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그런데…… 샐러드를 깨작거리며 분주히 집 안을 뛰어다니는 칼라일을 보고 있던 무렵, 아벨라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신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조그마한 몸의 움직임이 뭔가 이상했다. 삐걱삐걱 나무토막처럼 어색하다고 해야 할까. 마치 한쪽 뒷다리가 불편한 것처럼 은근히 다리를 절고 있었다.
‘뭐지……?’
다리가 불편한가? 혹시 사냥하다 다쳤나?
티 내지 않고 조용히 칼라일의 행동을 주시하던 아벨라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아가.”
그러자 칼라일이 앙살 맞게 짖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우당탕 달리던 행동을 멈추고 제 자리에 선 칼라일은 왼쪽 뒷다리를 티 나지 않게 살짝 들고 있었다.
역시 다리가 불편한 게 틀림없었다.
아벨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뒷다리를 훑었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리 다쳤니?”
그러자 칼라일이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다쳤다고?”
“아우!”
“하지만 다리를 저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칼라일을 산으로 돌려보내 주기 전에 아픈 곳 없이 자잘한 상처까지도 전부 치료해 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욱 면밀하게 그의 뒷다리를 살폈다.
그 시선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린 건지, 칼라일이 몸을 움츠리며 서성서성 뒷걸음질 쳤다.
아무리 봐도 칼라일은 다리가 좋지 않은 듯했다. 아벨라의 얼굴에 속상함이 묻어 나왔다.
‘이런……. 사냥하다 다쳤나 보네.’
아벨라가 다리를 살피려 하자 낌새를 눈치챈 칼라일은 잽싸게 몸을 내빼며 도망쳤다. 마치 다친 걸 숨기고 싶어 하는 듯했다.
“잠시만, 아가. 이리 와 볼래? 응? 아프게 안 해. 잠깐 보려는 것뿐이야.”
나긋나긋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르고 달래 봐도, 칼라일은 고개를 마구 저으며 그녀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쳤다.
“아가, 정말 아프게 안 해. 보는 것뿐이래도?”
“끼잉…….”
경계심으로 가득해진 칼라일의 시선이 아벨라를 향했다. 보송한 검은 털들도 긴장한 건지 삐죽삐죽 일어서 있었다.
“엄마가 다리 안 아프게 해 줄게.”
걱정 어린 말에도 칼라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소파 밑으로 몸을 숨겼다. 이렇게까지 저를 피할 줄은 몰랐기에, 당황한 아벨라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어쩌지.’
다리가 불편한 채로 산에 돌려보낼 수는 없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다리. 야생에서 다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던가.
맹수가 다리를 다치면 사냥감을 쫓지 못해 굶어 죽을 것이었고, 초식동물이 다리를 다치면 맹수를 피하지 못해 사냥감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었다.
결국 고민하던 아벨라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목소리 톤을 바꿨다.
“아가, 너 정말 이리 안 와?”
그녀는 동글동글 순하게 처져 있던 눈을 뾰족하게 세우고 소파 밑에 숨은 칼라일을 매섭게 쏘아봤다.
“엄마 화낸다?”
아벨라의 분위기가 달라지자 칼라일 또한 당황한 건지 불안감에 꼬리로 바닥을 탁, 탁 내리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엄마가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아가 아파하길래 봐 주려는 건데 먼지 구덩이에 숨기나 하고, 아주 혼나야지.”
“끼잉…… 낑…….”
낮아진 목소리 톤에 소파 밑에 숨었던 칼라일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슬그머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내가 아주, 어? 아가 잡아먹는 줄 알겠어.”
“낑…….”
근래 아벨라의 집에서 생활하며 하늘을 향해 자신만만하게 치켜 올라갔던 꼬리가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축 처졌다.
몸을 납작하게 낮춘 칼라일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발발 떨었다.
조그마한 털뭉치가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떠는 모양새가 꽤 측은해 보여서, 아벨라는 순간 제가 심했나 하는 생각에 잠겼다.
“이리 와.”
아벨라가 쭈그리고 앉아 칼라일과 눈높이를 맞추며 바닥을 손으로 탁탁 두들겼다. 그러자 칼라일이 쭈뼛거리며 한 발짝, 두 발짝 아벨라를 향해 다가왔다.
“진즉 엄마 말 들었으면 좀 좋니?”
매섭던 목소리는 어느새 평소처럼 유하게 돌아와 있었다. 아벨라가 조심스럽게 칼라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른 곳이 아픈 것도 아니고 다리가 아픈 거잖아. 늑대한테 다리가 얼마나 중요한데…….”
“끙…….”
시무룩해 보이는 칼라일의 귀 사이와 콧잔등을 살살 문지르며, 아벨라가 그를 안아 들었다.
“우리 애기, 어디 보자…….”
그녀는 검은 털뭉치를 품에 안고 소파에 걸터앉아 불편해 보이던 왼쪽 뒷다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칼라일이 몸을 빳빳이 굳히며 눈을 크게 떴다.
“여기 불편하니?”
아벨라의 물음에도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저 나무토막처럼 굳은 몸으로 이를 꽉 깨문 채 흠칫흠칫 떨기만 할 뿐이다.
“혹시 상처가 났나?”
아벨라가 아주 조심스럽게 뒷다리의 털을 살살 만지작거렸다.
“이상하네, 다친 곳은 안 보이는데…….”
한참 뒷다리를 살피던 아벨라는 결국 다친 곳을 찾지 못했다. 찾다 지친 아벨라가 결국 포기하고 칼라일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구석으로 우당탕 달려가 몸을 웅크렸다.
‘아무래도 요 며칠 지켜봐야겠어.’
아벨라가 눈썹을 씰룩이며 생각했다. 칼라일은 여전히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못한 채였다.
* * *
아벨라는 다리가 불편한 칼라일이 밤마다 사냥을 나가는 게 마뜩잖아서, 당분간 산에 가지 말라 신신당부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혹여 저 몰래 사냥을 나갈까 걱정됐는지 문을 열지 못하도록 이중으로 잠금장치를 달기까지 했다.
높은 곳에 두 번째 잠금장치가 있는 탓에, 아직 키가 작은 칼라일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도 잠금을 풀 수 없었다.
“낑…….”
아벨라의 예상대로, 가지 말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밤사냥을 가기 위해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온 칼라일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문 앞을 서성였다.
잠금장치를 향해 폴짝폴짝 뛰어 봐도 역부족이었다. 한참 버둥거리던 그는 결국 체념하고 늑대의 모습으로 문을 벅벅 긁었다. 나무로 된 문에 늑대의 발톱 자국이 옅게 남았다.
“아우우…….”
그러다 본능적으로 하울링을 하고 말았다. 순간 놀란 칼라일이 입을 헙 다물며 아벨라가 잠에서 깬 건 아닌지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꿈나라를 헤매는 듯하다.
“끼잉…….”
칼라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문을 닫아 버리면, 제가 사냥을 나가지 못하게 되고, 그럼 아벨라는 다시금 돈 걱정을 시작하지 않겠는가.
‘쓸모가 없어지면…….’
순간 칼라일은 큰 상처를 입고 산에 버려졌던 그 날이 떠올라서,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돼…….’
엄마가 나를 버릴 거야. 밥이나 축내는 쓸모없는 식충이라고 생각하며 미워할 거야.
처음 꿩을 잡아 왔을 때는 아벨라 또한 제법 놀란 눈치였으나, 그래도 그것을 팔아 근래 걱정 없이 식재료를 사들이고 있다는 걸 눈치 빠른 칼라일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더더욱 밤 사냥을 멈출 수 없었다.
한참 고민하던 칼라일은 다시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뒤, 식탁 의자를 질질 끌고 왔다. 나무 바닥에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드르륵, 드르륵, 울렸으나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칼라일은 현관문 앞에 의자를 놓은 뒤 그것을 밟고 올라가 위쪽에 자리한 잠금장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적으로 가득한 집 안에 철컥철컥, 문을 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꽤 한참 동안 꼼지락거리던 그는 잠금장치를 모두 풀고는 날렵하게 의자에서 내려왔다.
“휴…….”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이 아닌 덕분인지 움직임은 제법 날쌨다. 하지만 역시 왼쪽 다리가 불편한 게 맞는지 조금 절뚝이며 행동한다.
잠금장치를 모두 푼 칼라일은 뿌듯하게 웃어 보이며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아가.”
칼라일이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기 무섭게, 기척도 없이 나타난 아벨라가 덥석 손목을 잡아챘다.
“지금 뭐하니?”
이번엔 정말 단단히 화난 듯한 목소리가 무겁게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칼라일의 몸이 쭈뼛 굳어졌다. 당황한 건지 늘 쭉 째져 있던 눈매가 지금은 동그랗게 뜨여 있었다.
칼라일은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움직여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어둠 속에서 흉흉히 빛나는 아벨라의 분홍빛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번엔 아벨라가 정말 화났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