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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13화 (14/82)

<013>

그리고 그녀와 보낸 시간들은 완전히 새로운 시간들이었다.

아벨라는 제게 다리 병신이라 손가락질하지 않았고, 제 존재를 수치스러워하며 괴롭히지도 않았다. 저 따위가 감히 밥을 먹으려 한다며 면박 주지도 않았고, 놀이랍시고 저를 절벽에 굴리지도 않았다.

따뜻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리가 아플까 걱정하며 조물조물 주물러 주었다. 밥을 먹는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고, 뼈까지 통째로 씹어 먹을 수 있는 늑대에게 바보처럼 살코기를 발라 주겠다며 한참 고기를 조물거리기도 했다. 가끔은 빗으로 시원하게 털을 빗겨 주었고, 함께 잠자리에 들며 제 몸 곳곳에 쪽쪽 입을 맞춰 주기도 했다.

칼라일은 아벨라가 좋았다.

그녀는 태어나길 선하게 태어난 사람 같았다. 다정했고, 착했고, 성격이 유했다.

그래서 좋으면서 불안했다.

애당초 처음 그가 아벨라에게 거둬질 수 있었던 것도 불쌍해서였다.

그런데 그녀가 다른 수컷에게 동정심을 느낄까 봐. 혹, 저보다 더 불쌍한 수컷이 나타나 저를 뒷전으로 밀어 버릴까 불안했다.

이 작은 몸으로는 아직 아벨라를 지킬 수도, 안을 수도 없었다.

그는 늘 생각했다.

아벨라가 다른 수컷에게 눈 돌리기 전에, 다른 수컷들이 그녀의 동정심을 사기 전에, 어서 성체가 돼 그녀에게 제 좆을 쑤셔 박고 싶다고. 일전에 그녀를 놀라게 했던 돌기 가득한 좆을 작고 습할 보지에 찔러 넣어 엉망으로 만들고 싶다고. 저 말고 다른 수컷의 좆은 받지 못하게, 삐죽빼죽 돌기 가득한 제 것으로 아벨라의 속살을 잔뜩 망가트려 놓고 싶다고.

칼라일은 매일 밤 이런 추저분한 생각을 했다.

아벨라는 칼라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입술을 달싹이며 단꿈에 빠져 있었다. 잠든 그녀를 보던 칼라일은 보기 좋게 눈을 접어 웃었다.

늑대들의 집념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마치 과거의 칼라일이 복수를 위해 자신의 육체를 내어 놓은 것처럼. 그렇게까지 해가며 동족들을 몰살시킨 것처럼.

대부분의 늑대들은 목표점을 정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 정도로 집착이 강했다.

그것이 사냥이든, 복수든, 사랑이든.

그리고 이제 복수를 끝낸 칼라일의 집념은 제게 새로운 삶을 선사해 준 아벨라에게로 옮겨갔다.

칼라일은 더 이상 그녀 없는 삶 따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아벨라가 원한다면 기꺼이 제 송곳니를 뽑아낼 수도 있었다. 다른 늑대들이 저더러 개새끼라 조롱해도, 아벨라의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늑대의 습성을 버리고 꼬리만 흔들며 평생 개처럼 살 수도 있었다.

이제 갓 소년 정도의 외형을 한 칼라일은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성체가 된다면, 더 볼 것도 없이 그녀에게 각인부터 할 생각이었다.

뒤늦게 알아차린 아벨라가 울며 저를 원망해도 상관없었다. 원망과 화 그리고 싫은 소리는 듣더라도 그녀를 제 반려로 만든 후에야 들을 것이었으니까.

“엄마…….”

어느새 조심스럽게 손을 깍지 끼워 잡은 칼라일이 배시시 보기 좋게 웃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여느 때처럼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어딘지 서늘했다.

* * *

며칠간 칼라일의 간호를 받은 덕분에 아벨라는 열이 많이 내려갔다. 아직 기침과 콧물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혼자 집 안을 돌아다닐 정도는 되었다.

“어쩌지……. 가게를 너무 오래 쉬어 버렸네…….”

아벨라가 앓는 소리를 흘리며 속상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를 걱정스럽게 보며 칼라일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놈의 가게, 가게.

아벨라는 아픈 내내 온통 가게 걱정만 하고 있었다.

뚱해진 칼라일의 표정에서 속내를 읽은 건지, 아벨라가 살포시 웃으며 그의 뺨을 매만졌다.

“아가.”

“……네?”

“엄마가 가게 걱정만 해서 화났어?”

정곡을 콕 찔리자 칼라일이 뺨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아닌데요……. 화는요, 무슨……. 제가 주제에 감히…….”

“또 말 그렇게 한다.”

칼라일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추자, 아벨라가 눈을 뾰족하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엄마가 뭐라고 했었지?”

“…….”

“이젠 대답도 안 하는 거야? 설마 아가. 몸집 좀 커졌다고 반항기가 온 거니?”

반항기가 언급되자 그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다.

“아, 아니에요!”

“아니긴, 요즘은 엄마 말 잘 듣지도 않더니…….”

아벨라가 평소보다 단호하게 말했다.

“칼라일, 자꾸 그렇게 자기 자신을 낮춰 말하지 마.”

“……죄송해요.”

“알잖아, 아가가 그럴 때마다 엄마 속상한 거.”

이젠 아가라 불리기 제법 큰 몸집이었으나 그럼에도 아벨라는 그를 그리 불렀다. 아무래도 아가라는 호칭이 입에 붙어 버린 모양이었다.

칼라일은 잠시 아벨라의 눈치를 살피다가 순식간에 늑대의 모습으로 변하고는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걸터앉아 있는 그녀의 품속으로 폭 파고들었다.

“아우우…….”

아우, 아우 거리며 무어라 웅얼거리는 게 마치 억울하다고 변명이라도 하는 거 같았다. 아벨라의 눈에는 그것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품에서 느껴지는 따끈한 털뭉치의 촉감을 느끼며, 어느새 온화해진 얼굴로 칼라일의 등을 쓰다듬었다.

“다른 누가 뭐라든, 나한테 칼라일 너는 무척 소중한 가족이야.”

“아우…….”

“이렇게 아플 때 만약 혼자였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그런데 이번엔 아가, 네가 있어서 조금도 힘들지 않았어.”

칼라일은 느릿하게 털을 쓰다듬는 아벨라의 손길을 느끼며 더욱 그녀에게 몸을 치댔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

아벨라는 여전히 그를 아이 대하듯 굴었지만, 칼라일은 더 이상 새끼 늑대가 아니었다.

커다래진 몸집과 비죽 튀어나온 날카로운 송곳니는 만약 그가 아벨라에게 이를 박아 넣는다면, 그녀의 여린 살갗은 사정없이 찢겨 나갈 게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아벨라는 칼라일을 품에 안고 복슬복슬한 털뭉치에 뺨을 비비적거렸다.

칼라일은 그녀가 아무런 경계심도 세우지 않고 이렇게 무방비하게 저를 안고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아벨라가 저를 믿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오곤 했다.

하기야, 저를 한입에 꿀꺽할 수도 있는 맹수를 데리고 산다는 것부터 믿음과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뻗치자,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칼라일이 예고 없이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고는, 아벨라의 허리춤을 와락 그러안았다.

“엄마!”

“까, 깜짝이야!”

갑작스러운 변신에 놀란 아벨라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칼라일은 가느다란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아벨라의 목덜미에 얼굴을 치댔다.

“역시 저는 엄마가 제일 좋아요.”

“얘도 참, 갑자기…….”

뽀얀 목덜미에 코를 처박고 은근히 그녀의 체향을 킁킁거리던 칼라일이 힐끔 고개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엄마도 제가 제일 좋아요?”

칼라일은 순진무구해 보이는 얼굴로 아벨라와 눈을 맞췄다.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가 집요하게 그녀를 좇았다.

“당연하지. 늘 말했지만 아가 너는 내 유일한 가족이야.”

저와 같은 대답이 돌아오자, 칼라일이 그제야 안도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기뻐하는 칼라일의 귓가에 아벨라의 말이 한마디 더 뒤따라왔다.

“하지만 이렇게 침대에서 갑자기 변하는 건…….”

“네?”

예전에야 제 허리쯤 오던 어린아이였으니 괜찮다 쳐도, 이제 칼라일은 성인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아벨라가 은근슬쩍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탄탄한 사내의 몸에 흠칫 몸을 떨었다.

“조, 조금…… 그래…….”

“조금…… 그렇다고요?”

저를 밀어내는 듯한 손짓에 칼라일이 곧장 눈매를 죽이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왜, 왜요……? 엄마, 저는 엄마가 제일 좋은데……. 그래서 이렇게 막 안고 있으면 기분 좋은데…… 엄마는 조금 그런 거예요……?”

사납게 째져 있던 눈매가 마치 순한 산토끼처럼 유순하게 접혀 들어갔다.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친 아벨라는 미안함을 느끼며 시선을 피했다.

칼라일은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아, 아냐, 죄송할 것까진…….”

“저는 그냥…… 엄마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건데…….”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잇던 그가 눈가를 축축이 적시고는 힐끔 아벨라를 바라봤다. 모양새가 어찌나 불쌍해 보이는지 늑대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죄송해요…… 이젠 제가 징그러운 거죠……?”

“징그럽다니. 아가,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야, 아닌 거 알잖아. 응?”

의기소침해진 칼라일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엄마, 저도 다 알아요.”

꿈틀거리며 아벨라를 등져 누운 칼라일이 개미 기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몸에 상처도 많고 그래서 보기 흉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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