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모처럼 따뜻한 물에서 목욕을 하고, 제법 풍족한 저녁 식사까지 끝낸 아벨라는 언제 사람이었냐는 듯 능숙하게 제 털을 고르는 늑대를 바라봤다.
늑대는 태연하게 아벨라의 침대 위에 웅크리고 몸 곳곳을 할짝대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귀엽기는 정말 귀여운데…….’
늑대가 사람이 된다는 건 역시 말도 안 돼. 도대체 정체가 뭐지……?
뒤늦게 몰려온 현실적인 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인간과 늑대를 오가는 저 작은 아이를 제가 어찌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벨라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렀다. 그러자 늑대가 귀를 쫑긋 세우며 고개를 들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털 고르기에 푹 빠져 있더니, 지금은 마치 왜 한숨을 쉬냐는 듯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벨라 또한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고작 그녀의 팔뚝만 한 작은 새끼 늑대는 날카로운 송곳니만 아니라면 강아지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고민이 이만저만 아닌 그녀와 달리, 늑대는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어 보였다. 하기야, 근심 걱정 있는 늑대가 이 세상천지에 존재하기나 할까.
가만히 앉아 멍하니 검은 털뭉치를 보던 아벨라가 늑대를 불렀다.
“아가야.”
그러자 그 부름에 대답하듯 늑대가 아우? 하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너 이름이 뭐니?”
기분 탓인 걸까? 질문에 늑대는 마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살짝 고개를 가로젓기까지 했다.
“이름 말이야, 이름. 너 이름 몰라?”
그녀가 한 번 더 묻자 늑대 또한 한 번 더 고개를 가로저었다.
“흐음……. 말은 알아듣는 건가?”
아벨라는 조심스럽게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보들보들한 털이 기분 좋게 손 틈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아가야, 다시 사람으로 변해 볼래?”
이번에도 분명 늑대는 아벨라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은데…….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잠시 몸을 굳히며 뒷걸음질까지 쳤다.
“왜, 싫어?”
“아우…….”
“하지만 늑대의 모습으로는 대화가 안 되는데…….”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도 엄마, 엄마밖에 못 하던 아이였지만 그래도 뭐든 늑대보다는 대화가 통하겠거니 싶었다.
한참 고민하던 아벨라는 대뜸 늑대의 앞발에 팔을 끼워 넣고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놀란 늑대가 눈을 크게 뜨며 낑낑거렸다.
“아가야, 사람으로 변해 보래도?”
“낑…… 끼잉, 낑……!”
늑대는 강하게 거부하듯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다.
역시, 이것으로 아벨라는 확신했다.
늑대는 어렴풋이 제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를 모두 깨쳤다기보다는 눈칫밥으로 알아듣는 듯했지만…….
어딘지 쎄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벨라는 애써 무시했다. 그래, 쎄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이 작은 아이를 두고.
아벨라가 멋대로 끼웠던 팔을 빼내자 자유로워진 늑대는 허겁지겁 몸을 웅크렸다. 모양새가 마치…….
‘응?’
제 중심부를 숨기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모습에 아벨라는 멀뚱히 늑대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끄응…….”
“내가 아까 그…… 네 거, 거기를 보고 놀라서 그러니?”
아벨라가 묻기 무섭게 늑대가 슬그머니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저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도, 질문에 긍정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아벨라는 아까 자신이 보였던 반응을 떠올렸다.
소스라치듯 비명을 내지르며 표정을 굳히기까지 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늑대는 저를 향한 난데없는 반응에 소심해질 만도 했다.
‘확실히…… 좀 격하게 놀라긴 했지.’
하지만 그렇게 흉측하게 생긴 건 태어나서 처음 봤는걸.
아벨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스멀스멀 떠오르려는 돌기 가득한 살덩이를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그러고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차분히 입을 열었다.
“아가, 아까는 미안해. 그게…… 그, 그런 건…… 처음 봐서 그랬어.”
하지만 아벨라의 사과에도 늑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 이번엔 안 놀랄 수 있어……! 아까는 처음 본 거라 그렇고…… 이번엔 정말…….”
이어진 뒷말까지 들은 늑대가 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시선이 마치 거짓말 말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정말이야.”
아벨라는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놀라지 않을 수 있다고 떵떵거린 것과 달리, 사실은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본다면 비명을 지르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늑대는 여전히 경계심을 세우고 아벨라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를 보이고 있었다.
“저, 정말이야……. 정말 안 놀라! 바지도 입혀 줄게! 그러니 걱정 말고…… 응? 사람으로 변해 볼래?”
아벨라가 허겁지겁 제 서랍에서 치마 속에 입는 속바지를 꺼내며 말했다. 그녀가 속바지를 앞에 놓아 주자 늑대는 조금이나마 의심을 거둔 건지 속바지 한 번, 아벨라 한 번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다 물러서지 않을 듯한 그녀의 모습에 체념한 건지 천천히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복슬복슬한 털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뾰족하던 귀 또한 어느새 없어져 있었다.
머지않아 늑대는 완전한 인간 모습을 하게 되었다.
늑대는 인간으로 변하기 무섭게 곁에 놓인 속바지를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바지를 입을 줄 알잖아……?’
그에 이상함을 느낀 것도 잠시.
“마, 엄마!”
늑대가, 아니, 아이가 눈을 끔뻑이며 아벨라를 응시했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반짝반짝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너 내 말 알아들을 수 있니?”
아벨라가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선뜻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눈치만 살폈다.
“조금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어? 조금.”
그녀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조금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며 물었다. 그러자 그제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네 이름은 모르니?”
이번엔 조그마한 머리통이 좌우로 움직였다. 모른다는 뜻이었다.
“이를 어쩐다…….”
아벨라가 곤란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혹시 네 부모님은?”
부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분명 아이는 몸을 흠칫 떨며 표정을 구겼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아벨라는 그 표정 변화를 보지 못했지만…….
아이는 제가 언제 그랬냐는 듯 천진한 얼굴로 말을 알아듣지 못한 척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다.
아이의 몸에는 상처가 제법 많았다. 아벨라를 처음 만났을 때 있던 가슴팍의 깊은 상처 외에도, 자잘한 흉터가 많았다.
얼굴만 보면 멀끔하니 귀족가 도련님처럼 생겼는데…….
아벨라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이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산으로 돌아갈 수 있게 사냥하는 법 따위를 알려 주자니 완전한 늑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인간 세상에서 살게 도와주자니 아벨라에게는 그의 삶을 도울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나이는? 아가야, 너 나이는 몇 살이니?”
나이에 대해서도 모르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한다.
역시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
아벨라가 작게 한숨을 뱉으며 아이를 바라봤다.
“이름…….”
“마?”
“아무리 늑대래도 이름은 필요하겠지?”
아이는 그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천진하게 아벨라의 원피스형 잠옷을 붙잡고 조물거릴 뿐이다.
“칼라일 어때?”
“아우?”
“네 이름으로 말이야. 앞으로 같이 지낼 건데 이름이 없으면 안 되니까…….”
칼라일.
칼은 붉은색을 뜻했고, 라일은 늑대를 처음 만났던 산 이름이었다.
‘너무 성의 없나……?’
하지만 알프레도라든가, 파트라슈처럼 개 같은 이름보단 낫잖아.
아벨라가 자신의 작명 실력을 탓하며 끙, 앓는 소리를 흘렸다.
“칼라일. 별로야? 혹시 마음에 안 드니?”
아이가 대답이 없자, 아벨라는 급히 몇 가지 이름을 더 덧붙였다.
“아니면 알프레도? 파트라슈? 코코?”
이어진 뒷말에 가만히 눈을 끔뻑이던 아이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아이가 조그마한 입을 벙긋거리며 어눌하게 아벨라의 말을 따라 했다.
“카라이.”
“카라이? 아, 칼라일? 그게 제일 마음에 든다고?”
혹여 그녀의 입에서 또 다른 괴랄한 이름들이 나올까 걱정스러웠는지, 아이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벨라가 환히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네 이름은 칼라일이야.”
평생을 책임져 줄 것도 아닌데, 이름을 지어 주는 건 조금 과했나 싶었지만 그래도 아벨라는 방긋 웃었다. 묘하게 뿌듯하기도 했다.
“당분간은 식비가 제법 들겠네…….”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웃음 속에는 옅은 걱정도 함께였다. 게다가 늑대는 육식동물이니, 더욱 돈이 많이들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칼라일은 미묘한 얼굴로 한참 아벨라를 올려다봤다.
아벨라는 현실적인 걱정과 함께 이불 속에 몸을 파묻었다. 하루 종일 소란스러웠던 탓에 피곤했는지 제법 쉽게 잠에 빠져들었다.
칼라일 또한 어느새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가 아벨라의 곁에 웅크린 채였다.
어느덧 밤은 깊어 갔고, 자정을 훌쩍 넘겼다.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하루도 무탈하게 지나가는 듯했다.
적어도 잠든 줄 알았던 늑대가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