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4화 (5/82)

<004>

‘분명 아까 이곳에 두고 내려왔는데…….’

대체 어디로 간 거지? 비를 피해 동굴에라도 들어간 걸까? 그렇다면 다행인데…….

‘만약 아니라면? 비에 홀딱 젖어 어디선가 떨고 있기라도 하면…….’

안일했던 자신의 행동에 아벨라는 스스로를 탓했다. 미안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주저앉아 울 시간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아이를 찾아 산에서 내려가야 했다.

아벨라는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 아이를 찾기 위해 다시 있는 힘껏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그녀가 입을 열기 무섭게, 바스락바스락 풀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몸을 화들짝 떤 것도 잠시.

“어무아?”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 틈으로 조그마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귓가에 들어왔다.

아벨라가 뒤를 돌아보기 무섭게 홀딱 젖은 아이가 눈에 담겼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기쁘다는 듯 두 팔을 뻗어 보이며 방실방실 웃었다.

“마! 엄마!”

이렇게 춥고 어두운 곳에 홀로 내버려 두고 갔는데도, 아이는 아벨라를 기다린 것처럼 반갑게 웃었다. 그러고는 늘 그렇듯 그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벨라는 가슴 한편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아, 아가야…….”

“엄마!”

아이는 여전히 엄마라는 말밖에 할 줄 몰랐고,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산에서는 늑대의 모습으로 있는 게 더 편할 텐데도 불구하고.

‘설마 이제는 늑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가?’

걱정스러운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아벨라는 안아 달라는 듯 폴짝거리는 아이를 보며 눈가가 찡해졌다.

‘이렇게 작은 애를 산에 홀로 남겨 놓고 오다니…….’

미쳤어, 아벨라.

“미안해……. 미안해, 아가야. 많이 무서웠지.”

아벨라가 울먹이며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러자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꺄르륵 웃으며 그녀의 목을 그러안았다.

“엄마랑 집에 가자.”

고작 며칠간의 정이 뭔지. 아벨라는 결국 아이를 산에 두고 온 지 두 시간도 채 안 돼서 다시금 집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엄마라고 생각하는 아이를 보며, 아벨라가 훌쩍였다.

아이의 입장에선 엄마가 어두컴컴한 밤에 덜컥 산에 내버리고 사라져 버린 셈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정말 못 할 짓을 했다는 죄책감에 도저히 고개가 들어지지 않았다.

‘내가 안일했어.’

아벨라가 아이를 품에 안은 손에 힘을 바짝 주었다.

우기가 끝날 때까지라도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집에 돌아온 아벨라는 급히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비를 쫄딱 맞은 탓에 몸이 으슬으슬했다.

그런 그녀와 달리 아이는 의외로 멀쩡해 보였다. 아벨라보다 더 오래 밖에 있었음에도.

아이가 감기라도 들면 어쩌나 걱정한 게 무색하게, 오히려 감기에 들 거 같은 건 아벨라 쪽이었다.

벽난로에 장작을 두어 개 더 던져 넣으니, 집 안은 어느새 포근해졌다. 하지만 아벨라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불길을 더욱 세게 키웠다. 목욕물을 잔뜩 데우기 위해서였다.

“홀딱 젖어서 많이 춥지? 엄마랑 목욕하자.”

아벨라가 아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어느새 욕조에는 따뜻한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이를 안고 욕실로 향한 아벨라는 서슴없이 제 옷을 벗어 던졌다. 따뜻한 물을 두 번이나 받기엔 사정이 넉넉지 못했으니, 한 번 가득 받았을 때 아이와 함께 사용하려는 생각이었다.

옷을 모두 벗은 아벨라는 쭈그리고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자신이 둘러 주었던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벗겨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 또한 순식간에 벌거벗은 몸이 됐다.

“옳지, 말 잘 듣네.”

옷을 벗기는 데도 투정 하나 없이 얌전한 아이를 보며 그녀가 잘했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얼른 들어가자.”

그리고 그렇게 옷을 벗긴 아이를 먼저 욕조에 담가 주려는 순간일까.

아벨라의 시선에 다소 낯선 살덩이가 들어왔다.

‘응?’

얼핏 스치듯 본 것이었음에도, 인간의 신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괴상한 것이었다.

‘뭐지?’

호기심을 참지 못한 그녀는 다시금 아이의 다리 사이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있는 건, 흉측한 돌기가 잔뜩 돋아난, 아마도 성기로 추정되는 살덩이였다.

“헉!!!”

처음 아이를 마주했을 땐 워낙 정신이 없어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가만히 마주하고 보니 확실했다. 위치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이건 성기가 맞았다. 한데 외관은 도저히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징그러운 모습에 순간 놀란 아벨라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방금 제가 본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 이게 뭐야……!”

마치 커다란 나방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란 아벨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이 또한 갑작스러운 아벨라의 반응에 당황한 건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다가 다급하게 제 모습을 바꿨다.

아이의 새카만 머리칼 위로 뾰족 귀가 삐죽 솟아나더니, 머지않아 순식간에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늑대가 된 아이는 급히 바닥으로 내려가 놀란 아벨라의 다리에 몸을 치대며 끙끙 앓는 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끼잉…… 낑…….”

아무래도 아벨라가 저 때문에 놀랐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낑…….”

늑대는 안쓰러울 정도로 눈매를 죽이고 아벨라를 올려다보며 몸을 발발 떨었다. 조그마한 털뭉치가 잔뜩 움츠러든 채 낑낑거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측은해 보였다.

안 그래도 놀랐던 아벨라는 늑대로 변한 아이를 보며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 늑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아벨라는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못 한 채 바보처럼 눈을 끔뻑였다.

‘아, 아이가…… 다시 늑대가 됐어!’

그럼 언제든지 모습을 바꿀 수 있던 건가? 그런데 왜 여태 바꾸지 않다 이제 와서 바꾼 거지? 게다가 아까 다리 사이에 달려 있던 그건…….

‘세상에…….’

아벨라가 탄식하며 마른세수를 했다.

남자의 성기를 실물로 본 적은 없었으나, 적어도 그렇게 흉측하게 돌기가 돋아있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벨라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백지장이 되어 버렸다.

‘지, 징그러워……!’

솔직한 마음으로 그랬다. 지금에야 다시금 털뭉치로 돌아갔다지만…… 제가 본 그건 마치 괴물들의 것처럼 절로 미간이 찌푸려질 만큼 거북했다.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혹시 늑대 성기는 원래 다 저래……?

아벨라의 미간에 파인 주름은 펴질 줄 모르고 연신 깊어만 갔다. 그러자 늑대가 더욱 아벨라에게 몸을 비비적거렸다.

“낑…….”

이제는 아예 두 발로 서서 아벨라의 다리를 벅벅 긁기까지 한다.

“끼잉, 낑…….”

그제야 아벨라가 애써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 그래……. 우선, 우선 씻어야지……. 감기 걸리기 전에…… 씻어야지…….”

그녀는 더듬더듬 말을 늘어놓으며 제 다리를 긁는 새끼 늑대를 번쩍 안아 들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입술 바로 아래까지 물이 찰랑일 만큼 몸을 푹 담그고는 멍하니 늑대를 바라봤다.

아직도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흉측하게 생겼던 돌기 가득한 살덩이가.

늑대는 아벨라의 시선을 느끼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아우-!”

그러다 무어라 우는 소리를 내며 조그마한 발바닥으로 꼼지락꼼지락 아벨라의 품을 더욱 파고들었다.

아벨라는 제 품에 안긴 작은 털뭉치를 보며 당혹스러운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늑대는 천진한 얼굴로 물속에 잠긴 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 뿐이었다.

한참 아벨라에게 몸을 치대던 늑대가 엉거주춤하게 두 발로 일어서더니 아벨라의 뺨을 할짝거렸다. 마치 애정 표현을 하는 것처럼 제법 귀여운 모양새였다.

아벨라 또한 제 품속에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꼬물거리는 털뭉치가 귀여웠는지, 딱딱하던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그렇게 한참 꿈틀거리던 늑대의 입에서 순간 짧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헛발질을 한 건지 몸이 휘청였다. 풍덩, 작은 물보라와 함께 털뭉치가 물에 잠겼다. 조그마한 몸은 당연하게도 욕조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놀란 늑대가 허우적거리며 다급히 아벨라의 몸을 타고 다시금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아벨라 또한 늑대를 번쩍 들어 올려 물속에서 꺼내 주었다.

그런데…….

“푸흡…….”

물에 폭 잠긴 탓에 늑대의 털이 모조리 젖어 축 처져 버렸다. 보송하니 복슬복슬했던 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제법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납작하게 죽어 있었다.

순간 아벨라는 터져 나온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깔깔거렸다. 처음엔 그녀가 왜 웃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던 늑대도 아벨라가 웃으니 저도 마냥 좋은지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따라 웃었다.

크게 한바탕 웃고 났더니, 심란했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금 편안해져 있었다.

소란스럽던 하루가 조금은 편안하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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