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황녀를 위해 준비된 비밀 경호원들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일어난 일이었다.
탕!
첫 방은 정확하게 황녀가 쥔 총을 날리고, 그다음 그녀의 발치 앞에 경고 사격을 했으며, 마지막으로 날아간 총알은 황녀의 귓가를 향했다.
아슬아슬하게 맞을 뻔했지만 정말로 다치진 않았을, 그러나 귀가 먹먹해지기엔 충분한 간격으로.
‘처형당하는 기분이지.’
제이드는 파리해진 황녀를 보면서 생각했다. 제가 총을 맞아볼 뻔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황녀님.
해리스는 피식 웃었다.
‘이래서 자극한 거였나.’
그랬다. <시천귀>를 보아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엘티로사 황녀는 충동적이고 난폭한 성격이었다.
‘발작적으로 흥분하면, 생각보다도 본능에 따라 움직였어.’
그리고 그 본능은 대체로 공격적이었다. <시천귀>에서 에이드리안이 머리채 잡혀 뺨을 맞고 채찍질 당하는 장면이 나온 건 모두 황녀 덕분이었다.
‘어리석은데 하는 짓 하나하나가 광역 어그로 끄는 악역이라 나오기만 하면 댓글창이 욕으로 만선이었지.’
그런 성정이니 졸렬하다고 비꼬면 결투라는 폭력적인 수단으로 쉽게 유도되리라 예상했다.
‘손이 근질근질해서 혼났네.’
던전 아이템이라 레버액션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일반 총으로 위장하기 위해 제이드는 총기를 매만져 철컥 소리를 낸 뒤에야 총구를 내렸다.
“…….”
좌중은 고요했다.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실력에 압도당한 까닭이었다.
이는 고드윈 본성에서 아이린 공녀한테 총을 갈겼던 때보다 더 큰 반응이었다.
총 자체는 이전부터 있던 무기였다. 그러나 대량 공급에 성공한 것은 현 고드윈 공작이었다.
선대 고드윈 공작과 본령의 사람들은 총기를 경원시하여 그 위력을 체감하지 못했지만, 수도는 총기로 무장한 경비가 사방에 깔려 있었고 민간에서조차 총기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다.
‘대…… 대단해!’
총기에 익숙한 수도 사람들에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사격 솜씨였다.
그리고 그건 황녀도 마찬가지였다.
“……힉.”
꽥꽥 소리를 지르며 난동 피우던 황녀는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하로아는 기겁하여 황녀를 살펴보았다.
“엘티로사 황녀님!”
그러나 주저앉은 황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1센치라도 어긋났으면, 머리가 터졌을 거야.’
그 사실을 자각하자 몸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황녀는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녀가 머리채를 잡고 뺨을 갈기며 두들겨 패고 채찍질하며 내쫓은 천것의 수는 열 손가락을 넘긴 지 오래였고, 알루카스를 쫓아다니게 되자 귀부인들에게까지도 그 개 같은 성질머리를 드러내곤 했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죽인 적은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정한 일종의 선이었다.
‘그 선을 넘길 두려워했던 것은, 나 또한 살해당하는 것이 두려웠으니까.’
깨달음과 동시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충격이 덮쳐오자 황녀는 트리거라도 눌린 듯 거품 물고 쓰러졌다
“황녀님-!”
계속 숨어서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황실 기밀 경호원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쓰러지는 황녀를 붙들었다.
‘아니, 황녀가 지랄 발광할 때는 안 나오더니 이제 나타나?’
길드원들은 순간 빛의 속도로 치러진 결투도 잊고 반감을 품었다.
진작에 나타나서 말려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가 눈먼 황녀의 분노에 칼 맞아 죽을 뻔한 건 문제도 아니고, 황녀가 총에 맞지도 않았는데 제풀에 기절한 것만 중요하다는 거야?!’
총을 쏘아서 황녀를 기절시킨 것은 제이드였음에도, 공간의 분위기는 황녀 쪽에게 점점 더 적대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로아는 그 모든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천것들이.’
가이드라는 직종이 아니었으면 자신 얼굴조차 똑바로 응시하지 못했을 것들이 감히 저토록 불손하게 굴다니.
속이 뒤집힐 듯 불쾌했지만,
“리안 남작!”
그러나 때와 상황을 가려야 하는 법.
하로아는 거품 물고 쓰러진 황녀의 모습에 우선 항의부터 했다.
“자네 미친 건가? 감히 황녀 전하께 총을 쏘다니! 이건……!”
“정정당당한 결투였죠. 여자 대 여자로 싸운.”
후, 제이드는 총구에서 나오는 연기를 불며 말했다.
황실 능멸 죄일세, 하고 반박하려던 하로아는 제이드가 황녀가 던진 장갑을 주워 들어 흔들자 이를 악물었다.
‘……이 머저리 황녀가!’
먼저 총을 갈기고 결투까지 신청해 버린 탓에 황족 모독죄로 끌고 가기도 어려웠다.
어리석고 충동에 쉽게 휘말리는 성격이 귀찮긴 해도 조종하기 편하다고 여겨왔지만, 오늘 같은 상황이 오니 매우 골치 아팠다.
‘그래도 발목은 잡을 수 있어.’
황녀가 다소 흥분하긴 했지만, 저쪽이 더 과했다고 분탕 쳐야 해.
그렇게 결론 내린 하로아는 서릿발 서린 얼굴로 고함쳤다.
“하, 그래! 결투라 치지. 그래도 자네는 무려 세 방이나 쏘지 않았나? 이건 명백한 위협일세!”
하로아는 쾅, 발을 굴려 위협적으로 쏘아붙였다.
수도에서 일어나는 결투에선 총알을 몇 개 쓸지도 정하곤 했으니 아예 억지는 아니었다.
물론 황녀가 그런 것 따윈 무시하고 먼저 총을 갈겼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건 억지였지만.
그러나 그녀 뒤에는 황실 비밀 경호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제 가이드에게 미친놈이라 해도, 황실의 경비를 건드리는 건 반역죄다.’
설마 그것까지 감수하진 않겠지.
만약 그 정도로 미친놈이라면…….
‘오히려 좋아.’
하로아는 속으로 비소했다. 고드윈 소공작까지 같이 묶어 들어갈 수 있겠군.
사태가 나빠지긴 했지만, 어떻게든 리안 남작을 납치해 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로아가 ‘신호를 보내면 당장 잡아라’는 표시를 날리며 고함치던 순간,
“제국의 백성 주제에 어딜 감히……!”
쾅! 문이 거칠게 열리며 외부인이 줄줄이 들어왔다.
“-소공작님!”
“디뮈아드 님, 괜찮으십니까?!”
우르르 들어온 이들은 선대 고드윈 공작이 붙여준 해리스의 사람들이자 라예르가의 수족들이었다.
“감히, 가이드 길드에서 조작하려고 했지.”
하로아가 말문을 잃은 사이, 해리스가 말을 받았다.
‘휴, 이제 왔네.’
제이드는 그제야 긴장하던 어깨에 힘을 풀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디뮈아드와도 이야기했지만, 그 외에도 들어둔 보험이었다.
‘만약 디뮈아드의 노랫소리가 들리면, 라예르가 사람들과 함께 진입해 주세요.’
그건 상황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니까.
무력적으로 돌파한 건지 고드윈과 라예르가의 사람들은 얼굴에 핏방울이 묻어 있고 옷도 흐트러져 있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부분은 없어 보였다.
무력 집단이 공간을 장악하자 공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확연한 인원 차에 하로아가 당황하여 외쳤다.
“고, 고드윈 소공작! 이 무슨 무례……!”
“모두 알겠지만, 나는 폐하의 명을 받고 검사하러 왔네.”
해리스라고 제이드가 결투하는 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제국과 폐하를 위해 기꺼이 나섰거늘, 감히 황녀 따위가 내 가이드에게 누명을 씌우고 내게 총을 쏘다니.”
명분. 그것으로 자신의 제이드를 옭아매려 한다면……. 붉은 입술이 차갑게 휘어졌다. 그도 같은 수법으로 부숴버리면 되겠지.
“저의가 의심스러워. 감히 자신을 황실의 주인이라 칭하여 그 뜻을 거스르려던 생각이었나?”
“어, 어딜 감히 그런 누명을-!”
해리스 입에서 나온 명백한 반역의 죄목에 하로아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물론 엘티로사 황녀는 저런 죄목으로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어리석음과 난폭함은 모두가 아는 것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었다. 황녀의 명을 받았다 하나, 가이드 길드를 통해 결과를 조작하려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안 돼, 입을 막아야 해!’
비록 엘워드 황태자가 내린 밀명이라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밝혀지면 그까지 가기도 전에 꼬리 잘릴 것이다.
즉, 모든 죄는 자신에게 쏟아진다!
‘해리스 고드윈에게 뒤집어씌워야 해!’
그가 과잉 반응하고, 무력시위를 했다고! 황급히 구조 신호를 보내려던 하로아는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에 경악했다.
어느덧 가이드 길드는 라예르가와 고드윈의 사람들에게 봉쇄되어 있었다!
“제국의 신민으로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지 않겠느냐?”
그 말을 입에 담으면서도 해리스는 조소를 숨기지 않았다.
누가 봐도 황실에 불손한 얼굴.
그러나 황실 비밀 경호원들은 반발하기도 전에 제압되었다.
“윽-!”
“넘기기 전에 철저히 조사해.”
망했다.
하로아는 자신이라도 빠져나가기 위해 길드원들을 보았다. 관련 증거를 지금이라도 없애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예, 제국의 신민으로서 거짓을 고하지 않겠습니다!”
여러 사태를 목도한 길드원들은 하로아에게 적대적인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비록 실질적인 패악 자체는 황녀가 저질렀다 한들, 황녀의 시녀인 하로아도 남은 아니었으니까.
들키기 전까지는 죄가 아니나, 들킨 후에는 죄가 된다.
조종자로서 언제나 안전한 위치에, 한 발자국 물러나 모든 것을 관망하던 하로아는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고 비명 질렀다.
“안 돼-!”
* * *
그렇게 가이드 길드가 통째로 뒤집히는 사이,
“이런 일이 일어날 거였으면 미리 말해줬어야지.”
나는 부길드장에게 목걸이를 돌려받으며 작게 투덜거렸다.
“카밀로, 너무한 거 아니에요?”
부길드장으로 변신해 있던 카밀로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속삭였다.
“제가 끼어들어서 그나마 이 정도인 거랍니다.”
그렇다. 내가 길드 안에 들어오면서 느꼈던 이질감은 바로 카밀로였다.
요정이라는 걸 자각하고 나서부터 마력의 흐름에 더욱 민감해졌는데, 부길드장이랍시고 나온 사람에게서 처음 카밀로를 만났을 때의 느낌이 나서.
‘그래서 손바닥으로 <카밀로??>하고 썼는데 씹혔지.’
“목걸이까지 뺏어갈 건 없었잖아요. 미리 운이라도 띄워주던가!”
“변신의 본질은 외형보다도 행동이고, 배신은 최후의 순간에나 쓸 수 있는 무기에요.”
내가 정말로 납치당하면 개입했을 거란 이야기다. 거기에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카밀로가 말을 막았다.
“그보다 시간이 없으니 제 말부터 먼저 들으세요.”
나를 잡아 오는 카밀로의 손길에 초조함이 묻어나왔다.
“지금, 제이드 님께서 만나 뵈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