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
나는 퍼뜩 일어났다.
어젯밤, 라예르가의 둘째 공자인 디뮈아드는 단순히 레노르의 용건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게 아니었다.
‘만일의 습격을 대비해 라예르가 저택 내 비밀 장소를 알려주었지.’
아무리 그랬다지만, 이렇게 빨리 일이 생기다니! 나는 한 손에 총을 철컥 소환하고, 다른 손으로 미리 챙겨둔 물건들을 쥐었다.
그렇게 숨으려던 순간이었다.
콰앙-!
저택이 더 큰소리와 함께 흔들리며 내가 미리 챙겨둔 중요 물품들이 쏟아졌다.
‘하필이면!’
나는 황급히 주워 들었다. 어지간하면 버리고 갔겠지만, 던전 아이템은 귀해서 두고 갈 수가 없었…….
“……읏?!”
나는 신음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털썩 쓰러졌다.
문제는 드래곤의 알이었다. 두 번째 언노운 던전 이후 조용하기만 하던 그 알은 무슨 일인지 내 손에 닿자마자 미친 듯이 체내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괴, 괴로워.’
정신이 어질어질하고 숨이 막혔다. 이게 흡성대법 당하는 사람들의 심정인 걸까?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을 잃었다.
* * *
사태의 범인은 당연하게도 고드윈 공작이었다.
정확히는 그가 사주하고, 실행범은 따로 있었던 거지만. 실행범은 누구의 사람인지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정공법을 썼다.
콰쾅-!!
포탄을 끌고 와 라예르가 저택에 갈긴 것이다.
“고드윈 공작, 정녕 미친 겐가!”
라예르가의 기사단장은 기겁했다. 미친놈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지 않은가!
포탄을 끌고 온, 검은 가면을 쓴 사내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누굴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
“모르긴 뭘 몰라, 저 정도로 포탄을 보유 중인 개인이 누가 또 있어!”
그 말대로였다. 총기를 보급화한 위인답게 고드윈 공작은 개인적으로 보유한 무기가 많았다. 황실의 암묵적인 허락 덕분이었다.
라예르가의 기사들은 발악했지만, 제아무리 노력해도 이능력자가 아닌 이들이 최신식 무기를 상대할 순 없었다.
쓰러지던 기사들은 침입자들이 둘러업은 분홍색 실루엣을 발견했다.
“제, 제이드 님?!”
기사단 중 하나에 끼어들어 활약하던, 고드윈 본성에서부터 따라온 레디안 백작 가의 아미아는 경악했다.
설마 그녀를 납치하겠다고 이런 미친 짓을 한 건가!
이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도 황궁은 조용했다. 황실 기사단 하나 보이지 않는 거리는 고요하기까지.
통제된 것이다.
‘황실이 암묵적으로 허락을 내린 거야!’
라예르가의 호위는 황급히 제이드를 납치한 이들을 쫓았으나, 그들은 부상 입은 상태였다.
거기다 어느덧 그들은 건국제를 축하하는 인파에 스며들어 더는 보이지도 않았다.
“안 돼!”
끝내 그들을 아미아는 절규했다.
“제이드 님-!!”
* * *
수도의 고드윈 공작저.
각종 총기와 신규 무기들이 잔뜩 전시된 고드윈 공작의 집무실은 보기만 해도 살벌한 기운이 흘렀다.
“수고했다.”
그리고 그 살벌한 집무실의 주인, 고드윈 공작은 대담한 납치를 강행한 이들을 치하했다.
“이쯤이야 별것 아니오.”
“맡겨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두 명의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거만하게 대답한 이는 젊은 아르투 백작이었고, 공손히 고개를 숙인 것은 고드윈의 본성에서 탈옥한 죄인, 아이반 레토스 자작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고드윈 공작의 수족이었다.
아르투 백작 가문은 고드윈 공작의 사주를 받아 딸 퍼넬로피를 해리스 대신 소공작 자리에 밀어 넣으려 했었고, 아이반 레토스 자작 또한 지원자였으니.
당연하지만 둘은 해리스 고드윈에게 유감이 많았고, 그리하여 이런 대담무쌍한 납치 계획도 기꺼이 따랐다.
“그 천한 것이 나대는 꼴이라니! 잘하셨습니다. 본때를 보여줘야죠!”
특히 젊은 아르투 백작은 제이드에게도 유감이 많았다.
부친이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후, 그는 운 좋게도 라예르가의 레노르를 아내로 맞이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 망할 제이드 리안이 중간에 끼어들어 모든 걸 망쳤어!’
원한이 많았던 아르투 백작은 납치 도중에도 자신이 손 봐주겠다며 이를 벅벅 갈았다.
아르투 백작의 건방진 말에도 고드윈 공작은 언짢아하지 않으며 웃었고, 그 반응에 아르투 백작은 우쭐 해했다.
‘그래, 고드윈 공작이 진정으로 후계자라 여기는 건 나야.’
저 미천한 레토스 자작 따위가 아니라.
해리스 고드윈의 가이드를 납치했다면 목적은 뻔하다. 이능력자인 아들을 재기 불능한 상태로 만들기 위함이겠지.
아르투 백작에 이어 이젠 고드윈 공작이 된다……!
그 사실에 벅차하던 아르투 백작은, 레토스 자작이 고드윈 공작을 보며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각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황실이 비공식적으로 협조했다 한들, 어떠한 명분도 없이…….”
“내 아들의 가이드를 억류해 올 수 없겠지.”
고드윈 공작은 순순히 긍정했다.
그는 소문난 미친놈이었고 평민 가이드 하나 납치하는 일 정도는 얼마든지 권력으로 뭉개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개국 공신 가문인 라예르가의 저택에 포탄을 끌고 가 공격하는 짓까지 감행하려면 적당한 명분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 가이드가 흉악하여 아르투 백작을 살해하였으니, 아비 되는 자로서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지 않은가?”
“……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 와야지.”
그게 무슨 말이야?
아르투 백작은 난데없는 말에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되었고.
탕-!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레토스 자작 가는 수도는 물론 지방 귀족 사이에서도 모르는 이가 많은, 대단히 한미한 가문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자작위를 이은 아이반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작자였다.
민간인 주제에 감히 흉포한 이능력자, 해리스 고드윈에게 죽음을 각오하고 시비를 거는 것부터 시작해서,
“커, 커헉……!”
자신보다 높은 가문의 주인을 대낮에 죽이는 것까지.
털썩, 아르투 백작‘이었던’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총구에서 나온 매캐한 연기가 사방에 퍼진 피 냄새에 뒤엉켰다.
불시에 일어난 살인 사건.
그 목격자인 고드윈 공작은 피에 젖은 레토스 자작을 보며 말했다.
“유감스러운 일이야. 아르투 백작이 그렇게 죽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게, 말입니다.”
레토스 자작은 하인이 건네준 수건으로 피를 닦으며 답했다. 어느덧 나타난 하인들은 아르투 백작의 시신을 정리해 옮겼다.
“고드윈 소공작의 가이드가 총으로 아르투 백작을 암살하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툭, 피에 젖은 총을 던지며 레토스 자작은 웃었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3단 카트에 박치기 되었던, 그리하여 약해진 허리를 만지고 있었다.
* * *
엘티로사 황녀는 초조하게 손톱을 짓씹었다.
뉴리엔 백작 영애, 하로아가 잡혀간 이후 새롭게 나타난 시녀는 말없이 그녀를 지켜보았다.
‘무서워.’
무엇이 이렇게 두려운 거지? 엘티로사 황녀는 머리를 쥐어뜯었으나 답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제이드의 총알에 단명할 뻔한 이후부터, 그녀는 발작적인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살해당할지도 몰라.’
누구에게? 어째서?
엘티로사 황녀도 조금이나마 자기 객관화가 가능한 인간이었다. 그녀도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이가 많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폭력이다. 정말로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나를 죽이려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던 엘티로사 황녀는, 시녀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랐다.
“황녀님?”
엘워드 황태자, 오라버니가 보낸 시녀.
“꺼, 꺼져!”
“네?”
“썩 꺼지란 말이다! 네 못생긴 얼굴 보고 있기 싫다고-!”
엘티로사 황녀는 미친 것처럼 소리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졌다. 시녀는 다급히 도망쳤다.
“허억, 헉……!”
미친 듯이 집기를 부수던 황녀는 이내 털썩, 무너져 덜덜 떨었다.
두려웠다. 무서웠다. 살해당할 것 같았다.
이것은 단순히 피해망상이 아닌 확신이었다. 그녀의 머릿속, 아름다운 온실에 목이 졸리는 여인의 인영이 선명히 떠올랐다.
“아니야.”
엘티로사 황녀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기억 안 나, 기억 못 해, 절대로, 절대……!
덜덜 떨며 고개를 젓던 엘티로사 황녀는, 어디선가 들어온 하녀가 자신에게 쪽지를 건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지? 온통 머리가 헝클어진 엘티로사 황녀는 쪽지를 펴들었다.
“……!”
제이드 리안, 그 발칙한 가이드를 납치했다.
「그리고, 명하신 대로 오랫동안 가이딩 받지 못한 하급 이능력자들을 준비시켰습니다.」
이능력자들의 시대가 시작되며 가이드의 중요성도 급등했다.
그러나 가이드의 수는 많지 않아서, 모두가 가이딩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등급이 낮은 이능력자들의 경우, 가이딩을 잘 받지 못해 가끔 가다 가이드가 배정되면 몹시 폭력적으로…….
“…….”
엘티로사 황녀는 쪽지를 구겼다.
내가 이런 명을 내렸나? 왜 기억나지 않지.
멍해진 눈동자는 이내 혼탁해지더니, 엘티로사 황녀는 세뇌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실행하라 해.”
* * *
“으, 으…….”
고드윈 공작 저의 지하 감옥. 분홍색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아름다운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
의식을 잃은 채, 덜덜 떨면서.
D급 이능력자, 헨릭은 침을 삼켰다. 저렇게 예쁜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쓰러진 상태이긴 하나 본래 그들 같은 이능력자에겐 가이드의 의사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들을 데려온 귀족은,
‘가이딩을 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을 해도 좋다.’
그렇게까지 말했다. 하급 이능력자라 가이딩 부위는 물론 시간까지 제한받는 헨릭으로서는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마음껏 가이딩을 할 수 있다니.’
그를 비롯해 불러온 이능력자들의 눈이 벌게졌다.
철컥, 감옥 문이 열리자 흥분한 이능력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아,”
누군가 신음했다. 지독히도 달큼한 매혹적인 향기.
이성을 잃은 헨릭은 사내들을 밀치고 가장 먼저 소녀에게 다가섰다.
“……부족해.”
소녀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헨릭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저 베어 물고 싶은 붉고 도톰한 입술부터 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컥!”
의식을 잃은 채 중얼거리던 소녀가 부지불식간에 그의 목을 잡아챘다. 불투명한 푸른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기묘한 안광을 뿜어냈다.
먹이를 발견한 포식자처럼.
“마력이, 부족해.”
“……!”
흡성대법.
그게 헨릭의 마지막이었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