인지, 모처럼 인간 모습으로 칼라일과 한 침대에 누워 있는데도, 아벨라는 전처럼 불편하지 않았다.

확실히 늑대 모습으로 있을 때보다 공간은 널찍해졌다.

“안고 자도 돼요?”

“으음…… 좋아.”

아벨라의 허락에 칼라일이 기쁨을 숨기지 못하며 곧장 그녀를 품에 가두었다. 아벨라는 귓가에 울리는 칼라일의 뜨거운 숨소리를 들으며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가만히 그에게 안겨 일정하게 등을 토닥여 주는 손길을 느끼고 있자니, 졸음이 솔솔 몰려왔다.

“엄마.”

“으응…….”

“엄마, 엄마…… 어머니…….”

난데없는 어머니라는 호칭에 아벨라가 어색하다는 듯 작게 웃었다.

“뭐야, 갑자기. 어머니라니.”

“그냥요, 원래 엄마라는 호칭은 아이 때만 쓰는 거라면서요.”

“음…… 보통 그렇기는 한데…….”

“전 이제 다 컸으니까, 엄마라고 부를 나이는 지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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