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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10화 (11/82)

<010>

칼라일이 쪼르르 아벨라에게 달려가 안기며 뺨을 비비적거렸다. 아벨라는 대답 대신 그를 품 안에 꽉 그러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누가 우리 아가한테 식충이라고 했을까…….”

“응?”

“아가, 산딸기 맛없으면 안 먹어도 돼.”

순진무구한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칼라일은 제법 천진해 보였다.

“고기만 먹어도 식충이 아니야. 그러니까 억지로 먹는 거면 안 먹어도 돼…….”

“억지로 먹는 거 아니에여! 엄마가 조아하는 거 나도 조아! 엄마 산딸기 조아하자나여!”

“칼라일…….”

“그러니까 나도 산딸기 조아여.”

도대체 이 작은 아이는 무슨 마음으로 연신 제 눈치를 살피기 바쁜 걸까.

이따금, 칼라일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때면 아벨라의 속은 썼다.

하지만 그에게 이 이상 무어라 말한들,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았기에 아벨라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그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

“다 먹었으면 엄마랑 목욕할까?”

“응! 엄마랑 목욕 조아!”

* * *

어느새 목욕을 모두 마치고 나온 아벨라는 수건으로 칼라일의 털을 말려 주며 은근히 뒷다리를 조물거렸다.

혹 그에게 다리 장애가 있다 해도 아벨라는 상관없었으나, 앞으로 살아가며 불편할 일이 많을 테니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곧잘 마사지를 해 주고는 했다.

칼라일은 제 뒷다리를 만지는 아벨라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끔뻑였다. 언제나 자신이 불편해하는 곳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살펴주는 아벨라.

칼라일은 그녀가 왜 열심히 제 다리를 조물거려 주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한참 정성스러운 손길을 느끼던 칼라일은 힐끔 고개를 돌려 아벨라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응, 아가. 혹시 아팠니?”

물음에 칼라일이 조그마한 머리통을 좌우로 흔들었다.

“나 다리 안 나아여.”

“응?”

“다리…… 엄마가 조물조물 해줘도 계속 아플 거예여.”

알려준 적 없는 조물조물이라는 말까지 쓰는 칼라일을 보며 감탄한 것도 잠시.

“다리 원래 계속 아팠어여.”

그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한다.

“제 다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아팠대여.”

언제나 하늘을 향해 뾰족 솟아 있던 귀 또한 축 처져 있었다.

“그러니까 안 나아여…….”

순간 아벨라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간 함께하면서도 과거 얘기는 일절 하지 않던 칼라일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옛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면 노골적으로 말을 돌렸다.

저를 만나기 전 이야기라든가, 산에 왜 그런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는지. 아벨라 또한 그에 대해 궁금한 건 많았지만 노골적으로 피하는 칼라일의 모습에 암묵적으로 입을 닫고 있었다.

그런 칼라일의 입에서 먼저 옛이야기가 나오다니. 조금 놀라웠다.

“그, 그래……?”

당황한 아벨라가 말을 더듬거리며 그의 왼쪽 다리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주무르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엄마…….”

“응, 아가.”

“엄마는 제가 다리 절뚝거려도 안 버릴 거예여?”

또다. 또.

그간 칼라일과 지내며 느낀 점이라면, 그는 유독 제가 버려질까 전전긍긍한다는 것이었다.

아벨라가 버리지 않을 거라며, 평생 함께하겠다고 어르고 달래 보아도 칼라일은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늘 의기소침하게 굴곤 했다.

“아가, 엄마가 말했잖아.”

“…….”

“엄마한테는 칼라일 너밖에 없어. 네가 내 유일한 가족이야.”

“……정말요?”

“응, 그런데 어떻게 널 버리겠어.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정말이었다. 아벨라는 칼라일의 모든 것이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하물며 피처럼 붉은 눈동자마저도 예뻐 보였다.

입을 다물고 있을 때면 아랫입술 위로 삐죽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송곳니도, 놀라거나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면 툭 튀어나오는 귀와 꼬리도.

전부 아벨라로 하여금 그를 품에 꽉 그러안고 마구 부비부비하고 싶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어디 그뿐일까? 늑대의 모습으로 있을 땐 검은 털뭉치가 발톱 소리를 촉촉촉 내며 방 안을 돌아다니는 게 앙증맞았고, 밤이 되면 본능적으로 하울링을 했다가 화들짝 놀라는 것도 그녀의 눈에는 한없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벽을 쾅쾅 내리치게 만들곤 했다.

처음 그를 데려왔을 때야 어떨지 몰라도 지금의 아벨라는 칼라일을 산으로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곁에서 짧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애교부리는 몸짓이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이제는 집에 그가 없으면 허전할 게 틀림없다.

아벨라가 애정 가득 담긴 눈으로 칼라일을 보며 살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럼에도 축 처진 그의 귀는 솟아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정한 손길에도 칼라일의 표정은 여전히 그늘져있었다.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래도.”

“하지만 저는 다리 병신인걸요. 저 같은 건 쓸모없어요. 괜히 고기나 축내고…….”

다리 병신이라니. 과격한 언사에 놀란 아벨라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아가!”

그녀도 모르게 순간 버럭, 큰소리가 뱉어졌다. 그러자 놀란 칼라일이 몸을 흠칫하며 웅크렸다.

“그런 나쁜 말 하는 거 아니야.”

칼라일은 귀를 착 내리고 불쌍해 보이는 눈으로 힐끔 아벨라의 눈치를 살폈다.

“다리 병신이라니, 누가 아가한테 그런 말을 했어. 그런 못된 말 하는 거 아니야. 엄마 속상하게 왜 그래. 응?”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래도. 아니면 일부러 엄마 속상하라고 그러는 거야?”

아벨라가 짐짓 엄한 목소리로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러다 시무룩해진 칼라일을 품에 꽉 그러안고는 등을 토닥였다.

“누가 이렇게 예쁜 우리 아가한테 그런 나쁜 말을 했을까…….”

젖살 가득한 뺨을 매만지며 아벨라는 속상함에 쓰게 웃었다.

“엄마는 매일 예쁘다, 예쁘다 듣기 좋은 말만 해 준 거 같은데…… 아가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 정말 슬퍼.”

그녀가 정말 서운하다는 듯 말하자 그제야 칼라일이 손을 꼼지락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럼…… 그럼 엄마는 정말 평생 저랑 같이 살 거예요?”

그가 순수한 눈으로 아벨라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순간 아벨라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푸흐흐 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평생이라니. 대부분 사내들이 그러하듯, 칼라일 또한 성인이 된다면 다른 여인과 살림을 차릴 게 분명했다.

지금이야 이렇게 말한다지만 몇 년 후에는 결혼할 여자가 생겼다며 제 품을 훌쩍 떠날 것이었다. 막상 그리 생각하니 아벨라는 벌써 속이 쓸쓸했다. 그럼에도 옅게 웃으며 칼라일에게 대답했다.

“아가가 원한다면 물론이지.”

“정말 정말요?”

“그럼, 정말 정말.”

작은 손으로 꼬물꼬물 손도장까지 찍고 난 후에야 칼라일은 안심된다는 듯 헤실거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약속한 거예요.”

칼라일이 아벨라의 허리춤을 와락 끌어안고는 기분 좋다는 듯 몸을 뭉그적거렸다.

“헤헤…… 엄마 향기 좋아요.”

“응? 내 향기?”

“네! 엄마한테는 늘 기분 좋은 향이 나요.”

그 말이 정말인지, 칼라일은 연신 그녀의 몸에 얼굴을 파묻고 킁킁거렸다.

‘늑대라서 후각이 좋은 건가?’

신기함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 아벨라는 이내 그런 칼라일마저 사랑스러워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칼라일이 기분 좋은지 그릉그릉 목울림 소리를 냈다. 좌우로 쫑긋쫑긋 움직이는 귀도 마냥 어여뻤다.

“엄마는 정말로 저 안 미워할 거죠?”

“물론이지.”

“막, 막…… 만약에 이짜나요.”

“만약에?”

“만약에…… 아주 만약에…….”

칼라일이 머뭇거리며 뜸을 들였다. 아벨라가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제야 쭈뼛거리며 말을 이었다.

“만약…… 제가 막, 아주 나쁜 늑대면…… 그래도 안 미워할 거예여?”

“아주 나쁜 늑대?”

부정적인 수식어에 아벨라가 되묻자 칼라일은 물기 어린 눈으로 슬며시 그녀를 올려다봤다.

“막…… 막 제가 누구를 죽였을 수도 이짜나요…….”

그러다 이어진 뒷말에 아벨라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푸흣……!”

누구를 죽이다니. 이렇게 작은 아이가? 기껏해야 산에 돌아다니는 토끼와 꿩이 전부일 것이었다.

아벨라는 깡똥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죽음을 논하는 칼라일이 우습기도 귀엽기도 해서, 털로 복슬한 뺨을 다정히 어루만졌다.

“아유, 귀여워.”

뾰쪽하게 튀어나온 송곳니는 확실히 성체가 된다면 위협적으로 보일지도 몰랐으나, 적어도 지금의 칼라일에겐 아니었다.

“우, 웃지 말고요……! 제가, 제가 막 누구를 잡아먹었을 수도 이짜나요!”

제 말을 흘려듣는 그녀를 보며 칼라일이 다시 한번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벨라는 쿡쿡 웃기만 할 뿐이었다.

“왜, 아가가 엄마를 잡아먹고 싶기라도 한가 봐?”

농담조로 묻자 놀란 칼라일이 펄쩍 뛰어오르며 마구 고개를 젓는다.

“아, 아니에여! 아니에여!!! 저, 저는…… 저는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그게…… 어, 엄마는 절대 안 물어요!”

당황한 그가 삐죽 튀어나온 제 송곳니를 숨기기 위해 우스꽝스럽게 입 모양을 바꿨다. 바보 같은 모습에 아벨라가 꺄르륵 웃자 민망한지 뺨을 살짝 부풀렸다.

“정말인데……. 엄마랑 계속 같이 살 건데…….”

핏빛 눈동자가 힐긋 아벨라를 향했다. 마치 그녀의 반응을 살피는 것 같다. 그런 칼라일을 보며 아벨라는 속으로 ‘어디 커서도 그런 말 하나 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그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칼라일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평생 저랑 단둘이서만 살아야 해요. 알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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