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아벨라가 저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아이는 마냥 환한 얼굴로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덕분에 죄책감에 파묻히는 건 아벨라의 몫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나 강아지도 아니고, 늑대. 심지어 사람으로 변하는 늑대를 거두어들인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아이가 딸려 있으면, 내 연애 사업은?’
다들 날 유부녀로 볼 거 아니야……!
‘역시 내가 키운다는 건 말도 안 돼.’
혼란에 잠겼던 그녀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마치 아이를 유기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아벨라는 애써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떨쳐 냈다.
“아가야, 다시 늑대로 변할 수 있지?”
“마?”
“늑대, 털! 털 보송보송한 늑대! 응?”
손짓, 발짓을 해가며 늑대로 변해 보라 말했지만, 아이는 조금도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저 조그마한 머리통을 갸웃거리는 게 전부였다.
‘산에서 살아가려면 늑대로 변해야 할 텐데…….’
아벨라가 끙, 앓는 소리를 흘리며 아이에게 대충 제 옷가지를 둘러 주었다. 뭐가 됐든 이 이상 아이와 깊게 엮여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너무 걱정 말자.’
지금은 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산에 데려다 주면 알아서 늑대로 변할지도 몰라.
아벨라는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아이를 품에 안았다.
제발, 제발 아이가 다시 늑대로 돌아가길 바라며, 아이를 안고 집을 나섰다.
* * *
아벨라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저만 아는 샛길로 허겁지겁 산을 올랐다. 아이는 제가 어딜 가는지도 모른 채 아벨라의 품에 안겨 연신 꺄르륵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산속 깊은 곳까지 들어오자, 아벨라는 처음 늑대를 발견했던 그 장소에 도착했다.
아벨라는 잠시 숨을 고르며 제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여전히 늑대가 아닌 사람의 모습을 한 채였다.
“자, 아가야. 이제 돌아가렴. 네가 원래 살던 곳이야.”
“마?”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아벨라가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어무아!”
그러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건지, 아이가 아벨라를 향해 작은 다리를 움직이며 조금씩 다가오려 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아벨라는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외쳤다.
“나, 나는 네 진짜 엄마가 아니야!!!”
그녀가 큰 소리로 말하자 놀란 아이는 흠칫하며 눈을 끔뻑였다.
“미안해, 하지만 네가 원래 살던 곳이니 살 수 있지? 응?”
사경을 헤매는 늑대를 데려다 목숨을 구해 준 것만으로도 아벨라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하나 그럼에도 아벨라는 지금 이 상황이 마치 아이를 유기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불편했다.
“미안해,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너는 원래 여기서 발견됐어.”
아이에게 설명을 하기 위한 건지, 스스로의 마음을 강하게 먹기 위한 건지. 아벨라는 두서없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어서 늑대로 변해. 응? 원래 늑대잖아. 네 진짜 엄마가 너를 찾고 있을 거야.”
단호하게 저를 밀어내는 태도에 아이의 표정이 점점 시무룩해지기 시작했다. 새빨간 눈동자가 마치 저를 두고 가지 말라는 듯, 한 발짝, 두 발짝 멀어지는 아벨라를 좇았다.
아벨라는 더 이상 아이의 눈을 마주하고 있기 불편했다. 그래서 급히 시선을 거두고는 곧장 뒤를 돌았다.
“미안해! 하지만 너는 원래 여기서 살던 아이니까, 잘 살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벨라는 해가 저물기 시작한 산에 아이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헐레벌떡 내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도 멈추지 않았다.
‘원래도 다 나으면 산으로 돌려보내 주려 했었잖아.’
너무 신경 쓰지 말자. 괜찮아. 원래 하려던 대로 한 것뿐이야.
그런데 왜 이리 가슴께가 쿡쿡 찔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빠듯한 아벨라의 살림에 출처 모를 늑대 아이까지 데려다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 * *
아벨라가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해는 완전히 저물어 버렸고 비도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토독토독 조금씩 내리는 것 같던 빗방울은 어두컴컴한 밤이 찾아옴과 동시에 점점 거세졌다. 천둥 번개까지 치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 쏟아져 내렸다.
멍하니 창문을 보던 아벨라는 제가 산에 두고 온 아이가 생각나 심장이 쿵쾅거렸다.
‘비는 피했을까……?’
다시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했겠지?
애써 머릿속에서 아이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 해도 자꾸만 떠올랐다. 단호한 제 태도에 저를 쫓아오지도 못하고 머뭇머뭇 덩그러니 서 있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서, 도통 가만히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신경 쓸 것 없어.’
원래 거기 살던 아이잖아. 데려와서 상처를 치료해 준 것만으로도 나는 할 일을 다 한 거야.
아벨라가 애써 쿡쿡 찔리는 마음을 외면하며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신경 쓰인다고 해서 뭐, 내가 마땅히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잖아?’
애 키우는 게 무슨 간단한 일도 아니고……. 개나 고양이도 키우기 전에 신중하게 고민하는 판국에…….
아이에게 드는 돈도 돈이지만, 혼삿길도 문제야. 아이를 들였다간 나는 결혼도 못 해. 세상에 어느 남자가 애 딸린 여자를 만나려 하겠어!
현실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그럼에도 죄책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매섭게 쏟아지는 폭우 탓에 더욱 마음이 불편해졌다.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아벨라의 낯도 어두워졌다.
‘차라리 치안대에 보냈어야 했나……?’
하지만 치안대에 보낸다고 아이가 무조건 안전해지는 것도 아닌데…….
보육원에서 나고 자란 아벨라는 그곳의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남자아이들 같은 경우는 운이 없으면 접전 지역의 소년병으로 끌려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곳에서 아이의 안위가 보장될 리 없었다.
아벨라가 착잡한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방을 서성였다. 그러다 침대에 살짝 걸터앉으니, 새하얀 이불보 위에 남아 있는 거뭇한 늑대의 털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니 괜히 더 싱숭생숭해졌다.
‘괜찮을 거야…….’
정말 괜찮아. 원래 산에 있던 아이였잖아? 그러니 정말 괜찮을 거라고…….
아벨라는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불 속에 몸을 파묻었다. 한데 평소라면 그녀가 눕기 무섭게 품속으로 꼬물꼬물 파고 들어왔을 늑대가 없었다. 고작 몇 주 함께 지냈다고 빈자리가 느껴져 쓸쓸했다.
아주 조그마한 검은 털 뭉치 하나 사라졌을 뿐인데…… 함께한 시간도 끽해야 한 달가량에 불과한데……. 들어온 자리는 티 안 나도, 나간 자리는 귀신같이 티 난다더니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아벨라의 표정이 음울해졌다.
‘정말…… 정말 괜찮을까……?’
아무리 산에서 살던 아이였다지만 부모도 없이 상처 입고 쓰러져 있던 걸 생각하면…….
‘다 큰 늑대도 아니고 아직 어린아이였는데…….’
아벨라가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입술을 뜯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할 것만 같아서, 피가 날 때까지 뜯다 혀끝으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고 나서야 손을 거두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시야에 닭고기가 든 정육점 봉투가 담겼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며 늑대에게 줄 생각에 사 왔던 고기였다.
그 봉투를 보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역시 이건 아니야……!’
아무리 늑대라지만 부모도 없이 홀로 산에서 사냥하며 살 수 있을 리가 없어!
머리가 멍해졌다. 역시 그 작은 아이를 산에 홀로 두고 내려오는 건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비를 쫄딱 맞고 저체온증으로 죽으면 어쩌지?’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해도 그렇게 조그마한 몸으로는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을 거야. 내가 미쳤었나 봐, 그 작은 애를…… 산에 유기하다니……!
제가 평생토록 키워 주지는 못하더라도 우선 집으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아이가 클 때까지만이라도……. 아니, 하다못해 치안대에 넘기는 쪽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을 마친 아벨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해가 진 탓에 산은 어두컴컴했다. 비까지 쏟아져 위험할 수 있었음에도, 아벨라는 유리병 안에 촛불을 넣고 급히 집을 뛰쳐나갔다.
다행히 수년간 오르내리던 산이라, 밤이었음에도 길눈이 밝았다. 덕분에 아벨라는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두고 왔던 곳 근처까지 향할 수 있었다.
거세게 쏟아지는 비를 헤치고, 진득하게 달라붙는 흙들을 짓밟으며 아이를 찾아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내리는 비 탓에 기척을 찾기 어려웠다.
아가야, 아가야, 목청을 높여 불러보아도 거친 빗소리에 파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아벨라는 쉬지 않고 축축하게 젖은 나무 덩굴을 헤집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근방을 뒤져봐도 아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