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16화 (17/82)

<016>

아벨라가 머뭇거리자 칼라일이 다시 한번 물었다.

“이제 두 번 다시…… 같이 못 하는 거예요?”

목소리와 눈빛이 얼마나 처연한지, 도저히 거절의 말이 뱉어지지 않았다.

분명 덩치는 다 큰 사내인데…… 도대체 어쩜 이리 아이 같은지.

‘거절해야 하는데…….’

거절의 말을 듣고 우울해할 칼라일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결국 아벨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목욕도…… 같이 하자.”

그러자 칼라일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정말요?”

“응, 정말.”

한참 울어 발갛게 부은 눈가를 정돈하며 그가 배시시 웃었다.

“그럼 엄마 오늘 저녁에 같이 목욕해요.”

그 웃음이 해맑기는 얼마나 해맑은지, 성인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음에도 순수한 아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제가 어깨 안마도 해 드릴게요.”

제 말 몇 마디에 그새 기분이 풀려 헤실헤실 웃고 있는 칼라일을 보자니, 아벨라는 기분이 묘해졌다.

그래서 칼라일이 제 몸을 만지는 게 조금은 껄끄러웠음에도 거절하지 못했다.

‘왜 불편한 거지…….’

칼라일은 그저 칼라일일 뿐인데.

아벨라는 그를 불편해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럼 살살해 줘.”

결국 마지못한 아벨라는 애써 불편함을 떨쳐내며 대답했다.

그녀가 침대 위에 엎드리자 얇은 옷 위로 단단한 손이 야무지게 어깨를 조물거리는 게 느껴졌다. 바짝 긴장한 게 무색하게, 칼라일의 안마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고롱고롱 잠이 몰려올 정도로.

‘뭐야…… 생각보다 엄청 잘하잖아……?’

그랬다. 칼라일의 안마 실력은 아벨라의 상상 이상이었다. 근래 그녀가 뻐근하다고 생각했던 곳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엄지로 살살 문질거리고 있었다.

절로 피로가 풀리는 기분에 아벨라는 옅게 기분 좋은 신음을 흘렸다.

“와…… 신기해.”

“뭐가 신기해요?”

“아가, 너 안마 엄청 잘하는 구나……?”

“정말요?”

아벨라가 칭찬하자 그가 뺨을 붉히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느새 튀어나와 있는 꼬리는 기쁘다는 듯 좌우로 빠르게 살랑살랑 흔들렸다.

“다행이다……. 앞으로 자주 해 드릴게요.”

만약 안마를 받기 전이었다면, 자주 해 준다는 말에 부담을 느꼈을 텐데…….

“정말? 힘들지 않아?”

이미 그의 손맛을 알아 버린 아벨라는 언제 불편해했냐는 듯 잔뜩 풀어진 얼굴로 물었다.

“엄마한테 해 드리는 건 하나도 안 힘들어요.”

그런 그녀를 보며 칼라일이 내심 기뻐했다.

“다행이에요…….”

“응? 아까부터 뭐가 계속 다행이야?”

“덩치가 커지면서 먹는 것만 늘고…… 여전히 쓸모는 없고……. 그래서 버려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니까요.”

또 은근히 자기 자신을 질책하는 말에 아벨라가 살짝 미간을 구겼다. 역시 칼라일은 덩치만 컸지 속은 여전히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

“아…….”

아벨라가 그를 부르자 칼라일이 곧장 귀를 착 내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지 말래도…….”

“그냥…… 요즘 계속 불안했어서 그런가 봐요…….”

이어진 뒷말에 아벨라의 양심이 쿡 찔렸다. 잠시 칼라일의 표정을 살피던 그녀가 살며시 뒤를 돌아보며 두 팔을 벌렸다.

“이리 와.”

난데없는 행동에 칼라일이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눈을 끔뻑였다. 그러자 보다 못한 아벨라가 먼저 그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흑빛 머리통이 순식간에 그녀의 품 안에 폭 안겼다.

“미안해.”

“아…….”

“엄마가…… 생각이 짧았어.”

갑작스럽게 그녀의 품에 안긴 칼라일은 놀란 건지 멀뚱히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다 이내 상황파악을 한 건지 수줍게 말을 뱉었다.

“아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 정말…… 괜찮은 거 같아요.”

“거짓말. 아까 그렇게 울었으면서.”

“아니에요, 생각해 보니까…… 그, 솔직히…… 제가 봐도 저는 징그러운 거 같아서……. 엄마가 불편해하시는 거 이해도 가고…….”

“자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칼라일이 다시금 자신을 낮추며 말하자 참다못한 아벨라가 버럭 화를 냈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진짜 속상하단 말이야…….”

“음……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고……. 저는 정말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니까…….”

아벨라가 그의 뺨을 살살 꼬집으며 말했다.

“하나도 안 징그러워. 이렇게 예쁜데 대체 어디가 징그럽다고…….”

“저 흉 많잖아요.”

칼라일은 제 뺨을 꼬집는 아벨라의 손 위로 살포시 자신의 손을 덮으며 웃어 보였다.

“안 예쁜 몸 맞아요.”

그러고는 아벨라의 손을 조심스럽게 제 가슴팍 중앙으로 살며시 내렸다.

“여기도 살갗이 다 까져서…… 보기 흉하고요.”

손이 닿은 곳은 처음 아벨라를 만났을 때, 그녀가 치료해 주었던 상처였다. 비록 지금은 모두 나았다지만, 워낙 심각한 상처였던 탓에 흉은 꽤 크게 남아 있었다.

“……안 흉해.”

아벨라는 살짝 미간을 구기며 크게 가슴팍을 가로지르는 흉을 매만졌다.

“하나도 안 흉해.”

“하지만 아시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거라는 거요.”

그녀의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칼라일이 머쓱하게 뺨을 긁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

“엄마 눈에만 안 흉하면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 같은 건 상관없어요.”

칼라일은 굳이 가슴뿐만 아니라 팔뚝이라든가, 뒷목 혹은 옆구리 등 몸 곳곳에 상처가 많았다.

“그러니까 엄마, 어릴 때 약속했던 것처럼…… 평생 이렇게 예뻐해 주셔야 해요.”

결국 또 아벨라는 칼라일 앞에서 한없이 약해진다.

아벨라는 다시금 그를 품에 그러안고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그러는 칼라일. 너야말로.”

“네?”

“너야말로 약속 지켜.”

“무슨 약속이요?”

“나랑 평생 같이 살기로 했잖아.”

그녀의 말에 칼라일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전 당연히 엄마랑 평생 살 거예요.”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

“이래놓고 다 컸다고 장가간다는 소리 하기만 해 봐.”

순간 칼라일이 얼빠진 소리를 흘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장가요?”

“그래, 원래 아들은 키워 봤자 다 소용없댔어.”

여전히 아벨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칼라일이 눈을 끔뻑였다.

“아들은 키워 봤자 장가가면 남이라고…… 막 어른들이 그랬단 말이야.”

“저, 저는……! 저는 안 그래요!”

그러다 뒤늦게 말뜻을 알아차린 그가 놀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다른 암컷 만날 생각 없단 말이에요.”

“거짓말. 아들들이 하는 그 말도 믿는 거 아니랬어.”

“정말인데…….”

“몰라, 하여튼 여자 데려오기만 해봐. 나 완전 못된 시엄마 될 거야.”

괜스레 투덜투덜 말하는 아벨라를 보며 칼라일이 작게 키득였다.

“그럼 엄마가 못돼지는 일 없게, 제가 저한테 말 붙이는 암컷들 전부 물어뜯을까요?”

“……뭐?”

칼라일은 천진하게 웃으며 제 송곳니를 내보였다.

“제가 전부 물어뜯어 죽이면, 엄마가 나쁜 시엄마 될 일도 없잖아요.”

농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서 아벨라가 표정을 굳혔다. 그러자 칼라일이 장난스럽게 몸을 치대며 말한다.

“농이에요.”

“……저, 정말?”

“네, 정말.”

“…….”

“인간 죽이면 엄마가 저 미워할 거잖아요.”

묘하게 자신과 인간을 다르게 두고 말하는 태도에 아벨라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굳이 콕 집어 내뱉지는 않았다.

“응…… 맞아. 그리고 그런 짓 하면 잡혀가.”

“네, 책에서 봐서 알고 있어요.”

아벨라는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 착하다…….”

여전히 어린아이 대하듯 하는 그녀의 태도에도 칼라일은 기꺼워하며 몸을 낮췄다.

“슬슬 목욕 준비할까요?”

“응,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춘 칼라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릴 적엔 자주 하던 스킨십 중 하나였으나, 그가 크고 나서는 한 번도 한 적 없는 행위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벨라가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달싹였다.

“아…….”

“욕조에 물 받아 두고 있을게요.”

“으, 으응…… 부탁해.”

이런 행동에 의식하는 제가 이상한 거라고, 아벨라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해하게 웃는 칼라일을 힐끔거렸다.

그는 정말 방금의 입맞춤에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욕실로 향하고 있었다.

* * *

아벨라는 늑대로 변한 칼라일을 보며 당황스럽다는 듯 멀뚱히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칼라일 한 번 그리고 욕조 한 번 번갈아 가며 오가고 있었다.

“이런…….”

칼라일의 몸집이 커져 버린 탓에, 더 이상 늑대의 모습으로는 욕조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인간일 때의 칼라일도 어마무시하게 컸는데, 늑대일 때의 칼라일은 더욱 컸다.

아벨라는 난감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끙끙, 앓는 칼라일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가가 너무 커서…… 이젠 욕조에 못 들어가네…… 어쩌지?”

칼라일의 표정이 우울해지며 꼬리가 바닥으로 축 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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