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12화 (13/82)

<012>

“아우우……!”

그러고는 무어라 웅얼거리며 작게 하울링도 했다. 마치 어서 자자고 조르는 것만 같았다.

그런 칼라일을 보며 아벨라는 기분 좋게 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칼라일 또한 아벨라에게 바싹 몸을 붙였다. 따뜻한 털뭉치가 기분 좋게 맞닿았다.

덩치가 커진 칼라일 덕분에 침대 구석으로 몰린 아벨라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침대가 많이 좁아졌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어 침대를 하나 더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아벨라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더불어 작은 오두막집은 침대를 하나 더 들이기에는 공간이 여유롭지 못했다.

‘이러다 칼라일이 완전한 성체가 되면…….’

그때는 정말 칼라일 한 마리만으로도 침대가 꽉 찰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 모습으로 한 침대를 사용하자니 그림이 이상했다.

아무리 엄마 같은 마음으로 키우고 있다지만, 보통 아들과 엄마가 한 침대에서 바싹 붙어 자지는 않으니까.

심란한 그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한 칼라일은 마냥 몸을 치대며 비비적거렸다.

점점 좁아지는 침대에 대한 걱정과 별개로, 아벨라 또한 칼라일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가 좋았다.

누군가와 가까운 사이가 된다는 게 이렇게 포근하고 간지러운 기분이라는 걸, 그녀는 칼라일 덕분에 처음 깨달았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약초를 캐고, 함께 씻고, 함께 잠을 자고.

근래 둘은 모든 걸 함께하고 있었다.

아벨라가 가게에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오붓하게 일상을 공유했다.

아벨라는 소소한 제 삶을 함께할 상대가 있다는 게 무척이나 기뻤다. 그리고 그건 칼라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밤은 점점 깊어졌고, 아벨라는 복슬거리는 칼라일을 품에 그러안은 채 고롱고롱 잠에 들었다. 칼라일 또한 그녀의 품이 불편하지 않은지 다리를 쭉 뻗고 꿈나라를 헤맸다.

오늘도 함께여서 따뜻한 밤이었다.

* * *

“쿨럭, 쿨럭…….”

아벨라는 힘없이 침대에 널브러진 채로 기침했다.

예쁘게 낙엽이 들기 시작한 가을이 오면서, 한동안 칼라일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휴가를 내기 위해 가게 일을 무리하게 했더니 병이 난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우기가 끝난 직후라 일교차가 컸던 것도 한몫한 것 같다.

칼라일은 후끈거리는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아벨라를 보며 크게 당황했다. 그가 눈을 끔뻑이며 곁에 앉아 어쩔 줄 몰라 했다.

“아가……. 당분간은 엄마 근처에 오면 안 돼…….”

아벨라가 골골거리며 힘겹게 말을 뱉었다.

“하아…… 아가한테 감기가 옮을지도 몰라. 쿨럭, 쿨럭.”

그녀가 기침하자 칼라일이 급히 따뜻한 물을 떠 와 건넸다.

“저는 괜찮아요. 엄마 감기가 차라리 저한테 옮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가 아픈 것보다 차라리 제가 아픈 게 낫단 말이에요.”

그가 울먹이며 아벨라의 손을 붙잡았다. 며칠 사이 또 훌쩍 커 버린 칼라일은 이제 앳된 얼굴의 아벨라와 크게 나이 차이가 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아직은 성인이라기보단 청소년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아벨라가 워낙 동글동글하게 생긴 덕분에 외형만 놓고 보자면 엄마라는 호칭보다는 누나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법했다.

칼라일은 수건을 물에 적셔 조심스럽게 아벨라를 간호했다. 손짓이 조금 어설프긴 했지만 그래도 꽤 정성스러웠다.

“엄마…… 많이 아파요?”

“에이…… 이 정도로 아프기는. 쿨럭, 쿨럭. 단순 감기야. 엄마는 정말 괜찮아.”

괜찮다는 말에도 칼라일은 물러나지 않았다.

어깨너머로 아벨라가 하는 걸 배운 건지, 그녀에게 줄 스튜를 만들기도 했고, 머리 위에 올려 둔 수건이 미지근해지기 전에 갈아 주기도 했다.

제법 커진 덩치로 분주하게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게 꽤 귀여웠다. 아벨라는 흐릿한 시야로 바삐 움직이는 칼라일의 인영을 보며 저도 모르게 푸흐흐 웃었다.

정말 고작 감기일 뿐인데…….

이보다 더 심한 독감에 걸렸을 때도 아벨라는 혼자였다. 뭐, 애당초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릴 적 보육원에서 자랄 때는 콧물만 흘려도 독방에 가둬지곤 했다. 전염병일 수 있으니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나, 뭐라나.

어쨌든 그런 이유로 아벨라는 아플 때마다 혼자였고, 타인의 간호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리 유난스럽게 오두방정을 떠는 칼라일이 낯설었다.

몸져누운 아벨라를 대신하여 칼라일은 집 안 청소도 하고, 음식도 하고, 빨래와 설거지도 했다. 물론 엉성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래도 그는 열심이었다.

한참 우당탕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얼추 집안일을 마친 듯하다.

칼라일은 아벨라의 상태를 보려는 건지 새로운 수건을 챙겨 침대로 다가왔다. 그가 이마 위에 놓인 수건을 갈아 주며 조심스럽게 열을 쟀다.

열심히 간호한 만큼, 아벨라의 상태도 많이 나아졌다면 좋았을 텐데…….

“엄마, 아직도 열이 많이 나요…….”

안타깝게도 열은 여전히 내려갈 기미가 없어 보였다. 늘 뽀얗던 아벨라의 뺨은 감기로 인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칼라일이 속상하다는 듯 조심스럽게 아벨라의 손을 조물거렸다.

그런 그를 보며 아벨라는 기분이 묘해졌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저보다 한참 손이 작았던 것 같은데……. 지금의 칼라일은 언제 그리 작았냐는 듯 훌쩍 커져 있었다.

저를 걱정하는 듯한 칼라일을 보며 아벨라는 이상하게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가 나를 걱정해 준 적이 있던가.’

커다란 덩치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제 걱정에 여념이 없는 그를 보고 있자니, 더 아파도 좋을 것 같다는 바보 같은 생각도 들었다.

아벨라는 지금 이 상황이 낯설고 신기했다. 그리고 따뜻하고 간질거리기도 했다.

“좋다…….”

아벨라가 조물거리는 칼라일의 손길을 느끼며 웅얼거렸다.

“나는 늘 혼자였거든……. 쿨럭, 그런데 평소엔 괜찮다가도 아플 땐 이상하게 서럽더라고…….”

아벨라가 한껏 풀린 눈을 끔뻑이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처음이야, 누가 나 아프다고 간호해 주고, 걱정해 주는 거.”

걱정 받는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처음 알았다. 아픈데 기분이 좋아서, 아벨라의 입가에서는 연신 실없는 웃음이 샜다.

칼라일은 그런 그녀를 묘한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짧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제가 늘 곁에 있을게요.”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얼추 컸다고 이제는 목소리도 사뭇 낮아져 있었다.

“정말? 엄마랑 약속하기다? 푸흐……. 나중에 다른 여자랑 살림 차리겠다고 장가가기만 해 봐.”

아벨라가 일부러 아픈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태연하게 말을 뱉어 보았다. 하지만 펄펄 끓는 이마로 보았을 때, 결코 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

“엄마, 많이 어지럽죠…….”

칼라일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겨 주었다.

“저는 아플 때 눈을 감고 맛있는 고기를 잔뜩 뜯어 먹는 상상을 했어요. 엄마도 맛있는 걸 잔뜩 먹는 상상을 해 보시는 건 어때요?”

그가 뱉은 말은 어딘지 엉뚱하면서도 제법 진지했다.

“엄마를 만나기 전에는 아플 때가 많아서, 조금 힘들었거든요.”

평소라면 칼라일의 말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열 때문에 비몽사몽한 아벨라는 바보처럼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효과가 제법 좋았어요. 그러니 엄마도 해 보세요.”

그가 애써 미소를 그리며 말을 마쳤다. 아벨라는 칼라일의 말대로 눈을 감고 맛있는 걸 잔뜩 먹는 상상을 했다. 그러자 머지않아 졸음이 몰려왔다.

토닥토닥. 저를 달래는 칼라일의 손길을 느끼며 아벨라가 천천히 꿈나라로 향했다.

칼라일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도 처음이었어요.”

따뜻한 온기로 가득한 방 안에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속살거렸다.

“저 같은 걸 걱정해 준 사람도, 저 같은 걸 치료해 준 사람도. 엄마가 처음이었어요.”

붉은 눈동자가 묘한 이채를 띠며 번뜩였다.

아벨라는 모를 것이다.

과거의 칼라일이 아플 때마다 생각했던 맛있는 고기들을 뜯어 먹는 상상. 그 상상 중 ‘맛있는 고기’들이 그의 가족과 동족을 뜻한다는 걸.

칼라일은 아플 때면 늘 생각했다. 제 가족들, 더 나아가 동족들. 그 모두의 목에 자신의 이를 박아 넣는 날을.

이를 박아 넣고 살점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목을 물어뜯어 그들의 살로 제 배 속을 채우는 날만을 상상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실제로 그리할 수 있는 날이 올 것만 같아서 삶의 의지가 샘솟았었다.

그냥 죽을까, 싶어지다가도 죽을 각오로 한 놈이라도 숨통을 끊어 놓고 싶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동족들을 몰살한 날.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진창 같은 삶이 억울할지언정 적어도 그들에게 복수는 한 셈이었으니 대가가 제 숨통이라 해도 만족스러운 복수였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눈꺼풀에 미련 따위 없었다.

그랬던 칼라일을 데려간 게 아벨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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