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내 가이드가, 외간 새끼 손을 왜 잡지?”
살벌한 목소리의 주인은 해리스였다.
머리에 위잉위잉- 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사이렌이 미친 듯이 울려왔다.
‘망했다.’
제이드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치적 제스처로 내밀었던 손을 거두며 벌떡 일어났다.
“해리스-”
님,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부 오해입니다!
-라고 말하기도 전에 일은 터졌다.
쾅!!
알루카스가 앉아 있던 자리에 낙뢰와 같은 충격이 내리꽂혔다.
“크악!”
정확히는 해리스의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촉수가 거대한 해머처럼 분해 그 자리를 내리찍은 것이었다.
꿀렁이는 검은 촉수의 모습에 제이드는 연이은 비명을 삼켰다.
‘으악! 으악!’
그러나 놀란 것은 제이드뿐인지, 알루카스는 촉수 주먹이 부순 잔해 아래에 깔려 있지 않았다.
“……성깔 있네?”
훌쩍, 뒤로 물러나 있던 알루카스가 씨익 웃었다. 급하게 피하긴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스쳤는지, 입가에 핏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저 정도면 무사한 거나 다름없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제이드와 달리, 알루카스보다 더 옆에 있어 빠르게 대피했던 루켄은 질겁했다.
알루카스가 다치다니! 태산이 눈앞에서 무너져도 이보다 충격적이진 않으리라.
“다, 단장님! 어찌-”
“물러나, 루켄.”
그러나 태연히 입가를 훔친 알루카스는 손짓으로 루켄을 차단했다.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
아주 잠시였다. 알루카스가 루켄에게 시선을 주었던 건.
그러나 그 짧은 찰나, 바닥에 이지러졌던 그림자에서 아귀처럼 생긴 커다란 마수가 튀어나와 알루카스에게 달려들었다.
“……!”
[키익-!]
알루카스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으나, 수십 개의 날카로운 이는 도리어 그 살점을 뜯어낼 듯 번뜩였다.
추악한 마수에게서 진흙과 같은 검은 덩어리가 뚝뚝 떨어졌다.
‘잠깐, 저거……!’
제이드는 퍼뜩 뇌리를 스치는 기억에 흠칫했다.
처음으로 들어갔던 언노운 던전, 거기서 독 안개가 낀 늪이 나왔었다.
물론 당시 제이드가 거기까지 도착했을 때는 해리스가 늪 마수를 처리해 둔 뒤였으니, 무언가를 제대로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늪 마수가 본디 해자에 살던 물고기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 성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해자가 썩고 물고기도 늪 마수로 타락해 버린 거겠지요.’
고드윈 공작 기사단장, 파르나가 해준 말은 기억에 남아 있었다.
‘저건, 해리스가 죽인 늪 마수잖아!’
천만다행으로 알루카스는 늪 마수에게서 공격당하지 않았다. 이빨이 닿기도 전에 허공에 나타난 화염이 늪 마수를 그대로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키에엑-!]
늪 마수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불꽃에 타올랐다.
“마수 소환이라, 이런 이능은 또 처음인데.”
알루카스의 중얼거림에 제이드의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이건 마수 소환이 아니야.’
네크로멘시(Necromancy)다. 죽은 자를 불러와 종으로 부리는, 흑마법의 일종.
또한 고대 마수, 공허가 가진 힘 중 가장 끔찍하고 강력한 것이기도 했다.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나타났다는 공허는 세상의 모든 것을 삼키고 물들여 풀 포기 하나 자랄 수 없는 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그 공허를 막기 위해 사람들은 몇 번이고 창과 검을 쥐고 나서곤 했다.
하지만 인간의 날붙이는 공허를 제대로 벨 수 없었고, 설사 베어도 금방 달라붙었다. 그리고 잠시 떨어진 찰나 기생충처럼 인간에게 파고들어 안쪽에서부터 먹어 치웠다.
그리고 공허에게 ‘소화’된 후 내뱉어진 인간들은, 시체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군이었던 이들을 찌르고 죽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공허의 가장 끔찍한 힘은, 그것이 죽인 자들을 시체로 소환해 부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본질적으로 인간이라면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힘이야.’
흑마법사들이 공허를 숭배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제이드가 놀란 것은 거부감 때문이 아니었다.
‘해리스가 어느덧 공허를 제법 다루고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저렇게까지 정교하게 쓸 수 있다니……!’
이는 <시천귀>에서 에이드리안이 해리스를 배신하고 튄 뒤에나 나타날 일이었다.
믿었던 가이드의 배신으로 흑화한 해리스는 위험하다고 여겨 경계하던 힘을 끝도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나중엔 배후에서 사람을 조종하여 에이드리안을 거하게 엿 먹이는, 명실상부한 흑막 공작으로서 등장한다.
‘맞아, 그때 두 사람의 텐션이 아주 미쳤었지. 미친 애증 관계…… 가 아니라!’
잠시 흐뭇할 뻔했던 제이드의 얼굴은 굳었다.
믿었던.
가이드의.
배신?
오소소 소름이 돋아왔다. 왜, 왠지 남 일 같지 않네?
해리스한테 자신은 그래도 조금은 믿을 만한 가이드일 것이다.
‘반려 가이드라고도 말한 적도 있었지.’
그런 반려 가이드가 말도 하지 않고 뒤에서 다른 이능력자와 만났다.
거기다 일반적으로 가이드가 이능력자에게 손을 잡자는 등의 스킨쉽을 제안하는 건 가이딩을 해주겠다는 뜻이었다.
‘즉, 외간 가이딩!’
객관적으로 배신으로 해석될 법한 상황이지만,
‘아니야! 오해라고!’
제이드는 억울했다.
애초에 난 오늘 이렇게 알루카스를 만나게 될 줄도 몰랐는데!
‘그리고 외간 놈에게 스킨쉽하지 않……!’
아니, 왕가슴을 눌러보긴 했네. 퍼뜩 스치는 기억에 제이드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가이딩은 하지 않았어!
“해리스 님!”
그러니 제발 흑화하지 말라는 뜻으로 제이드는 두 이능력자의 전투 한복판에서 목청을 높였다.
“제발 진정하세요!”
불꽃과 검은 촉수가 서로를 난사하는 이 미친 상황을 어떻게든 막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제이드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
퍼엉!
알루카스가 먼저 움직였다.
“하하-!”
화염으로 마수의 머리를 터뜨리면서도 즐거이 웃고 있었다.
그는 사막 부족의 전사였다. 강자 독식 사회에서 전투는 필수 불가결한 일.
심지어 그는 화염 속성의 이능을 타고난 이였다. 그 어떤 이능보다도 파괴에 효율적인 힘.
그 힘의 주인답게, 알루카스는 이 사태가 비록 본의 아니게 일어난 일이라 해도 재미있었다.
‘제법…… 아니, 예상보다 더 강한걸?’
그와 같은 자들에겐 글자와 낱말 사이의 기록이나 사람들의 소문보다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맞서 싸우는 게 더욱 상대를 파악하기 쉬웠다.
‘제 가이드 건드렸다고 정신 나간 것처럼 덤벼들 줄 알았는데.’
사실 알루카스는 치정 사건에 자주 얽히는 편이었다. 제 여자에게 그와 같은 자가 붙었다는 걸 알게 된 사내들은 눈깔이 뒤집혀 앞뒤 없이 덤벼들곤 했다.
그와 같은 자에게 주먹다짐하겠다고 얼굴 벌게져서 달려드는 걸 보면 우스웠다.
하지만, 저 고드윈 소공작이라는 애송이는 달랐다.
‘의외로 신중하군.’
펑-!
다시 자신에게 덤벼드는 마수의 손아귀째 태워 터뜨리며 결론을 내렸다.
처음처럼 막무가내로 공격할 줄 알았는데, 난사하듯 쏟아지는 공격에는 강약이 있었다.
마치 자신을 어디론가 유도하듯이.
‘그걸 일일이 계산하여 움직이고 있다면 더는 애송이라 부를 수 없지.’
대등한 전사를 맞이하는 건 기쁜 일이다.
알루카스가 웃으며 한꺼번에 달라붙는 마수들을 일시에 태워버린 순간이었다.
“커헉……!”
피를 토하는 듯한 신음. 알루카스는 생각도 전에 시선을 돌렸다.
“루켄!”
당연하지만 루켄 또한 알루카스와 합을 맞춰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루켄은 알루카스를 상대하는 해리스에게서 빈틈을 보았다.
아니,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의도적으로 드러낸 허점이라는 것은 잡히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을 감싼, 이 촉수와 같은 검은 힘에 팔뚝이 붙잡혀 부러질 위기였다.
알루카스는 황급히 화염을 쏘아 촉수를 잘라냈다. 루켄은 그의 오른팔이자 보좌관이었으며 배다른 형제였다.
그것이 그의 패착이었다.
“윽-!”
알루카스의 신경이 빼앗긴 것은 찰나였다.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검은 촉수가 거대한 아가리로 변해 알루카스를 삼키려 들었다.
그것을 간신히 피했지만, 피한 곳에는 해리스가 있었다.
‘어째서?!’
알루카스는 당혹했다. 분명 해리스의 마지막 위치를 확인하고 움직인 거였는데!
그러나 당혹했다 한들 이미 판은 넘어간 버린 뒤였다.
쾅!!
해리스는 알루카스의 붉은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누구 손을 잡아?”
나지막한 목소리는 침착하여 더욱 서늘했다. 해리스의 적안이 알루카스의 손을 섬뜩하게 응시했다. 그대로 잘라버릴 듯한 눈빛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달칵-
폐허가 된 공간, 부서진 문이 삐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린 것은.
일시에 여섯 쌍의 눈동자가 한 곳을 향했다.
살벌한 전운의 시선이 쏟아지자 상대는 움찔, 몸을 떨었다.
“……아, 하하하.”
제이드였다. 어색하게 웃던 제이드는 ‘자자, 본론으로 돌아가세요’ 하고 말하듯 손짓했다.
“계, 계속하세요! 파이팅!”
“…….”
해리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느덧 문 바깥으로 몸을 반 이상 밀어 넣은 제이드의 모습은,
“……너 지금 혼자 튀냐?”
알루카스는 어이가 없어 목소리가 떨려왔다. 나 지금 대가리 바닥에 처박혔거든?
제이드는 재빨리 답했다.
“그럴 리가요?”
너무 빨랐다.
“튀다니, 어찌 그런 무도한 말씀을!”
그냥 여기보다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려고 했을 뿐, 그리하여 싸우시는 여러분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을 뿐이랍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별로 믿어주는 눈치가 아니자 제이드는 이실직고했다.
“아니, 저는 여러 번 말렸거든요? 근데 아무도 안 듣고 계속 싸우길래, 차라리 방해꾼 없이 열심히 싸우라는 의미에서 잠시 비켜주고자…….”
“튀려고 한 거 맞잖아!!”
@BAO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