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9화 (10/82)

<009>

순간 칼라일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한 아벨라는 잠시 머뭇거렸다.

과연 제가 칼라일이 다 클 때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사실 결혼이야 원래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빴던 그녀에게는 크게 생각 없던 부분이긴 했다.

하지만 과연 제가 제 배 아파 낳은 아이도 아닌, 남이나 다름없는 칼라일을 진심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함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지금이야 마냥 작고 귀여운 아이라지만…….

아벨라가 머뭇거리자 칼라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음울하게 표정을 죽였다. 그러고는 엉거주춤하게 그녀의 손을 밀어내며 쭈뼛쭈뼛한다.

“엄마…….”

“…….”

“역시…… 흑, 버릴 거죠……?”

기껏 그치나 싶었던 울음이 다시금 터지려고 했다. 칼라일의 눈에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당황한 아벨라가 그를 달래려던 것도 잠시.

“흑, 어차피 버려질 거라면…… 차라리, 흑, 지, 지금…… 그냥 나갈래요…….”

“칼라일!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아벨라의 외침에도 칼라일은 곧장 모습을 바꾸었다. 인간에서 다시금 늑대가 된 그는 축 처진 귀와 꼬리를 한 채 힘없이 현관문을 향해 걸었다.

그 뒷모습이 퍽 애처로웠다. 우울해 보이던 눈은 마치 또다시 버림받았다는 것에 큰 상처를 입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떠나려는 작은 털뭉치를 보며 아벨라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속이 울렁거렸고,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아가!”

그러고는 곧장 털뭉치를 들어 제 품에 꼭 안았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아우…….”

아벨라가 붙잡았음에도 칼라일은 고개를 도리질하며 놓아 달라는 듯 발버둥 쳤다.

“씁, 아가, 가만히 있어.”

“아우우…….”

“신중하고 싶었을 뿐이야. 새로운 가족을 들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 나는…… 나는 그러니까 무책임하게 동물을 기르다 유기하는 사람들처럼 가볍게 너를 들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생각이 필요해서 잠시 머뭇거린 거야.”

아벨라의 말에 시무룩하던 칼라일이 힐끔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솔직히 자신이 없어. 나는 돈도 없고…… 신분이 높은 것도 아니고…… 네가 해 달라는 걸 전부 해 줄 수 있을 만큼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래서 선뜻 대답하지 못한 것도 있어. 당장 지금만 해도 네 앞에서 돈 걱정을 한 탓에 네가 눈치를 보게 만들고, 밤 사냥까지 나가게 했었으니까.”

아벨라가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심호흡했다. 그러다 무언가 큰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그래도 만약 네가 괜찮다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게. 그러니까 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이야. 물론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미숙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아가 네가 좋아. 귀엽고 사랑스럽고 또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오곤 해. 네가 우리 집에 온 후로 웃는 날이 많아졌어. 가게 문 닫고 돌아오는 발걸음도 훨씬 가벼워졌고…….”

확실히 그랬다. 누군가가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 아벨라도 난생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어서 퇴근길이 평소보다 신이 나곤 했다.

아벨라는 제대로 된 가족이 없었다. 고아 출신이던 그녀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길러졌고, 그러다 나이가 차 더 이상 보육원에 있을 수 없게 된 순간부터는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소액의 돈을 받아 독립했다.

귀족가의 하녀로 일할까 고민하다 땅값이 저렴한 국경 인근의 변두리 마을에 터를 잡았고, 이곳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약초상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게 지금의 아벨라였다.

당연하게도 아벨라는 따뜻한 가족의 품을 모른다.

그녀가 아는 건 온기 없이 텅 빈 집안이나, 애정 따위 없던 보육원장의 차가운 시선뿐이다.

그래서 처음 칼라일을 집에 들였을 때, 기분이 미묘했다.

늦은 저녁 돌아온 집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라든가, 타인의 온기, 흔적 따위의 것들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생소한 것이었으니까.

아벨라가 칼라일을 똑바로 마주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아가 너만 괜찮다면…….”

칼라일이 새빨간 눈동자를 끔뻑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우리…… 진짜 가족이 되어 볼래?”

가족이라는 말에 기껏 울음을 그친 눈가에 다시금 물기가 어렸다. 칼라일은 끙끙거리다 이내 아우, 아우, 우는 소리를 내며 아벨라의 품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아벨라는 제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털뭉치를 느끼며 저도 모르게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이건, 아벨라에게도 칼라일에게도 처음 생기는 가족이었다.

* * *

그날 후로 아벨라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칼라일을 산에 돌려보내려 했던 생각을 바꾸었다는 말이다.

“마, 엄마!”

“응? 우리 아가 무슨 일일까.”

“이거! 딸기! 딸기 따 왔어여!”

칼라일이 폴짝거리며 제 손에 한 아름 담긴 산딸기를 내밀었다.

근래 아벨라가 사냥을 못 하게 하니 산 열매 쪽으로 눈을 돌린 칼라일이었다. 신나게 산을 뛰어놀다 온 건지, 몸 곳곳에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가 가득했다.

기껏 아벨라가 입혀 준 새 옷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와, 정말 산딸기네?”

그럼에도 아벨라는 칼라일을 질책하거나 혼내지 않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잘했어, 아가. 그럼 오늘은 간식으로 아가가 따 온 산딸기 씻어 먹을까?”

“웅! 산딸기! 산딸기 조아여!”

늑대면서 산딸기를 먹다니. 생각해 보면 조금 우스웠으나, 아벨라가 좋아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꾸역꾸역 따라 먹는 칼라일이었다.

요 며칠 사이 키가 크기는 어찌나 컸는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아벨라의 허벅지쯤 오던 키가 지금은 골반 언저리까지 올 정도로 컸다.

게다가 말을 배우는 것 또한 무척 빠르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아벨라를 따라 하는 것 같더니, 이제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술술 말할 줄 안다.

아벨라가 작은 나무 바구니에 칼라일이 따온 산딸기를 담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느새 칼라일은 다시금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가 지저분해진 털을 고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지낸 지도 어언 석 달째였다.

“아가, 다리는 좀 어때?”

아벨라가 깨끗이 씻은 산딸기를 가져오며 물었다. 그러자 칼라일이 귀를 쫑긋 세우며 아벨라를 바라보았다.

늘 평화롭기만 하면 좋을 텐데.

여전히 아벨라를 걱정스럽게 하는 건 칼라일의 다리였다. 석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도록 절뚝이는 다리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벨라의 질문이 껄끄러웠는지 칼라일은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잽싸게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칼라일은 절뚝이며 식탁 의자에 올라가 앉았다. 고작 식탁 의자에 앉는 것뿐인데도, 가급적 왼쪽 다리에 힘을 주려 하지 않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제 다리를 향한 아벨라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칼라일이 몸을 낮추며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 아벨라는 일부러 태연하게 웃어 보이며 흙투성이가 된 칼라일의 뺨을 조심스레 닦아 주었다.

“산에 다녀왔더니 지지네, 지지. 아가, 딸기 먹고 목욕해야겠다.”

그녀가 화제를 돌리며 산딸기를 집어먹자 그제야 안도한 건지 칼라일 또한 배시시 웃으며 아벨라를 따라 산딸기를 하나둘 집어먹었다.

칼라일이 입을 벌릴 때마다 인간과는 다른 뾰족한 송곳니가 번뜩였다.

확실히 저런 모습을 볼 때면 인간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작고 앙증맞던 산딸기는 늑대의 날카로운 이빨 아래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조그마한 손으로 연신 산딸기를 집어 먹던 칼라일은 순간 미간을 와락 구기며 물을 마구 들이켰다.

“으아…….”

새카만 머리칼 위로는 어느새 뾰족 귀가 비죽 솟아올라 있다.

“셔…….”

칼라일이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설익은 산딸기 하나가 틈에 껴 있었던 모양이다.

오만상을 쓰고 앓는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칼라일을 본 아벨라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흐흐…… 설익은 게 섞여 있었나 봐.”

시다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귀여워 웃은 건데, 칼라일은 아벨라가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그녀가 웃으니 좋다며 바보처럼 따라 웃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오만상을 쓰고 있던 모습과 정반대의 표정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아벨라의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저 작은 털뭉치가 사랑스럽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께가 간질간질하고 몽글거리는 기분이다.

“엄마! 엄마!”

어느새 나무 그릇에 담겨 있던 산딸기를 싹 비운 칼라일이 아벨라를 불렀다.

“산딸기 다 머거써요!”

마치 저를 칭찬해달라는 듯한 모양새다.

귀에 이어 꼬리까지 튀어나온 칼라일은 붉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아벨라를 응시했다. 뒤에서 살랑이던 꼬리는 좌우로 빠르게 흔들리며 기대감을 표현했다.

이건 칼라일이 칭찬받고 싶을 때 나오는 버릇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벨라는 그런 그의 행동에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마, 엄마!”

고작 산딸기를 다 먹은 것으로 칭찬해 달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헤…… 고기 말고 풀이나 열매도 머글 수 이써요!”

칼라일이 눈을 접어 가며 환히 웃었다. 하나 안에 담긴 말은 아벨라로 하여금 웃지 못하게 만들었다.

“엄마, 엄마! 이제 저 식충이 아니에여!”

“…….”

“밥으로 고기 안 머거도 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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