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그녀는 살며시 손을 뻗어 그어진 선들을 차곡차곡 매만졌다. 그런데 칼라일이 예고 없이 다가와 아벨라를 품에 안았다.
“뭘 그렇게 보세요?”
근육으로 가득한 몸이 아벨라를 품에 꽉 가두자, 그녀가 흠칫하며 몸을 굳혔다.
누가 뭐래도 칼라일은 이제 완전한 성인이었는데, 하는 짓은 어릴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서부터 제가 키웠다지만, 아벨라는 아무렇지 않게 제 몸을 감싸 안고 더듬거리는 칼라일이 조금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엄마.”
“아, 어, 응? 부, 불렀니?”
“몸이 굳었어요.”
잠시 머뭇거리던 아벨라는 여상스럽게 제 팔뚝과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하는 칼라일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크게 떴다.
“아가……!!!”
“네? 혹시 아프셨어요?”
“아, 아니…….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문지르는 팔뚝 안쪽의 연한 살점이 간지러웠다. 아벨라는 곤란하다는 듯 칼라일의 손을 떼어내며 쭈뼛거렸다. 그러자 칼라일이 입을 열었다.
“아, 혹시…… 제가 이러는 거…… 불편하세요?”
굳어진 아벨라의 얼굴에서 저를 향한 거리감을 읽어 낸 걸까. 칼라일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죄송해요.”
“아니야…… 그냥 좀 놀라서…….”
“저는 그냥…… 어릴 때 엄마가 제 다리 주물러 주시던 게 생각나서…….”
아벨라는 이제 성인이 되어 버린 그와 적당한 거리를 두려다가도, 이런 식으로 어릴 때 이야기가 나오면 금세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결국 그녀는 시무룩해진 칼라일의 뺨을 매만지며 말했다.
“죄송할 거 없어……. 갑자기 만져서 조금 놀란 것뿐이니까…….”
“정말요……?”
“응, 정말 그뿐이야.”
아벨라가 달래 주자, 칼라일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그녀를 와락 그러안았다.
“……다행이에요.”
이런 식으로 확 안아 대는 것도 아벨라를 난감하게 하는 것 중 하나였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등을 토닥여 줄 뿐이었다.
“그런데 엄마.”
“응?”
“어깨가 많이 뭉치신 거 같아요.”
“아, 그래……?”
아벨라가 눈을 피하며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요즘 가게가 바빠서 그런가 보네……. 괜찮아,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어깨 주물러 드릴게요.”
칼라일이 그런 그녀의 말을 끊어내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 엄마, 요즘 많이 피곤해 보여요.”
“아…….”
그건 시도 때도 없이 몸을 맞대 오는 너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아벨라는 차마 속마음을 꺼낼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했다간 칼라일이 크게 상처받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칼라일은 자존감이 무척 낮고 곧잘 상처받는, 마음 약한 아이였다.
아벨라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칼라일은 능숙하게 그녀를 들어 안고는 침대로 향했다.
“아. 아가, 이러지 않아도 돼!”
놀란 아벨라가 다급히 외쳤으나, 칼라일은 그저 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 위에 엎드리게 만들 뿐이었다.
“정말 이러지 않아도…….”
어깨와 등을 마사지 해 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아벨라의 위에 올라탔던 칼라일이 눈매를 죽이며 말했다.
“제가 불편한 건 아니고요……?”
“…….”
“엄마, 요즘 이상해요.”
“아가…….”
“예전엔 곧잘 안아 주셨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먼저 잘 안아 주지도 않고…… 제가 안으면 놀란 얼굴로 밀어내시기만 하고…….”
말마따나 칼라일의 덩치가 커진 후로 아벨라는 늘 이런 상태였다.
사실 아벨라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걸 외면하고 있었을 뿐, 칼라일 또한 진즉 알고 있는 문제였다.
“저는 엄마밖에 모르는데…… 엄마는 요즘 자꾸…….”
“그게…… 그러니까…….”
“원래 제가 성인이 되면 같이 가게에 나가기로 했잖아요.”
“…….”
“그런데 그것도 갑자기 안 된다 하시고…….”
말하다 보니 서러웠는지 칼라일이 마른세수하며 인상을 구겼다.
“그래요, 제가 갑자기 커져서……. 역시 그래서 그런 거겠죠.”
아벨라는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엄마……. 저 정말…….”
귓가에 울리는 낮은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물기가 가득했다.
“저는 정말…….”
애써 태연하게 굴려던 칼라일은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끅끅거리며 아이 때처럼 눈물 흘렸다.
“엄마가…… 이, 이렇게…… 갑자기 피하면…….”
그는 애처럼 우는 제 모습이 싫었는지, 아이씨 따위의 말을 섞어 가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무섭…… 흑, 무섭고…… 또 막…… 집에서 나가라고 할까 봐…….”
그가 두서없이 말을 뱉으며 어깨를 잘게 떨었다. 한참 널찍한 어깨가 애처로이 위아래로 들썩이며 서럽게도 울음을 토했다.
그런 칼라일의 모습에 당황한 건 아벨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흑, 이럴 줄 알았으면…….”
“아, 아가…….”
“어른 되기 싫었을 거예요…….”
칼라일이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눈물을 멈추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험악하게 생긴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칼라일은 방울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미워요…… 흑, 엄마 미워요…….”
칼라일이 그녀를 끌어안고 엉엉 울며 말했다.
“저는…… 저는 정말…… 흑, 엄마밖에 모르는데…….”
“미안해…… 미안해, 아가. 엄마가 요즘은…….”
“제가 커진 게…… 흑, 그렇게…… 그렇게 싫으세요?”
“아니야,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정말 이건 믿어 줘. 응?”
아벨라가 다급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려 했다. 그러나 이미 터져 버린 서러움은 고작 그 정도의 손짓으로 달래지지 않았다.
훌쩍 커 버린 몸은 낯설었지만 역시 칼라일은 칼라일이었다.
덩치만 컸을 뿐 속은 여전히 여린 그가 안쓰러워서 아벨라는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차라리 팔다리를 전부 잘라 버리고 싶어요.”
그러다 이어진 섬뜩한 말에 놀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해서 다시 어릴 때처럼 엄마에게 예쁨 받을 수 있다면…… 저는 그럴 거예요.”
아벨라는 들은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농이 아닌 진담이었다.
순간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올랐다. 말문이 막힌 그녀는 입을 벙긋거리다가 몸을 굳혔다.
예전이라면 칼라일의 등을 한 대 때려 주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혼이라도 냈을 텐데. 지금은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이상 침묵했다가는 칼라일이 정말 제 팔다리를 잘라 올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래서 아벨라는 꺼내지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끄집어냈다.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솔직히 몸이 너무 커져서…… 좀 낯설기도 하고 그래서 그랬어.”
칼라일은 성체가 됐음에도 여전히 어릴 때처럼 아벨라와 함께 목욕하고 싶어 했고, 수시로 그녀를 품에 안고 싶어 했다.
아벨라로서는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노력할게. 정말…… 정말 노력할 테니까 그런 무서운 말 하지 마. 응?”
“……정말 무서운 건 저예요.”
칼라일이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속상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는…… 저는 엄마가 내쫓으면…… 갈 곳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아가…….”
“요즘 엄마가 자꾸…… 그래서…… 무서웠단 말이에요. 혹시 또 저를 산에 보내려 하시는 건가 싶고…….”
아벨라가 그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럴 일 없어. 약속할게.”
“……정말요?”
“응, 정말. 다른 건 다 몰라도 내가 먼저 아가 너를 내칠 일은 없어.”
“정말, 정말이에요?”
“응, 정말. 그리고 가게는…… 내일부터 같이 나가자. 어때?”
조그마한 손이 살며시 칼라일의 뺨을 맞잡고 말했다.
“미안해, 아가가 이렇게까지 속상해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거 같아.”
몸만 컸지 그 안에 있는 건 여전히 어리광부리기 좋아하는 작고 귀여운 칼라일인데.
아벨라가 뒷말을 삼키며 살포시 웃어 보였다. 그러자 칼라일 또한 엉망으로 구겨졌던 표정을 살짝 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목욕은요……?”
“응? 목욕?”
“네…… 원래 저희 항상 같이 목욕했잖아요.”
“아, 그건…….”
아벨라의 말문이 다시금 콱 막혔다. 다른 건 몰라도 목욕은 그에게 알몸을 내보여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 어릴 땐 늘 함께 목욕했다지만, 훌쩍 커 버린 그 앞에서 알몸을 내보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저는 해가 질 때쯤, 엄마랑 목욕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게 좋았어요…….”
엄마가 해 주는 비누칠도 좋았고, 몸이 작을 땐 발이 닿지 않는 욕조에서 엄마랑 같이 물장난을 치는 것도 좋았어요.
칼라일은 그때가 그립다는 듯 나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목욕이 끝난 후엔 엄마가 털을 말려 주며 빗질을 해 주시는 것도 좋았고…… 그러다 같이 침대에서 꼭 끌어안고 잠들 때면 정말……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어요.”
“…….”
“……다시 그렇게 엄마랑 목욕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