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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2화 (3/82)

<002>

당황한 아벨라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급히 늑대부터 챙겼다. 앙다물린 입을 억지로 벌려 숟가락을 이용해 우유를 떠먹였다. 옆집 에샤에게 약초를 쥐여 주며 조르고 졸라 받아 낸 우유였다.

“아가야, 이것 좀 마셔 봐. 응?”

“끼잉…….”

아벨라의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늑대가 몸을 부르르 떨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녀가 제 생명의 은인이라는 걸 알기라도 하는 건지 아가라고 부르는 따스한 목소리에 반응했다.

앓는 소리를 흘리며 눈을 뜬 늑대는 아벨라가 떠미는 대로 곧잘 우유를 받아 마셨다. 조금 버겁게 꼴깍꼴깍 삼켜 마시는 소리가 조용한 집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한참 우유를 마시던 늑대는 등을 몇 번 토닥이니 작게 트림까지 했다.

처음 제가 발견했던 때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모습에 아벨라가 작게 웃으며 빵빵해진 새끼 늑대의 배를 쓰다듬었다.

“옳지, 먹여 주니 이렇게 잘 먹는 걸……. 왜 혼자서는 입도 대지 않은 거니?”

아직 새끼라 어리광이 심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벨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뱉어 냈다.

늑대는 아직 스스로 일어나 돌아다닐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사경을 헤매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어느 정도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아이 예뻐라…….”

아벨라가 쿡쿡거리며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늑대가 새빨간 눈동자를 빛내며 아벨라를 올려다봤다.

“조금만 더 회복되면 스스로 일어나 돌아다닐 수도 있겠어.”

늑대는 아벨라의 손길이 기껍다는 듯 그릉그릉 듣기 좋은 목울림 소리를 냈다.

“어서 빨리 나으면 좋을 텐데…….”

이어진 뒷말에 늑대가 기묘하게 눈을 빛냈다. 아벨라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엄마가 열심히 간호해 줄게. 그러니 어서 나아야 해. 알았지?”

마치 그녀의 말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늑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벨라는 그저 그런 늑대가 귀여워서 꺄르륵거리며 웃기만 할 뿐이었다.

* * *

아벨라의 걱정이 늑대에게까지 닿은 걸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앓는 것밖에 못 하던 늑대는 어느덧 제 발로 일어설 수 있을 만큼 경과가 좋아졌다.

기지개를 한 번 켜더니, 혼자 쭈뼛거리며 발을 내딛는 늑대를 본 아벨라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아가. 상태가 무척 좋아졌어.”

비싼 약초의 효과가 꽤 톡톡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아벨라의 말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늑대가 그릉그릉 소리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겠어.”

아벨라가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늑대 또한 기분 좋은지 아벨라의 손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아이 예뻐라…….”

보송한 털이 그녀의 손바닥을 간질였다.

확실히, 늑대는 요 며칠 사이 상태가 급격히 호전됐다. 우유를 받아 마시는 양만 해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겨우 몇 스푼 먹던 늑대가 이제는 접시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워 내기도 했다.

가슴팍에 깊게 남은 상처의 흔적이 없었더라면 다른 늑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사를 오가던 아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아벨라는 마음 편히 가게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비싼 약초를 늑대에게 사용한 탓에, 출혈이 조금 컸다. 게다가 시기마저 우기였으니 평소보다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아가야, 집 잘 보고 있어. 엄마 다녀올게.”

아벨라가 제 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는 조그마한 늑대를 향해 말하며 웃어 보였다.

당장 내일 먹을 음식 거리를 사려면, 오늘 제법 바쁘게 일해야만 했다.

아벨라는 내심 그 사실이 걱정되었으나, 그녀의 속을 모르는 늑대는 방실방실 웃으며 제 털만 할짝댈 뿐이다.

잠시 그 모습을 보던 아벨라는 급하게 가게로 발을 놀렸다.

할 일이 태산이었다.

* * *

좁아 터진 마을에서 약초를 팔아봐야 얼마나 팔겠냐마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소시민 아벨라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일했다.

원래도 열심이던 그녀인데, 요즘은 더욱 열심이었다. 먹여야 할 입이 늘어난 덕이었다.

가게 문을 열기 전에, 이른 시간부터 옆 마을의 아침 시장에 나가 약초를 팔다 오기까지 했으니 말 다 한 것 아니겠는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하늘이 그런 그녀의 노력을 높게 산 건지 열심히 한 만큼 조금 여유롭게 돈이 모였다는 점이었다.

꽤 짭짤하게 모인 금화를 보며 아벨라가 환히 웃었다. 돌아가는 길에 늑대에게 줄 닭고기를 살 생각에 입꼬리가 비죽비죽 하늘을 향해 치솟으려 했다.

‘다행이야……!’

이 정도면 다음 주까지는 거뜬하겠어.

장을 보기 위해 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신이 난 아벨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늑대에게 줄 닭고기도 사고, 음……. 저녁으론 스튜가 좋겠지? 좋아, 모처럼 스튜에 돼지고기도 넣어야겠어!’

아벨라는 간만에 장바구니를 풍족하게 채웠다. 바구니 안엔 묵직할 정도로 고기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거움을 느낄 새도 없이 가뿐하게 집으로 향했다.

늑대에게 닭고기를 먹일 생각에 신이 난 아벨라는 자신의 아담한 오두막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가야! 엄마 왔어!”

그녀가 집에 들어섬과 동시에 잔뜩 톤이 높아진 목소리로 늑대를 찾았다.

평소라면 아벨라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아니, 멀찍이서부터 아벨라의 발걸음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꼬리를 마구 흔들며 그녀를 맞이할 준비를 하던 늑대였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 이상했다.

요란 법석하게 방 안을 돌아다니는 발톱 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아가야?”

그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아벨라가 다급히 침실로 향했다.

그런데…….

“마?”

시야에 담긴 건, 여느 때처럼 털이 복슬복슬한 새끼 늑대가 아닌…….

“마마!”

인간의 아이였다.

* * *

아벨라는 벙찐 얼굴로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늑대였던 아이가, 반나절 사이 사람이 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이야기란 말인가?

‘진정하자…… 심호흡, 심호흡.’

아벨라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었다 내뱉으며 생각했다.

이건 꿈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지 않고서야 새끼 늑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람 새끼가 앉아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말도 안 돼…….’

도대체 이 애는 누구야!!

하지만 선뜻 아이에게 모질게 굴 수 없는 이유라면, 늑대의 털처럼 새카만 머리칼과 붉은 눈동자. 그리고 가슴팍을 가로지르는 깊은 상처.

이성은 말도 안 된다고 외쳤으나, 이상하게…… 아주 이상하게 아이는 늑대를 닮아 있었다.

아벨라가 바보처럼 굳어 있자,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이 상황이 이해 가지 않는다는 듯한 눈치다.

“마?”

아직 어려서 그런 건지 발음이 잔뜩 뭉개져 나왔다.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발, 두 발 다가온 아이는 폴짝거리며 아벨라를 와락 그러안았다.

“마, 엄마!”

순간 놀란 아벨라가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아이는 아벨라의 눈높이가 낮아지기 무섭게 그녀의 품을 더욱 파고들었다.

“어무아! 엄마!”

아이는 아벨라를 보며 명확하게 엄마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벨라는 억울했다.

엄마라니! 결혼은커녕, 남자 경험조차 없는데! 황당함에 말문이 막힐 뿐이었다.

* * *

놀란 마음을 겨우겨우 가라앉힌 아벨라가 아이를 마주 보고 앉았다. 그러자 아이는 신이 난다는 듯 마구 손뼉을 치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엄마! 엄마!”

할 줄 아는 말은 엄마가 전부인 건지, 아이의 입에서 별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벨라가 이름이 뭐니, 몇 살이니, 부모님은? 따위를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엄마가 전부였다.

“하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가슴팍의 흉을 보아하니 아침까지만 해도 늑대였던 그 아이가 분명 맞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인가?

늑대가 사람으로 변하다니!

‘게다가 내가 왜 네 엄마인 건데!’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평소 늑대에게 엄마가~ 따위의 호칭을 사용하기는 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보호자 입장에서 엄마의 마음으로 사용했던 거였기에 억울했다.

“아, 아가야……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혹시 진짜 엄마는 어디 있니? 네가 정말 그 늑대가 맞니?”

묻고 나서도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건지, 아벨라는 곧장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엄마뿐이었다.

“마! 엄마! 엄마!”

조그마한 손을 파닥파닥 흔들며 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은 퍽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상황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아벨라는 아이의 해맑은 부름에 화답해 줄 수 없었다.

‘도대체 이를 어쩜 좋아……!’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 마당에, 사람으로 변한 늑대까지 키울 여건은 전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치안대에 신고해야 할 거 같은데…….’

하지만 아이는 진짜 사람도 아니잖아. 지금은 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원래는 늑대였는데……. 만약 치안대에 신고했다가, 아이가 늑대 인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럼 질 낮은 귀족들의 유희 거리로 팔려가 끔찍한 일을 당할지도 몰라……!’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이를 책임지기 어렵다고 해서 그런 위험 속으로 등 떠밀 생각도 없었다.

한참 이런저런 고민에 잠겼던 아벨라는 문득 늑대를 처음 만났던 라일산이 떠올랐다.

‘그래, 산!’

원래 산에 살던 늑대잖아. 몸도 다 나았으니 산으로 돌려보내 주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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