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6화 (7/82)

<006>

고롱고롱 깊은 잠에 빠진 듯하던 늑대의 눈이 순간 불시에 번쩍 뜨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흉흉한 적안이 기이하게 이채를 띠었다. 늑대는 뾰족 귀를 쫑긋 세우고는 잠든 아벨라를 응시했다.

마치 그녀가 정말 잠에 든 게 맞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듯했다.

한참 응시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그제야 몸을 일으켜 엉덩이를 뒤로 쭉 빼며 기지개를 켰다.

“끄으응…….”

앞다리는 앞으로, 뒷다리는 뒤로 쭉쭉 뻗어 완전히 몸을 푼 늑대는 이내 털을 한 번 푸르르 털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타닥, 발톱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결코 큰 소리가 아니었음에도 정적으로 가득한 방에서는 제법 크게 느껴졌다.

늑대는 뒷다리로 귀를 한 번 벅벅 긁고는 슬쩍 아벨라를 한 번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꿈나라였다.

늑대가 발걸음 소리를 죽이기 위해 살금살금 걸었다. 그럼에도 발톱 탓에 타닥, 타닥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늑대, 아니 칼라일은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뒤 현관문까지 뒤뚱뒤뚱 걸어갔다. 그러고는 폴짝거리며 힘겹게 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칼라일은 다시금 늑대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그러고는 아벨라와 제가 처음 만났던 라일산을 바라봤다.

-앞으로 식비가 제법 들겠네…….

잠들기 전 그녀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벨라는 모르겠지만, 칼라일은 제법 눈치가 빨랐다. 원래도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야 했던 탓에 그런 것 하나는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그는 평소에도 아벨라가 약초를 다듬으며 곧잘 돈에 대한 걱정을 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버림받지 않으려면…….’

쓸모가 있어야 해.

칼라일이 음울한 얼굴로 저를 산에 두고 떠났던 아벨라를 떠올렸다. 그러다 이내 재빠르게 털어 냈다.

‘아니야. 엄마는 다시 날 데려왔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또 버림받기 전에 도움이 돼야 해.

조그마한 털뭉치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날렵하게 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걸음이 무언가 이상했다. 산으로 달리는 뒷모습은 어딘지 절뚝이는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건, 일반적인 늑대들과는 달리는 모습이 조금 다르고, 그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었다.

* * *

“칼…… 라일?”

아침이 되기 무섭게 눈을 뜬 아벨라는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분명 저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칼라일이 진흙탕을 잔뜩 뒹군 듯한 몰골로 웬 꿩을 입에 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몸보다 한참 큰 꿩을 어찌 잡은 건지, 칼라일은 아벨라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

“너, 너, 너…….”

당황한 아벨라가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칼라일은 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에 물고 있던 꿩을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너, 너…… 대체 무슨…….”

꿩을 잡아 왔어……? 산에 간 건가? 혼자? 내가 잠가 두었던 현관문을 열고? 오밤중에? 대체 왜? 아니 게다가 사냥을 할 줄 알아……?

‘그럼 혼자서도 산에서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하나둘 아벨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벨라는 멍한 얼굴로 꿩을 바라보다가 이내 진흙투성이가 된 칼라일에게로 눈을 돌렸다.

“산에 간 거니?”

그러자 칼라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벨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왜?”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자 칼라일 또한 당황한 듯 몸을 살짝 움츠렸다.

꿩을 잡아 오면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반응에 살랑살랑 흔들리던 칼라일의 꼬리가 멈칫했다. 붉은 눈동자가 혼란으로 물들었다.

한참 눈치를 살피던 그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곧장 아벨라에게 다가가 몸을 치대기 시작했다.

“낑…….”

“아가…….”

“끼잉…….”

칼라일은 마치 화내지 말라는 듯 딱딱해진 아벨라의 표정을 풀어 주기 위해 열심이었다. 다리에 뺨을 비비고 몸을 치근덕거리며 늑대답지 않게 애교를 부렸다.

아벨라는 멍하니 꿩을 바라봤다. 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다만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왜?’

대체 왜 이 작은 아이가 오밤중에 나가서 사냥을 해 온 건지, 그게 의아했다.

아벨라는 제게 몸을 비비며 낑낑거리는 칼라일을 내려다봤다. 칼라일은 자신이 열심히 몸을 비비적거려도 풀리지 않는 아벨라의 얼굴을 보며 시무룩한 눈을 했다. 그러다 이내 늑대가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급히 모습을 바꾸었다.

“어무아.”

아이가 된 칼라일은 작은 손으로 곧장 아벨라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어눌한 발음으로 연신 그녀를 불렀다.

“엄마, 마…….”

그 부름에 아벨라가 칼라일과 눈을 맞췄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칼라일이 말을 덧붙였다.

“식비, 식비.”

“식비……?”

“엄마, 식비…….”

식비라는 말에 그녀가 잠시 멈칫했다.

식비 그리고 꿩.

‘설마…….’

내가 식비 걱정을 한 걸 알고 있었나……?

아니라고 하기엔 정황이 너무나 뚜렷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작은 아이가 왜 꿩을 잡아 왔겠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이에게 식비로 눈치를 주거나, 불편하게 하려던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눈치가 무척 빨라.’

아벨라는 제 치맛자락을 꼭 쥔 작은 손을 보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뱉었다. 그러곤 칼라일을 안아 들었다.

“우선 씻어야겠다. 비 와서 땅도 질척거릴 텐데, 완전 진흙투성이가 됐네.”

그녀가 굳었던 표정을 갈무리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칼라일도 아벨라를 따라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 * *

아벨라는 진흙투성이가 된 칼라일을 뽀독뽀독 씻겼다.

저 덕분에 오늘도 물을 데워야 하는 아벨라의 쓰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칼라일은 그저 제 몸 곳곳을 벅벅 긁어 주는 손길이 기분 좋아 그릉그릉 거릴 뿐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욕조에서 꺼내기 무섭게, 칼라일이 몸을 푸르르 털며 사방에 물을 튀겨 댔다.

순한 강아지 같은 모습에 아벨라가 작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뒤늦게 그가 사냥해 온 꿩을 바라봤다.

아무리 칼라일이 늑대라지만, 그래도 아직 새끼 늑대에 불과한데…… 제 몸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꿩을 잡다니.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꿩도 잡을 정도라면…….’

적어도 산에서 굶어 죽을 일은 없겠네.

괜히 어제 종일 그를 걱정한 게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그래, 이거 봐. 다 알아서 살 수 있다니까?’

내가 쓸데없이 호들갑 떤 거야.

아벨라는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다, 우기가 지나면 칼라일을 다시 산에 보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잘 됐어.’

내가 평생을 책임져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를 어쩌나 했는데. 칼라일은 늑대로서 산에서 살아가면 되는 거야.

“아가.”

아벨라가 아직 축축한 제 털을 말리기 위해 이불에 자신의 몸을 마음껏 비벼 대는 칼라일을 불렀다.

이름보다 아가라는 호칭이 더 익숙해서, 습관적으로 아가라고 불렀다. 그러자 칼라일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우며 아벨라를 바라봤다.

“꿩, 엄마 주려고 잡아 온 거야?”

언젠가 이웃집 에샤가 길고양이 밥을 챙겨 주다 답례로 참새나 쥐 따위를 선물 받았다고 들었는데……. 칼라일이 잡아 온 꿩도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우!”

칼라일이 긍정하듯 짧게 울었다. 아벨라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손길이 기꺼운지 꼬리가 조금 빠르게 좌우로 움직였다.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저를 신경 써서 꿩을 잡아 온, 순수하다면 순수한 그 마음씨가 곱게만 느껴졌다.

어느새 그녀의 마음에는 종전의 놀람 대신 작은 감동이 싹트고 있었다.

“고마워라…….”

아벨라가 고맙다는 말을 하자, 칼라일이 눈을 빛내며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조그마한 발로 폴짝폴짝 뛰며 연신 아우, 아우! 울어 댔다. 꼬리는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좌우로 붕붕 흔들리는 꼬리 덕분에 하늘로 두둥실 날아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확실히 칼라일이 잡아 온 꿩 덕분에 당분간은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가가 잡아 온 거니까…….’

꿩을 팔아 허튼 데 쓰지 말고, 모두 아가 줄 고기를 사는 데 써야겠어. 그렇게 다짐하며 아벨라는 칼라일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 * *

칼라일의 밤 사냥은 그날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매일 밤마다 아벨라가 잠들면, 몰래 집을 빠져나가 산으로 향하곤 했다.

아침이면 칼라일은 나뭇잎과 풀을 잔뜩 묻힌 채, 꿩이나 토끼 같은 산짐승들을 입에 물고 있었다.

처음엔 적응하지 못하고 놀라던 그녀였으나, 이제는 이런 칼라일의 행동이 훗날 산으로 돌아갈 때를 대비하여 야생성을 잃지 않게 해 줄 것 같아서 일부러 말리지 않고 웃으며 칭찬해 주고 있었다.

‘게다가 돈도 꽤 쏠쏠하고…….’

애당초 한낱 약초꾼이 벌 수 있는 돈과 사냥꾼이 벌 수 있는 돈은 단위부터가 달랐다.

칼라일이 사냥을 나선 덕분에, 근래 아벨라의 식탁은 풍족해져 있었다.

‘가만 보면 혼자 집도 들락거릴 줄 알고, 사냥도 잘하고. 제법 똑똑한 것 같아.’

아벨라가 늑대의 모습으로 제 꼬리를 가지고 노는 칼라일을 보며 생각했다.

그는 한참 꼬리를 살랑거리며 노는 것 같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우당탕 돌아다니기도 했다. 아무래도 늑대는 늑대다 보니, 집 안에만 있는 게 조금 답답한 모양이었다.

‘몸도 많이 나아졌고, 우기도 얼마 안 남았고…….’

아벨라가 뿌듯한 얼굴로 칼라일을 바라봤다.

‘분명 산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내색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벨라는 천천히 칼라일과의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었다.

‘너무 정 주지 말아야지.’

아벨라는 그렇게 다짐하며 식탁에 놓인 샐러드를 깨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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