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곱게 키운 아들이 자라면-1화 (2/82)

<001>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내던 날이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변두리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약초상을 하는 아벨라는 늘 그렇듯 약초를 캐기 위해 산에 올랐다.

조만간 우기가 시작될 예정인지라, 우기 내내 쫄쫄 굶지 않으려면 태풍이 오기 전에 미리미리 약초를 한가득 캐 두어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벨라는 평소보다 더욱 깊은 곳까지 산을 탈 수밖에 없었다.

‘휴,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나…….’

평소보다 약초가 안 보이네.

아벨라가 시무룩한 얼굴로 분주히 잡초 틈에 숨은 약초를 찾아 데굴데굴 눈을 굴렸다. 분홍빛 눈동자가 제법 노련하게 산을 훑었다.

‘적어도 한 바구니는 꽉 채워야 우기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 버틸 텐데…….’

아직 앳된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깊은 걱정이 얼굴에 드리웠다. 아벨라는 평소보다 더욱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조그마한 몸집으로 험한 산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용하기도 하다.

그렇게 얼마나 더 분주히 곳곳을 돌아다녔을까.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쨍쨍하게 내리쬐던 태양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지, 불그스름한 하늘을 내보이며 서서히 모습을 감추려 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산에서 내려가야 했다. 아직 한 바구니도 채 채우지 못했지만, 아벨라는 속상한 표정을 애써 갈무리하며 짐보따리를 챙겼다.

흙이 잔뜩 묻은 손을 털어 내며, 아벨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낑…….”

근처에서 웬 짐승이 앓는 소리가 들렸다.

“끼잉…… 낑…….”

놀란 아벨라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헉, 들이마셨다. 그러다 제가 헛걸 들은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다시금 동물의 소리를 기다렸다.

그러자 그런 아벨라에게 답하기라도 하듯, 앓는 소리를 내던 짐승이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

“끄응…… 낑…… 끼잉…….”

이건 확실하게 동물이 앓는 소리였다. 아플 때 내는 그런 처량한 목 울림이 고요한 숲속에 쓸쓸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어린 새끼가 내는 소리 같았다.

‘어디서 이런 소리가…….’

아벨라가 마른침을 꼴깍이며 움직임을 멈췄다.

누군가 저를 구해 주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혹, 어미를 부르기라도 하는 걸까.

만약 후자라면 괜히 나섰다가 새끼를 위협하는 것으로 오해받고. 어미가 공격해 올 수도 있었다. 하나 애처로운 울음을 외면하자니 아벨라의 마음 한구석이 쿡 찔려 왔다.

외면하고 산을 내려가기엔, 밤새 짐승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떠올라 잠을 뒤척일 것 같았다.

‘이를 어쩐다…….’

아벨라가 초조하게 입술을 씹었다. 선뜻 산을 내려가지도 그렇다고 선뜻 짐승에게 다가가지도 못했다. 아벨라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민에 잠겼다.

그러자 짐승은 마치 그녀의 갈등을 눈치챈 듯, 더욱 애처로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끼잉…… 낑…… 끼이잉…….”

점점 더 커지는 울음소리에, 아벨라는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 도저히 외면하고 산을 내려갈 수 없었다.

결국 그녀의 발이 천천히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여기 이쯤인 거 같은데…….’

다친 곳이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자.

긴장감에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약초를 캐는 데 사용하는 작은 삽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호신용으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으나, 뭐라도 쥐고 있는 게 났겠지, 라고 생각하며 아벨라는 더욱 세게 손에 힘을 바짝 주었다.

그렇게 몇 걸음 정도 더 걸었을까. 작은 덩굴 하나를 넘고 나니 아벨라의 시야에 담긴 건…….

“……!”

피투성이가 된 아주 작은 새끼 늑대 한 마리였다.

늑대는 간신히 숨만 붙은 채 낑낑 울고 있었다.

* * *

아벨라는 스스로가 어떻게 산에서 내려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본 순간, 본능적으로 품에 안아 들고 산 비탈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중간에 쉬지도 않고, 그렇게 미친 듯이 내달려 집에 왔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롯이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작은 새끼 늑대는 이대로 산에 방치된다면 분명 머지않아 숨이 끊어질 게 훤히 보였다. 그래서 아벨라는 어미의 존재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치료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늑대를 냉큼 데려왔다.

평소라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날 산에서 캔 약초를 씻고 잘게 잘게 썰어 유리병에 나눠 담는 작업을 했을 텐데…….

몸에 피 칠갑을 한 새끼 늑대 탓에 오늘 캔 약초들은 완전히 뒷전이었다.

아벨라는 조심조심 캔 약초들을 대충 팽개치고, 곧장 새끼 늑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평소엔 아깝다며 자신에게도 잘 사용하지 않던 고가의 약초까지 꺼내 와 잘게 빻았다.

그녀는 잘게 빻은 약초를 늑대의 상처에 듬뿍 발라 주며 속상한 마음에 얼굴을 찌푸렸다. 상처에 약초가 닿자 따가운 건지 늑대가 발발 떨며 신음을 흘렸다.

어쩌면 지금 이 작은 선행으로 인해 아벨라는 우기 내내 맛없는 밀 빵만 먹으며 버텨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생명과는 맞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벨라였기에, 늑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 값비싼 약초를 사용할 의향도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니…….”

아벨라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약초를 듬뿍 발라 주고 따뜻한 수건으로 피떡이 된 털들을 닦아 주고 나니, 늑대는 아까보다 많이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늑대 또한 조금이나마 괜찮아진 건지, 거칠던 숨소리가 잔잔해졌다. 색색, 미약한 숨소리와 함께 통통한 배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 아벨라는 가만히 턱을 괴고 늑대를 바라봤다. 뽀송뽀송한 솜털이 제법 귀여운 새끼 늑대였다.

“불쌍해라…….”

아벨라가 작게 중얼거리며 늑대의 몸 곳곳을 살폈다. 이제 보니 늑대의 몸에는 제가 치료해 준 상처 외에도 다친 지 꽤 된 듯한 흉터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아직 한참 어려 보이는 새끼에게 이런 흉들이 남을 일이 뭐가 있다고……. 의아했지만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쓰게 한숨을 뱉을 뿐이었다.

“아가야, 꼭 나아야 해.”

문득 그녀는 이 늑대가 건강해져서 산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뿐만 아니라 손바닥만 한 몸집이 훌쩍 커져 늠름해진 모습도 보고 싶었다.

기나긴 삶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인연일지언정, 아벨라는 진심으로 늑대의 안녕을 기원하며 어두운 털을 매만졌다.

‘지금은 보송보송한 솜털들도 훗날 성체가 되면 탐스러운 윤이 돌겠지.’

부디 내가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깊은 잠에 빠진 늑대를 토닥이며 아벨라는 걱정을 걷어 내지 못했다.

자신이 발라준 약초가 효과를 톡톡히 보이길 바라며. 아벨라는 그날 밤 한참을 뒤척여야만 했다.

* * *

밤새 늑대를 살피느라 제대로 자지 못한 지도 어언 일주일.

게다가 잠뿐만이 아니었다. 늑대 때문에 운영하던 약초 가게에도 소홀해지고 말았다.

이러다가는 정말 당장 내일 먹을 식재료도 사지 못할 것 같아서 아벨라는 버티다, 버티다 결국 가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늑대를 홀로 두기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초 가게에 다친 짐승을 떡하니 데려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그랬다간 가게에 폴폴 날릴 늑대의 털 때문에 오던 손님마저 모두 사라질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괜히 다친 늑대를 주웠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아벨라가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다. 그랬다간 사냥꾼들이 호시탐탐 늑대를 훔쳐 가려 할지도 몰랐다.

하루 종일 가게 일을 하면서도 늑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새끼 늑대가 먹을 만한 우유를 곁에 두고 나왔는데, 과연 늑대가 알아서 챙겨 먹을 수 있을지…….

처음보다야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상처도 꽤 아물었다지만 그래도 아직 늑대는 스스로 걸어 다니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늑대가 마음에 걸렸던 아벨라는 결국 가게 문을 평소보다 조금 늦게 열고, 조금 일찍 닫았다.

늑대가 걱정되어 가만히 가게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휴, 늑대가 혼자 밥을 챙겨 먹을 수 있을 정도만 되어도 이리 걱정하지 않을 텐데…….’

급히 가게 문을 닫은 아벨라가 헐레벌떡 집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제가 먹여 주면 곧잘 받아먹곤 하던데, 이상하게 혼자서는 먹지 않던 늑대였다.

작은 오두막집 문을 열자, 아침에 덮어 두었던 그대로, 도톰한 솜이불에 파묻힌 늑대가 그녀를 맞이했다. 곁에 놓아 둔 우유도 그대로였다. 입을 댄 흔적조차 없었다.

“이런……!”

역시 나 없이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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