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시간은 벌써 늦은 새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벨라는 칼라일을 앉혀 둔 채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고, 지은 죄가 있는 칼라일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긴장해서 그런 걸까.
칼라일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음에도 새카만 머리칼 위로 뾰쪽한 늑대 귀가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쫑긋 솟아올라 있어야 할 귀가 오늘은 축 처져 기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푹 숙인 조그마한 머리통은 도통 들릴 줄 몰랐고, 늘 방실방실 웃고 있던 아벨라는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칼라일을 응시했다.
‘엄마가 화났어…….’
칼라일 또한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밤 사냥을 가지 말라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까.
‘밥만 축내는 식충이인 데다가 말도 안 들어서…….’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서러워졌다. 문득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 보니 아벨라가 저를 데리고 있는 게 의아할 지경이었다.
죽을 뻔한 늑대를 구해다 살려놨더니, 말도 안 듣고, 하는 일이라곤 육식이라는 이유로 값비싼 고기나 날름날름 얻어먹는 게 전부였다.
이대로라면 어느 날 갑자기 아벨라가 저를 다시금 산에 내버리고 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뜸을 들이고 있는 이유도, 다시금 저를 산에 돌려보내려고 고민 중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칼라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 엄마…….”
결국 겁먹은 칼라일이 울먹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시원스럽게 째져 있던 눈매는 기운 없이 처져 물기를 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칼라일은 몇 번 주워들은 적 있는 인간의 말을 되짚으며 힘겹게 말을 뱉었다.
“자, 잘못…… 잘모태써요.”
예상치 못한 반성의 말에 아벨라가 제법 놀랐다. 그러나 칼라일 앞에서는 놀란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엄마, 엄마…….”
“…….”
“사냥, 아, 안 갈게여.”
칼라일이 훌쩍이며 제 옷소매로 눈가를 비비적거렸다. 조그마한 몸이 위아래로 들썩이기까지 했다.
다 나을 때까진 안 된다고, 따끔하게 혼을 내려 했는데……. 작은 아이가 훌쩍이는 모습은 아벨라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결국, 보다 못한 아벨라가 슬슬 화를 풀려고 할 때였다.
힘겹게 울음을 삼키던 칼라일이 결국 참지 못하고 엉엉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자, 잘모태써요, 흑, 엄마, 흑, 제, 제가 고기 많이 안 머글게여. 그러니까…… 흑, 그러니까 버리지 마여. 흑, 흐윽…….”
순간 아벨라는 얼빠진 얼굴로 입을 벙긋거렸다. 칼라일의 다리가 걱정되어서, 그래서 크게 한 소리 하려던 것뿐인데…… 버리지 말라니. 고기 많이 안 먹겠다니!
이래서야 마치 제가 계모라도 된 기분이지 않은가!
갑작스러운 울음에 당황한 아벨라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 번 터지기 시작한 아이의 울음은 멈추지 않고 고요한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칼라일이 연신 눈물 흘리며 잘못했다는 말과 버리지 말라는 말을 번갈아 중얼거렸다. 놀란 아벨라는 우선 엉엉 우는 그를 품에 확 그러안았다.
“자, 잠깐만 아가. 뚝. 뚝 해, 뚝. 울지 마. 응?”
조그마한 몸이 품 안에 쏙 갇히듯 안겼다. 아벨라가 안아 주자 칼라일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허리춤을 더욱 세게 안고는 품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아가, 엄마 여기 있어. 울지 마. 고기 많이 먹어서 그런 거 아니야, 고기 많이 먹어도 돼.”
“흑, 흐윽…… 엄마, 엄마아……!”
아벨라가 위아래로 들썩이는 작은 몸을 토닥이며 칼라일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엉망으로 잘려있던 짧은 머리칼이 그녀의 손 틈으로 부드럽게 스쳐 지나간다.
어째서 이 작은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아벨라는 이해하기 힘들었고 동시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많이 안 먹겠다니…….’
일전에 내가 식비 걱정을 한 것 때문일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칼라일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든 게 틀림없었다. 아벨라가 씁쓸함을 숨기지 못하고 작게 한숨을 토했다.
“자, 흑, 잘모태써요…… 흑, 제, 제가 고기, 흑, 마니 머거서…….”
여전히 칼라일은 훌쩍이며 아벨라에게 버리지 말아 달라며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작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면…….
아벨라가 괴로움에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아가, 그런 말 마.”
“흑, 흐윽…….”
“한창 커야 할 나이니 많이 먹는 건 당연한 거야.”
“하, 흑,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아가, 엄마는 아가가 안 먹는 것보다 잘 먹는 게 더 좋아. 만약 아가가 밥을 제대로 안 먹었다면, 엄마는 우리 아가가 왜 밥을 안 먹을까, 걱정하느라 밤에 잠도 설쳤을 거야.”
아이를 달래는 손짓은 부드럽고 다정했다. 그리고 그녀가 뱉은 말도 모두 진심이었다.
정말로 아벨라는 만약 칼라일이 음식을 먹지 않았더라면, 왜 먹지 않는가에 대해 고민하느라 몇 날 며칠을 꼬박 흘려보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엄마가 화난 건, 아가가 많이 먹어서 그런 게 아니야. 그건 당연한 건데 왜 화를 내.”
“흑, 흐윽…….”
“불편한 다리로 밤에 사냥 나가는 게 걱정돼서……. 그래서 가지 말라고 했던 건데, 말을 안 들으니 속상하고 그래서 화가 난 거야.”
훌쩍이는 작은 몸을 토닥이며 아벨라가 제 품 안으로 더욱 끌어당겼다. 아이는 힘없이 그녀에게 안기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울지 마. 응?”
“흐윽, 하, 흑, 하지만…….”
“하지만?”
“엄마는…… 흑, 저, 저 버릴 거…… 흑, 버릴 거 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발끈하려던 아벨라는 이어진 뒷말에 순간 멈칫했다.
“어, 엄마는…… 흑……. 저, 저번에도…… 저 두고 가서……. 흑, 흐윽…… 비, 비 오는데…… 흑, 어, 어둡고, 춥고…….”
아벨라는 그가 말하는 날이 언제인지 단박에 눈치챘고, 순식간에 얼굴이 굳었다. 제가 칼라일을 산에 두고 온 날. 그날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나는 그저 원래 있던 곳에 돌려보내 주려 한 것뿐이었는데…….’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아벨라가 죄책감에 미간을 구겼다.
“아가…….”
“흑, 흐윽……. 그, 그래서…… 사냥……. 흑, 사냥해서…… 어, 엄마한테…… 흑, 도움 되면…… 그럼 안 버려질 테니까…….”
작게 웅크린 몸은 아벨라의 품에서 떨어지기 싫다는 듯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저, 저 같아도…… 흑, 고기만 잔뜩 먹는, 흑, 식충이는…… 싫어할 거예요.”
인간의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는데. 제법 말이 능숙하다. 하지만 아벨라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 따위 없었다.
“아니야, 이렇게 예쁜 아가가 왜 식충이야.”
“흑, 흐윽……. 마, 맞는 걸요……. 얹혀사는 주제에 매일 비싼 닭고기나 먹고…….”
어눌한 발음 덕분에 안쓰러움은 배가 되었다. 아벨라는 일정하게 칼라일의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아니래도. 응? 우리 아가 식충이 아니야, 한창 클 나이니까 먹는 건 당연해.”
그런데 문득 품에 안은 칼라일의 몸집이 평소보다 조금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단순히 기분 탓일까.
아벨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그를 밀어내 보였다. 그러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분명 처음 왔을 때보다, 키가 조금 더 컸다.
“어머.”
아벨라는 눈물로 엉망이 된 칼라일을 보며 짧게 감탄했다.
“아가, 이것 봐. 밥도 잘 챙겨 먹고 하니까 그새 키가 컸어.”
칼라일은 난데없이 키 얘기를 꺼내는 그녀를 보며 코를 훌쩍였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보다 10cm는 더 큰 거 같은걸?”
아벨라가 눈을 빛내며 그를 벽 앞에 세웠다. 그러고는 과도를 이용해 칼라일의 머리 위로 선을 그었다. 날카로운 과도가 나무 벽에 파고들자 옅은 흠집이 남았다.
울다 말고 난데없이 키를 잰 칼라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팅팅 부은 눈을 끔뻑였다.
“아가, 이것 봐. 처음에는 한 이 정도 됐던 것 같은데 벌써 키가 커서 여기까지 와.”
“흑…….”
“식충이라니. 잘 먹고 잘 자서 쑥쑥 크니 얼마나 좋아. 엄마는 무척 기분 좋은걸? 얼른 더 커서 엄마보다 커져야지. 그래서 나쁜 사람들이 엄마 못 괴롭히게 우리 애기가 지켜 줘야지.”
“흑……. 나, 나쁜 사람들이여?”
소매로 눈가를 비비적거리던 칼라일이 의기소침하게 묻는다.
“그, 그럼…….”
“응, 그럼?”
“엄마는…… 흑, 엄마는 제가, 다, 다 클 때까지 안 버리고…… 흐끅, 같이 살 거예여?”
아이의 손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는다. 그러고는 마치 저를 버리지 말라는 듯 물기 가득한 눈으로 아벨라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